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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란 정확하게 권력과 부의 대이동, 그리고 권력 구조의 본격적인 재편성을 의미한다. 사회주의 혁명은 원칙상 권력 그 자체의 극복 즉 권력과 부가 없는 사회를 지향하지만 우리가 역사에서 아는 '현실적' 사회주의 혁명들은 다 빠짐없이 대대적인 반동, 즉 권력과 부의 재등장과 그 체제의 재편성으로 귀결됐다. (78)

"백성이 힘들어서 혁명이 일어난다"는 등식은 역사적으로 봤을 때 전혀 성립되지 않는다. 백성이 힘들면 발버둥 쳐 살기도 하고, 굶주려 죽기도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혁명이 곧 일어나는 건 아니다. 한 가지 필수조건이 있다. 다름이 아니라 '국가 폭압 기구의 내파·돌연적 약화'다. (...) '권력의 공백'이 필요하다. 그 틈새가 생기면 그걸 '혁명적 권력'으로 채우면 된다. 즉 '이중 권력 상태'의 전제조건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 지배자들이 그걸 모르지 않는다. (101)

일제 시대 '불령선인(不逞鮮人)'들이 지금은 독립투사로 불리듯이, 지금 투쟁으로 쓰러지고 '업무방해'와 같은 죄목으로 옥살이를 하고, 해고 당한 본인이나 가족들이 생계 곤란자가 되는 비정규직 운동가들이, 미래에는 우리를 경쟁의 지옥으로부터 한 걸음 나아가게 한 노동계의 영웅으로 불릴 수 있기를 바란다. (123)

한국적 체제란 일단 '딴 생각'을 할 만한 여유를 주지 않는 체제다. 그러나 절망적 정서가 어느 정도 고착되어 대중화·보편화되면 한국도 어쩌면 그리스처럼 '젊은이들의 만성적인 불만이 폭발하는 나라'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지금의 절망적 상황을 어느 정도 깊이 인식하는가, 라는 문제가 핵심적일 듯하다. (321)

왼쪽으로, 더 왼쪽으로/박노자/한겨레출판 20090622 322쪽 12,000원

혁명은 딴생각할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걸 아는 지배자들은 딴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경쟁 교육, 비싼 등록금, 알바, 최저임금, 비정규직, 전기료 누진제 등등으로 먹고살기 바쁘게 만들었다. 먹구 대학생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1987년은 민주화 혁명이 일어났지만, 그보다 못한 지금은 민란조차 없는 이유다.

멍 때리는 여유를 만들려고 투쟁하고 연대하고 지지하는 게 혁명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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