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에 대한 예의

소명출판
소명출판

내가 인문학 출판에 매달리는 이유는 첫째, 하나의 각주를 추적하기 위해 며칠 밤낮을 결판 낸 저자에 대한 예의 때문이고, 둘째는 내가 만든 책에 언젠가 눈길을 줄 독자에 대한 예의 때문이고, 셋째는 출판이 천성이자 팔자인 나에 대한 예의 때문이다. - 소명출판 박성모 대표

소명출판은 1998년 2월에 박성모 대표가 홀로 차리며 출발했습니다. "출판사명과 직결시켜 소명의식으로 연결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렇게 큰 뜻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1지만 국문학으로 출발하여 점차 동아시아 인문학으로 지평을 넓히며 이십여 년을 버티고 있습니다.

그동안 출간한 학술서적이 1,600권을 넘었습니다. 초판은 통상 500부를 찍고, 주요 고객은 전국의 도서관입니다. 개인 독자에게 팔리는 책은 평균 100권 정도입니다. 주로 논문을 쓰는 이들이 찾습니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사회학자 고병권의 〈니체, 천 개의 눈 천 개의 길〉(2001)인데 판매 부수는 6,000권 정도2랍니다. 2013년  기사이지만 지금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돈을 벌 기회도 있었지만 눈길을 돌리지 않고 학술서적만 고집했습니다. 학술출판 외길을 걸어온 덕분에 학계에서는 "소명출판에서 책을 내면 전임교수가 된다"3는 이야기가 돈다고 합니다.

궁핍한 살림에도 한눈을 팔지 않았던 소명출판은 2018년에 출판사 설립 20주년을 맞아 《소명출판 20년, 한국문학 연구 20년》을 출간했습니다. 900쪽이 넘는 기념 책인데 오류가 있어 회수하고 1000부를 다시 찍었답니다. "어차피 팔릴 거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비용보다 정확한 게 중요하다"4는 박성모 대표의 말에 기초학술서적 출판에 대한 철학과 고집이 엿보입니다.

서점 매대에 진열하기도 어려운 학술서에 대한 국가 지원이 늘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소명출판은 소명의식 없이 출발했다지만 지금은 "동아시아 인문학의 구축과 연대"라는 큰 뜻이 소명이 됐습니다. 앞으로 40주년을 넘어 100주년 기념 서평집도 출간하길 기원합니다.


  1. 기획회의 384호 2015.01.20 근대의 요체 총천연색 만주를...
  2. 한겨레 2013.09.08 상업성 물리치며 인문학 소명 지켜내
  3. 연합뉴스 2018.02.25 학술출판 외길 20년 '소명출판'…
  4. 동아일보 2018.03.22 20년간 학술책 1600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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