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의 시대

훈의 시대
지금은 틀렸고 그때는 맞았던 게 참 많습니다. 한 번도 여학교에 굳이 '여자'를 붙였는지 궁금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생각조차 없었습니다. '공부라는 행위와 학교라는 공간이 모두 애초에 남성을 위한 것이었음을 모두가 몸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고, 그 이후의 세대들도 그에 익숙해졌기 때문(45)'입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여배우, 여감독, 여작가, 여선생, 여교수, 여직원, 여의사, 여기자, 여사장... 여전히 '여자'를 붙이고 있습니다. '남자 간호사'는 특별하지만, '여자 파일럿'은 특이하다고 합니다. 남자는 사람이고, 여자는 특정 성별이라는 시대는 바뀌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여고의 교훈이나 교가는 '학교에서부터 공부하는 한 개인이 아닌 여성으로서의 이상향을 성취하기를 부단히 요구(53)'하고 있습니다. 교훈이나 교가를 바꾸려고 했지만 동문들의 반대로 실패했다고 합니다. '시대가 변해도 교훈은 변하지 않는 학교의 긍지이며 전통(89)'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학교를 지배해 온 언어(94)'에 익숙해졌기 때문은 아닐까요.

'일하는 인간을 통제하는 언어(104)'인 회사의 훈은 을이 '갑'을 위해 대리전쟁을 수행하는 역설적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멋있는 회사의 훈이라도 '빠르게 이해하고 수행하는 것으로,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지워나가(112)'라는 걸 숨기고 있죠.

'나보다는 '너'를 위한, 그리고 '우리'를 위한 훈(242)' 하나를 곁에 두면 좋겠지요.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로 인해 나온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231)'라는 훈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희망의 증거라서 좋습니다.

부조리한 훈의 시대,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

훈의 시대/김민섭/와이즈베리 20181203 246쪽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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