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 잦으면 똥 싼다

중화학 공장에 근무하면 하복이라고 해도 긴 팔을 입습니다. 위험물질에 피부가 직접 노출되어 발생할지도 모르는 안전사고를 방지하려는 목적입니다. 아울러 공장 내에서는 하이바를 쓰고 현장에 다닙니다. 물론 앞부분이 강판으로 둘러싸인 안전화를 신는 것은 기본이고요. 이런 것이 처음에는 낯설어 적응이 안 되지만 습관이 되면 익숙해집니다. 안전화만 신고 출퇴근을 하다 보면 구두나 캐주얼화를 신으면 오히려 어색하고 더 불편해지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테레비 뉴스나 오락 방송을 볼 때 기자나 연예인들이 안전모 턱끈을 조이지 않은 모습을 보면 손가락질을 하곤 합니다.

안전교육도 월 2시간 이상을 하도록 법규화 되어 있습니다. 안전교육을 받다 보면 하인리히 법칙(Heinrich's Law)이라는 것을 많이 접합니다. 1930년대 초 미국 아무개 보험회사에 다니던 H.W. 하인리히라는 양반이 사고를 분석하다 '1대 29대 300'이라는 법칙을 발견했다는군요. 1건의 중대 재해에는 경미한 사고 29건이 연관되어 있고, 같은 사고를 낳을 뻔한 약 300건에 달하는 사소한 이상징후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사소한 문제나 실수를 방치하면 커다란 사고로 이어지니 사전에 예방하라는 것입니다.

근래에는 경영에도 하인리히 법칙이 쓰이고 있습니다. 쥐새끼가 들어간 노래방 새우깡이 나오기까지는 29번의 클레임이 있었을 것이고, 300번 정도는 뭔가 이상하다는 조짐을 느꼈을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이상한 조짐을 느꼈을 때 대처했으면 새우깡에 쥐새끼가 들어가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1원만 들이면 맛있는 새우깡을 만들 수 있는데 이상징후를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대형 사고를 치면 330원이 든다는 얘기겠지요.

이렇게 유식하게 무슨 법칙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우리는 이미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방귀 잦으면 똥 싼다는 속담이 바로 그것입니다. 옆 사람이 방귀를 픽픽 뀌면 고쟁이 갈아입으라고 농반진반으로 말할 정도로 생활화돼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너무 입에 달고 살다 보니 무감각해졌나 봅니다. 매월 15일 사이렌 소리가 전국적으로 울리면 우리는 으레 그러려니 하지만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깜짝 놀라는 것처럼 말입니다. 숭례문이 분신자살을 한 뒤 촛불이 휘몰아치다 미네르바를 잡아넣고 용산 참사를 슬쩍 덮으려는 것이 이상징후 300건에 해당하는지 경미한 사고 29건 중 하나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들이 중대 재해 1건(?)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사건들을 분식회계해서 중대 재해 1건이 터졌다고 단정 지으려는 분들이 계시나 봅니다. 설령 중대 재해라고 백번 양보한다손 치더라도 300번이나 이상징후가 있었고 29번이나 경고가 있었는데 눈치를 못 채고 중대 재해가 날 때까지 뭐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원인 분석은 제쳐놓고 어물쩍 넘어가려고 합니다. 고쟁이만 냉큼 갈아입으려고만 하지 왜 방귀를 뀌었는지 진찰도 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방귀 뀐 놈이 성내는 형국입니다. 분식회계로 부실을 숨기려고 회계부정을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데 정작 자기만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줄 모르고 있습니다.

스스로 삽질하며 제 무덤을 파지 마시기 바랍니다. 새우깡에서 죽은 쥐가 나온 것이 예사롭게 여겨지지 않습니다. 방귀 잦으면 똥 쌉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