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들의 대한민국

직선들의 대한민국
  • 노무현 정권에서 이명박 정권을 관통하는 주된 경제 담론은 (...) 그냥 18세기의 "인간은 경제적 동물이다"라는 하나의 명제 위에 서 있을 뿐이다. (67)
  • 서울시에서 추진한 뉴타운의 경우에 집이 없는 거주민들도 개발을 지지한다. 현재까지의 경향으로 보면, 원래 그 동네에 살던 사람의 10퍼센트 정도만이 새로 만들어진 뉴타운에 입주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도심에서 더 먼 곳으로 이사하거나 원래의 거주 조건보다 더 나쁜 곳으로 이동한다. (83)
  • 미화된 표현들, 예를 들면 "서민만을 보고 정치하겠다"라고 말하든 말든, 이들은 한국에서 투표철을 제외하면 대체로 맘대로 대해도 되는 존재로 간주된다. (86)
  • 한국은 적어도 지난 10년간 조감도가 지배한 나라이고, 한 폭의 멋진 그림인 이 조감도 앞에서 "그거 좀 이상해"라든가 "우리 좀 생각해보자"라는 말이 서 있을 공간이 없었다. (120)
  • 정말로 시대 미학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한국의 최근 10년은 민주화·정의·인권과 같은 단어가 움직인 것이 아니라 두 가지 결합된 단어에 의해 움직인 것인데, 하나는 도시 미학이고 그 뒤에 숨은 힘은 건설 미학이다. (121)
  • 앞으로 한국 국민들의 미학은 땅값파의 건설 미학과 '다음 세대파'의 생태 미학으로 나뉠 것이다. 이때 다음 세대와 말 못하는 것들의 권리와 권익을 말하는 사람들의 외침은 결코 무의미하지도, 괜히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171)
  • 가난한 사람과 가난하지 않은 사람, 자연과 인간, 그리고 말하는 존재와 말하지 못하는 존재가 공존할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도시 공간이 가야 할 공존의 양식이다. (188)
  • 재건축의 시대가 '정비와 정주 human settlement'의 시기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사람들은 2~3층짜리 건물이 늘어서 있는 작은 골목길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걸어가는 속도가 늦어지고 주위를 살펴보고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주변의 건물이 이보다 높아지고 길이 더 넓어지면 이제 길은 더 이상 머무르는 곳이 아니라 통과하는 곳으로 바뀐다. (189)
  • 지난 2008년 총선에서 본 것처럼 서울에서 '뉴타운 공약'으로 시작한 거대한 직선의 힘은 당분간 한국 사회를 휘감을 것이고, 일본식 거품 공황을 한 번 맞고 나서야 겨우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다. (218)
  • 고전적으로 많은 사회과학자는 경제적 토대가 물질적 기반을 형성하고, 그것이 사회적 상식을 구성하고, 그 위에 시대의 미학이 선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국민경제를 이끌고 가는 힘은 오히려 맨 위에 있는 건설 미학의 힘이다. 이 이상한 시대의 패턴이 해체될 시기가 왔다. (223)

직선들의 대한민국/우석훈/웅진지식하우스 20080615 224쪽 12,000원

굽이굽이 휘돌아가는 강물을 반듯하게 직선으로 만든다는 공약에 열렬한 지지를 보낸 시대에 살고 있다. 스스로 진보라 불렀던 참여정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국에 골프장을 짓자고 했고 세종시로 포장한 건설 미학을 보여주었다. 도도히 흐르던 건설 미학은 드디어 불도저를 앞세운 극단적 직선주의자를 선택하면서 적어도 현재까지는 그 절정을 이뤘다.

지난 총선에는 서민이거나 혹은 서민과 가까운 후보가 낙선하고 귀공자풍의 부자를 국회의원으로 선택을 했다. 이런 계급 배반적 현상은 뉴타운이라는 개발이익과는 전혀 상관없는 대다수 서민이 아직도 장밋빛 조감도를 보며 건설 미학을 꿈꾸고 있다는 방증이다. 모두를 개발이익의 수혜자로 만드는 집단 최면술사를 탓해야 하는지 그런 최면술에 혹하는 서민이 어리석은지 따따부따하며 편 가르기는 이제 의미가 없는 일이다. 높은 공장 굴뚝에서 검은 연기가 올라오는 걸 보며 공해가 아니라 생산적 활동이라며 반가워하는 시대를 지나왔고, 공구리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아토피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체험하는 시대에 해답은 자명해졌으니까.

왜 우리는 엠파이어스테이트 같은 마천루가 없는지 원망하다 여의도에 우뚝 선 멋없는 63빌딩 전망대에 서서 손뼉을 치면서도 "그 시절에는 누구나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하는 친일파를 용서하지 못하는 모순을 저지르고 있다. 이것이 딜레마인지 자기배반인지는 단정지을 수 없지만 이제는 청산하고 패러다임을 전환할 때라는 늦은 자성이 움트고 있다. 시대 미학이나 시대 정신이라는 거창한 말로 포장할 필요도 없이 굽이치는 강처럼 둥글게 둥글게 사는 것이 먼저 태어나서 잠깐 살다 가는 인간들이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는 걸 알려주는 시대에 살고 있는 까닭이다.

책은 거대한 인공어항인 청계천을 도시 생태의 복원이라고 반기다 급기야 4대강을 살린다며 급조한 건설 미학의 절정에 대한 원인과 역설에 대해 진지하게 묻고 있다. 이 물음은 정답을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오답을 피해야 하는 시대에 던지는 파문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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