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뎅 팔자는 뒤웅박 팔자

오뎅

나는 오뎅을 무척 좋아한다. 출장을 가서도 야심한 시간에 배가 출출하면 혼자서 몰래 숙소를 빠져나와 길거리에서 파는 오뎅을 양껏 먹고 슬그머니 들어오곤 한다. 아, 양껏이라는 말은 취소다. 요즘은 가냘픈 오뎅 한 꼬치가 오백원이나 해서 양껏 먹지는 못한다. 대신 오뎅 국물이 맛나면 양껏 퍼먹는다.

주책 맞게도 동남아 어느 곳에 놀러 갔을 때도 느닷없이 푹 삶은 오뎅이 먹고 싶어졌다. 비행기에서 꼬불친 튜브에 담긴 고추장에 콕 찍은 오뎅을 입안 가득 욱여넣고 우적우적 먹고 싶다는 생각이 유독 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이런 소원을 하늘도 눈치챘는지 스팀보트를 먹게 되었는데 오뎅 비스무리한 것이 있어서 원 없이 먹었던 적도 있다.

오뎅을 어묵이라고 부르면 짜장면을 자장면이라고 하는 것처럼 그 맛이 뚝 떨어진다. 그냥 불러온 대로 오뎅이라고 하는 게 숭덩숭덩 썰어 넣은 무가 푹 울어난 느낌이다. 오늘같이 저절로 옷깃을 여미며 입김이 허옇게 나는 날이면 뜨끈한 오뎅 국물이 무척 땡긴다. 물론 예전 코흘리개 시절에 먹던 그 맛이 나지는 않지만 아무렴 어떠랴. 오뎅 한 점 베어 먹고 국물을 호호 불며 마시면 가슴까지 따스해지는 걸.

그런 오뎅 팔자도 뒤웅박 팔자인가 보다. 어떤 오뎅은 가카 입으로 들어가고 또 어떤 오뎅은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다. 한파가 몰아친 지난 18일, 마포구청에서는 용역을 출동시켜 홍대입구역 인근에 있는 노점 철거를 하였다고 한다. 디자인 서울을 위해서 그랬는지 철거 예산이 남아 올해가 가기 전에 집행한 것인지는 몰라도 그러는 거 아니다. 초상집에 빚 받으러 가는 거 아니고 한겨울에 방 빼라고 하는 거 아니다.

굳이 아이매직으로 감정이입을 하거나 내가 오뎅이라는 자기최면을 걸지 않고도 사진을 보면 가카 입으로 들어가는 선택받은 오뎅이 아니라 땅바닥에 내팽개쳐진 오뎅이 나라는 생각이 든다. 손님 잘못 만난 오뎅 팔자도 뒤웅박, 가카를 잘못 만난 우리네 팔자도 뒤웅박. 눈물이 절로 난다. 한겨울 칼바람이 볼때기를 후려칠 때만 눈물이 나는 거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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