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 가던 날

어제 오후에 차일피일 미루던 이빨 치료를 하려고 치과에 갔다. 예약을 하지 않고 갔더니 4~50분 기다리란다. 기다리는 거야 이제 익숙한 나이가 됐지만 한쪽 볼탱이를 쥐어 잡고 있는 곳에서 뭐 더 볼 게 있나 싶어 올라오기 전 눈여겨 두었던 지하 서점으로 내려갔다.

주중이라 그런지 한가하다. 책을 고르는 손님들이 치과에서 대기하는 환자 수만큼도 안돼 보인다. 바람 나오는 송풍구 밑에 서 있으니 시원한 게 벌써 피서 온 느낌이다.

이리저리 구경하다 세 권의 책을 골랐다. 정확히 말하면 한 권만 고르고 두 권은 찾지를 못해 매장 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마흔이 넘어가니 제목이 눈에 확 들어온다. 그래서 골라잡은 것이 《나는 마흔이 좋다》와 《2007 신춘문예 당선시집》이었다. 《말랑~말랑 여의도 보고서》는 진열대에서 아무리 찾아도 눈에 띄지 않아 찬스를 사용했다.

- 이런 책이 어디 있어요?

매장 담당자는 단번에 책을 찾으러 가는 게 아니라 컴퓨터 앞으로 가더니 검색 찬스를 쓴다. 재고가 있는지 확인하고 책꽂이로 향한다. 몇 분 동안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고개를 갸우뚱 한 뒤 한쪽에 있던 선배인듯한 언니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지인 찬스를 쓴다. 이런 두 번의 찬스를 쓰다니... 고참 언니는 책 제목을 말하자마자 순식간에 찾아서 내 앞에 선다. 허걱. 이렇게 빠르다니. 소림사로 치면 이마빡에 점이 9개 있는 고수일 듯싶다.

지난 4월 말에 은행에 갈 일이 있어 그때도 대기시간을 이용해 서점에서 사 온 책이 댓 권 있지만 다 읽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책꽂이에 꽂아 두면 언젠가는 읽을 것이고 행여 내가 읽지 못하고 지나간다 하더라고 누군가는 책을 보리라. 인터넷으로 주문을 많이 하지만 때로는 서점에 가서 책장을 넘겨 보기도 하고 표지 앞뒷면을 살피며 고르는 책은 더 애착이 간다. 계산을 마치고 총총걸음으로 서점을 나오니 진료 시간이 얼추 다 됐다.

이빨은 시큼시큼하지만 살랑살랑 흔들리는 책봉투를 들고 집으로 가는 날은 기분이 흐뭇하다. 통닭을 사 들고 가는 것과는 또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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