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Showing posts with the label 읽기일기

다정소감 - 다정이 남긴 작고 소중한 감정들

Image
'쿨하다가 한 시대의 정신으로 각광받으면서 윤리적 노팬티 상태가 패션인 양 포장되며 쏟아지는 무례한 독설들(61)'로 세상에 유해함을 흩뿌리는 시대입니다. 제사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의 집 여자들이 동원되어 고생해서 만든 음식을 바치어 정성을 나타내는 남녀차별적 의식(79)'이라는 생각을 미처 못했습니다. '남에게 충고를 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아니라고 믿지만, 남의 충고를 듣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꼰대가 되어가는 걸 모르고 사는(70)'지 반성했습니다. 여전히 '백지에 별생각 없이 점 하나를 찍고 말 때, 누군가는 그 점에서부터 시작하는 긴 선을 그리려 한다는 걸 알아채지(135)' 못하며 사는지 뒤돌아봤습니다. 신파언어차력쇼, 한강의 기절, '하루'라는 음반에 숨겨진 보너스 트랙, 가장 게으른 방식으로 부지런 할 수 있다거나 민폐를 전단지처럼 뿌리고 다닌다거나 국물이 흘러나오고 눈물이 흘러나가면서, 다정한 패턴은 마음의 악력도 만든다는 표현은 역시 김혼비답습니다. 50대가 30대에게 너도 내 나이 돼보면 안다는 거꾸로 인간에게 배웠습니다. 축구를 해서 가장 좋은 점은 집주인이랑 잘 싸우게 됐다는 우아하고 호쾌한 축구인 김혼비가 들려주는 다정에 대한 소감과 감상을 잘 읽었습니다.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은 루브르 언니로 남길 기대합니다. 다정소감/김혼비/안온북스 20211013 228쪽 15,000원

녹즙 배달원 강정민

Image
아직 젊은데, 언제 멀쩡한 일을 할 거냐는 물음에 영업용 미소를 지으며 녹즙을 배달하는 강정민. 봉급은 최저임금을 1000원 넘을까 말까 하는 수준이지만 미래의 민주시민을 키우는 미인가 어린이집 가짜 양호교사인 김민주. 꼴리는 그림만 그리다가 그림체가 저질스러워졌고, 귀엽고 동글동글한 학습만화용 그림을 그리다 그림체가 호빵처럼 변했지만 웹툰을 그리고 싶은 강정민. 평생소원인 인도에 가서 여행작가가 되려고 코딱지만큼 적금을 붓고 힌디어를 배우는 김민주.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학력이나 지성이 있을 거라고는 절대로 믿지 않는 한국 사회. 대통령 부인처럼 아주 높은 신분이거나, 낮은 데로 임하여 다른 이들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는 사람들만이 '여사님'이라고 불리는 한국 사회. 피라미드의 맨 마지막에 위치한 배달원들을 탈탈 털어서 위쪽 사람들을 배부르고 따뜻하게 사는 한국 사회. 거지끼리 동냥자루 찢는 꼴을 만드는 한국 사회. 이런 한국 사회에서 돈 적게 주고 감정 소모해야 하는 일은 여자들이 도맡아야 합니다. 여자가 어떻게, 여자가 감히, 그 말에서 모든 여성 억압, 나아가서 범죄가 시작됩니다. 한국이 여자한테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라서 한국에선 여자가 미친년이 안 되면 살지 못합니다. 생각해. 계속 생각해. 생각하는 걸 그만두면, 그때부터는 정말 지는 거다. 여자로 사는 거 힘들다고 생각하는 걸 멈추면, 그때부터는 진짜 지는 겁니다. 나주집에서 순대국을 싹 비운 강정민과 인도로 간 김민주처럼 김현진 작가는 다음 20년도 계속, 쓰길 바랍니다. 녹즙 배달원 강정민/김현진/한겨레출판 20210428 420쪽 14,000원 덧. 오탈자 75쪽 10행 메일이 열어 보니 → 메일을 열어 보니 95쪽 13행 에일에 관한 짧은 시* → 에일에 관한 짧은 시**

세상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말한 적 없다

Image
'예전보다 나아졌다'는 하나의 팩트만이 부유한다면, '그때 그 시절 덕택에' 집집마다 자동차 굴리는 것 아니냐는 사람이 등장한다. 군부독재를 긍정하고 나아가 일제강점기도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식으로 해석하는 놀라운 사람이 이 땅에 있는 이유다. (16) 행복과 노력을 결부시키면 위험하다. 특히, 사회가 흔들릴 때의 이런 조합은 '넘어진 사람'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부메랑에 불과하다. 다수의 비극이 소수의 희극에 덮이면 되겠는가. 우리는 결코 공평하게 위기에 처하지 않았다. 불행은 가장 아래에서 고군분투하는 사람의 삶부터 야금야금 씹어 먹는 굉장히 정직한 녀석이다. (37) 자본주의적 시점에선 신의 한 수였다. 불안한 일자리 형태를 많이 만들수록, 노동자들끼리 다툰다는 예측은 완벽했다. 바늘구멍을 통과한 을(정규직)에게 갑(기업)이 괜찮은 보수를 지급하면, 사람들은 '노력이 정당하게 보상받았다'면서 알아서 박수치고 선망한다. 그러면 노동자들 사이에는 공정이란 단어로 포장된 벽이 생겨 을은 결코 섞여서는 안 될 병, 정, 무로 철저하게 구분된다. 그리고 자신이 을 정도는 되리라 희망하는 취업 준비생들은 병, 정, 무의 요구를 마치 자신의 자리를 뺏는 것처럼 느끼며 분노한다. (46) 불평등을 '줄이는' 안목을 키워주는 교육을 고민하지 않고, 불평등에서 '벗어나는' 묘수만을 나열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파할 사람은 다름 아닌 교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극화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면서 순응하고, 구체적인 절망을 파괴하는 것을 체념한 학생들은 어설픈 희망의 빛에 매료되어 대학의 서열화를 신봉하며, 가족 모두의 힘을 빌려 피 말리는 입시경쟁에 매진할 것이다. (87) 시험의 공정성은 과거보다 상대적으로 개선되고 있을 뿐이지 절대적일 수 없기에 그 결과로 타인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 당연한 것을 가르치지 않았던 교육 시스템에 길들여지면, 논리적으로 사람에 대한 혐오를

만약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Image
과학을 통해 나는 새로운 사고방식을 배울 수 있었다. 과학적 사고에서는 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규칙들을 세우지만 이후 그 규칙들은 얼마든지 수정할 수 있다고 본다. 이토록 자유롭게 지식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 나에게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11) 아인슈타인은 순식간에 앞서갔다. 먼저 고전역학에서의 움직임, 즉 중력이 없는 상태에서 물체들이 보이는 움직임에 대한 설명을 상대화했고(특수상대성이론), 그다음에 중력이 있는 상태에서의 움직임으로 넓혀갔다. 이것이 '일반상대성이론'이다. (36) 공간은 이렇게 일차원 물체인 루프들로 짜여 있으며, 이 루프들이 세 개의 차원상에서 서로 엮이면서 삼차원의 직물을 형성하게 된다. 티셔츠 표면도 멀리서 보기에는 매끄러워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돋보기로 보면 실을 가닥가닥 셀 수 있는 것처럼, 공간 역시 우리 눈에는 연속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매우 작은 차원에서는 각각의 루프를 셀 수 있게 된다. (59) 과학계는 동화 같은 곳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도둑맞는 일은 다반사이다. 수많은 과학자들이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빼앗거나 가장 중요한 공을 자신에게 돌리는 등 새 아이디어를 수립하는 최초의 인물이 되려고 기를 쓰고 있다. (64)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과학적 발견은 그저 과학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일지도 모른다. 과학을 통해 발전된 세계관이 분명하고 정확한 의미에서는 '거짓'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한 여러 해석을 가질 수 있으며, 각각의 해석들 역시 어느 정도까지만 진실이라고 여겨질 수 있다. (80) 과학적 사고의 힘은 '실험', '수학', '방법론' 따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 힘은 과학적 사고의 특징, 즉 스스로에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온다. 이것은 자신이 확언한 내용까지도 의심할 수 있는 능력이며, 자신의 신념은 물론 가장 확실했던 신념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시험대에

스트리밍 이후의 플랫폼

Image
넷플릭스는 전 세계 1억 80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대표적인 글로벌 스트리밍 서비스다. 인터넷 net 과 영화 flick 의 합성어인 넷플릭스는 DVD 유통으로 시작해 전 세계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스트리밍 플랫폼 서비스로 성장했다. (8) 넷플릭스를 중심으로 발전한 스트리밍 서비스는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런 서비스를 일컫는 용어 OTT는 'Over The Top'의 약자로 영화나 방송 등 미디어 콘텐츠를 셋톱박스 없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디바이스로 보내는 것을 뜻한다. (14) 리드 헤이스팅스는 "넷플릭스의 경쟁 상대는 수면 시간"이라고 말한 바 있다. 스트리밍 사업자들이 이용자의 관심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사업자들은 한정된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확보하고 맞춤형 서비스 기능을 향상시키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 결국 넷플릭스가 초점을 맞추는 기술과 콘텐츠 투자는 모두 독자의 관심을 겨냥하고 있다. (16) 경쟁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요소 가운데 핵심은 가격, 인터페이스, 콘텐츠다. (22) 저널리스트 토드 스팽클러 Todd Spangler 는 넷플릭스가 지속하고 있는 막대한 콘텐츠 투자를 빈지투자 binge-spending 라고 일컬었다. 영상을 한꺼번에 몰아보는 빈지뷰잉 binge-viewing 처럼 대규모 자본을 한꺼번에 투입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다. (39) OTT가 TV 단말기가 아닌 인터넷을 이용한 동영상 소비를 의미한다면 스트리밍은 동영상을 실시간으로 자유롭게 소비하기 위해 구축된 환경을 의미한다. (50) 스트리밍 시대의 이용자는 소비의 공간뿐 아니라 시간도 선택할 수 있다. 몰아보기가 일종의 사회적 현상이 된 이유도 동영상을 소비하는 문화적 실천 행위가 이용자의 삶에 깊숙이 침투해 이용자의 주도 아래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52) 이제는 누구나 콘텐츠 제작자가 될 수도 있다. 미디어 영역에서 생산자와

로버트 오언 - 산업혁명기, 협동의 공동체를 건설한 사회혁신가

Image
로버트 오언은 1771년 영국 웨일스 중부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1858년 8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오언은 7세에 학교에 입학했지만 9세에 학교를 떠나 일을 하게 된다. 10세가 되었을 때 런던으로 와 18세까지 점원으로 일한다. 18세에 섬유 기계 공장의 주인이 되고, 29세에 뉴 레너크 New Lanark 에 있는 큰 면화 공장의 경영자가 된다. 오언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기는 초기 산업혁명 시대로 온갖 빈곤과 학대가 넘쳐나던 시기였다. 오언이 태어나기 1년 전에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의 특허권을 얻었다. 애덤 스미스의 《 국부론 》은 1776년에 출간됐다. 18세 되던 해인 1789년에 프랑스혁명이 터졌고, 면화 산업의 발전을 가능케 했던 새로운 기계들이 널리 도입되던 시기였다. 뉴 레너크의 운영권을 쥐게 된 1800년부터 전국 통일 노동조합이 갑자기 종말을 맞았던 1834년까지 오언은 기념비적인 업적을 이루었다. '뉴 레너크는 공장 개혁뿐만 아니라 동시에 대중 교육의 선구자가 되었으며, 1830~1834년의 사건들을 보게 되면 노동계급이 최초로 이루었던 폭넓은 단결 운동의 지도자'였다. '영국에서 사회주의 운동과 협동조합 모두 공히 그 최초의 체계적인 주창자는 로버트 오언이었다(47)'. 오언은 1800년 1월 뉴 레너크 공장의 최고 경영자가 되자 '뉴 레너크를 단순히 성공한 공장이 아니라 교육 그리고 도덕적 물질적 개혁에 관련된 사회적 실험들을 연이어 계속 펼쳐나갈 실험실로 삼고자(111)' 했다. 당시 공장 노동자들 중에 아이들은 다섯 살에서 열 살 사이였다. '여섯 살짜리 심지어 그보다 더 어린 아이들을 공장에 정규적으로 고용하여 딱 한 번의 휴식 시간만 준채 14시간 혹은 그 이상을 부려먹는 것이 관습이었던 당시'에 오언은 '자기의 공장에 열 살 이하의 아이들은 들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고용 금지 연령을 열두 살까지로 올리기'를 원했다.

죽은 자의 집 청소

Image
자비 없는 세상을 원망하고 죽은 인간조차도 그 자리에 방치된 채 오랫동안 썩어갔다면 그 냄새는 자비가 없다. (23) 자신을 죽인 도구마저 끝내 분리해서 버린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게 돌려주지 못했을까?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 (27)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때때로 부유한 자가 혼자 살다가 자살하는 일도 있지만, 자살을 고독사의 범주에 포함하는 문제는 세계적인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니 일단 논외로 하자. 고급 빌라나 호화 주책에 고가의 세간을 남긴 채, 이른바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본적이 없다. (41) 가난은 가난과 어울려 다니며 또 다른 가난을 불러와 친구가 되고, 부는 부와 어울리며 또 다른 풍요를 불러오는 것 같다. (42) 빚 있는 자의 건강을 염려하는 사람은 혈육보다 오히려 채권자가 아닐까? (44) 이 죽음을 순수한 자살로 받아들여야 할까? 목숨을 끊은 것은 분명 자신이겠지만, 이 도시에서 전기를 끊는 행위는 결국 죽어서 해결하라는 무언의 권유 타살은 아닐까? 체납요금을 회수하기 위해 마침내 전기를 끊는 방법, 정녕 국가는 유지와 번영을 위해 그런 시스템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가? (46)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그리고 가난해지면 더욱 외로워지는 듯하다. 가난과 외로움은 사이좋은 오랜 벗처럼 어깨를 맞대고 함께 이 세계를 순례하는 것 같다. (47) 그의 쓰레기를 대신해서 치우는 것 같지만 사실은 내 삶에 산적한 보이지 않는 쓰레기를 치우는 것 같다. 내 부단한 하루하루의 인생은 결국 쓰레기를 치우기 위한 것인가? (66) 이곳을 치우며 우연히 알게 된 당신의 이름과 출신 학교, 직장, 생년월일이 다 무슨 의미가 있는지요? 그것은 당신에 대한 어떤 진실도 말해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집을 치우면서 한 가지 뚜렷하게 알게 된 것이 있다면 당신

헐버트 -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Image
헐버트는 1863년 1월 26일에 미국 버몬트 뉴헤이븐에서 칼빈 헐버트와 메리 우드워드 사이에서 3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헐버트의 아버지는 미들베리대학의 총장으로 회중교회 목사를 담임하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다트머스대학 창립자의 증손녀였습니다. 외가에서 세운 대학을 졸업한 헐버트는 성직자가 되려고 유니언 신학대학에 입학했습니다. 조선은 근대적 신식학교인 육영공원을 설립하기로 하고 미국 측에 교사 3명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헐버트에게 제안이 가자 즉시 수락했습니다. 헐버트와 벙커, 아내를 동반한 길모어는 1886년 7월 5일에 제물포항에 도착했습니다. 23살의 청년 헐버트가 조선에 첫발을 내디뎠습니다. 열악한 환경임에도 육영공원 育英公院 을 개교했습니다. 강의는 대부분 영어로 했습니다. 헐버트는 도착한 지 열흘만인 1886년 7월 중순부터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교사로 활동하며 1890년에 최초의 한글 교과서인 《 사민필지 士民必知 》를 펴냈습니다. 재계약이 되지 않자 1891년 12월에 미국으로 귀환했습니다. 능숙한 한국어 실력으로 고종의 신임을 받았지만, 역으로 관리들의 방해와 불화로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육영공원은 1895년 4월에 문을 닫았습니다. 2년 뒤인 1893년 10월 1일, 감리교 선교사 신분으로 다시 한국을 찾았습니다. 선교사를 제안받았을 무렵 버나드대학 총장 자리를 제안받았지만 포기하고 한국행을 선택했습니다. 헐버트는 삼문출판사 책임자가 되어 1897년까지 운영하며 〈 독립신문 〉 제작에도 참여했습니다. 영문판은 기사 작성과 편집인 역할을 도맡아 했습니다. 배재학당, 한성사범학교에 이어 관립중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등 대부분의 시간을 교육활동에 쏟았습니다. 명성황후시해사건 직후에는 언더우드, 에비슨 등과 함께 고종의 침전에서 권총을 품고 불침번을 서기도 했습니다. 1903년에 헐버트는 조선왕조를 다룬 최초의 역사서 《대동기년 大東紀年 》을 상해에서 윤기진의 도움으로 한문으로 출간했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Image
현재 한국의 상황을 보면 찰스 디킨스가 쓴 소설 《두 도시 이야기 A Tale of Two Cities 》의 유명한 도입부가 절로 생각난다. (...) 한국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보이고 있지만, 광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의 업무 강도로 악명이 높다. 그곳은 통제할 수 없는 천국인 동시에 고독함과 절망의 지옥이며, 물질적인 풍요가 넘치지만 황량한 곳이고, 고대의 전통을 간직한 동시에 세계 최고의 자살률을 기록한 나라다. 이 극단적인 모호함은 현대사회 역사상 최고의 성공 신화로 손꼽히는 한국의 이미지를 뒤흔든다. 성공은 맞지만, 과연 성공일까? (33) 오늘날의 진정한 보수는 전 세계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과 교착상태를 십분 인정하고, 단순한 성장에 반대하며, 발전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에 귀를 기울인다. 이런 점에서 극단적인 좌파가 오늘날의 진정한 보수주의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상황이 나빠서'가 아니라 기대가 어긋나기 때문에 반발한다. (37) 브란트 전 총리는 공산권의 붕괴를 용납한 고르바초프를 용서할 수 없었다고 한다. 마음속으로 소련의 공산주의를 믿었기 때문이 아니라, 공산권이 붕괴하면 서구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가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브란트는 자본주의 시스템은 대안적인 시스템 및 근로자의 권익을 약속하는 다른 생산 체계의 심각한 위협이 있어야만 근로자와 빈곤층에 상당한 배려를 제공한다고 생각했다. 자본주의가 정당성을 얻기 위해서는 근로자와 빈곤층에게 더 맞는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대안이 사라질 경우, 복지국가의 해체도 가능하다. (66) 사회 전반에 걸쳐서 사람들이 함께 힘을 모아서 권력의 시스템에 저항하지만, 이는 곧 정당성을 잃는다. 전 세계 어느 곳이나 비슷한 일이 일어나서 TV로 보도가 되지만, 놀라운 단결이 보여주는 마법의 순간은 곧 끝이 난다. 약속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결국 독재가 개입한다. 즉, 상상의 단결인 셈이다. 서로 다르고 상충하는 이해관계

공유지의 약탈

Image
공유지란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모든 자연자원-토지, 숲, 황야와 공원, 물, 광물, 공기 등을 포함해서-과 우리 조상들이 물려주었고 우리가 보존하고 개선해야 하는 모든 사회적·시민적·문화적 제도를 말한다. 또한 수세기에 걸쳐 구성된 사상과 정보의 체계 위에 건설된 사회로서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지식을 포함한다. (15) 자연의 쇠퇴는 존중의 쇠퇴를 반영한다. (20) '공유지'(common)는 초기 영어의 '공동체'(commune)에서 왔으며, 일반적이거나 보편적이거나 함께 쓰고 있는 어떤 것을 의미했다.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옛날 동사 'to common'과 이와 연관된 '공유화'(commoning)는 공유지에서 벌어지는 집단적 노동활동을 말한다. (60) 개릿 하딘의 "공유지의 비극"이 근본적으로 공유지의 본질을 잘못 이해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공유한 자원을 관리하기 위해 합의한 규칙과 실천이 공유지의 본질이다. 하딘은 그 유명한 1968년 논문에서 모든 이용자가 공유지에서 가져갈 수 있는 것을 최대화하려는 유인이 있기 때문에 공유지는 고갈될 운명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사영화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를 이용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언제나 논박당했다. 사실 하딘은 죽기 얼만 전에 자신의 논문을 "관리되지 않은 공유지의 비극"으로 불렀어야 한다고 고백했다. (65) 공유지는 공적 부(public wealth)이다. 그러나 공유지에는 가격이 없다. 신자유주의자들에게 이것은 공유지가 가치가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공유지는 상업적 이해관계자들이 공짜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자원은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사용될 때(고갈될 때)에만 가치를 가진다. 이것이 전통적인 경제학에서 정의하는 성장이다. 공유지의 상실은 계산에 넣지 않는다. (80) 사회적 기억-공유된 과거, 전통, 관습의 기억-은

친애하는 나의 민원인

Image
애초에 이 풀도 요 풀도 아니었던 제3의 풀, 그 무고한 희생은 얼마도 되는지 확인해보지는 못했다. 다만, 초여름의 햇살 아래서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왠지 조금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단호함과 성실함을 탑재한 법조인들이 무언가에 대해 확고한 기준을 갖는다는 것이 어쩌면 우리도 모르는 새 어떤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 그것은 무서운 일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어느새 말끔하게 정리된 잔디밭을 돌아보았던 생각이 난다. 어찌 되었든 잔디밭은 모두 정리되었다. (23) 열심히 한다는 것은 그저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이 아니라 뜨겁게 한다는 뜻이다. (62) 재판을 받는 누군가와 함께 운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형사 법정에서 펼쳐내는 생의 어떤 비극적 단면에 대해 함께 공감하고 진동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멋진 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67) 상상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가늠할 수 없으므로 속수무책인 것이 법조인들이었다. 법조인들은 그들이 상정할 수 있는 세계에 대해서만 무게를 달 수 있는 저울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100) 변이하는 과정에 있는 존재는 물컹하다가 딱딱해지고 예민하다가 부드러우며 자기도 자기가 뭐가 되는 것인지 몰라 불안한 존재다. 그 변이의 과정에서 나의 민원인들은 끊임없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제기하며 나와 함께했다. 어떤 날은 화를 내고 어떤 날은 그들을 달래면서 실은 나도 위로받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의 모든 요구에 답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답이 아니라 다만 관계로서만 존재하는 요구도 어딘가에는 있다는 사실, 우리는 서로 답답하고 복장 터지는 관계였지만 어쩌면 그 시절 서로의 안부를 궁금해하는 유일한 벗이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15년쯤 지난 어느 날 해보는 것이다. (124) 과거에는 그래도 범죄를 저지르기 위해서는 모종의 기술이나 재능이 필요했다. 사기를 치려는 자는 남들보다 빼어난 말발이나 연기력이 필요했고, 절도를 하려고 해도 담을 넘거나

창백한 푸른 점

Image
〈창백한 푸른 점〉은 1990년 2월에 태양계 외곽에 도달한 우주탐사선 보이저 1호의 카메라가 포착한 지구의 모습이다. 이 외롭고 볼품없는 지구의 모습은 거기에 사는 우리 인간이 우주 안에서 차지하는 자리를 알려주고 있다. 또 한편으로 그것은 우주 안에서 다른 수많은 〈창백한 푸른 점〉들, 그곳에서 살고 있을 다른 수많은 인류(지성을 가진 생물)들의 존재를 암시하는지도 모른다. (7) 우리는 애초부터 방랑자였다. (11) 보이저 계획은 토성을 만날 때까지만 추진하도록 되어 있었다. 나는 토성을 지나간 후에 마지막으로 지구 쪽으로 되돌아 보도록 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느꼈다. 토성의 거리에서 보면 지구는 너무 작아서 보이저는 그것을 자세히 식별할 수 없을 것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 지구는 하나의 빛나는 점, 보이저가 볼 수 있는 다른 많은 점들(가까이 있는 행성들과 멀리 있는 태양들(별들))과 분간하기 어려운 외로운 한 개 픽셀에 지나지 않을 터이다. 그러나 이렇게 나타난 우리 세계의 보잘것없는 모습이야말로 이 사진의 가치를 높일 까닭이 되는 것이다. (22) 현대 과학은 미지의 영역으로 향하는 항해로서 들르는 곳마다 겸허의 교훈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선객들은 오히려 집에 머물기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41) 다른 행성계의 존재에 관해서는 증거의 부재가 곧 부재의 증거처럼 여겨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나는 놀라운 한편 실망하고 말았다. (45) 우리는 인간이 우주의 중심무대에 선다는 명제가 철두철미 거듭되어 사실과 어긋나리라고는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논쟁의 대세는 결정적으로 하나의 입장으로 기울어졌다. 매우 유감스럽게도 그 입장은 다음의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우리는 우주의 드라마 속에서 주인공이 아니다.〉 아마도 다른 세계의 생명이 주인공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주인공이 없을 수도 있다. 그 어느 경우든, 우리가 겸허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57) 우리 자신의 이익이나 편의를 위해 우리는 지구를 얼마나 많이 변모시켰던

주기율표

Image
주기율표는 지구 만물의 자연스러운 질서를 반영한 체계이고, 지금 우리가 아는 한계 내에서 하는 말이지만, 아마도 더 나아가 온 우주의 질서를 반영한 체계일 것이다. (10) 19세기에 이루어진 대부분의 과학적 발견들과는 달리, 주기율표는 20세기와 21세기의 발견들로 인해 반박되지 않았다. 그렇기는커녕 특히 현대 물리학의 발견들은 과학자들이 주기율표를 더 가다듬고 그때까지 남아 있던 몇몇 변칙적 사실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어쨌든 주기율표의 전반적인 형태와 타당성은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으며, 이 사실은 이 지식 체계의 놀라운 힘과 깊이를 증명하는 또하나의 증거다. (11) 주기율이란 규칙적이지만 가끔 크기가 다라지는 일정 간격에 따라 화학원소들의 성질이 거의 비슷하게 반복된다는 법칙이다. (41) 주기율표는 현대 과학을 통틀어 가장 효과적이고 통합적인 개념 중 하나로 당당히 자리매김한다. 아마 다윈이 제안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 이론과도 비견할 만한 수준일 것이다. 주기율표는 150년 가까이 수많은 연구자들의 작업을 통해 꾸준히 진화해왔으면서도 여태 화학이라는 학문의 핵심으로 남아 있다. (55) 화학적 주기성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프랑스 지질학자 알렉상드르 에밀 브귀에르 드 샹쿠르투아였다. 그가 한 일은 금속 원통 표면에 나선을 긋고 그 선 위에 원소들을 원자량 오름차순으로 배열한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했더니 화학적으로 유사한 원소들이 원통을 감아도는 나선과 교차하는 하나의 수직선 위에 놓인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79) 드미트리 이바노비치 멘델레예프는 현대 러시아 과학자 중에서 단연코 가장 유명한 인물이다. 그는 주기율표를 발견했을 뿐 아니라 그 체계가 주기율이라는 근본적인 자연 법칙의 존재를 암시한다는 사실도 이해했다. 그는 또 이 법칙의 온전한 의미를 끌어내는 데 긴 시간을 더 들였는데, 특히 주목할만한 작업은 많은 새 원소들의 존재와 성질을 예측한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이미 알려진 원소들 중에서도 몇 종의 원자량을 정확하게 수정했고

어스테크, 지구가 허락할 때까지

Image
비닐봉투가 처음 나왔을 때는 가볍고 오래 쓸 수 있던 신소재 혁신상품이었다. 나무를 쓰지 않아 친환경적이라며 열광했다. 코끼리 상아로 만들던 당구공을 대체하려고 플라스틱을 만들었다. '동물과 식물을 보호하고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플라스틱이 이제는 동식물은 물론이요, 사람에게까지 치명적인 위해를 가하는 역설(93)'이 되었다. '육류에 대한 열렬한 선호 탓에 현재 600억 마리가 넘는 동물이 사육되고 있으며, 그 동물들을 위한 식량과 목초지 확보에 농지의 거의 절반이 할애되고 있다(25)'. '2050년이면 지구에 100억 명이 살고 있을 것이고, 고기의 수요는 지금보다 70퍼센트가 늘어날 것으로 추정(33)'된다. 지금처럼 동물성 단백질 생산시스템이 유지된다면 인간의 미래는 암울할 것이다. '굳이 2020년을 지구사의 한 변곡점으로 획정한다면 그것은 2020년이 인공물의 무게가 자연물의 무게를 넘어선 첫 번째 해라는 점일 것이다. 인류가 생산하거나 건설한 인공물의 무게가 1.1테라 톤에 이르렀다고 한다. 듣보 보도 못한 '1테라 톤'은 1조 톤을 일컫는다. 그간 인류가 만들어 낸 사물의 무게가 1조 1천억 톤에 육박한 것이다. 자연적 진화의 소산으로 지구에 번성하고 있는 생물의 총 무게는 1테라 톤에 그친다. (...) 인공물의 무게는 21세기, 지난 20년 동안 두 배로 증가했다. 백 년 전, 20세기 초반에는 인공물의 무게가 자연 생명체의 고작 3퍼센트에 그칠 뿐이었다. 불과 한 세기 만에 사물과 생물의 비중이 역전된 것이다(88)'. '태양 에너지가 지구까지 닿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8분이다. 단 15분간 내리쬐는 태양 에너지가 전 세계 모든 사람이 1년 동안 소비하는 에너지보다 더 많다. 매일 지구로 보내지는 태양 에너지와 같은 양의 에너지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대형 화력 발전소 1억 7,300만 개가 필요하다(144)'. '자연을 보

1950 한국전쟁 70주년 사진집

Image
생필품만 챙겨 어디론가 떠나는 피난민 가족. 대부분의 성인 남자는 남한이나 북한 어느 한쪽으로부터 징집을 당했고, 이는 피난민들의 고통과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켰다. 깍지 낀 두 손으로 막내를 끌어안은 아이의 시선이 애처롭다. 한 소년이 추락한 북한 전투기의 잔해 위에 올라 손을 흔들고 있다. 한국전에 참전한 한국군 병사는 60만 명에 달하는데, 이들 중 13만 7899명이 전사했고, 45만 742명이 부상을 당했다. 7월 1일 최초의 미군 부대가 부산에 상륙한 이래로 총 178만 9,000명의 병력이 한국전에 파병되는데, 이 중 3만 6940명이 전사, 9만 2134명이 부상, 3737명이 실종, 4439명이 포로가 된다. 유엔연합군으로 참전한 국가는 미국과 영국, 캐나다, 터키, 호주, 필리핀, 태국, 네덜란드, 콜롬비아, 그리스, 뉴질랜드, 에티오피아, 벨기에, 프랑스, 남아프리카공화국, 룩셈부르크다. 한국전쟁 동안 10만여 명의 아이들이 고아가 되었는데, 그들을 돌보는 데 필요한 물자나 시설은 거의 없었다. 1951년 7월 초 개성에서 정전 협상을 시작하고, 그 후 장소를 판문점으로 옮겨 2년여 동안 무려 159차례의 본회의와 500여 회를 넘는 소위원회를 연다. 남대문시장의 여인들. 광주리를 머리에 이고 있다. 문산역에서 (좌)존 리치 (우)NBC 어빙 레바인 존 리치(John Rich 19170805~20140409) 종군기자는 '이 사진을 보는 독자들이 한국전쟁을 과거의 역사로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이 사진들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그것을 겪어야 했던 사람들의 희생과 아픔, 그리고 강인한 소생의 의지를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한다. 1950 한국전쟁 70주년 사진집/존 리치/서울셀렉션 20200615 320쪽 20,000원

혐오사회

Image
그는 피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이다. 유령도, 영화 속 등장인물도 아니다. 공간을 차지하고 있고, 그림자가 생기며, 길을 막아설 수도, 시야를 가릴 수도 있는 육체를 지닌 존재. (31) 무슬림에 대해서는 이중적 관용이 적용되는데, 이는 흔히 무슬림들이 여기에 사는 것은 괜찮지만 이슬람교를 종교로 갖는 것은 탐탁지 않다는 식의 사고방식이다. 그러고 보면 종교의 자유란 꼭 집어 기독교에게만 인정되는 개념인 모양이다. (21) 요즘에는 적대감을 과시적으로 표출하는 행위에 이른바 공적인 의미, 심지어 정치적 의미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데, 이에 편승해 내면의 모든 천박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결코 문명인이라 할 수 없다. (22) 혐오와 증오는 느닷없이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훈련되고 양성된다. 그것을 자발적이거나 개인적인 것으로 해석하는 모든 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그 감정들이 계속 양성되는 일에 기여하는 셈이다. (23) 증오의 표적이 되거나 목격자가 되면 우리는 대개 간담이 서늘해져 입을 다물어버리기 일쑤이고, 쉽게 겁먹고 기가 죽거나, 포악함과 공포에 대처할 방법을 몰라 자신이 무방비 상태라고 느껴 마비된 것 같은 상태가 되어 공포 앞에서 입도 뻥긋하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바로 그런 것이 증오가 가진 힘이다. (24) 증오와 폭력을 고찰할 때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도 함께 고찰해야 한다. 이 말은 증오와 폭력이 번성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전 정당화와 사후 동의의 과정을 가시적으로 드러내 보인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사례들에서 증오나 폭력에 자양분을 공급한다는 다양한 원천을 고찰한다는 것은, 증오는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며 엄연한 사실에 근거한다는 잘못된 통념에 맞서는 일이다. 그 통념은 증오가 마치 존경심처럼 자연스럽게 솟아나는 진짜 감정이라고 우긴다. 그러나 증오는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만들어지는 것이다. 폭력 또한 단순히 거기에 있는 게 아니다. 준비되는 것이다. 증오와 폭력이 어

타워

Image
647층, 인구 50만 명, 높이는 대략 2킬로미터, 「잭과 콩나무((Jack and the beanstalk)」 이야기에 나오는 거대한 콩 줄기에서 따온 빈스토크라는 타워형 도시국가는 바벨탑을 연상시키지만 정작 입주민들은 그 별명을 죽어도 싫어한다. 주변국 사람들은 빈스토크를 암세포로 생각한다. 빈스토크 22층에 국경층이 그어져 있을 뿐 비인간적이고 무분별하게 상업화된 부분이 모두 빈스토크에 몰려 있기 때문이다. 빈스토크는 원래 국가가 아니라 건물일 뿐이었지만 65년 전 국가로 인정받았다. 주변국과 버스로 겨우 20분 거리에 있지만 비자 발급이 깐깐하다. 건물 전체가 주변국 영토에 얹혀 있는 주제에 주변국 사람들에게조차 비자 면제 혜택을 주지 않을 정도이다. 주변국 사람들은 빈스토크를 바벨탑이라고 비웃지만, 그 바벨탑에 입성하고 싶은 이들 만큼 바벨탑을 노리는 적들도 많다. 27층에 있는 미세권력연구소에서는 부정한 화폐로 활용되는 술을 통해 권력장(權力場)을 연구한다. 권력에 따라 술이 흐르고 모이는 것을 추적하여 권력이 집중되는 정도를 3차원 권력 분포 영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술병이 흘러 들어가기만 하고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 권력자이거나 술꾼, 둘 중 하나다. 그런데 487층 A57 구역에 많은 술이 모였다가 다음 단계로 움직이지 않았다. 확인해 보니 집주인은 영화배우 P였다. 무슨 이유로 사람들은 술을 보냈을까? 술을 통해 본 권력장 얘기를 다룬 〈동원 박사 세 사람〉, 비정한 정치 논리와 인간적인 연대가 대치하는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 표현의 자유와 집회의 자유를 억압하자 변절(?)하여 자연주의 작가가 된 K의 사연을 다룬 〈자연 예찬〉, 빈스토크에만 있는 부자들 이념인 수직주의자와 가난한 사람들 이념인 수평주의자 사이에 얽힌 사연을 얘기하는 〈엘리베이터 기동 연습〉, 생불이 되려는 코끼리를 죽게 만드는 〈광장의 아미타불〉, 바벨탑을 붕괴시키려고 잠입하여 65년 전 건설 초기에 숨겨 둔 폭탄을 가동하는 〈샤리아에 부합하는〉 등 여섯

20 VS 80의 사회

Image
미국에서 상위 20퍼센트의 가구 소득(세전) 총합은 1979년에서 2013년 사이에 4조 달러 증가했다. 같은 기간 하위 80퍼센트의 소득 총합은 3조 달러가 약간 넘게 증가했다. 하위 20퍼센트와 중위 20퍼센트 사이의 격차는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사실 하위 80퍼센트 사이에서는 불평등이 증가하지 않았다. 불평등은 모두 그 80퍼센트 선을 기점으로, 혹은 그 위쪽으로 벌어졌다. (20) 미국은 빈곤이 끈질기게 사라지지 않는 나라이면서 극단적인 부자들이 존재하는 나라다. 그런데 여기에 빠진 이야기가 있다. 맨 꼭대기 1퍼센트의 바로 아래에 있는 19퍼센트와 그 아래 80퍼센트 사이 경제적 분리가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경제적 분리의 정도는 최상류층으로 갈수록 심하고, 특히 상위 1퍼센트에서 가장 크다. (...) 상위 20퍼센트와 나머지 80퍼센트 사이의 격차는 미국의 경제와 사회 모두에서 드러나는 '대격차(Great Divide)'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43) 노벨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제임스 헤크먼은 부모 잘못 만나는 것을 "가장 큰 시장 실패"라고 불렀다. 중상류증 가정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 '시장 실패'를 성공적으로 피한 셈이다. (53) 철학자 애덤 스위프트는 "어떤 부모를 갖게 될지는 전적으로 운이지만 어떤 자녀를 갖게 될지는 그렇지 않다"라고 말했다. 중상류층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대체로 성공적인 삶을 영위한다. 그 결과 소득 상위 계층에 새데 간 경직성이 생긴다. 중상류층 지위사 사실상 세습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위쪽의 경직성이 바닥 쪽보다 심하다. (65) 우리는 부모(parent)라는 명사가 동사로도 쓰이게 만드는 첫 번째 계급이다. 이제 우리는 '부모이다'라고 말하기보다 '부모 한다'라고 말해야 할 듯하다. (69) 부모의 높은 학력과 높은 소득, 두 가지 모두 자녀가 커서 높은 학력과 높은 소득을 갖게 될 가능성을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Image
'모든 과학 탐사가 끝난 후에야 고향을 잠시 돌아보는 위험한 응시가 허락되었다. 너무 멀어지기 직전에 건진 사진 속 단 하나의 픽셀에, 지구라는 '창백한 푸른 점'이 찍혔다(153)'. 1977년 9월 5일 지구를 떠난 보이저 1호가 1990년 2월 14일 오전 4시 48분, 약 64억㎞ 떨어진 곳에서 마지막으로 고개를 돌려 '창백한 푸른 점'을 찍는 장면을 상상하니 찡해집니다. 지금 보이저 1호는 지구에서 227억㎞ 떨어진 곳을 시속 6만㎞ 비행 중이라고 합니다. 팀을 옮겼다는 표현을 연구실의 경·위도 좌표가 바뀌었을 뿐이라고 하는 건 천문학자들의 농담인가요. 재미있습니다. 연구실에 밤늦게 있는 저자에게 당직자가 '그럼, 즐기세요!(74)'라고 인사를 한다거나, 일이 그렇게 많냐는 물음에 여기가 좋다고 답하는 모습이 좋습니다. 다만, 연구원들이 연구할 시간에 물건 영수증을 챙기는 일이 사소하지 않은 현실이 씁쓸합니다. '부모 노릇도 연구자 노릇도 절반쯤만(77)' 하게 만드는 여성이 겪는 차별이 과학계도 여전해 서글픕니다. '엄마가 일을 한다는 것. 이 짧은 문장 속에는 너무도 많은 한숨이 응어리져 있(105)'는 사회가 바삐 변했으면 좋겠습니다. '의심하는 것이 직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의 문제에도 다양한 각도에서 의심하고, 그 답을 구하려 애쓰며, 답을 찾은 뒤에도 과연 답이 하나뿐인지 또다른 측면에서의 답은 없는지 계속해서 의심하는 것, 그것이 과학자가 하는 일이며 해야 하는 일이다(96)'. '연구는 내가 인류의 대리자로서 행하는 것이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쓰는 것이다. 그러니 논문 속의 '우리'는 논문의 공저자들이 아니라 인류다. 달에 사람을 보낸 것도 미항공우주국의 연구원이나 미국의 납세자가 아니라, '우리' 인류인 것이다(265)'. 과학자의 본분을 새기는 말이지만 누군가도 다시

세계를 뒤흔든 침묵의 봄

Image
《침묵의 봄》은 생태학이란 말을 일상적인 용어로, 살충제란 말을 나쁜 단어로 자리잡게 만든 녹색 선언이다. (7) 파울 헤르만 뮐러는 1948년 "여러 절지동물에게 작용하는 접촉성 독성물질로 뛰어난 효과를 발휘하는 DDT를 발견한 공로로" 노벨 생리학 및 의학상을 수상했다. 노벨상 수상 이유는 DDT의 원래 개발 목적인 농작물 해충 박멸이 아닌 전쟁 기간과 그 후에 수많은 시민의 목숨을 구한 공로 때문이었다. (26) 미국에서 DDT 같은 합성 살충제의 생산량은 1947년에 5만 5800톤이었으나 1960년에는 28만 7천 톤으로 무려 다섯 배나 증가했다. (41) 카슨은 새들이 살충제에 직접 접촉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간접적인 경로로 죽는다고 설명했다. DDT로 오염된 낙엽을 먹는 지렁이의 몸 속에 DDT가 축적된다. 봄에 지렁이를 잡아먹는 새가 40여 종이나 되는데, 그중에 울새도 포함된다. 1958년 미시간 주립대학 본교 캠퍼스에서는 새끼울새가 단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 (64) 《침묵의 봄》이 장기적으로 미친 효과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이 책이 지금까지 나온 것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환경도서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계속해서 더 만은 살충제가 사용되고 있고, 살충제 매출액은 더 늘어나고 있으며, 《침묵의 봄》이 쓰여지던 시절보다 오늘날 더 많은 사람이 살충제 중독으로 죽어가고 있다. (124) 카슨이 사망할 당시 미국에서 사용된 '유효 성분'(실제로 벌레를 죽이는 화학물질)의 양은 27만 7천 톤이던 것이 1979년에는 51만 3천 톤으로 거의 두 배나 증가했다. 그 후로 전체 사용량은 약가 줄어들어 1999년에는 41만 톤으로 떨어졌지만, 1964년에 비하면 아직도 3분의 1이나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126) 농민과 일반 주민은 사용량이 최대치에 이르렀을 때보다는 살충제를 적게 사용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오늘날의 살충제는 훨씬 더 강력해졌고 값도 더 비싸졌다. (127) 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