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여행자

책여행자
히말라야 도서관에서 유럽 헌책방까지 세상을 여행하며 만난 책과 서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책과 여행을 좋아하는 이라면 혹할지도 모릅니다.

금서에 관한 얘기는 아이러니하면서 웃깁니다. '금서의 역사에 가장 기이한 일은 금서를 반대한 책이 금서가 된' '조지 오웰의 「1984」가 그렇다. (...) 아이러니하게도 이 소설이 비난받고 금지되었던 곳은 스탈린주의에 사로잡힌 러시아도 아닌,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이었다(35)'고 합니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이 처음 출판되었을 때 음란물로 판정되어 판매 금지가 되자 '어느 서점 주인이 단속을 나온 경관에게 이 책을 주면서 처벌을 무마(90)'하는 장면을 상상하니 웃픕니다.

세기의 책 도둑 블룸버그 얘기는 재미있습니다. 그가 훔친 '23,600권가량의 책들에는 블룸버그 컬렉션이라는 말이 붙게 되었으며, 당시 항간에는 그가 다녀가지 않은 미국 도서관은 별 볼 일 없는 곳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았다(130)'고 합니다. 책을 도둑질한 블룸버그를 두고 정신이상이라고 변론했지만 배심원은 '책을 훔치려는 사람이야말로 제정신이다. 오히려 책을 갖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정신이상(132)'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1921년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아나톨 프랑스도 책 도둑에 관한 어록을 남겼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책을 빌려 주지 마라. 내 서재에 있는 책들만 보더라도 죄다 남들이 내게 빌려 준 것들이다(202)'.

'그녀와 연애하면 반년 안에 최고의 작품을 쓰게 된다는 루머'가 있던 루 살로메를 처음 만난 니체가 건넨 멘트는 주옥같습니다. '대체 어느 별에서 우리의 만남을 도운 걸까요?(96)'. 세기의 작업 멘트로 꼽아도 손색이 없습니다. 역시 '사랑은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이 아(98)'닌가 봅니다.

세계대전이 터지자 포일즈 형제는 나치가 책을 불사른다는 소식을 듣고 히틀러에게 '그냥 태워 버릴 바에야 자기한테 넘기면 특별히 값을 쳐 주겠다(157)'는 편지를 보냈지만 거절당했습니다. 열 받은 형제는 포일즈 책방 지붕에 「나의 투쟁」을 모래주머니 대신에 깔아 놓았습니다. '그 덕분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포탄은 포일즈 지붕을 아슬아슬하게 비켜(158)'갔습니다. 1903년 헌책 장사로 시작한 포일즈 책방에 관한 일화입니다. 히틀러는 책을 불태운 뒤에 사람마저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책이 불태워지는 곳에서는 언젠가 인간도 불태워지게 된다(55)'는 글이 당시 분서 사건이 있었던 훔볼트대학 도서관 앞에 새겨져 있습니다.

파리에는 유명한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라는 책방이 있습니다. 창업자인 실비아 비치는 1922년에 「율리시스」를 출간했지만 영미권에 내린 금서 조치로 판매가 쉽지 않았습니다. 10년이 지난 뒤 미국에서 출판 금지가 풀리자 제임스 조이스는 실비아를 배신하고 다른 출판사와 계약을 했습니다. '초판본 100권 중 23번째로서 실비아의 서명이 있는 책에 무려 50만 달러에 가까운 낙찰가를 예상(149)'하지만 당시에는 애물단지였습니다. '낯선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세요. 어쩌면 위장한 천사일지도 모른답니다(152)'.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책방 한가운데 통로 위에 붙어 있는 글귀입니다. 실비아 비치는 이 말을 그대로 실천했습니다. 2대 주인이었던 미국 작가 조지 휘트먼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를 정말 사랑해서 외동딸 이름도 실비아 비치라고 지었습니다. 지금은 실비아 비치 휘트먼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제인 에어」를 쓴 샬롯 브론테는 커터 벨이라는 남자 이름을 달고 나왔습니다.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인 조지 롤링도 '여성 작가라는 이미지를 숨기기 위해 전략적으로 J. K. 롤링이라는 필명을 선택(211)'했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자유롭게 글을 쓰지 못한 여성 작가들 얘기가 더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책의 처지에서 보면, 문자가 생긴 이래 5,000년의 역사에서 상황이 좋았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문맹률을 보아도 그렇다. 디킨스가 「데이비드 코퍼필드」(1805년)를 내놓았을 때 영국의 문맹률은 70퍼센트, 「보바리 부인」(1857년) 초판이 나왔을 때 프랑스의 문맹률도 60퍼센트, 심지어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1866년)을 썼을 때의 러시아의 문맹률은 90퍼센트가 넘었다.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자의 수가 지금과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그런 악조건에서도 누군가는 위대한 작품을 써 내려갔고, 또 누군가는 그것을 읽고 보존해 왔다.

수많은 책이 자연과 인간에 의해 사라져 갔지만, 그중에서 0.1퍼센트만이라도 살아남으면, 그것만으로도 새로운 개혁과 재생이 가능했다. 어렵사리 지켜 낸 종자씨처럼 살아남은 0.1퍼센트의 고대 그리스의 책이 있었기에 오늘날 현대 정신은 여기까지 도달할 수 있었다. (17~18)

'사실 편리를 따지자면, 종이책은 전자책을 따라갈 수는 없다. (...) 하지만 상관없다. 그럼에도 애서가들이 굳이 종이책을 고집하는 이유는 편리함과는 무관한 곳에 있으니 말이다. 이것은 마치 간편하기로 따지면, 이메일이 백 번 낫지만 결코 손으로 쓴 편지의 느낌을 가질 수 없는 것과 같은 논리와 마찬가지(257)'입니다. 책들은 '새로운 독자가 아니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독자를(62)' 기다리고 있습니다.

'책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272)'습니다.

책여행자/김미라/호미 20131224 272쪽 16,000원


덧. 오탈자
  1. 141쪽 8행 책장에 기대에 → 책장에 기대어
  2. 270쪽 5행 사람들이 책이 → 사람들이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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