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직진이다

20130301 비바람
출근할 때 내리던 비가 오후 세시쯤에 그쳤습니다. 바람도 불고 난방이 안 되는 사무실은 스산한 한기가 느껴졌습니다. 겨울옷을 입기는 부담스럽고 봄옷을 입기는 이른 그런 날씨였습니다. 각자 조그만 전기난로를 켜기도 하고 벙어리장갑을 끼고 마우스를 사용하기도 하더군요. 추위에 잘 견디는 편이라 외투를 벗어놓고 있었지만 오늘은 외투를 입고 근무했습니다. 덕분에 실내가 금연인지라 비가 그치기 전까지 담배를 피우지 못했답니다.

20130302 바람
첫 주말을 맞았습니다. 느지막이 일어나 조반을 챙겨 먹었습니다. 오늘은 시장 구경을 가기로 했습니다. 奉贤区(Fengxian Town)에 있는 숙소 앞에 南奉公路(Nanfeng Hwy)가 있습니다. 전날 시장 가는 길을 물으니 숙소에서 나와 왼편으로 도로를 따라 쭉 걸어가면 나온다고 합니다. 시장에 가서 길거리 음식도 먹을 겸 정오가 조금 안 돼 숙소를 나섰습니다.

길을 따라 걸어가기로 했습니다. 해는 났는데 막상 나오니 바람이 붑니다. 칼바람은 아니지만 은근히 쌀쌀합니다. 잠깐 해가 나오면 나은데 숨어버리고 바람까지 불면 손을 내놓고 걷기엔 약간 시릴 정도였습니다. 바람도 피할 겸 마트에 들어가 기웃거렸습니다. 반도 같으면 시식 코너에 들리는 재미도 있지만 여긴 딱 한 군데만 시식코너가 있습니다. 소나 돼지의 간으로 보이는 걸 썰어 놨더군요. 간을 간장으로 간을 한 맛이 납니다. 하나 더 집어 먹었습니다. 더 먹고 싶지만 눈치가 보여 자리를 떴습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시켜도 단무지 비스무리한 것은커녕 물 한잔도 안 주는 짠돌이들인지라 오히려 시식 코너가 있는 게 신기해 보였습니다. 물건값도 농수산물을 빼고는 반도랑 차이가 없더군요. 물가가 서울 뺨친다는 말이 실감이 났습니다.

시장 근처에 가면 사람들이 많이 보일 거라고 했는데 그런 풍경이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다시 길을 따라 직진하다 보니 검찰청도 보이고 그 옆에는 경찰서도 있더군요. 죄지은 것도 아닌데 그 앞을 지나니 여기서도 공연히 쫄리더군요. 시장을 찾는 건 포기하고 이정표를 보니 东海大桥(동해대교)가 6km 남았다고 합니다. 저길 가면 바다를 볼 수 있겠지 하며 무작정 직진을 했습니다.

옛 시가지 구역을 지나면 새로 지은 아파트 단지가 있고, 거길 지나니 시골 풍경이 나오더군요. 대륙의 흔한 풍경은 아니지만 비슷한 모습도 봤습니다. 이곳 길은 차도와 인도 사이에 자전거나 오토바이만 통행할 수 있는 도로를 따로 만들어 놨습니다. 1차선 정도의 폭이 기본인 것 같고, 더 넓은 곳도 있더군요. 서로 침범을 못 하도록 나무를 심은 화단으로 구분해놨습니다. 다 그렇지는 않았지만 길을 건너며 보니 신호등에 남은 시간을 표시해 주더군요. 파란불, 빨간불, 좌회전 신호등마다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가 밑에 달려 있어 남은 시간을 알 수 있게 해줍니다. 운전자는 어떤지 모르지만 횡단보도를 건너도 20초가 남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습니다. 다만, 운전자나 보행자 대부분이 신호를 지키지 않아 전후좌우 사주경계를 게을리해서는 안 되지만 말이죠.

그냥 걸었습니다. 마냥 걸었습니다. 무작정 걸었습니다. 시가지가 끝나니 복숭아밭도 있고, 배추밭에는 배추가 잘 자라고 있더군요. 요즘 뜨고 있다는 손세차장도 많이 봤습니다. 그렇게 걷다보니 동해대교가 1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그때였습니다. 긴머리를 한 아리따운 처자가 제게 다가오는 겁니다. 내 앞에 오더니 웃으며 길을 묻는 거였습니다. 알아듣지는 못하고 눈치를 보니 그런 거 같았습니다. 저도 웃으며 대답을 했습니다. 팅부동(听不懂), 한구어렌(韩国人).

전날 배운 말을 써먹었습니다. 못 알아들어요, 한국인입니다. 그 처자는 미소를 남기고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지나쳐 갔습니다. 진작 중국말을 배울 걸 후회하면서도 한가지 위안은 되더군요. 제가 말은 못해도 외형은 현지인으로 보였다는 거죠. 적당히 나온 배와 야식으로 라면을 먹고 부은 듯한 낯짝, 장롱다리는 급속하게 현지화를 만들었습니다.ㅎㅎㅎ

동해대교 이정표가 끝나는 곳에 이르고 나서 주저앉을 뻔했습니다. 바닷가를 기대했는데 동해대교로 가는 나들목이 나타났거든요. 저녁 식사 때 물어봐서 알았지만 동해대교는 멀리 동쪽 끝에 있고, 저는 서쪽으로 걸었던 겁니다. 맥이 빠져 담배 하나를 태우고 있는데 아기를 안은 할머니와 유모차를 끄는 손녀가 지나갔습니다. 눈인사를 하고 아기에게 까꿍 하며 참 귀엽다는 표현을 웃음으로 대신했습니다. 시간을 보니 두시 반이 됐습니다. 다시 걸어온 길로 조금 빠른 걸음으로 빽도를 시작했습니다.

상하이
숙소가 가까워져 올 때 저를 닮은 아저씨가 우산을 쓰고 걸어가더군요. 은행 건물 앞인데 커다란 사과도 있습니다. 너무 무거워 주어 오지는 못했습니다. 세시쯤 저녁을 먹자며 어디냐는 전화가 왔습니다. 삼십분 후에 지나쳐 올 때 봤던 마트 앞에서 만났습니다. 반도인들이 많이 산다는 곳으로 이동해서 명동 칼국수에서 칼국수와 김치왕만두를 먹었습니다. 밑반찬으로 나온 겉절이 김치는 반도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맛있게 먹었답니다. 같이 나오는 공기밥을 말아 국물까지 홀랑 마시니 김치만두가 세개나 남아 포장을 해왔습니다.

우산 쓴 아저씨 같은 배가 되어 숙소로 돌아오니 다리가 뻐근하더군요. 직진과 후진을 삼십리 넘게 한 것치고는 양호했습니다. 산처럼 오르막길이 아니라 평지를 걸어 과부하가 걸리지는 않았나 봅니다. 시장은 다음 주말에 다시 가보려고 합니다.

20130303
어제 일찍 잠이 들어 새벽 세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다운을 걸어놨던 인간의 조건을 보다가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아홉시 십오분 전에 일어나 아침을 챙겨 먹었습니다. 오늘은 방콕하려고 했는데 창밖을 보니 해가 났네요. 주변을 싸돌아다니다 저녁이나 먹고 들어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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