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배기 라면과 자작나무숲

대머리가 땡전 뉴스를 하던 시절, 곱배기 라면이 나왔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청보식품이 만들었다. 당대 최고의 희극인 이주일과 최고의 가수 김수철이 광고했다. 값에 비해 양이 많아서 곧잘 팔렸다. 청보식품은 야구단도 만들었고, 청바지도 팔았다.

곱배기 라면이 테레비에 자주 나올수록 청보식품 뒤에 청와대가 있다고 수군댔다. 청보식품이 청와대 보○의 약자라는 소문이 돌았다. 대머리만큼이나 밉상이었던 주걱턱이 청보식품 뒷배경이라니 나부터 사 먹을 리가 없었다. 야구도 판판이 지다가 청보식품은 느닷없이 사라졌다.

소문이 라면 판매에 얼마만큼 영향을 줬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망하는데 일조한 것은 틀림없다. 아무튼 심리적 불매운동으로 기업이 망한 최초이자 마지막 사례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까지는.

2004년 자작나무숲이라는 출판사에서 첫 소설집을 펴냈다. 5.18과 운동권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라고 한다. 자작나무숲 출판사는 광주항쟁을 겪은 광주 출신 에디터가 설립했지만 2015년 무렵에 폐업했다.

2017년 3월 27일 주걱턱 이순자가 자서전을 냈다. 4월 3일엔 대머리 전두환이 회고록을 냈다. 앞서 1월에 파주시에 출판사 등록을 한 자작나무숲을 통해서다. 자작나무숲은 전두환과 이순자 책만 펴냈다. 알고 보니 시공사 대표인 전재국이 설립했다. 자작나무숲을 만들어 부모 자서전을 셀프 출간한 것으로 보인다. 시공사는 전두환 자식과 그 일가족이 소유한 출판그룹이다. 특히 시공주니어라는 아동 서적에 강하다.

광주항쟁을 경험한 이가 세웠던 출판사와 이름이 같은 곳에서 전두환과 이순자가 책을 냈다. 출판계에 나타난 역사의 아이러니라며 넘기기엔 원통하다. 역사가 정의롭지 못해 사무치게 억울하다.

4.19와 6월 항쟁, 촛불로 정치혁명을 이뤘다면 이제는 불매운동으로 망하는 기업이 하나쯤 나와야 할 때다. 자작나무숲을 만든 시공사가 곱배기 라면을 만든 청보식품의 뒤를 이었으면 한다. 청보식품은 지금 오뚜기 라면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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