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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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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에 필름도 끼우지 못하던 시절엔 미처 몰랐다. 취미로 사진을 배운다며 겨우 필름을 갈아 끼울 정도가 돼서야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해야 사진 한 장을 건지는지 비로소 알았다. 그 뒤로 사진 한 장을 보면 작가가 쏟은 노력을 어렴풋이 상상하기 시작했다. 두모악을 방문해서 김영갑 작가의 사진을 마주했을 때 제주의 바람을 보았다.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라 순간에 사라지는 최고로 황홀한 순간을 담으려고 수없이 찾아가서 기다린 고행이 보였다. 필름을 사고 나면 끼니를 걱정하는 처지에도 불구하고 뭍에서 온 수상한 사내는 쉼없이 섬을 걷고 오르며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순교했다. 1957년 부여에서 태어난 김영갑은 1985년 아예 섬에 눌러살며 제주의 순간, 삽시간의 황홀을 사진에 담았다. 루게릭병으로 6년을 투병하다 2005년 5월 29일 손수 만든 두모악에 잠들었다. 김영갑 갤러리 두모악에는 이십여 년 동안 모아둔 이야기가 있다. 다시 두모악에 가서 삽시간의 황홀을 보며 두려움 없이 기쁘게 떠난 그를 만나고 싶다. 이어도를 보고 싶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김영갑/휴먼앤북스 20040127 256쪽 11,000원

어느 책 수선가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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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된 국어대사전을 본 의뢰인이 어렸을 적 친구가 다시 돌아온 것 같다고 합니다. 동화책에 있는 낙서가 기억이고 추억이 되어 세상에서 단 한 권뿐인 책이 됩니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유품인 도안집을 수선하며 표지에 동백꽃을 넣었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떠난 자리에 책이 남아 있고 그 책이 수선을 필요로 한다면, 책 수선가로서의 나의 기술과 감각이 남은 이들의 저민 가슴을 감싸 안아줄 수 있는 온기가 되기를, 또 그 온기가 떠난 이와 남은 이의 추억을 더욱 아늑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되기를(83)' 바랬기 때문입니다. 새 책을 만드는 일도 그렇지만 책을 수선하는 일도 많은 단계를 거칩니다. 어떤 책은 49단계나 필요했습니다. 재영 책수선은 '옷 수선, 구두 수선처럼 우리의 일상과 주변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것(184)'이 작지만 큰 욕심입니다. 천자문을 써 내려간 할아버지의 '마음이 살아갈 책의 집의 짓는 것, 어떤 풍경을 가진 집으로 만들지 종이와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상상하고 손에 잡히는 책을 만들어내는 일(203)'을 합니다. 평생을 함께하고 아낄 책이라면 정성을 담아 주인과 닮은 반려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수선을 의뢰한 책에서 나오는 오래된 봉투를 조심스럽게 수선하는 것은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씹다 버린 껌을 싸놓은 이 포장지도 어찌어찌 운이 좋게 살아남아 수 세기가 지난 후 미래의 어느 지류보존가로부터 몇 년 경의 어느 회사의 껌 포장지인지 분석당하며 조심조심 수선을 받을지도(234)' 모르기 때문입니다. 책 수선가는 망가진 책의 기억을 관찰하고, 파손된 책의 형태와 의미를 수집합니다. 책 수선가는 훼손된 부분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관찰하며 축적된 시간의 흔적에 매료됩니다. '종이책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고 책 수선가는 점점 더 많아져서 훨씬 더 많은 책들이 오랫동안 튼튼한 기억을 가질 수 있게 되면 좋(327)'겠습니다. 이 책이 출간된다는 저자의 트윗을 보고

지금 물 올리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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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가 키운 지은이가 라면을 끓이려고 물을 올리러 갑니다. 세상 음식을 라면과 라면이 아닌 음식으로 간단하게 분류합니다. '라면은 먹고 싶은 어떤 음식을 대체해서 가성비로 먹는 그런 카테고리의 음식이 아니'라 '오직 라면이라서 먹는 것(38)'이라며 단호합니다. '봉지라면을 이기는 유일한 음식'은 컵라면이라고 합니다. '봉지라면이 없을 때 아쉬운 대로 컵라면을 먹을 순 있어도 컵라면이 먹고 싶은 순간 봉지라면을 먹는 건 불가능(41)'하기 때문입니다. 반박할 수 없는 논리입니다. '면이 먼저인가 수프가 먼저인가는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에 맞먹는 난제(103)'이지만 결국 취향의 문제이니 알아서 하면 됩니다. 라면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물의 양과 끓이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물은 조리법보다 조금 적게 넣고 끓이다 부족하다 싶으면 끓인 물을 적당히 추가하면 됩니다. 끓이는 시간은 '끓이고 또 끓이다 보면 그 순간을 정확히 감지할 수 있는 있'게 됩니다.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의 앞문 위치를 예측해 정확히 맞추어 서 있(127)'는 기술과 비슷합니다. 라면은 커피와 술을 만나기 훨씬 전에 경험하는 '1차 어른의 맛'이라고 합니다. 인간은 '영양가는 없지만 맛은 있고, 크게 몸에 해로운 건 아니지만 지나치게 자주 먹어서 좋을 건 없는, 그런 음식도 먹으면서(149)' 자랍니다. MSG의 맛을 모른 채 살아갈 수 없으니까요. 라면은 '씁쓸하지만 달콤하고, 시큼하면서도 새콤하고, 짜다가도 싱겁고, 그렇게 알고 있던, 또 몰랐던 맛(151)'을 느끼는 어른의 맛입니다. 냄비가 없어 커피포트에 라면을 끓여 먹기도 하고, 컵라면을 끓여 먹으면 더 맛있다는 사실을 아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다 만사가 귀찮아지면 찬물에 면과 수프를 한꺼번에 때려 넣고 끓여 먹습니다. 김치와 단무지도 필요 없고 오로지 라면만 먹는 걸 최고로

전태일은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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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의 사진이 든 액자가 쓰레기통에 버려졌다.(공광규의 시) 왜 그랬을까? 그는 왜 이름뿐인 존재가 되었을까? 그동안 그의 이름 아래에서 무슨 짓들 하고 있었던 걸까? 그는 더 이상 꿈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에게 영광을 주지도 않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그는 우리에게 권력을 약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권력이라는 것은 눈을 씻고 봐도 없기 때문이다. 권력을 좆는 이들에게 전태일이 왜 필요할까. 필요할 때 그를 부르지만 돌아서면 초라한 그를 거두어버린다.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한 것이 노동자의 기득권이다. 가장 구역질나는 짓이 노동자의 권력 행세다. 이제 쓰레기통에 버려진 ‘강령’을 누가 다시 꺼내들까? 구겨지고 개똥이 묻은 강령을. 그 이름만으로도 완성된 강령인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펼쳐든다 시여, 오염된 광장이여, 광장마저 권력의 놀이터가 된 시대여, 시여, 그의 이름을 광야에 불러내어라. 노동자의 광장은 광야여야 한다. - 백무산 전태일은 살아 있다/백무산, 맹문재 엮음/푸른사상 20201217 128쪽 10,000원 전태일 열사 사진이 들어 있는 액자를 쓰레기 더미에서 본 적이 있다 1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시퍼렇게 젊은 문장으로 살아 있다 2 멈추지 말라 소리없이 잠들지 말라 너의 이름을 폐허 속에 파묻지 말라 3 오빠는 근로기준법을 복음처럼 받아 안고 하루 16시간 미싱을 돌리는 여공들에게 전하려 노동청으로, 노동감독관과 대통령에게까지 뜨거운 진정서를 넣었건만 결코 거들떠보지 않던 그들, 나는 그들 머리맡에다 밤마다 먼지 뭉탱이와 객혈을 쏟아부을 거예요 4 뼈를 녹이는 용광로 밖의 어머니, 크레인 밑의 어머니, 발전소 밖의 어머니, 안전하지 않은 공장 밖의 어머니, 그리고 먼 이역(異域)에서 자식을 기다리는 어머니들 5 노동자의 노동이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고 지구를 돌리는 힘이다. 6 노동은 땀의 대가를 담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50년 전 불살라진

산업 대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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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데믹으로 발생한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상황이 매우 유동적임에도 불구하고, 전개 방향을 예측하고 효과적인 대응 전략을 짜야 하는 이유다. (...) 4차 산업혁명의 빠른 진전,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국과 중국의 마찰, 코로나로 드러난 세계화의 한계 세 가지가 최근의 주요 글로벌 이슈라고 할 수 있다. 세 가지 흐름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이들 간 상호 작용의 결과에 따라 새로운 세계 질서의 모습이 달라질 것이다. (12) 자동화는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우려로 생산 현장의 반발이 심해 빠르게 진행하기 어려웠던 분야다. 그동안 4차 산업혁명의 진행을 암묵적으로 더디게 한 요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코로나19로 긴박한 상황이 조성됐다. 감염자가 발생할 경우 감염이 확산되고 작업장이 폐쇄될 리스크가 생겼다. 자동화에 대한 반대, 디지털화 추진에 대한 기업 내부의 거부감 등도 많이 줄어들었다. (15) 세계화의 기반 위에 4차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해 가던 와중에 코로나 팬데믹이 터져 세계 경제가 순식간에 거의 붕괴되는 혼란에 빠짐으로써 또 한 번 세계화의 약점이 드러나고 있다. (18) 각국 산업의 생산을 동시에 중단시킨 GVC 1 의 붕괴는 단순한 가치 사슬의 마비가 아니다. 1차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 유지돼 온 원가(가격) 절감 중심의 산업 체계가 붕괴되고 외부 환경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회복력이 강한 새로운 체계로의 전환을 시사한다. (20) 기후 변화에 대한 인식 변화도 GVC 재편에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 가격이나 이익을 중시하는 기존의 효율성 중심에서 외부 충격으로부터 회복하는 능력, 보건을 포함한 사회 안전 확보, 지속 가능한 발전에 대한 기여 등 새로운 가치에 주목하는 생산 체제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28) 세계화의 방향을 바꾸거나 되돌리는 탈세계화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세계화를 벗어나려면, 세계가 그동안 누려 온 혜택을 버

더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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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럭 운전사로 일하다 금속 컨테이너를 발명해 이 세상의 모습을 완전히 바꾼 말콤 맥린 Malcom Mclean 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2) 1956년 4월 26일이었다. 크레인이 뉴저지주 뉴어크항에 정박한 낡은 유조선 아이디얼엑스호에 알루미늄 소재로 된 트럭 바디 58개를 실었다. 5일 뒤 배는 휴스턴항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대기하던 58대의 트럭은 금속 상자를 하나씩 나눠 싣고 목적지로 향했다. 혁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36) 컨테이너는 적은 비용을 들이면서 동시에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최소화해 상품을 어디에서든, 그리고 어디까지든 운송하는 고도로 자동화된 시스템의 핵심이다. 컨테이너는 운송비를 줄였고, 그럼으로써 세계 경제의 틀을 바꾸었다. (37) 말레이시아의 공장 정문에서 오하이오에 있는 물류 창고 정문까지 1만 7,700킬로미터의 거리를 이동하는 데 28일밖에 걸리지 않는다. 하루에 약 640킬로미터를 가는 속도다. 그런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라고 해봐야, 같은 거리를 비즈니스클래스 좌석으로 비행 여행할 때의 편도 티켓 한 장보다 적게 든다. (45) 더보기... "상품 운송이 생산 과정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화물 운송에는 거의 비용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 유익하다." 컨테이너가 등장하기 전에는 불가능한 발상이었다. (48) 1959년에 두 분석가는, 부두 소유권자에게 지급하는 톤당 수수료까지 포함하면, "대양을 건너 상품을 운송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의 60~75퍼센트는 항해할 때가 아니라 부두에 정박해 있을 때 발생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화물을 사람이 일일이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니 짐을 싣고 내리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줄이기도, 부두나 배를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기도 쉽지 않았다. (67) 말콤 맥린의 통찰은 현대사회에서는 상식이지만 1950년대에는 매우 급진적이었다. 이 통찰은 운송 산업의 본질은 배를 항해하는 것이 아니라 화물을 이동시키는 것이라는 인

보이지 않는 잉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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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잉크는 이를 알아보는 독자가 발견하기 전까지 행간에 그리고 행의 안팎에 숨어 있는 것이다. '알아보는' 독자라고 하는 이유는 책에 따라서 모든 독자에게 맞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어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일지라도 그 책을 최선의 방식으로 혹은 알맞은 방식으로 사랑하지 못할 수 있다. 그 책에 '딱 들어맞는' 사람은 바로 보이지 않는 잉크에 민감한 사람이다. (19) 작가가 하는 일은 기억하는 것이다. 이 세상을 기억한다는 것은 창조한다는 것이다. 작가의 책임은 (시대가 어떻든) 세상을 바꾸는 일, 자신의 시대를 더 낫게 만드는 일이다. 그게 너무 야심에 차 보인다면, 세상에 대한 이해를 돕는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이해하는 방법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기 위한 일이다. 방법은 하나가 아니다. 20억 인구가 한 가지 방법으로만 세상을 이해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96)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규정하는 말들도 과거를 가리키는 접두사를 달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구조주의, 포스트식민시대, 포스트냉전 등등. 이 시대의 예언들은 일이 벌어지고 난 후에야 뒤를 돌아본다. (106) 나는 때 지난 관념이 되어버린 진보의 징후를 찾는 데는 관심이 없다. 진보는 단일한 공산주의 국가의 파괴된 미래와 함께 사라졌다. 자유롭고 무제한적이며 진보적인 자본주의의 벗겨진 가면과 함께 사라졌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고의적인 빈민화와 함께 사라졌다. 음경 중심적인 '국가주의'에 대한 믿음과 함께 사라졌다. 실상 독일이 첫 처형실을 가동했을 때 이미 사라진 뒤였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아파르트헤이트를 합법화하고 피를 흡수하기에는 너무 엷은 먼지 속에서 아이들에게 총을 난사했을 때 이미 사라진 뒤였다. 이웃 나라의 공동묘지 위로 국경을 그린 수많은 나라들의 역사 속에서 이미 사라진 뒤였다. 시민들의 뼈에서 흘러나온 영양분으로 정원과 초원을 비옥하게 했을 때, 여성들과 아이들의 등골 위로 건축물을 올렸을 때. 정

눈 떠보니 선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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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 최고의 후발추격국이었다. 한국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미친 속도로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았다.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를 물을 필요가 없었다. 언제나 베낄 것이 있었고, 선진국의 앞선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남은 질문은 단지 '어떻게'뿐이었다. 정답은 늘 '밖에서 주어지는' 것이었다. '왜'라고 물어본 적 없이 수십 년을 '어떻게'를 풀며 여기까지 왔다. (15) 선진국이 된다는 것은 '정의'를 내린다는 것이다. 앞보다 뒤에 훨씬 많은 나라가 있는 상태, 베낄 선례가 점점 줄어들 때 선진국이 된다. '세상의 변화가 이렇게 빠른데 어떻게 토론을 하는 데 2년이나 쓰나?'라는 생각이 떠올를 수 있다. 독일이 그렇게 2년여의 시간을 들여 낸 백서를, 화들짝 놀라서 교과서처럼 읽고 베낀 게 4년 전이다. 독일은 2년이나 시간을 들였지만, 우리보다 4년이 빨랐다. 긴 호흡으로 멀리 본 결과다. (21) 선진국이 되기까지 지독하게 달려왔다. 바람처럼 내달린 몸이 뒤쫓아오는 영혼을 기다려줄 때다. 해결해야 할 '문화지체'들이 언덕을 이루고 있다. 무턱대고 '어떻게 할까'를 고민하기 전에 '무엇'과 '왜'를 물어야 한다. 언제나 문제를 정의하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 (36) 인적 자본과 물적 자본에 더해, 한 사회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게 바로 '신뢰자본'이다. 선진국과 중진국을 가르는 결정적인 '절대반지'. 거의 대부분의 승객들을 아주 편리하게 하는 대신에, 발각된 무임승차자에게는 엄벌을 내림으로써 우리는 이 반지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다. (42) 문법은 태생적으로 '규칙으로서의 법'이라기보다는 '사후적 정리로서의 구분'이다. (...) 한글 문법도 마찬가지여서 엄격한 법이

이따위 불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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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불평등만 평등'하게 누리는 세상을 살고 있다. (6) 개인적 불평등은 사회적 불평등으로 확대되고, 사회적 불평등은 개인적 불평등을 낳는 또 다른 원인이 된다. (9) 가장 아픈 곳이 몸의 중심 (10) 피케티 교수는 '세습 자본주의'라는 한마디로 최근 전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불평등의 흐름을 정리한다. 자본주의가 지금처럼 진행되다가는 자본 소유의 집중도가 점점 더 높아져서 세습받지 않고서는 자산을 보유할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다. (22)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반 시민이 부를 축적하는 세 가지 경로는 소득, 자산, 복지인데 한국사회는 지금 이 세 가지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소득도 불평등하고 자산도 불평등한데 복지도 미비한 사회. 이런 사회에서 미래를 계획하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건 한갓 백일몽이거나 역겨운 기만일 뿐이다. (42) 이미 2차대전 이전부터 인류는 사회복지를 권리적 측면에서 인식해왔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가난은 가난한 이들의 운명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자본주의 시스템에서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점을 인정하기 시작했던 역사는 너무도 오래되었다. (50) 결국은, 불평등이다. 삶도 죽음도 그 질은 불평등에 기반한다. (67) 성적으로 등수를 매기면 반드시 꼴찌가 있기 마련인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실업자가 있을 수밖에 없다. 경제호황의 이면에는 이들의 희생과 사회적 몰락이 있는 것이다. 이들을 떠안지 못하는 사회는 아무리 분칠을 해도 야만적 사회일 뿐 문명사회가 아니다. (73) 한국 사회처럼 투쟁하는 이들에 대한 악랄한 탄압이 존재하는 나라도 드물다. 어쩌면 투쟁하는 이들만이 자본과 권력의 실체를 발가벗기기 때문은 아닐까. (83) 노동이란 이름만 다를 뿐 사실 인간을 뜻하며, 토지 또한 이름만 다를 뿐 사실 자연을 뜻한다. (85) '안전'의 자리에 '이윤'이 들어선 우리 사회의 민낯이 아프게 기록되어 있다. (10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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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하루는 다른 곳의 하루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살아낼 수 있는 시간이다. 서울의 일 제곱킬로미터는 다른 곳의 일 제곱킬로미터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고 있어 그만큼 더 빠른 속도로 옮겨 다녀야 겨우 버텨낼 수 있는 공간이다. (29) 상품을 살 수 있다는 것은 그 생존의 그물망 속에 들어왔다는 안도감을 가져다주며, 참으로 잔인한 일이지만 그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우월감도 가져다준다.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일정한 자격을 갖추어야 들어갈 수 있는 모든 형태의 네트워크에는 이러한 특성이 있다. 그 네트워크는 실제로 베풀어 주는 것 이상으로 네트워크 안에 들어와 있다는 느낌 자체를 통해 일종의 환상적 만족감이나 편익을 준다. 물신(fetish)이 발생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34) 일반적으로 '낮은' 질의 여가는 표준화되고 규격화된 대량 생산품을 소비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높은' 질의 여가는 표준화·규격화되지 않은 고객 맞춤형 제품을 소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49) 자본주의사회에서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나지' 않았다면 누구나 질 좋은 노동력을 만들어내고 그 질 좋음을 시장에서 인정받아야 먹고살 수 있다. (...) 노동력 재생산이 결국 점점 더 자본이 짜놓은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자본주의 발전의 논리이기도 하다. (51) 우리와 그들의 구별 짓기는 끊임없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이를테면 상대를 압도하는 '성전'의 하드웨어, 신자들의 사회적 지위, 함부로 진입할 수 없는 사회적 네트워크 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공간 구조는 고급 아파트나 쇼핑몰, 놀이동산, 심지어는 패키지여행의 그것과 닮아 있다. 디즈니랜드에는 미국이 없고 코엑스몰에는 서울이 없듯이, 교회에는 기독교가 없는 것이다. (133) 렌트의 기본적 형태인 임대료나 그것이 한국적으로 변형된 권리금은 강남이나 강북을 가릴 것 없이 지주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최후의 보루로

시인의 말 - 이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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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처형하라는 글이 쓰인 것도 모른 채 봉인된 밀서를 전하러 가는 '다윗의 편지'처럼 시를 쓴다는 것도 시의 빈소에 꽃 하나 바치며 조문하는 것과 같은 건지도 모른다. 22여 년 만에 그 조화들을 모아 불태운다. 내 영혼의 잿더미 위에 단테의 「신곡」 중 이런 구절이 새겨진다.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내 시집에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하나도 없다. 악의 평범성/이산하/창비 20210205 148쪽 9,000원 28살 무렵 '한라산 필화사건'으로 구속되었을 때 적의 심장부에 두번째 폭탄을 던지는 심정으로 항소이유서에 '김일성 장군의 노래' 가사를 썼다. 1 모난 돌과 바위에 부딪혀 다치는 것보다 같은 물에 생채기 나는 게 더 두려워 강물은 저토록 돌고 도는 것이다. 2 누구나 그렇듯 상처 준 것들보다 상처 받은 것들을 먼저 기억했다. 3 나를 찍어라. 그럼 난 네 도끼날에 향기를 묻혀주마. 4 우리 시대의 꿈은 90%가 자본의 덫이다. 5 죽은 자 여럿이 산 자 하나를 따라가고 있다. 6 범인은 객석에도 숨어 있고 우리집에도 숨어 있지만 가장 보이지 않는 범인은 내 안의 또다른 나이다. 7 악의 비범성이 없는 것이 악의 평범성이다. 우리의 혀는 여기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8 목숨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차별받는 세상이다. 9 촛불을 삼킨 스타 괴물들이 지상을 배회하고 있다. 10 낡은 것이 갔지만 새로운 것이 오지 않는 그 순간이 위기다. 11 그러니 심지 없는 촛불이 아무리 타올라도 우리의 비정규직 민주주의는 여전할 것이고 세상도 기극권자들을 위해 적당하게만 바뀔 것이다. 그래서 난 촛불이 타오를수록 더욱 슬프다. 12 자본주의는 한 사람이 대박이면 한 사람이 쪽박이고 신자유주의는 한 사람이 대박이면 열 사람이 쪽박이다. 13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문정인의 미래 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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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키신저 박사는) 미국의 전략을 서양장기(체스)에, 중국의 전략을 바둑에 비유했다. 미국은 체스를 두듯이 상대방의 왕(중국 공산당 정권)만 무너뜨리면 승리할 수 있다는 단기 속도전을 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조적으로 중국은 바둑처럼 장기적 포석에 따른 세 싸움을 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단기적 전투에서 지더라도 장기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목표라는 것이다. 서양 장기에서는 제로섬 형태의 승패가 분명하지만, 바둑에서는 공존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추론을 편다. (259) 국제정치의 대가이자 현실주의 이론의 창시자인 한스 모겐소 교수는 "2000년 이상 한반도의 운명은 한반도를 통제하는 패권국의 지배력이나 그 통제를 위해 경쟁하는 강대국들 간의 세력균형에 의해 결정됐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사실이 그러하다. 한반도는 오랫동안 중국 패권 아래 있다가 19세기 말~20세기 초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었고, 1905년 러일전쟁 이후 일본 패권 아래에서,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경쟁 속에서 분단의 비극을 맞았다. 그리고 미소 냉전 구도에서 한국은 패권국 미국의 세력권에 속했다. 강대국 결정론과 진영 외교의 불가피성은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나왔다. (285) 미중 신냉전 시대에 한국의 전략적 선택으로 5가지를 제시한다. ①미국과 같이 중국을 견제하자는 한미동맹 강화론 ②중국으로 선회해야 한다는 중국 편승론 ③독자적 핵 보유 또는 중립화 선언을 통한 홀로서기 ④미국과는 동맹, 중국과는 전략적 협력 동반자를 유지하는 현상 유지론 ⑤초월적 외교를 통해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진영 외교의 굴레에서 벗어나자는 초월적 외교. 우리가 선택할 슬기로운 외교는 무엇일까? 헨리 키신저가 2011년에 미국과 중국을 체스와 장기로 비유한 혜안은 절묘하다. 책은 각각 〈차이나는 클라스〉와 〈코로나19 이후, 대한민국 길을 묻다〉의 강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어려움 없이 술술 읽힌다. 성장도 양극화, 분배도 양극화, 외교도 양극화인 3K-양극화 시대

사당동 더하기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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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4월 22일. 철거 재개발이 지역 주민에 미친 영향에 관한 연구를 하려고 '30대 중반의 사회학자와 인류학자 그리고 현장 조사 조교 남녀 대학원생, 이렇게 4명이 현장(13)'에 진입한 날이다. 현장은 사당4구역 2공구 재개발 지역으로 남성시장 입구 왼쪽으로 난 사유지 길로 들어가 약 300m에 이르는 산비탈이다. 철거가 진행되고 몇 가족을 추적 조사하다가 영구 임대 아파트로 이주한 '금선 할머니' 가족을 2011년까지 25년 동안 집중하여 관찰한 기록이다. 사당동은 서울시가 1960년대 서울 도심의 재개발을 위해 충무로, 중구 양동, 영등포구 대방동 철거민을 강제 이주시키며 형성됐다. 1968년까지 약 4000명을 트럭으로 옮겨 정착시켰다. 그 후 '무작정 상경했거나 사업에 실패했거나, 무슨 이유든 싸게 살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이주(114)'하며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지역 주민들의 주거 공간은 '가옥의 대지는 분양 당시 가구당 10평씩이었기 때문에 중간에 옆집 대지를 사들여서 넓힌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모두 10평인데 이 10평에 대부분 방이 세 개 이상 들어앉아 있고 2층으로 올린 경우에는 방이 더 많았다. 자가인 집주인들에게 방을 들어앉히는 것은 곧 수입을 뜻했다. 이 지역의 한 가구가 사용하는 방의 수는 평균 1.6개다. 자기 소유 가구는 2.2개, 전세 가구는 1.5개, 월세 가구는 1.2개로서 세입자들일수록 적은 수의 방을 쓰고 있다. 방 수 에서만이 아니라 사용하는 방의 평수도 자기 소유 가구는 4.6평, 전세는 2.9평, 월세 가구는 1.8평으로 차이가 난다. 가구별 가족 수는 자가 소유 가구나 세입자 간에 차이가 없는데도 세입자들이 사용하는 방의 수효나 평수가 작은 것은 이들이 주거 공간을 줄여 생활비를 줄이고 있음을 보여 준다(115)'. '어떤 가구는 한 집에 열여덟 가구가 세 들어 사는데 집주인이 다른 사유지에 살고 있어

착취도시,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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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방과 서울 아파트의 평균 평당 월세 중 어느 곳이 더 비쌀까? 서울 전체 아파트의 평균 평당 월세는 3만 9400원인데 비해 쪽방의 평균 임대료는 18만 2550원이다. 쪽방 주민들은 4배가 넘는 임대료를 내면서도 난방, 취사, 세면은 물론 화장실도 갖추어지지 않은 주거공간에서 생활한다. '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되, 빈곤으로 벗어나는 데 기여하는 것이 아닌, 빈곤을 고착화하는 산업. 가뜩이나 돈 없고 오갈 데 없는 이들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마땅한 노력 없이 불로소득으로 폭리를 취하고 자신들의 배를 불리는 데에만 관심을 보이는 행태(58)'인 빈곤 비즈니스가 서울 한복판에 있는 쪽방촌에서 재현되고 있다. 2018년 기준 서울시 소재 전체 쪽방 현황 자료를 토대로 쪽방 실소유주를 추적했다. '쪽방 건물주 중 서울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등 고급 주거 단지에 거주하는 인물이 적지 않았으며, 강남 건물주의 가족들, 중소기업 대표 등 재력가가 다수 포착됐다(99)'.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집에 사는 재력가가 종로에 소유한 허름한 건물'은 닭장에 가깝다. '제대로 된 직업도 없어 인력사무소에서 소일을 하며 매달 방세를 마련한 사람이 낸 그런 돈은, 흘러 흘러 압구정 현대아파트로, 도곡동 타월팰리스 옆에 있는 그 아파트로 흘러가(33)'고 있었다. 그렇다고 '안전을 문제 삼아 자치단체가 쪽방을 강제적으로 폐쇄하는 법적 조치를 검토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많은 쪽방 주민들이 거리로 내몰리게 돼, 대부분의 자치단체는 적극적인 단속을 벌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104)'. '주거비 지불 능력이 없는 쪽방 주민과 노숙인들에게는 낮은 임대료만큼이나 '보증금이 없는 것'과 '유연한 계약 기간'이 중요한데, 쪽방은 매월 계약을 하고, 또는 일세(日貰)(59)'를 현금으로 내며 살기 때문이다. 지옥고(지하방, 옥탑방, 고시원) 아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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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수치나 공신력 있는 근거로 입증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수치로도 명백히 입증되고 있으나, 당사자가 직접 느낀 고통이 먼저이며 그게 더 중요합니다. 그게 쌓여 수치가 되고 기록이 되는 거니까요. (27) 차별이란 애초에 설득의 문제가 아닙니다. (29) 평등이란 하나밖에 없고, 불평등은 그 나머지를 전부 포괄합니다. 상대의 태도가 얼마나 바람직한지 아닌지는 당신이 어떻게 대응할지를 결정하게 할 뿐입니다. 태도에 따라 틀린 말이 맞는 말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질문만 필요합니다. 우리는 지금 완전히 평등한가? (38) 페미니즘이 쟁취하고자 하는 권리는 기본권입니다. 밥 몇 끼 얻어먹으려고 페미니스트가 되는 이는 없습니다. 기본권은 인간이라면 당연하게 가져야 할 권리로, 무언가를 해야 주어지는 보상이 아닙니다. 페미니스트는 가부장제가 제시하는 '틀'을 거부하고 기본권을 위해 싸웁니다. 가부장제와 여성혐오의 틀 속에서 남성들에 의해 주어지는 알량한 배당금을 누리는 데 관심이 있기는커녕, 배당금을 포함한 틀 자체를 부수고 바꾸고자 합니다. (55) 남성은 가부장제를 유지하고 싶은지, 유지하기 싫은지 분명히 해야 합니다. 많은 수의 남성이 유지는 하고 싶은데 그냥 징징대고 싶었음을 인정해야 할 겁니다. 아무리 세상이 미쳐 돌아간다 한들 설마 가부장제를 페미니스트가 만들었겠습니까? (56) 예쁜 말씨로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입니다. 제일 위험한 게 바로 이런 예쁜 헛소리입니다. (79) 여성혐오와 남성혐오가 이렇게 쉽게 대등한 문제 취급을 받는 상황은, 성별 간 권력 차를 또 한 번 실감케 합니다. (...) 여성의 목숨을 해치는 죄와 남성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죄는 대등한 것인가 봅니다. 사회가 남성 가해자의 심증을 헤아려주고 여성 피해자의 허점을 들춰내는 모습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로 그의 기분과 나의 목숨이 같은 값인가 싶어 절망감이 듭니다. (115) 가부장제 + 남성의 억울함 = 이제는 남녀평등 그

늑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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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십여 일 동안 네이멍구(內蒙古)의 초원과 사막 골짜기에서 풍찬노숙하며 늑대를 찾아 돌아다닌 야생일기입니다. 월드컵 열기가 뜨거웠던 2002년 5월 14일부터 국내로 돌아와 풍토병으로 고생한 7월 2일까지 늑대를 쫓아간 첫번째 여행의 기록입니다. 여행 내내 새끼 늑대에게 깡패와 어벙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데리고 다니며 키웠습니다. 늑대와 늑대굴을 찾아 헤매는 여행이었지만, 저자 스스로 알파 늑대가 되었습니다. '늑대는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서도 보기가 어(189)'려웠습니다. 오랫동안 지속한 늑대 소탕으로 '늑대들은 사람들의 출현 자체를 죽음과 연결시키게 되었'고, '사람의 냄새는 곧 공포로, 죽음으로 연결되었을 것(278)'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때는 늑대 구경도 할 수 없는 낭만파인 우리와 늘 늑대와 함께 생활하는 현지인들의 생각(109)'은 달랐습니다. 유목생활을 하는 현지인들은 늑대로 인한 가축 피해로 늑대와 늑대 새끼를 보면 죽입니다. 그런 생활환경에서 늑대를 찾아다니는 일행이 곱게 보일 리 없어 더 고생했습니다. 전 세계에는 약 200,000마리의 늑대가 살고 있습니다. '몽골과 중국과 미국에는 각각 15,000마리 정도'의 개체수가 있지만, 넓게 분포하고 있으므로 지역 단위로 보면 결코 많다고 할 수가 없(366)'습니다. 늑대 사냥을 장려하거나 밀렵을 방조하기 때문에 개체수는 감소하고 있습니다. 늑대를 찾아 떠난 유목 지대는 생존과 보존이 맞부딪히는 생사의 현장이었습니다. 늑대가 끼치는 가축 피해는 예측 가능한 일상적인 위협입니다. '진짜 두려운 것은 살아 움직이는 야생동물이 아니'라 '가장 무서운 것은 형태도 소리도 없이 순식간에 덮쳐오는 자연재해(308)'로 죽는 가축이 훨씬 많습니다. 그럼에도 늑대를 더 미워하는 것은 '가뭄이나 홍수, 폭설과 혹한 같은 천재지변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지만, 늑대는 잡아 죽일

그래서 우리는 달에 간다 - 곽재식의 방구석 달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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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드려요. 작곡가이자 가수인 윤형주가 편곡한 유명한 음료수 CM송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달을 따다 나눠 준 일이 있었습니다. 1972년 12월에 마지막으로 달에 갔던 아폴로17호가 많은 돌을 가져왔습니다. '한국은 아폴로17호가 돌아온 지 반년 정도가 지난 1973년 7월에 이 선물을 받았는데,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일반인들에게 월석을 공개(248)'했습니다. 대전의 국립중앙과학관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또 다른 월석은 1969년 아폴로11호가 가져온 월석인데 대통령기록관에 보관 중이라고 합니다. 지금도 흥얼거리는 CM송이 나오기 전에 실제로 달을 따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달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아직도 잘 모릅니다. 여러 학설이 있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거대충돌가설 (Giant Impact Hypothesis)이 지지받고 있습니다. '지구가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은 45억 년 전쯤의 어느 날, 대략 지구의 10분의 1 무게쯤 되는 커다란 돌덩이가 지구와 충돌(21)'해서 부서져 나온 파편들이 달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가설도 골치 아픈 문제가 있습니다. 지구를 들이받은 테이아(Theia)라는 돌덩이가 어디로 갔냐는 문제입니다.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달에 가서 달의 탄생과 달의 성질을 조사하면 그 지식으로 우리는 결국 지구의 모습을 더 명확히 알게 되어, 화산과 지진, 지각 변동과 지질 현상이 어떤 이유로 일어나는지(29)' 알 수 있습니다. 비바람도 물도 식물도 없는 달에 생긴 구덩이는 모양이 몇십만 년 동안 유지됩니다. '그래서 그렇게 많이 남아 있는 달의 충돌 구덩이들은 지난 긴 세월 동안, 지구 근처에 어떤 소행성들이 돌아다니다가 떨어졌는지를 꼼꼼히 기록해 둔 일기장(41)'과 같습니다. '달에 있는 수많은 구덩이들은 우리에게 지구를 위협할지도 모를 소행성과 혜성에 얽힌 사연을 더 많이 알려줄 것(48)&

전쟁일기 - 우크라이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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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는 1986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화가이자 그림책 작가입니다. 아홉 살 아들 표도르와 네 살 딸 베라의 엄마이기도 한 저자가 몸소 겪은 전쟁 초반의 참상을 기록했습니다. 2022년 2월 24일 새벽 5시 30분. 올가는 폭파 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아이들이 깨어나자 팔에 이름, 생년월일과 전화번호를 적었습니다. 죽은 후에 식별하기 위해서입니다. 날이 밝자 올가 가족은 지하실로 내려갔습니다. 미사일이 시내에 떨어지고 도시를 지구상에서 지우고 있었습니다. 우리집, 우리 마당, 우리 거리는 군대의 사격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대피한 지하실에 분필을 가져오자 아이들은 폭격 소리를 들으며 '평화'라고 적었습니다. 지하 생활 초기의 새로운 만남은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지하실에는 임신부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신분은 '지하실의 아이'가 되어 작은 케이크 한 조각도 최대한의 쾌락을 느끼며 먹어야 했습니다. 지하실에서 여덟 밤을 보낸 후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기차에 올랐습니다. 기차가 멈출 때마다 여자와 아이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한 엄마가 공책에 이름과 전화번호 리스트를 적어 자기 아이들의 옷 주머니에 쑤셔 넣었습니다. 올가가 전쟁 첫날에 했던 것처럼 혹시 헤어지게 될까 봐 그랬습니다. 남편은 국경을 넘지 못했습니다. 남자들은 나라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다음에 만날 때 같이 까먹자며 'Love is' 껌을 주었습니다. 3월 6일 새벽 5시. 바르샤바 시내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도움을 받거나 구걸해야만 생계를 유지하는 난민이 되었습니다. 불가리아 임시 숙소를 제안 받고 3월 16일 불가리아 소피아에 도착했습니다. 올가와 두 남매 그리고 강아지 미키와 함께 도착하며 책은 끝납니다. 현재 올가는 불가리아 소도시에서 임시 난민 자격으로 현지 교회 도움으로 아파트에서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책 표지는 자화상이라며 "전쟁은 인격이 있는 사람을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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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은 1992년 도서출판 눈에서 펴낸 어느 40대 부부의 병상 일기이다. (11)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또는 가족을) 걱정하며 살아가지만, 실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라고. (34) 송년회에 가서 오랜만에 보는 이들과 즐겁게 수다도 떨고, 새해 소원도 빈답니다. 아빠를 잊을 수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슬픔은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외면할 수도 없죠. 하지만 슬픔은 영원히 괴로워해야 할 낙인 같은 것은 아니에요. 당신 아이의 삶에는 기쁨도 정말 많을 거예요. 엄마가 없다고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업는 건 아니잖아요. (38) (돌보는 사람은) 아픈 사람이 회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쁘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이 보상될 만큼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까? 아팠던 사람은 병을 살아낸 경험에 관해 말할 수 있지만, 돌보는 사람이 살아낸 것을 표현하기는 더 어렵다. 돌봄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이 우리 사회에는 별로 없고, 그래서 돌봄은 인정되지 못한 채로 남겨진다. (47) 궁극의 목표는 환자의 안녕이어야 하겠지만, 그것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는 늘 고민스럽다. 사람들은 의사가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의사도 종종 혼란에 빠지곤 한다. (54) 말기암은, 아니 모든 질병의 말기는 자율성의 박탈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스스로 움직이고, 대소변을 처리하고, 먹고 자고, 깨어 있는 것이 어렵게 되고 늘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간이 길어질수록 환자의 인격과 존엄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사실, 이것이 죽음에 임박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69) 인간이 태어나서 3개월, 즉 백일까지를 삶에 적응하는 시간이라고 한다면, 인간이 죽기 전 3개월은 죽음에 적응하는 시간이다. 암의 경우가 그렇고, 치매나 뇌졸중 같은 질환은 이 시간이 더 길어지기도 한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고, 죽지도 않은 시간이......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나라는 인간이 아닌 시간이. (70) 아빠가

가난의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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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가난의 모습은 늘 변해왔다. (...) 이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비중이 가장 높은 건 현재의 노인 세대로, 노인들의 가난은 그 구조가 복잡하게 꼬인 산물이다. 지금의 일부 노인들은 사회보험 제도가 정착하기 전에 노인이 되어버렸다. (9) 재활용품을 주워 팔아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이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근대 자본주의가 등장한 대개의 국가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층민의 일이다. (10) 가난이란 '간안(艱難)', 어려울 간과 어려울 난을 합친 두 자를 어원으로 둔다. 이로부터 파생된 건 '가난(家難)'으로 "집안의 재난"이거나 그 상태를 말한다. 빈곤(貧困, poverty)이란 "가난하여 곤한 상태", 다르게 말하자면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둘은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지만, 사회과학자들은 이 둘을 다르게 쓴다. 경험적으로 '가난'은 현상을 묘사할 때 사용하며, '빈곤'은 분석에 동원한다. (14) 이제 가난의 문법이 바뀌었다. 도시의 가난이란 설비도 갖춰지지 않은 누추한 거주지나 길 위에서 잠드는 비루한 외양의 사람들로만 비추어지지 않는다. 어느 날 강서구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작은 골목을 지나는데, 1㎞가 채 안 되는 거리에서 모두 다른 편인, 재활용품 줍는 노인 무리를 보았다. 물론 그들이 함께 다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경쟁 중이었고 갈림길에 다다르자 뿔뿔이 흩어졌다. 그때엔 몰랐지만, 고물은 먼저 발견한 사람의 차지가 되니까 남의 뒤를 따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28) 한국의 노인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빈곤하다는 뜻이며, 이는 현재 노인들 노후 생활의 경제적 기반이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노인이 하는 노동의 대부분은 질 낮은 일자리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노인의 고용률이 상승한다 해도 빈곤율이 낮아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45) '재활용품 수집 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