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박인생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

사건의 시작은 우연이었다. 어제는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 책의 날이었다. 책의 날이라는 것도 버릇처럼 트위터에서 눈팅을 하다 알게 되었다. 새로고침을 하며 출판사 트위터 계정에서 하는 이벤트를 흘려 보다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는 잊지 못할 시에 대해 말해 달라는 멘션을 본 것이 시작이었다.

문학과지성사

마음 한 켠에 남아 있는 시라... 퍼뜩 떠오르는 시가 있었다. 정호승 시인의 첫눈 오는 날 만나자. 첫눈이 내리는 이유를 알 게 해주었기에 해마다 찬바람이 불 때면 생각이 나서 주저 없이 답글을 달았다.

문학과지성사

답글을 달면서도 이벤트에 당첨이 되리라고는 손톱만큼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진심이다. 피박인생은 면피만 해도 본전인지라 이벤트 덕분에 잠깐이나마 좋아하는 시를 생각하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했다. 그런데 일이 터졌다.

문학과지성사

당첨자 명단에 피박인생 아이디가 껴 있었다. 세 번을 확인했다. 맨 꼬래비에 붙어 있는 걸 봐서는 턱걸이(?)임에 틀림없다. 턱걸이면 어떠리. 이벤트와는 영영 인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떡하니 당첨했으니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제비뽑기를 해서 화장품 세트에 당첨되었던 일이 마지막이었다. 밀레니엄이 오기 전에 일어났던 세기 말의 추억이다. 그러니 어이 아니 기쁘랴.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억누르며 당첨소감을 밝혔다.

문학과지성사

푼수라고 손가락질을 해도 할 수 없다. 당해보지 않는 자(?)의 벅차오르는 감정을 알 리 없으면 말을 하지 마시라. 주최 측인 문학과지성사의 문학적이고 지성적인 답글을 보라. 피박인생의 구구절절한 당첨소감에 감동을 먹지 않았는가!

문학과지성사

문학이나 지성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피박인생이지만 책의 날에 대박이 났다. 경품으로 날라 올 책이 일 년 후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대박 난 이 기쁨을 두고두고 설레며 이어가고 싶어서다. 다만, 맘에 걸리며 미안한 게 하나 있다. 책꽂이를 훑어봤는데 문학과지성사에서 발행한 책이 눈에 띄질 않는다. 어딘가 한 권이라도 꽂혀 있겠지만 찾지를 못하겠다. 이러다 서점에서 책을 집으면 지은이나 제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출판사인지를 먼저 보는 습관이 생길 것 같다. 아무렴 어떠랴. 피박인생에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는데 그런 습관 하나쯤 생기면 어떠리.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