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예가의 열두 달

The Gardener's Year
  • 만일 원예가가 천지창조의 시초부터 자연도태에 의해 발달해 왔다면 틀림없이 무척추동물로 진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 때문에 원예가에게 등이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이따금씩 구부렸던 몸을 일으키고 "등이 아프구나!"라며 한숨을 내쉬기 위해서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45)
  • 원예가는 문명이 만들어낸 인종이지 결코 자연도태의 결과물은 아니다. 즉, 만일 원예가가 자연에서 진화했다면 그 겉모습이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우선 무엇보다 쭈그리고 앉지 않아도 되도록 딱정벌레 같은 다리를 갖고 있을 것이며 어쩌면 날개도 달려 있을지 모른다. 정말 이렇게 생겼다면 보기에도 예쁘고 화단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74)
  • 만약 원예가의 소원을 닥치는 대로 들어 줄 수 있는 악마와 계약을 할 수만 있다면, 원예가는 틀림없이 그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이라도 팔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운수 사납게도, 악마는 원예가의 영혼을 터무니없는 헐값에 사려고 들 것이다. (149)
  • 일류 원예가나 재배가는 거의 대부분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들은 품행이 방정한 사람들이다. 큰 범죄를 저질러 역사상 유명해진 사람도 없고, 전쟁이나 정치판에서의 공적으로 유명한 사람도 없다. 단지 유명해져야 한다면 신종 장미나 달리아나 사과만이 원예가의 이름을 남겨 줄 수 있다. 이 명성, 보통은 무명이거나 다른 이름에 가려지거나 둘 중의 하나이지만 원예가에게는 이 명성만으로도 삶의 의미가 충분해진다. (158)
  • 자신의 발 아래를 내려다보며 정말 질 좋은 흙이라고 감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때문에 당신은 당신이 밟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손바닥만한 크기의 정원이나마 하루 빨리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구름이라도 당신이 밟고 있는 발 아래의 흙만큼 변화무쌍하게 아름답지는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167)
  • 미래는 우리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기 와 있다. 미래는 싹의 모습으로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는 것은 장래에도 없으며 우리의 눈에 싹이 보이지 않는 것은 흙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은 그것이 우리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207)
  • 우리 원예가는 미래를 살아가는 것이다. (...) 원예가에 있어 가장 감동적인 것은 바로 우리들의 미래이다. 즉, 새해를 맞을 적마다 높아지고 아름다워진다는 것. 고맙게도 우리들은 또 한 살을 먹는다. (226)

원예가의 열두 달The Gardener's Year, 1929/카렐 차페크Karel Capek/홍유선 역/맑은소리 20020715 264쪽 10,000원

원예가의 뒷모습을 보면 엉덩이밖에 안 보이지만 쭈그리고 앉은 다리와 구부린 등은 불편한 부위다. 그래서 원예가는 딱정벌레 같은 몸매로 진화하고 싶다거나 팔다리가 접이식이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밭일을 조금이라도 해본 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저자는 로봇(Robot)이라는 용어를 만든 문학가이지만 정원을 가꾸며 겪은 일을 재미있게 알려준다. 하소연하는 소리도 들린다. 원예가는 신과 동업해서 에덴동산을 만들려고 하는데 매번 신이 배신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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