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메니데스의 역설

1.
〈그 명제는 거짓이다〉라는 명제는 그 자체로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을 구성한다. 어떤 명제가 거짓인가? 그 명제다. 그 명제가 거짓이라면, 〈그 명제는 거짓이다〉라는 명제는 참이 된다. 고로 그 명제는 거짓이 아니다. 그러므로 거짓이다. 고로 참이다. 그러므로 거짓이다. 이 순환은 끝없이 되풀이된다. -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베르나르 베르베르

2.
에피메니데스의 역설에서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기득권을 유지하는 친일파가 보입니다. 〈그 명제는 거짓이다〉에서 '명제'를 '새누리당' '짝퉁보수' '조중동'으로 바꿔 보세요. 〈그 새누리당은 거짓이다〉 〈그 짝퉁보수는 거짓이다〉 〈그 조중동은 거짓이다〉가 되고 참과 거짓이 되풀이되니까요.

이런 순환은 그 명제를 거짓으로 알다가 선거 때만 되면 참으로 인식하는 국민적 오류에서 시작합니다. 오류가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 이번 4.11 총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4년이 거짓의 연속이라는 걸 알면서도 빨간색으로 갈아입으며 새누리당이라고 우기는 코스프레에 넘어가 참이라며 손을 들어줬으니까요.

정치인의 수준이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이라지요. 적어도 이 말은 가카 이전에는 맞는 말이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시대를 한 세대 뒤로 후퇴시켰고, 가증스럽게도 국민의 수준은 한 세기 이전으로 되돌려 놨습니다. 그리하여 정치를 아예 입에 풀칠하기 바쁜 궁민(窮民)의 수준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렇지 않고는 4.11 총선 결과를 보며 멘붕된 상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답니다.

그렇다면 에피메니데스 역설을 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투표근만 단련하는 육체적 운동만으로는 힘듭니다. 명제를 판단하지 말고 명제 자체로 받아들이는 정신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머리로 생각합시다. 모든 뉴스는 편집된 것1이라고. 요래 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친일파 코스프레를 보며 참과 거짓을 되풀이하는 악순환을 대물림할지도 모릅니다.


  1. 인터넷신문 프로메테우스의 모토 "당신 머리로 생각하라! 모든 뉴스는 편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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