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

오랜 친구라는 거 아니에요? 개인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하는데 이렇게까지 확대해석하는 건 저는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안철수 원장이 대선에 출마하면 뇌물과 여자 문제를 폭로하겠다는 협박을 받았다는 기자회견에 대한 박근혜의 대답입니다. 협박을 할만한 위치가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새누리당 대변인은 "친구 사이 이야기를 갖고 새누리당이 정치공작을 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금 변호사야말로 구시대적 정치행태를 보이고 있다"며 금태섭 변호사를 '의리 없는 친구'라고 합니다.

전화 통화를 한 둘은 친구 사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남의 얘기를 나누고 나서 뒷말이 무성한 걸 보니 둘은 친구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한쪽은 친구 사이 통화라 하고 한쪽은 협박이라고 하니 밤길 조심하라는 말을 엄마와 조폭에게서 들은 것처럼 차이가 납니다.

친구에 대한 정의야 사람마다 다를 테지만 유안진 시인은 《지란지교를 꿈꾸며》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입은 옷을 갈아 입지 않고 김치 냄새가 좀 나더라도 흉보지 않을 친구가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 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 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김치 냄새 풍기며 난닝구 차림으로 친구를 찾아가는 모습을 천천히 그려보면 시나브로 풍족해지는 걸 느낍니다. 서로 한 번 뜨고 한 번 가라앉아 보며 고독을 나눴던 친구일 테니까요. 저녁에 쐬주라도 한잔하자는 약속을 하고 전화를 끊으며 지갑에 얼마가 있나 확인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니까요. 달빛 받으며 돌아가는 등에 대고 밤길 조심하라며 육두문자를 붙이는 그런 친구니까요.

쓰레빠 끌고 오일장에서 산 허름한 반바지를 입고 막걸리 마시자며 찾아오는 그런 친구인지 돌아보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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