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한 사람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곁에 두는 미니멀리스트'와 '한 사람에게 허락되는 최대한의 선을 훅 넘어가버리는 맥시멀리스트(92)'가 만나 같이 살기로 했습니다. 맥시멀리스트의 이삿짐이 새집으로 들어오는 걸 보며 한 사람의 일생이 온다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상상하며 크게 웃었습니다. 둘의 '동거는 유라시아판과 북아메리카판이 충돌하는 것 같은 일(109)'이었습니다.

'같은 싱글 라이프라도 '자취'라는 말과 '독신'이란 말의 뉘앙스는 엄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게 사실입니다. '자취는 '임시적, 결혼 또는 독신 생활 이전의 시절, 과동기' 같은 느낌이라면 독신은 '반영구적, 반듯함, 자기 절제, 여유' 같은 느낌(84)'이 듭니다. '둘만 같이 살아도 단체 생활이다(119)'라는 말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람은 멀리서 보면 멋있기 쉽고, 가까이에서 보면 우습기 쉽(235)'지만 동거인은 여전히 멋있게 보입니다. '집안에 존경할 만한 사람이 사는 건 잔소리쟁이가 사는 것보다 천배는 동기가 부여(252)'되는 사이가 돼갑니다. 생활 동반자가 된 것이지요.

천장에서 물이 떨어져 윗집과 다툼이 생겼을 때 딱 한 번 남자가 없어서 아쉬웠다는 대목에선 씁쓸했습니다. 남자가 숨긴 코딱지만 한 성품은 약자에게만 드러냅니다. 20년 뒤 '부산 또는 어딘가의 바닷가에 생길 흥 나는 술집(198)'에서 들려줄 음악을 선곡하며 노후계획을 세우는 장면은 '하와이 딜리버리' 바에서 노래가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성격이나 생활이 서로 다른 여자사람 둘이 합을 맞추며 살아가는 건 술과 고양이 그리고 동네 친구가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혼술을 즐기던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장 좋은 술친구가 되었고, 사연 많은 동거묘들 덕분에 슬픔은 반이 되고 기쁨은 배가 됐습니다. '택시 태워 보내지 않고 정말로 집 앞에서 헤어지는 사이(267)'인 동네친구도 생겼고요.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분자가족(W₂C₄ 여자 둘 고양이 넷) 얘기는 재미있습니다. 분자가족 얘기가 특별하지 않은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김하나, 황선우/위즈덤하우스 20190222 280쪽 14,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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