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리스가 행복해지지 않는 이유를 알려주마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
왜 GDP는 높아지는데 앨리스의 삶은 점점 더 팍팍해질까요? 국회의원들이 매년 재산을 공개하지요. 그런데 의원들 재산이 땡전 한 푼 없다고 하더라도 3조 원에 이르는 정몽준 때문에 국회의원 평균 재산 보유액은 100억 원이 됩니다. '정몽준 효과'라고 합니다. GDP도 마찬가지랍니다. '억만장자가 늘어나면서 1인당 국민소득이 오르는 경제와 중산층이 두터워지면서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경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이런 내용을 GDP는 빠뜨린다. 그러다 보면 경제는 자꾸만 왜곡되는데 측정되는 성과는 좋아지는 역설이 나타(204)' 나겠지요. 그래서 국민소득은 올라가고 경제는 좋아진다는데 앨리스는 행복해지지 않는 거죠.

앨리스가 지금까지 배운 경제학은 '시장에서는 모두가 이기심을 추구하면 결과적으로 가장 큰 효율성이 달성된다는 것(11)'이었습니다. '경제가 이기심에 기초해 운영된다고 이야기하면서, 부지불식간에 이기심이 공익을 불러온다(165)'는 애덤 스미스의 경제 윤리였던 겁니다. 그리하여 IMF 이후 '기업은 탐욕을 실천해야 하므로 냉혈한이 되어야 한다. 경영자는 때로는 불법도 저지르고, 때로는 사람을 냉정하게 해고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기심이 결국 시장경제를 지탱하므로, 냉혈한이 오히려 윤리적이다. 이 프레임 아래서 기업의 이타심은 오히려 비윤리적(150)'으로 여겨지며 경제 성장을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이 휩쓸고 갔을 때 우리는 모두 가난했습니다. 이때는 '역설적으로 모두가 가난했기 때문에 평등했고, 기회가 상대적으로 균등했던 시기였다. 그래서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자수성가의 꿈이 있었던 시대이다. 경제 성장의 출발선으로는 그리 나쁘지 않은 조건(122)'이었습니다. 그러나 탐욕의 경제학은 '공유지의 비극'을 부르게 됐습니다.

바닷속 물고기는 공유자원이다. 누구의 소유물도 아니다. 그런데 어부들은 이 자원을 획득해 사적 소득을 올린다. 전통적 경제학 관점에서 보면 여기서 남획 문제가 생긴다. 즉 바닷속 물고기는 공유자원이기 때문에 어부 입장에서는 보호할 이유가 없다. 많이 잡을수록 자신에게 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어장 전체를 보면 다르다. 매년 산란되는 물고기 개체 수 이상을 잡게 되면 전체 개체 수가 줄어든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장 자체가 존립하기 어려워지고 산업 전체가 무너진다. (...) 이 현상을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설명한다. 소를 키우는 마을에서 목초지가 공유지인 경우, 소 주인들이 자기 소에게 먼저 더 많은 풀을 먹이려고 하다가 결국 목초지가 황무지로 변하고 만다는 이야기다. 탐욕에 기초한 경제에서 벌어지는 공유자원의 훼손 문제를 다룬 이론이다. (89)

요즘 앨리스는 상사 눈치를 보면서 부쩍 인터넷 쇼핑몰에 들어가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올 연말을 기점으로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고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된다고 해서 테레비를 새로 사려고요. 지금 있는 테레비도 아직 쓸만하지만 이참에 화면이 더 넓은 걸로 바꾸려고 합니다. 그런데 앨리스는 기업과 국가가 결탁한 꼼수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합니다. '기업이 교체 수요를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의 핵심이 바로 계획적 진부화다. 기존에 사용하던 제품이 낡은 것으로 느껴지게 만들어, 교체 수요를 만들어내는 제조업의 전략(187)'인 줄은 꿈에도 모릅니다. '휴대전화가 여전히 쓸만하지만, 인터넷을 추가로 이용하기 위해 새 제품을 구매'하거나 '기능은 같지만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내면서 기존 제품을 구식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것(188)'처럼요.

어느 날 앨리스는 직장 상사에게 엄청 깨졌습니다. 상사는 사장님에게 당하고 왔을 테고, '사장님은 납품 대기업의 젊은 대리에게 쓴소리를 들었을 것이고, 그 대리 위에는 다시 부장과 임원과 실적 나쁘면 바로 쫓겨날 형편인 사장'이 있겠지요. 모두가 쫓기는 게임, 그 마지막에는 '주주'가 있을 것이고요. 그 주주 중엔 앨리스 월급에서 꼬박꼬박 떼어가던 국민연금도 있습니다. '투자자로서 무언가를 요청하면 기업이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앨리스의 미래 생활비를 맡아 관리하는 기관이 동시에 앨리스의 현재를 압박할 수 있는 모양새입니다. '국민연금이 단기 수익률을 높이는 데만 급급하면, 정작 현재의 안정성을 해칠 수도 있다(294)'는 우스꽝스럽지만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한겨레경제연구소 이원재 소장이 쓴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을 통해 본 이상한 나라에 사는 앨리스의 얘기였습니다. 앨리스는 '1명의 경제를 자신의 경제로 착각하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경제에서 주인공은 1명뿐이다. 나머지 99명은, 자신의 삶과 관련이 없을지도 모르는 1명을 열심히 응원하는 관객(8)'이라는 걸 알려줍니다. 저자는 '고성장 시대에서 저성장 시대로 진입하는 게 아니다. 성장 중독 시대에서 탈성장 시대로 진화하는 것(214)'으로 사고방식을 바꾸면 프레임도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상한 나라에서 탈출하는 방법으로 인간의 이타심을 근본으로 하는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을 제시합니다. 탐욕의 시대에서 협동과 착한 소비, 윤리적 소비가 새로운 동력원임을 알려줍니다.

선한 사람은 성공할 수 없다는 이상한 공식은 이제 깨져야 한다. 경쟁하면 이기고 협력하면 진다는 이상한 경제는 넘어서야 한다. 최소한 생활 경제, 사회적 경제 영역에서는 그렇다. 선한 사람이 성공하는 경제, 선한 사람이 많은 경제가 성공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이상한 나라를 탈출하는 방법이다. (306)

이상한 나라의 경제학/이원재/어크로스 20120220 312쪽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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