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에 가다

어제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졸업식에 가보는 것이 십삼 년 만이네요. 대학 졸업이란 것이 사람들로 북적대고 사진 찍어 대느라 혼잡할 게 뻔해서 생깔라고 했지요. 가진 게 시간밖에 없지만 교통비 주면 간다고 했습니다.

교문 입구에서 꽃다발 하나 사려는 모친을 극구 말렸습니다. 사봤자 졸업식 끝나면 쓸 데 없는데 굳이 살 필요 없다고 했지만 꽃다발 없는 사진도 볼품이 영 없을 거 같아 가장 대중적인 꽃다발을 만 원 주고 샀습니다.

예전 제 졸업식 때는 비가 부슬부슬 내려 땅도 질퍽거렸습니다. 몇 시에 정문에서 만나자고 해서 후딱 사진 찍고 곧장 식당으로 갔더랬지요. 조금 늦은 동생은 우리 일행을 찾지도 못하고 발걸음을 돌렸답니다. 졸업식에 불참했던 그 동생이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예상했지만 정말 인산인해더군요. 오늘 졸업생이 육천 명 정도 된다고 하니 곱하기 오를 하면 삼만 명이 바글대고 있나 봅니다. 그 시간 여의도는 줄이라도 맞춰 앉아 있는데 말이죠. 우리도 인산인해를 만드는데 일조를 한 것이니 사람들 많다고 쭈증내면 누워서 침 뱉는 격이지요. 같이 움직이다가 잠깐 한 눈 판 사이에 주인공을 잃어버렸습니다. 잠시 후 손전화가 와서 재회는 했습니다. 세상 참 좋아졌습니다. 아마 손전화 없었으면 우리는 다시 일일 이산가족이 됐을 겁니다.

빨리 치고 빠지는 전략으로 후딱 사진 찍고 식당으로 고고씽~~

식당은 학교 주변을 조금 벗어난 곳으로 미리 정했지요. 지난 구정 때 바닷가재 얘기를 하다 드셔 보신 적 없다는 모친을 위해 인터넷 검색 찬스를 써가며 물색한 곳이랍니다. 조용한 방에 둘러앉아 한 시간 가량 먹어댔습니다.

젊은 여사장에게 오늘은 길가에 태극기도 나래비로 걸려 있는데 서비스 같은 거 없느냐고 옆구리를 찔렀더니 와인을 한 잔씩 가져다주더군요. 입맛에는 소주가 최고지만 낮에 마시기 적당했습니다.

요즘은 고등학교 졸업생 열 중 여덟이 대학을 간다네요. 88만 원 세대라고 하는데 학력 인플레이션도 그 원인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마지막으로 바닷가재 지리와 조막만 한 알밥을 먹고 일어서려니 와인을 돌린 사장님이 후식도 있다며 드시고 가라는군요. 차 한 잔 하며 지리가 썩 괜찮다는 시식 평가회도 잠시 가졌습니다.

동생 덕분에 맛있는 점심, 사실은 비싸서 더 맛있게 얻어먹었습니다. 또 하나. 그 졸업생 덕분에 전 박사 동생을 두게 됐습니다. 공부를 좋아하는 동생이 건강하게 계속 공부할 수 있기를 빕니다.

아 참. 교통비 이만 원은 우리 어무이가 주시데요. 감사합니다. 어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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