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낌의 공동체

느낌의 공동체
  • 사랑으로 일어나는 싸움에서 늘 먼저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는 잘못을 저지른 쪽이 아니라 더 많이 그리워한 쪽이다. 견디지 못하고 먼저 말하고 마는 것이다. 그래야 다시 또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12)
  • 1980년대는 "격렬한 외상의 날들"이었으나 1990년대는 "우울한 내상의 날들"이었다. (33)
  • 세상의 꽃은 세상의 칼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그 백전백패의 아룸다움만이 서정의 본진(本陳)이고 문명의 배수진이다. (36)
  • 크리스마스의 역설이 그렇게 생겨난다. 평소 보다 훨씬 더 행복해야 마땅한 날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에, 흔히 겪는 어떤 사소한 불행 앞에서도 '오늘은 크리스마스인데!'라고 생각하면 더 서러워져서, 결국 우울한 날이 되어버리고 마는 역설. (159)
  • 그들에게는 초자아(Super Ego)가 없는가. 민주화 이후 그토록 더디게 우리 내면에 겨우 자리잡은, '이런 일은 이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는, 그 초자아가 그들에게는 없는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죄의식도 없는 것이다. (163)
  • 존재하는 것을 긍정하기보다는 존재해야 할 것을 추구하는 게 좌파라면, 그래서 늘 더 많은 자유, 더 많은 인권, 더 많은 민주를 요구하는 게 좌파라면, 모든 진정한 예술가들은 본질적으로 좌파이고 모든 위대한 예술 작품은 깊은 곳에서 좌파적입니다. 실제로 그가 어떤 정당을 지지하건 상관없이 말입니다. 창작이라는 것은 본래 왼쪽에서 뛰는 심장이 시켜서 하는 일입니다. (189)
  • 지방 선거가 끝났다. 4년 만에 '생각'이라는 것을 하느라 진땀 뺀 정치인들은 다시 생각 없는 삶으로 복귀했고, 4년 만에 공화국의 주인 대접을 받느라 머쓱했던 우리는 다시 힘없는 백성의 자리로 복귀했다. (234)
  • 주일날 회개하여 다시 일주일을 죄짓고 살 힘을 얻는 엉터리들처럼, 사랑이 넘치는 하루를 보내고 우리는 364일 동안을 무심할 수 있는 알리바이를 얻는다. 그러니 기념일들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236)
  • 최근 이뤄진 한 설문조사에서 서울 지역 4개 대학 대학생의 절반 이상은 '6월 항쟁'을 모른다고 답했다. 그리고 그들 중 상당수는 다가올 대선에서 독재 정권의 역사의식을 잇는 야당 유력 후보에 한 표를 던질 것이다. 그 선택은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박종철과 이한열의 이름을 모르는 채로 이루어진 선택은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 그것은 정치적 무뇌아 혹은 윤리적 백치의 선택이다. (247)
  • 마침표에 대해서는 긴말이 필요 없다. 담배는 백해무익이요, 마침표는 다다익선이다. 많이 찍을수록 경쾌한 단문이 생산된다. (255)
  • 오랫동안 마음은 종교의 소관이었고 몸은 의학의 소관이었다. 그러나 종교는 몸을 배제한 마음을, 의학은 마음을 괄호 친 몸만을 다루었다. 그래서 문학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다. (291)
  • 그것이 분명하게 눈에 보여서 편안하지만 그래서 재미가 덜할 때도 있겠고, 너무 희미해서 과연 그것이 있기는 한가 수상쩍어 보일 때도 있을 것이다. 대개 전자를 '고전적'이라 하고 후자를 '실험적'이라 한다. 그러나 오늘의 고전은 어제의 실험이었고 오늘의 실험은 내일의 고전이 될 수 있다. (405)

느낌의 공동체/신형철/문학동네 20110510 408쪽 13,000원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2006년 봄부터 2009년 겨울까지 쓴 짧은 글'을 모은 '두번째 평론집이 아니라 첫문째 산문집'이다. '시인, 시집, 세상, 소설, 영화'에 대한 이야기다. 시집이 팔리지 않는 세상이지만 책을 읽다가 철 지난(?) 시집을 주문하게 될지도 모른다.

예술은 본래 좌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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