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는 서른하나

사람의 정신적 나이는 삼십대 초반에서 정지한다는군요.
아마 이때쯤에는 가치관도 정립됐고
습관도 고착화돼서 더는 고치기 어렵다는 방증일 수도 있고요.

질풍노도의 변성기 시절에는 하루빨리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답니다.
떡국을 먹으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고 해서
두세 그릇씩 먹었던 기억도 나네요.

지금 돌이켜보면 부질없는 짓이었고
후회막급인 일이었지만 그 시절이 그립기는 합니다.

내 나이는 서른하나에서 멈췄습니다.
물론 유통기한을 표시하는 생물학적 나이는 서른하나를 훌쩍 넘겼지만
생각하는 꼬락서니가 그때랑 별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봐서
정신은 서른하나에서 멈춘 게 틀림없습니다.
그 시절이 지나고 보니 생각의 한계는 그때 이후로
늘어나질 않고 오히려 점점 더 쪼그라들고 있네요.

서른하나라는 나이는 어찌 보면 인생의 꼭지점 인지도 모릅니다.
무서움을 모르고 결과를 미리 예측하길 거부했던 십 대 시절,
끓는 피를 주체하지 못하고 사랑, 자유, 순수만 외치던 이십 대 시절을 지나
조용히 거울 앞에 서서 현실과 이상의 벽을 깨닫고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좁혀보고 싶은 서른하나의 시절은
머리와 가슴을 찬찬히 돌아보게 하는 전환점이 아니었나 싶네요.

서른하나는 현실과 타협한 첫 번째 나이일 수도 있네요.
주민세와 갑근세가 있다는 걸 피부로 느끼기 시작하며
변화를 받아들이기 거부하는 첫 번째 나이였고
그래 그럴 수도 있지 라는 융통성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예쁜 처자를 보면 가슴이 설레고
밤샘을 하면 이튿날이 고역이지만 그 열정이 남아 있는 걸 보면
마음은 언제나 서른한 살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유통기한이 점점 다가올수록
여기저기 몸에서는 하자보수를 해 달라고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서른하나에서 멈췄기 때문에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요 푸른 봄입니다.

만약 마음마저 나이를 들어 버린다면
그 끔찍함을 어찌 상상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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