내가 기억하는 이름들

십여 년 전에 지금은 유명한 동강 근처 어라연이라는 곳으로 혼자 여행을 한 적이 있습니다.

강가에 텐트를 치고 후레쉬 불빛으로 책을 보다가 문득 내가 살아 오면서 알고 있는 이름들이 몇이나 될까 궁금해지더라구요. 그래서 종이를 꺼내놓고 한 사람 한 사람 얼굴을 떠올리며 성과 이름을 써내려 가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백여 명이 넘어가기 시작했을 때부터는 속도가 느려지더군요. 얼굴은 생각이 나는데 이름이 떠오르지 않고 이름은 알겠는데 얼굴이 생각 안 나고. 그러다 백 오십 명 정도 이름을 쓰니 더는 생각이 안 납디다.

아. 이게 내 한계인가보다.

그 백 오십 명은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하더군요. 더 아쉬운 건 그분들은 나를 괜찮은 놈으로 기억하고 있을까. 썩 좋은 추억은 아니지만 내 이름이나 얼굴은 알고 있을까.

그래서 우리는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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