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룸과 멍박

어쩌다 고스톱을 칠 기회가 있으면 첫판은 선잡기 연습게임을 하자고 한다. 여섯 장 깔고 일곱 장씩 쥐고 앉아 패가 다 떨어질 때까지 쳐서 점수가 제일 높은 사람이 선을 잡는 것이다. 물론 판돈도 없다. 전국 팔도에 있는 동네마다 고스톱 룰이 조금씩 달라서 선잡기 게임을 하면서 공통의 룰을 정하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대개 선잡기 게임을 하다 보면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날의 고스톱 룰이 얼추 정해진다. 그래서 판이 끝날 때까지 점수를 세는데 별 다툼이 없다. 거액의 판돈이 오가는 것이 아니라 겨우 점 백에 맥시멈 만 원짜리를 치는 심심풀이지만 공통의 룰 없이 시작하게 되면 어느 순간 점수를 세다 이견이 생겨 찝찝하게 마무리되는 경우가 종종 있곤 해서 그렇다.

동네마다 색다른 룰 중에 '한 번 독박은 영원한 독박'이라는 것이 있다. 대개 독박이 될 패를 내려놓고 한 바퀴 도는 동안 점수가 나지 않으면 해제됐다고 하는데 어느 지방은 내려놓은 패로 말미암아 점수가 나게 되면 점수가 못난 두 사람이 들고 있는 패를 검사해서 독박 유무를 판정하기도 한다. 그런 자리에서 한 번 독박을 쓰게 되면 그렇지 않아도 잘 돌아가는 꼴통도 아닌데 신중해져서 어느새 경로당 화투를 치게 된다.

피박, 광박, 멍박이 고스톱 삼대 박이라고 하지만 멍박이 나오기는 참 어렵다. 그도 그럴 것이 멍텅구리라고 하는 열끝자리 패 9장 중 7장을 가져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멍박이 나오는 판은 셋 중 두 사람이 지지리도 못 쳐서 점수가 크게 나곤 한다.

어제 정부는 비상경제대책회의를 만든다고 한다. 60평 되는 청와대 지하 벙커를 전시에 준하는 비상상황실로 만들어 경제위기를 극복한다는 취지다. 일명 한국판 워룸이란다. 룸이라고 하면 밀폐되고 은밀한 것을 상상하던 터에 지하 벙커에 만든다고 하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그런데 그곳에서 국민이라는 판돈을 가지고 그들만의 고스톱만 치는 건 아닌지 정말 우려되는 걸 숨길 수 없다. 피박, 광박은 나름대로 선전하면 뒤집어쓰지는 않겠지만 일반 고스톱 판에서 드물게 나오는 멍박(MB)이 한 판 끝날 때마다 나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워룸에 입장한 사람들이야 어차피 제 돈 내고 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눈먼 판돈을 가지고 치게 생겼으니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깔렸을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더군다나 워룸의 주인이 멍박과 비슷한 이름을 가지고 있으니 고스톱 룰 마저 바꾸지 않을까 염려된다. 가령 멍박이 나오면 점수를 두 배가 아니라 747배로 한다든지, 삽질을 747번을 더 한다든지 할까 두렵다. 그것을 예방하는 방법은 경제 좀 안다는 타짜들을 죄다 불러다 놓고 선잡기 한 판을 하면서 공통된 룰을 만들고 정정당당한 리그전을 하면 될 텐데 멍박 좋아하는 주인장이 그렇게 할 리 만무하다는 생각이 드니 갑갑할 뿐이다.

그저 존두환 고스톱, 영삼이 고스톱, DJ 고스톱, 놈현 고스톱 뒤를 잇는 멍박 고스톱이 나오지 않기를 두 손 모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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