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그리고 용산

아이티에서 일어난 강진으로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없는 집에 제사 돌아오듯 가난한 나라에 유독 자연재해가 잦은 지 안타깝다. 강추위로 전국이 꽁꽁 얼어붙은 우리야 그렇다 쳐도 겨울이라는 계절이 없는 나라에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런 아이티라는 나라가 유독 낯설지 않게 느껴졌다. 어디서 들어봤는데 도통 기억이 나질 않다가 지난 여름에 읽었던 《가난한 휴머니즘》을 아이티 대통령이었던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가 지었다는 게 뒤늦게 생각났다. 아이티는 나폴레옹이 지배하던 프랑스로부터 1804년 1월 1일 독립한 세계 최초의 흑인 공화국이라고 한다.

1982년 돼지들이 병이 들었는데 다른 나라로 퍼지지는 걸 염려하여 미국이 압력을 가한(?) 국제기구는 새 돼지들을 주는 조건으로 아이티에 있던 토종 돼지들을 모조리 도살하도록 하였다. 2년 후 미국에서 새 돼지들이 들어왔다. 그런데 미국 출신 돼지들은 워낙 풍족한 환경에서 자란 놈들인지라 아이티 전국민의 80퍼센트가 식수난에 처해 있는데도 과장해서 말하면 생수를 먹여야 했다. 더군다나 당시 국민소득은 130달러인데 90달러나 되는 초호화 수입 사료를 쳐드셔야 했다. 부티나는 돼지들은 적응을 못 했고, 토종 돼지들은 이미 멸종한지라 더 먹고 살기 어려워져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단다.

일련의 돼지 사태도 그렇고 턱밑에 쿠바가 있고, 쿠바 코밑에 아이티가 자리하고 있어 한때 점령하기도 했던(1915~1934) 미국은 아이티를 좌지우지했다. 신부인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가 주도한 민주화 투쟁으로 물러난 뒤발리에는 미국이 뒤를 봐주었던 정권이었다. 아리스티드 신부는 뒤발리에가 물러나고 1990년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지만 쿠데타로 망명길에 올랐다. 2000년에 92퍼센트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지만 미국이 주도한 쿠데타가 일어났고 안하무인 미국은 해병대를 시켜 그를 자택에서 붙잡아 외국으로 보냈다. 지진으로 국가가 마비된 아이티는 지금 남아공에서 망명생활을 하는 그가 돌아오길 고대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무자비한 자유주의로 아이티 경제를 초토화시켜 더 가난하게 만들었고, 제 입맛에 맞는 정권을 앉혀 아이티를 쥐락펴락한다는 말씀이다. 강진이 일어나자 미국이 신속한 원조를 시작하고 군대를 파병하는 것은 이런 속사정이 있음이다. 아이티가 안고 있는 속내를 몰랐다면 발 빠르게 대처하는 미국의 참모습이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런 사정을 알고부터 연일 보도하는 아이티 참사를 볼 때마다 용산참사가 오버랩된다. 지구 반대편에서 각각 일어난 참사는 약하고 없는 나라와 가진 것 없고 힘없는 자에게만 너무나 가혹해서 원망스럽다. 서양에 있는 미국과 아이티, 동양에 있는 한국과 용산. 아이티에서 발생한 지진은 천재(天災)이고 용산에서 일어난 참사는 인재(人災)라는 것 하나만 빼고는 너무나도 닮았다.

지금 우리는 너무 춥고, 아이티는 너무 슬프다. 아이티 강진 참사에 미국에 사는 아무개 영화배우 커플은 100만 달러를 기부했단다. 용산 참사를 일으킨 아무개 정부도 100만 달러를 지원한단다. 용산 참사를 일으키고도 나 몰라라 하던 정부 치고는 통 크다고 해야 하나. 같은 금액이지만 너무나 다르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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