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과 선물의 경계에 서다

1.
용돈이 궁하던 학창시절. 길을 가다 만원짜리를 주웠다. 살다 보니 이런 행운이 있구나. 사방을 둘러보며 슬며시 주워 들었다. 흙을 털고 잘 접어 누가 볼까 얼른 주머니에 넣었다.

담배 하나를 피워 무는데 친구가 헐레벌떡 뛰어온다.
- 만원만 빌려주라.
- 어데 쓸라고?
- 지금 미팅 가려고.
점쟁이 빤쓰를 입었나 어찌 만원짜리가 있는 줄 알고 귀신같이 달랜다.

며칠 후 그 친구는 잘 썼다며 만원을 돌려줬다. 스스럼없이 돈을 받았다.

2.
친구에게서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 급해서 그런데 백만원만 넣어주라.
- 언제 갚을 건데?
- 장난하지 말고 정말 급해서 그래.
더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계좌번호나 찍으라고 하며 전화를 끊는다. 차용증이나 근저당 설정도 하지 않고 자동이체를 한다. 돌려주면 좋고 아니면 말고.

3.
조폭은 돈이 떨어지면 결혼을 한다고 한다. 힘 깨나 쓰는 조폭이 결혼한다고 하면 깍두기들이 봉투를 내밀려고 접수대에 늘어선다는 게다. 그렇게 모인 돈이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비단 이런 일이 조폭 세계에서만 있을까?

축의금을 모아 좋은 일에 썼다는 기사를 종종 접하곤 한다. 지극히 보통 사람의 경우라면 식장 임대 비용이나 피로연에서 먹은 국수값으로 퉁 치면 될 정도의 축의금이 들어온다. 그런데 그런 양반들한테는 얼마나 많은 돈이 들어오면 저럴까 하는 궁금증이 든다. 유추하건대 권력의 정점에 있거나 영향력 있는 양반들은 아마 조폭 결혼식만큼이나 축의금이 들어오는 모양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렇게 모인 축의금을 보고 뇌물을 받았다며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상식 있는 몇몇 분들이 좋은 일에 썼다는 걸 보며 상상외로 큰 금액에 놀랄 뿐이고, 그렇지 않은 양반들이 더 많은 것이 우리 현실이다. 조폭이나 방귀깨나 뀌는 양반들이나 별반 다를 게 없다.

가끔 결혼식 청첩장이라도 받을라치면 참석 여부를 떠나 얼마짜리 봉투를 들이밀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할 때가 있다.

4.
베트남 출장을 가는 상사에게 오백불이 든 봉투를 건네줬다. 아오자이 한 벌을 사다 달라고 하면서 말이다. 주는 입장이나 받는 입장에서나 오백불이면 아오자이 한 벌을 사도 남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갑과 함께 하는 출장이라 그냥 경비에 보태 쓰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다.

출장에서 돌아온 상사는 최고급품이라며 아오자이가 담긴 쇼핑백을 건네줬다. 물론 거스름돈은 돌려주지 않았다. 남은 돈이 지갑으로 들어갔는지 그린피로 써버렸는지 확인할 길이 없지만 상사의 인격을 믿기 때문에 아깝다거나 눈 뜨고 코를 베였다는 감정은 추호도 들지 않았다.

5.
봉하마을에 나타난 육백만불의 사나이 땜시 난리다. 육백만불의 사나이는 교도소 담장 위를 걷고 있고, 소위 공권력이라는 힘은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고 크게 엮어서 줄줄이 교도소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 법은 공정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바람은 그저 육법전서 속 문자로만 존재한다고 믿은 지 오래돼서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변하지 않은 것은 권력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해바라기 검새가 한창 활짝 피어 있다는 것이다. 정승 집 개가 죽으면 쪼르륵 달려가지만 정승이 죽으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속물근성을 드러내 보이면서.

6.
백만원이나 오백불과 비교하면 백만불과 오백만불은 어마어마하게 큰돈이다. 물론 차용증이나 근저당 설정도 없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돈은 선물이 될 수 없을까? 오늘도 뇌물과 선물의 경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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