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떨어진 목련은
걸음마도 못하고 죽은 아기 발바닥 같다
어떤 어미가 있어
잘 드는 칼로
죽음의 발바닥을 벗겼을 것이다
목련나무 아래 한 겹 두 겹 내려놓고
아장아장 걸어가길 한없이 빌었을 것이다
목련나무 아래 4월에는
발도 없는 아기가 와서
발바닥으로만 발바닥으로만 하얗게 걸어다닌다
- 김주대, 「4월」 전문

슬픔으로 가다 다시 분노가
냉정으로 가다 다시 분노가
체념으로 가다 다시 분노가
용서로 가다 다시 분노가
사랑은 바닷속에 쳐박히고
사랑을 바닷속에 처넣고서
이제 누가 사랑을 이야기하겠는가
- 박철, 「이제 누가 사랑을 이야기하겠는가」 부분

섣부른 희망을 이야기하지 말라
이건 명백한 살인이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죽였다
국가가 국민들을 산 채로 수장시킨 것이다

캄캄한 바닷속에 너희들을 묻어두고
비겁한 아빠는 아직 숨이 붙어 있구나
꾸역꾸역 밥 밀어 넣고 있구나
- 유용주, 「국가를 구속하라」 부분

그대들이 죄 없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동안
부자들은 돈을 세고
올드보이들은 표를 계산하고
이 나라는 그대들의 주검을 세는 게 일이었습니다
- 이상국, 「이 나라가 무슨 짓을 했는지」 부분

이천십사 년 사월에 핀 찔레꽃은 모두 열여덟 살이다
이천십사 년 오월에 핀 장미는 모두 열여덟 살이다
이천십사 년 유월에 핀 수국은 모두 열여덟 살이다
- 이용임, 「이천십사 년 봄, 부터」 부분

그들이 아직은 애도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느냐.
가만히 있어야 안전하다고 하지 않느냐.
이제 슬퍼하지 말고 분노할 일이다.
- 최종천, 「이 닭대가리들아!」 부분

돌려 말하지 마라
이 구조 전체가 단죄받아야 한다
사회 전체의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
이 처참한 세월호에서 다시 그들만 탈출하려는
이 세월호의 선장과 선원들을 바꾸어야 한다
(...)
이 세월호의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
이 자본의 항로를 바꾸어야 한다
- 송경동,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부분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도종환 외/실천문학사 20140724 208쪽 10,000원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습니다. 여전히 가만히 있고, 꾸역꾸역 밥을 처먹고 있습니다. 우리는 닭대가리입니다. 분노할 때 분노조차 못하는 닭대가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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