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와 RSS

1.
RSS
겨우 김치 한 통, 어제 먹다 남은 사골국물을 넣어놨던 냉장고가 커질수록 쟁기는 내용물은 점점 늘어갔다. 한여름에도 아이스께끼를 먹을 수 있고, 미숫가루에 얼음을 넣어 시원하게 마실 수도 있게 됐다. 핏기가 채 가시지 않은 남의 살붙이를 냉동실에 넣어놓기도 하고 숨이 끊어지지도 않아 아가미를 벌름대는 물고기도 쑤셔 넣고 생각날 때마다 꺼내서 먹었다. 먹을 만큼만 하던 김치도 김치 냉장고가 자리하고부터는 시도때도 없이 김치를 담가 넣었다. 용량에 맞춰서. 요맘때 항상 먹던 겉절이는 이제 특별식이 된 지 오래다. 쑤셔 넣기만 하다 보니 저 뒤편에는 뭐가 있는지도 모르겠고 날 잡아 뒤지다가 유통기한이 지난 내용물이 보이면 버리기 시작했다. 냉장고가 커질수록 버리는 음식도 늘어났다.

2.
처음엔 RSS를 싫어했다. 따박따박 배달되는 남의 글을 손가락 까딱하지 않고 받아 본다는 것이 조금 미안하고 정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게으름보다는 편리함을 핑계 대며 몇 개를 등록했다. 읽지 않은 항목을 보면 반가워 찬찬히 살펴봤다. 한동안 뜸하기라도 하면 뭐가 잘못됐나 하면서 직접 방문해서 확인했다. 그러다 보니 RSS가 참 편했다. 몇 개를 더 구독했다. 그리고 또 몇 개를 더 구독하기 시작했다. 점점 읽지 않는 항목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화면 가득 굵은 제목이 자리하기라도 하면 한방에 모두 읽은 상태로 표시했다.

3.
냉장고가 커질수록 버리는 게 많아졌고, RSS에 구독글이 늘어날수록 읽는 시간은 점점 짧아진다. 움켜쥘수록 손가락 사이로 삐져 나가는 것이 많아지고 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