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권력

백무산

옥상 위에 놓인 물탱크를 청소한다
언제부터인가 수도에서 냄새가 났다
발목까지 빠지는 침전물은 썩어
악취가 나고 온통 하수도나 같다
물은 계속 들어오고 또 나가므로
언젠가 새 물갈이가 저절로 되리라 믿었던가
썩은 물이 빠지고 천천히
선량한 권력이 들어올 것이라 믿었던가

행여 이타적인 권력을 꿈꾸는가
정직한 권력을 꿈꾸는가
착하고 선량한 권력을 못내 기다리다가
이타적인 자는 권력 경쟁의 무기가 항상 부족하고
착한 성품은 더이상 권력을 꿈꾸지 않는다
정직한 자는 스스로 백의종군을 원한다

행여 아름다운 권력을 꿈꾸는가
혹시 겸손한 권력을 꿈꾸는가
그렇다면 권력을 지배해야 한다

권력은 종말에 가서야 아름답다
아름다운 권력은 박살이 난 권력이다
모든 걸 잠그고 끄고 한번씩 비우는 순간
권력은 그때만 겸손하다
권력 아닌 것으로 권력을 비우라
그렇다면 권력을 지배해야 한다

길은 광야의 것이다/백무산/창작과비평사 19990131 136쪽 5,000원

오늘은 진종일 비가 내려 촛불이 켜지지 않길 비는 사람도 있겠지.
권력은 박살이 나야 아름답다는 의미가 새삼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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