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것이 좋아 - 나만의 보폭으로 걷기, 작고 소중한 행복을 놓치지 말기

보통의 것이 좋아 - 나만의 보폭으로 걷기, 작고 소중한 행복을 놓치지 말기
그 산책에서 나는 이 동네에 소속감을 느꼈다. 그 새로운 공간들이 모두 내 것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이 얼마나 자연스러운가를 느끼면서 나도 그들처럼 이 마을에 익숙해지고 싶었고, 그러기 시작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18)

나뭇잎의 그림자 사이로 빛나는 빛을 그릴 때마다 이 모습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을까 궁금했는데 검색해 보니 있었다. 우리나라 말로 '볕뉘'라고 한다. (43)

작게 태어나, 욕심 없이 사는 것 (69)

봄날의 산책은 남은 일 년을 살아갈 힘을 준다. (85)

아름다움은 멀리 있지 않다. 온 세상의 정보를 다 알게 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때로는 너무 먼 곳의 소식은 불필요하다. 오히려 가까이 있는 것이 더 믿음직스러울 때가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걸으면 반드시 진정이 된다. 이상하게도, SNS나 미디어 같은 걸 보면 머리가 꽉 막히는데, 그냥 길가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92)

처음이라서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잔뜩 있었던 시절이 그립다. 모두가 나를 사랑해주었던 시간이어서, 세상 자체에 대한 첫사랑을 품은 시기여서 그만큼 그때의 모습들이 내 안에 오래 나아 있는 것은 아닌지. (115)

멀리서 봤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 깊게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 시간을 두고, 거리를 뒀기 때문에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이런 시선으로 내 삶을 보기도 한다. 나는 되도록 멀리서 나를 보려고 한다. 내가 남을 볼 때 그들의 고통이 보이지 않듯이, 지금 나의 고통을 내가 볼 수 없도록 세상과 거리를 두는 것이 나에게는 삶의 한 요령이었다. (119)

산책이 내게 준 것은 며칠짜리 희망이었다. 이내 다시 힘들어지고,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 벌어질지라도. '지금은 괜찮아.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같은 믿음이나 희망을 가지고 돌아왔다. 힘듦이 쌓이면 다시 세상을 확인하러 떠났다. 그걸 무수히 반복했다. (130)

행복은 사물처럼 내가 꼭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류장이나 여행지처럼 내가 잠깐 머무는 성질의 것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 손에 쥐려 하지 말아야지. 모두에게 순간마다 부단히 노력해야지. 잠깐 머물다 가는 여행처럼 행복을 느껴야지. 마실 나온 양탄자처럼, 낮잠에 꾸는 꿈처럼 살아가야지. 그 무엇으로도 나를 정해버리지 말아야지. (148)

인생은 어떻게 보면 매일매일이 늘 처음과 같기에 의문의 순간이 올 때마다 다시 뭔가를 얻으러 산책을 나가야 하겠지만,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예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나는 늘 너무나 행복한 산책을 해왔다는 것이다. (213)

보통의 것이 좋아/반지수/위즈덤하우스 20211201 220쪽 14,800원

'그곳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지나갈 길이 없을 것 같은 길(37)'을 걷는 산책여행자가 만난 사람과 풍경은 정겹고 푸근합니다. '퇴근길을 비추는 빛이 서점일 때 느끼는 안도감 같은(195)' 그림을 보며 세상은 분명히 사랑할 구석이 다분함을 느낍니다.

'볕뉘'라는 고운 말도 배웠습니다. 새삼 보통의 것이 참 좋아지며 소속감이 생깁니다. "봄날의 산책은 남은 일 년을 살아갈 힘을 준다"는 문장은 봄과 산책에 대한 최고로 아름다운 예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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