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Quiz me 시대

1.
조선시대 어느 날, 죄수를 압송하다 날이 저물어 주막에 머물게 됐다. 저녁을 먹고 나서 포졸이 마당에 동그란 원을 하나 그린 후 죄수에게 말했다.
- 동이 틀 때까지 이 원 밖을 벗어나지 마시오.

조선시대에는 심성이 순박해서 죄인에게 별다른 감호조치를 하지 않고 땅바닥에 동그라미를 그린 후 죄수더러 벗어나지 말라고 하면 대부분은 그 명을 따랐다고 한다. 오래전 어느 향토 사학자에게 들은 얘기다.

2.
강부자, 고소영에 이어 위병소가 뜨고 있다. 위장전입, 병역회피, 소득세 탈루 정도는 해야지 힘깨나 쓰는 자리를 하나 꿰찰 수 있단다. 존경스럽다. 장삼이사는 해보고 싶어도 어느 것 하나 만만해 보이질 않으니 말이다. 면피하는 방법도 아주 간단명료하다. 청문회 자리에서 머리를 조금 숙이며 "Excuse me" 하면 된다. 차~~암 쉽다.

3.
조선시대에 죄를 지면 도망갈 생각은 고사하고 뉘우치며 조상 볼 면목이 없다고 했고, 후손들에게 민폐를 끼친다고 했다. 죄인을 커다란 가마솥에 넣고 불을 때는 시늉을 하는 팽형을 당하면 대부분이 자결했다고 한다. 적어도 수오지심(羞惡之心)이 인간의 근본을 이뤘던 시대였기에 가능했다.

요즘 위병소1 문제로 골치가 아픈-혹은 아픈 척하는- 양반들이 자주 쓰는 "Excuse me"를 자세히 들어보면 ExQuiz me로 들린다. 고맙게도 그 양반들은 내게 엄청난 퀴즈를 출제하고 있다. 인간은 왜 태어났느냐,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근본적이고 철학적 문제가 아니라 아주 실용적인 초고속 퀴즈를 내고 스스로 답을 알려주고 있다.


  1. 위병소란 위장전입, 병역회피, 소득탈루를 제대로 하는 실용적 인간을 가리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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