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이동론

2012년 12월 19일. 개표방송을 지켜보다 처참주를 마셨다. 매주 같은 번호로 로또를 사다 딱 한 주를 건너뛰었는데 그 번호가 1등에 당첨됐을 때 느끼는 상실감의 백만 배가 밀려와서였다.

2020 총선 조감도
2020 총선 조감도
2012년 유세 당시 문재인 후보는 "정권교체와 새 정치를 갈망하는 모든 세력과 함께 국민정당으로 가겠다"고 했다. 그때 새누리당보다 먼저 민주당을 중심으로 헤쳐서 모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도 진보층부터 왼쪽을 아우르는 정당이 돼서 새누리당을 오른쪽 끝으로 밀어내길 바랐다. 사회당과 녹색당 또는 그 너머 정당의 출현이 당연해 보이는 밑바탕이 되길 기대해서였다.

2017년 대선 때 문재인 후보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공약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2019년 12월 27일에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선거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선거연령도 현행 19세에서 18세로 낮췄다. 문재인 후보는 대통령이 된 후 2018년 3월 26일에 헌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눈여겨본 대목은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는 조항이었다. 이는 장기적으로 권력의 분산과 더불어 잘 다듬어지고 검증된 지방의회 의원이 국회의원으로 진출하는 환경을 만들 것으로 보였다.

2020년 1월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협치야말로 우리 정치에서 가장 큰 과제"라고 강조하며 야당과 협치내각을 하겠다고 밝혔다. 패스트트랙 정국에서 4+1 공조가 개혁법안을 통과시킨 동력이 된 점과 총선 후 구성될 21대 국회가 다당제로 예견되는 것이 배경으로 보인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는 개혁 완성과 개헌 그리고 남북 협력 문제로 공조를 넘어 두터운 협치가 필요하다. 협치는 민주당과 연대 가능한 정당의 당선자가 개헌선을 위협하는 압승을 해야 가능하다. 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범진보 정당과 협치내각을 구성해서 중도층에 넓게 자리를 잡으며 자칭 보수 정당들을 자연스레 오른쪽 끝으로 밀어내야 한다. 건전한 보수로 개과천선하지 않는 이상 그들은 상식도 미래도 기대할 수 없는 백해무익한 꼴통충(꼴통형 기생충)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유권자를 왼쪽으로 움직이며 동시에 정치권을 오른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21대 총선은 21세기를 가늠할 시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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