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의 꽃을 아시나요?

정기보수 turnaround
정수 한창때 들리는 세 마디…조공, 장비, 빵

한 달여의 정기보수 기간에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많고 피곤함을 잊으려고 모두가 애쓴다. 처음 일주일은 작업 진행을 위해 서로 분주하게 움직이고 말도 많다. 다음 일주일은 상대방과 아웅다웅하며 싸우기도 하고 얼굴을 붉히기도 한다. 그다음 일주일은 이제 피곤함이 누적되고 지쳐 있기 때문에 모두가 말이 없다. 휴식 시간이 돼도 묵묵히 담배를 피우거나 멍하니 앉아 있기만 하고 대화가 좀처럼 없다. 그러다 보면 한 달이 후딱 지나가 버리고 만다.

정수 상황실에 있으면 요란하다. 6대의 무전기에서 오가는 대화 소리가 어느 시장판 한가운데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서로 찾는 사람이 어찌나 많은지 반나절만 앉아 있으면 귀에서 파열음이 들린다. 그러는 가운데 정수가 한창 무르익어 가면 무전기에서 들리는 단어가 딱 세 개 있다.

조공, 장비, 빵.

아침이 되면 이곳저곳에서 조공을 대 달라고 시끄럽다. 계획된 인력을 수급하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긴급하게 작업인원이 필요하게 되면 조공을 원하는 일자에 맞추지 못할 때가 가끔 있다. 정수기간이 농번기와 겹치기도 하지만 3D 업종은 원하는 단가에 사람을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루라도 조공이 제때 수급이 안 되면 아침부터 아우성들이다.

그런 아침이 지나가면 이제는 크레인 몇 톤짜리가 필요하다고 난리다. 모두가 맡은 일이 있고 그것을 계획된 시간에 마치려면 장비가 스케줄대로 운영이 돼야 하는데 현장 작업이라는 것이 아무리 준비를 철저히 했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지는 법.

조그만 크레인이나 지게차 하나라도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기다리는 작업자들이 난리다. 몇 톤 크레인을 어디로 보내라. 왜 아직도 도착 안 했느냐. 정말 안 대줄 거냐는 둥 애원과 협박이 난무한다. 따지고 보면 모두 제 일에 열심이니까 그렇겠지만.

그런대로 장비 문제를 교통정리하고 나면 오후 세시가 느닷없이 다가온다. 그 시간에는 빵과 음료수가 현장으로 배달돼서 작업자들은 간식을 먹으며 잠깐의 휴식을 가진다. 그런데 아침에 인원을 파악해서 필요한 분량만큼씩 상자에 포장해 배달을 하지만 워낙 인원이 많다 보니 제 몫을 못 찾아 먹는 사람이 나온다. 어떤 때는 상자 하나가 통째로 없어지기도 한다. 그러면 왜 빵이 없느냐고 전화기에 불이 나고 무전기가 일제히 시끄러워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없어진 빵을 당장 만들어 낼 수도 없는 지경이니 상황실에 앉아 있는 것이 큰 곤욕이 아닐 수 없다.

조공, 장비, 빵으로 하루가 시작돼서 하루가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정수의 꽃은 조공과 빵 그리고 장비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한다. 이 세 가지만 해결되면 정수작업은 이상 없이 잘 돌아간다고 봐도 결코 틀린 말이 아닐 게다. (1999년 정기보수 기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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