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김혼비 작가의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를 재미있게 읽고 팬이 됐습니다. 축구에 이어 술 이야기를 쓴 《아무튼, 술》을 읽고 다음 글을 기다렸습니다. 이 책은 일곱 명의 작가가 쓴 글이지만 김혼비 작가가 쓴 글을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고양이 토토를 잠시 맡긴 친구가 토토를 잃어버리자 '슬픔과 원망과 분노를 누르고 친구가 가진 죄책감의 무게와, 그 무게를 유독 혹독히 짊어지고 살 게 분명한 친구의 성정을 헤아리'며 '경계선을 넘지 않고 그 바깥에 단단하게 서서 호흡을 고르며 다른 걸 볼 줄 아는(21)' 어른이 되자는 일화는 닮고 싶습니다.

'지구상의 중요도에 있어서 김도 못 되고, 김 위에 바르는 기름도 못 되고. 그 기름을 바르는 솔도 못 되는 4차적인 존재이지만, 그래서 범국민적인 도구적 유용성 따위는 획득하지 못할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그 잉여로우면서도 깔끔한 효용이 무척 반가울 존재(55)'인 김솔통을 보며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내게는 김솔통 그 이상의 작가입니다.

'관심이란 달짝지근한 음료수 같아서 한 모금만 마시면 없던 갈증도 생긴다는 것을, 함께 마실 충분한 물이 없다면 건네지도 마시지도 않는 편이 좋을 수 있다(96)'는 말을 곱씹어 봅니다. 너랑 나랑 합치면 우주가 된다며 궁합을 해석하거나 캐리어가 두 개로 늘어나게 만든 반려인 T에게는 감탄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커피의 쓴맛을 보려다가 자전거의 단맛까지 알게 되어 '술이 삶을 장식해 주는 형용사라면 커피는 삶을 움직여 주는 동사'로서 '형용사는 소중하지만 동사는 필요(294)'하다고 했으니 조만간 《아무튼, 커피》라는 글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김혼비는 우아하고 호쾌한 비유로 휘몰아치는 재미를 주는 작가입니다. 늘 다음을 기다립니다.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김혼비 외/웅진지식하우스 20200701 364쪽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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