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때리고 박수받는 정권

박정권
마지막으로 야구장에 가 본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최고의 마무리로 활약하던 김용수 선수가 마운드에 오르던 때니까 오래됐네요. 특별하게 응원하는 팀이 없는지라 맞붙은 팀과 관계없이 무조건 공격하는 팀을 응원하곤 했습니다. 좋아하는 팀을 열렬히 응원하는 것보다 박진감은 없어 보이지만 대신 승패에 상관없이 스트레스를 풀 수 있어 좋더군요. 잠실 야구장 외야석에 앉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응원을 했지만 유일하게 김용수 선수가 마운드에 오르면 반말로 응원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 가운데 유일하게 나이가 위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격하던 팀을 응원하다가도 김용수 선수가 등장하면 꼬박꼬박 존댓말로 외쳤었습니다. "형님 잘하세요"

그 뒤로 이종범이나 이승엽 선수가 아니면 성도 이름도 몰랐는데 작년 베이징 올림픽 때 전승을 하며 우승을 한 덕분에 그나마 몇몇 선수들 이름을 알게 됐습니다. 그 경기는 지금 생각해도 예전 김재박 선수가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한일 결승전에서 보여 준 개구리 번트 이후로 가장 짜릿한 감동이었습니다.

어제는 한국시리즈 3차전을 테레비로 보는데 비가 와서 경기가 잠시 멈추더군요. 과거 몇 차례 요맘때 관람했지만 비가 내리지 않았어도 야간 경기는 꽤 추웠던 기억이 있는지라 야구장에서 응원하던 관람객들은 고생깨나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제도 승패에 상관없이 보는 둥 마는 둥 하는데 SK 일루수가 강습 타구를 막는 장면을 봤습니다. 빠졌으면 2루타는 족히 돼 보였는데 잘 막더군요. 그 선수가 안타도 치고 홈런도 치데요. 그래서 그 선수 이름을 알게 됐습니다. 아마도 베이징 올림픽에서 뛰지 않았던지라 이름이 낯설었나 봅니다. 하지만 잘 때리고 잘 막았던지라 이제는 이름을 새기게 됐습니다. 성과 이름이 낯설지가 않아 쉽게 잊지 못할 거 같네요. 박정권 선수더군요.

박정권 선수를 다시 보려고 스포츠 뉴스를 기다리며 마감 뉴스를 보는데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받은 선물과 유품 200여 점을 서거 30주기를 맞아 오늘부터 공개한다는 자막이 하단에 흘러가는 걸 봤습니다. 박정권 선수 이름과 오버랩되며 묘한 감정이 들더군요. 둘 다 박정권인데 한 사람은 잘 때리고 박수를 받았고, 한 사람은 민주와 인권을 잘 때리다 생을 마감해서 그런 감정이 들었나 봅니다.

어제 오후 3시에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이 새로운 시민정치 운동을 선언한 '희망과대안' 창립식이 라이방을 쓴 보수 단체가 깽판을 쳐 무산되었답니다. 어림짐작이지만 잘 때린 박정권에게 박수를 보내는 열렬한 팬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입만 벌리면 그건 오해라며 손사래 치는 실용 정권 시대에 낡은 영사기가 돌아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시인 백무산은 "아름다운 권력은 박살이 난 권력"이라고 했지만 권력은 영원히 박살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정권인가 봅니다.

어제는 잘 때리고 박수받은 박정권 선수와 잘 때렸던 박정권이 받은 선물과 유품을 공개한다는 뉴스를 동시에 봤고, 라이방을 쓴 박정권 팬들이 깽판을 쳤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딱 한 세대가 지난 30년 후, 우리는 어떤 유품을 공개하여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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