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비, 정말 9단인 줄 알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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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 관해선 문외한이지만 가끔 세계 기전을 중계하면 지켜보는 편입니다. 패싸움 정도는 아는지라 보는 재미가 여느 스포츠 경기 못지않게 박진감이 넘칠 때가 있더군요. 최근에는 바둑이 스포츠로 분류되기도 했죠.

바둑을 둘 줄은 몰라도 테레비 중계를 보며 다음 수를 예측하기도 합니다. 소 뒷걸음치다 쥐 잡는 격으로 맞추기라도 하면 대국장에서 맞짱을 뜨는 기사와 보는 눈이 같다고 좋아라 합니다. 눈썰미는 9단이 돼서 입신의 경지에 이르기도 합니다.

한국 바둑은 일본이나 중국과 비교해서 프로 입단이 엄청 어렵다고 하네요. 올림픽 양궁이나 쇼트트랙에서 메달을 따는 것보다 대표 선수로 뽑히는 게 어려운 것처럼 말이죠. 프로와 아마 바둑의 차이도 하늘과 땅 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일단 프로 기사가 되면 그 실력은 인정을 받은 것이고, 뛰어난 성적을 거두면 파격적으로 입신의 경지에 이르는 9단이 되곤 합니다. 물론 파격적인 승단 규정은 이창호 기사 때문에 바뀐 걸로 압니다. 그전까지는 짬밥을 중시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걸출한 신인이 출현해서 강호를 제패하자 승단하는 조건을 바꾸게 됐지요. 이를테면 세계 기전에서 우승을 몇 번 이상 하면 단수에 상관없이 9단으로 높여 주는 것으로 말이죠.

단수가 현저히 낮은 기사에게 소위 입신의 경지라는 9단들이 판판이 깨지는 게 쪽팔리니까 그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창호 3단, 아무개 9단에게 불계승. 이런 소식이 일회성으로 그치면 사건이지만 번번이 그러니 9단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짬밥 높은 선배들 처지에서는 불쾌했을 겁니다. 일반인들이 보면 9단이 3단보다 실력이 삐리한 것처럼 느껴질 테니까요. 그래서 성적이 우수한 기사는 짬밥에 상관없이 9단으로 승격을 시켰지 않았나 합니다. 물론 순전히 개인적 상상입니다. 그렇지만 연공서열을 따지는 현실에서 파격적인 승단은 짬밥보다 실력이 우선이라는 뜻도 되겠고, 프로가 되면 그만큼 실력 차이가 없다는 말이겠지요.

바둑을 좋아하는 지인이 있습니다. 아마 5단이라고 합니다. 감탄사를 연발하며 대단하다고 하자 이런 말을 하더군요.

뭐, 별 거 없어. 바둑에서 프로가 아닌 이상 '아마 몇 단'이라는 말은 '도'자 하나 빠져 있는 거야. 아마 5단이라는 말은 아마'도' 5단이라는 뜻이거든.

검증이 안 된 동네 아마추어 바둑 애호가는 실력을 제대로 평가하기도 어렵거니와 거품이 심하게 껴 있어 프로 몇 단과는 수준이 다르다는 얘깁니다. 심한 표현을 쓰자면 허세라는 얘깁니다. 그 후로 아마 몇 단이라는 말을 들으면 빙그레 웃곤 합니다. 아마도 몇 단일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드니 말이죠.

2.
엠비가 9단인 줄 알았습니다. 스스로 9단처럼 행실을 하고 다녔으니 그러려니 했거든요. 지금에 와서 야 밝혀졌습니다. 아마 9단이었다는 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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