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기 좋은 방

혼자 있기 좋은 방
책을 덮으면 화가 이름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화가는 피카소나 뭉크밖에 모릅니다. 피카소 그림을 처음 접했을 때 무척 못 그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훗날 피카소가 10대 때 그린 그림들을 보고 나서야 천재인 줄 알았습니다. 고호랑 고흐가 같은 사람이라는 것도 뒤늦게 알았던 문외한입니다.

지은이를 따라 여러 방을 기웃거리며 구경했습니다. 방마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의 머릿수만큼 각각의 사연과 처지(223)'가 있었습니다. 어떤 방은 '살다 보면 세상이 너무너무 추워서 누구라도 끌어안고 싶을 때(169)' 다시 찾고 싶습니다. '하찮고 사소한 것들이야 말로 삶의 빛나는 순간(198)'임을 보여주는 방도 있습니다.

「재봉사(셔츠의 노래)」는 '여성의 노동을 가시화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미(115)'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여성의 노동환경은 차별받고 있고요. '어린 하녀가 주인이 없는 틈을 타서 홀로 자유 시간을 만끽하는 장면을 묘사한(180)' 「호랑이가 갔을 때」는 '불행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방법을 익히고, 좀 더 따뜻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려 애쓰며, 어쨌거나 씩씩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285)'가 보입니다. 물론 책을 읽지 않았다면 하녀인 줄도 몰랐겠지요.

1801년 공개된 「그림 그리는 여자」는 거장의 작품으로 알려져 극찬을 받았습니다. 1951년 여성 화가의 것으로 밝혀지자 혹평으로 바뀌었고, 1996년이 되어서야 빌레르가 스물일곱 살에 그린 자화상으로 판명되었습니다. 그림은 200여 년이 지나 '차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이 기술되어 있는 한 편의 르포르타주(363)'가 되었습니다. 빌레르가 기뻐할지 슬퍼할지 분노할지 궁금해집니다.

조곤조곤한 얘기를 들으며 방마다 걸린 그림들을 봤습니다. 그림 속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혼자 있기 좋은 방/우지현/위즈덤하우스 20180605 400쪽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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