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의 택시운전사가 말하는 진보좌파

(진보좌파는) 인간이 자유롭고 존엄한 존재라면 기본적으로 몸이 거하는 곳마다 존엄성을 누려야 한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인간이 겪는 불안은 영혼을 잠식하게 되고 인간성을 축소시킨다. 즉 인간이 전일적 인간이 아닌 경제 동물로 전락하는 것이다. 이것을 벗어나려면 불안을 없애고 불안을 덜어주는 사회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보편복지에 대한 논의는 이런 사회 환경 조성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런데 더 나아가 우리는 주체화를 모색해야 한다. 몸이 거하는 곳마다 자유롭다는 의미는 인간이 주체가 된다는 뜻이다. 가정에서 일터에서 배움터에서 스스로를 주체로 만드는 것, 이것이 민주주의의 성숙이며 진보좌파 정치가 지향할 바다.

거기에 덧붙여 녹색의 가치 실현이 있다. 그 동안 좌파는 자본주의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권리가 억압받는 것이 올바르지 않다고 얘기해왔다. 여기에 녹색의 가치가 뜻하는 것은 이런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이제는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이런 것이 후쿠시마 사태로 확인되고 있다. 즉 지금의 방식이 올바르지 않다는 좌파의 목소리와 가능하지도 않다는 녹색의 목소리가 내적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 두 요구가 단순한 보완이 아니라 내적 일치를 이루는 것이 앞으로 진보좌파의 핵심 과제다.

좌파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착취에 주목했다면, 자연에 대한 인간의 착취에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내적 일치의 배경이다. 패러다임을 전환시켜야 한다. 지금까지는 '소유의 시대'였고 진보도 성장주의에 매몰되어 왔다. 해방의 원천이 소유에 있다고 믿어서 좌파도 성장을 목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관계의 시대'로 전환되어야 한다. 관계의 시대에는 성장이 아니라 성숙이 목표다. 자연을 존중하는 정신자세는 다른 인간과의 관계도 재설정하게 해준다.

노동자들도 생태문제에 더 주체적인 안목을 가져야 하고, 자식들에게 어떤 생태적 사회를 물려줄까 하는 전망을 가져야 한다. 지금의 노동자 서민들이 겪는 문제와 생태 문제를 대중정당이라면 접목시킬 수 있어야 한다. 생태 문제에 올인하려 해도, 노동자들의 지금 겪는 고통과 불행을 극복하는 일과 맞물릴 때 대중적 동력이 생길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좌파의 가치와 녹색의 가치가 내적 일치를 이루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앞서 말한 것이다.


진보신당 홍세화 대표가 진보 신문 프로메테우스와 한 인터뷰를 옮겨 짜집기한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살며 곤드레밥을 찾아다니는 우리는 정작 보리고개 시절 콩 한쪽을 나눠 먹던 정을 그리워하는 좌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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