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수의 나라

어제까지 내가 기억하는 기수는 우리나라에 둘 있었다.

1966년 6월 25일 장충체육관.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열린 세계 복싱 타이틀전. 국민소득 200달러이던 시절에 주최 측은 대전료 5만 5천 달러를 선불로 달라며 뗑깡을 부렸고, 정부가 보증을 선 끝에 타이틀 매치가 이뤄졌다. 주니어 미들급 챔피언인 이탈리아 출신 벤베누티는 65전승을 거둔 강자. 김기수는 15회전을 겨루었고 끝내 2-1 판정승. 복싱이 전래한 지 반세기 만에 첫 챔피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김기수는 국민적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참 어울린다는 인상과 함께 여태 잊지 않고 있다. 한국 권투의 기수였던 김기수 선수.

배달의 기수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테레비에서 라시찬 소대장이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괴뢰군을 때려잡던 시절, 아주 짧게 국군 홍보를 하던 프로그램이 배달의 기수였다. 반공일날 낮잠 올 시간에 하던 배달의 기수는 일이십 분 분량이었지만 기승전결이 확실해서 눈을 똑바로 뜨고 봤었다. 그 배달의 기수가 번개라는 이름으로 철가방을 들고 퀵서비스로 부활하면서 배달의 기수(?)는 또 다른 전성기를 이뤘다. 가히 배달의 기수는 세계 최고다.

이십일 세기 들어 점점 잊히거나 일상화돼 기수라는 이름이 평범하던 차에 새로운 기수가 나타났다. 시방 이명박은 17대 대통령이다. 가카의 모교에 계신 총장님도 17대 총장님이란다. 참 절묘한 타이밍인지 인연인지 모르겠다. 이 양반이 대교협 신임 회장으로 선출되는 자리에서 말씀하셨다.
- 우리나라같이 등록금 싼 데가 없죠. 교육의 질에 비해서 아주 싼 편이죠.
이 양반 함자가 이기수란다.

기수는 앞에서 기를 드는 사람이나 단체에서 대표로 앞장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기수나 배달의 기수는 기수라는 말이 참 어울린다. 배달의 기수가 체제 홍보를 한 면이 있지만 기수 자체를 들여다보면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를 앞장섰던 분들인지라 공식 행사 때 묵념을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여기에 뜬금없이 명함을 내민 양반이 이기수다. 이십일 세기 기수라는 뜻인가, 이명박 시대 기수라는 말인가. 가타부타 시비 걸고 싶지 않다. 딱 하나만 물읍시다. 총장님이 살고 계시는 우리나라는 어디 있나요?


덧1. 등록금이 싸다는 말을 듣고 대한민국 대학생들은 왜 돌을 던지지 않을까? 아니 왜 촛불을 들지 않을까? 사실 소고기보다 등록금이 더 급한데 말이다. 프랑스 68혁명이라는 걸 알기는 할까?

덧2. 등록금은 이명박 이전에 오르기 시작했다. 새삼스러운 거 아니다. 다만, 이명박은 등록금 반값 약속을 쌩깐다는 거다. 사교육비를 포함한 등록금은 대학생이거나 대학에 진학할 자식을 가진 부모들의 노후자금이다. 자식은 88만원 세대이고, 부모는 은퇴 후 8.8만원 세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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