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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일기 - 우크라이나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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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는 1986년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화가이자 그림책 작가입니다. 아홉 살 아들 표도르와 네 살 딸 베라의 엄마이기도 한 저자가 몸소 겪은 전쟁 초반의 참상을 기록했습니다. 2022년 2월 24일 새벽 5시 30분. 올가는 폭파 소리에 잠에서 깼습니다. 아이들이 깨어나자 팔에 이름, 생년월일과 전화번호를 적었습니다. 죽은 후에 식별하기 위해서입니다. 날이 밝자 올가 가족은 지하실로 내려갔습니다. 미사일이 시내에 떨어지고 도시를 지구상에서 지우고 있었습니다. 우리집, 우리 마당, 우리 거리는 군대의 사격장이 되어버렸습니다. 대피한 지하실에 분필을 가져오자 아이들은 폭격 소리를 들으며 '평화'라고 적었습니다. 지하 생활 초기의 새로운 만남은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지하실에는 임신부들도 있었습니다. 아이들의 신분은 '지하실의 아이'가 되어 작은 케이크 한 조각도 최대한의 쾌락을 느끼며 먹어야 했습니다. 지하실에서 여덟 밤을 보낸 후 도시를 떠나기로 결심했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기차에 올랐습니다. 기차가 멈출 때마다 여자와 아이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한 엄마가 공책에 이름과 전화번호 리스트를 적어 자기 아이들의 옷 주머니에 쑤셔 넣었습니다. 올가가 전쟁 첫날에 했던 것처럼 혹시 헤어지게 될까 봐 그랬습니다. 남편은 국경을 넘지 못했습니다. 남자들은 나라 밖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다음에 만날 때 같이 까먹자며 'Love is' 껌을 주었습니다. 3월 6일 새벽 5시. 바르샤바 시내에 있는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도움을 받거나 구걸해야만 생계를 유지하는 난민이 되었습니다. 불가리아 임시 숙소를 제안 받고 3월 16일 불가리아 소피아에 도착했습니다. 올가와 두 남매 그리고 강아지 미키와 함께 도착하며 책은 끝납니다. 현재 올가는 불가리아 소도시에서 임시 난민 자격으로 현지 교회 도움으로 아파트에서 머물고 있다고 합니다. 책 표지는 자화상이라며 "전쟁은 인격이 있는 사람을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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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은 1992년 도서출판 눈에서 펴낸 어느 40대 부부의 병상 일기이다. (11)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또는 가족을) 걱정하며 살아가지만, 실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라고. (34) 송년회에 가서 오랜만에 보는 이들과 즐겁게 수다도 떨고, 새해 소원도 빈답니다. 아빠를 잊을 수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슬픔은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외면할 수도 없죠. 하지만 슬픔은 영원히 괴로워해야 할 낙인 같은 것은 아니에요. 당신 아이의 삶에는 기쁨도 정말 많을 거예요. 엄마가 없다고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업는 건 아니잖아요. (38) (돌보는 사람은) 아픈 사람이 회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쁘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이 보상될 만큼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까? 아팠던 사람은 병을 살아낸 경험에 관해 말할 수 있지만, 돌보는 사람이 살아낸 것을 표현하기는 더 어렵다. 돌봄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이 우리 사회에는 별로 없고, 그래서 돌봄은 인정되지 못한 채로 남겨진다. (47) 궁극의 목표는 환자의 안녕이어야 하겠지만, 그것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는 늘 고민스럽다. 사람들은 의사가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의사도 종종 혼란에 빠지곤 한다. (54) 말기암은, 아니 모든 질병의 말기는 자율성의 박탈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스스로 움직이고, 대소변을 처리하고, 먹고 자고, 깨어 있는 것이 어렵게 되고 늘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간이 길어질수록 환자의 인격과 존엄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사실, 이것이 죽음에 임박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69) 인간이 태어나서 3개월, 즉 백일까지를 삶에 적응하는 시간이라고 한다면, 인간이 죽기 전 3개월은 죽음에 적응하는 시간이다. 암의 경우가 그렇고, 치매나 뇌졸중 같은 질환은 이 시간이 더 길어지기도 한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고, 죽지도 않은 시간이......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나라는 인간이 아닌 시간이. (70) 아빠가

가난의 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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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서 가난의 모습은 늘 변해왔다. (...) 이 사회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비중이 가장 높은 건 현재의 노인 세대로, 노인들의 가난은 그 구조가 복잡하게 꼬인 산물이다. 지금의 일부 노인들은 사회보험 제도가 정착하기 전에 노인이 되어버렸다. (9) 재활용품을 주워 팔아 생계를 꾸려나가는 일이란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며, 근대 자본주의가 등장한 대개의 국가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층민의 일이다. (10) 가난이란 '간안(艱難)', 어려울 간과 어려울 난을 합친 두 자를 어원으로 둔다. 이로부터 파생된 건 '가난(家難)'으로 "집안의 재난"이거나 그 상태를 말한다. 빈곤(貧困, poverty)이란 "가난하여 곤한 상태", 다르게 말하자면 "가난하여 살기가 어려운 상태"를 말한다. 둘은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여겨지지만, 사회과학자들은 이 둘을 다르게 쓴다. 경험적으로 '가난'은 현상을 묘사할 때 사용하며, '빈곤'은 분석에 동원한다. (14) 이제 가난의 문법이 바뀌었다. 도시의 가난이란 설비도 갖춰지지 않은 누추한 거주지나 길 위에서 잠드는 비루한 외양의 사람들로만 비추어지지 않는다. 어느 날 강서구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작은 골목을 지나는데, 1㎞가 채 안 되는 거리에서 모두 다른 편인, 재활용품 줍는 노인 무리를 보았다. 물론 그들이 함께 다니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경쟁 중이었고 갈림길에 다다르자 뿔뿔이 흩어졌다. 그때엔 몰랐지만, 고물은 먼저 발견한 사람의 차지가 되니까 남의 뒤를 따를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28) 한국의 노인은 일을 많이 하는데도 빈곤하다는 뜻이며, 이는 현재 노인들 노후 생활의 경제적 기반이 없다는 뜻이다. 게다가 노인이 하는 노동의 대부분은 질 낮은 일자리에서 이루어지며, 따라서 노인의 고용률이 상승한다 해도 빈곤율이 낮아지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45) '재활용품 수집 노인&#

미래의 교육, 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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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인근의 소도시 니덤에 자리한 올린 공대 (Olin College of Engineering)는 2002년에 개교했습니다. '올린에는 5개의 전공 트랙만 존재하고 별도의 학과는 없(18)'습니다. 교수가 40명이고 학생은 350명으로 교수 1인당 학생수는 9명 정도입니다. 올린은 협력과 소통을 교육의 핵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21세기 엔지니어에게 협력과 소통의 능력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25)'이기 때문입니다. "그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존재하는 사람이 돼라. 있는 사람과 존재하는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 그냥 있는 사람은 주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 반면 존재하는 사람은 주변에 영향을 주면서 상호 작용을 한다(28)." 교수들이 학생들에게 협업과 소통을 강조하며 하는 조언입니다. '교육은 학생들의 머리에 정보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지식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키는 일(42)'이 올린의 교육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올린에서 교수의 역할은 '가르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교육자에서 배움을 돕는 코치(58)'입니다. 교수의 역할을 조력자로 규정합니다. '교수는 학생들이 경험을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통제와 규제로 학습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움 속에서 학생들의 학습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수의 역할(59)'입니다. '학점이 아니라 배움에 중점을 두도록, 수동적인 학습이 아니라 주체적인 배움이 일어나도록 학생들을 변화'시키야 합니다. '협력과 소통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느낄 수 있(108)'도록 교육 혁신을 하고 있습니다. 온라인 교육이 세계적인 흐름이지만 '올린이 추구하는 경험 중심의 교육은 온라인으로 전달할 수 없(115)'고, 지식을 얻고 싶은 학생들은 온라인 강의를 들으라는

알메달렌, 축제의 정치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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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7월, 교육부 장관이던 울로프 팔메가 고틀란드섬에서 휴가 중에 정책 간담회 요청을 받았습니다. 간담회장인 광장에 서 있는 덤프트럭 위에서 즉석연설했습니다. '트럭 연설이 열린 작은 마을 알메달렌이 스웨덴식 열린 광장 정치의 메카가 되는 순간(18)'이었습니다. 1982년 주요 정당들이 참여하는 알메달렌 주간이 공식 출범했습니다. '여름휴가가 시작되는 7월 초, 여야 정당이 제시하는 정책 콘텐츠는 국민의 관심사가 되었'고, '휴가와 정치 그리고 언론의 결합은 이렇게 출발(19)'했습니다. 알메달렌 주간 은 이웃 국가로 수출이 되어 덴마크의 보리홀름, 노르웨이의 아렌달, 핀란드의 뵈네보리에서 정책 박람회를 개최합니다. '알메달렌은 처음 시작할 때는 그저 작은 지역의 정치 행사였지만, 모든 정당이 참여하고 정당 대표들이 직접 찾아와 연설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치인의 행사가 아니라 국민의 행사(29)'가 되었습니다.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늘면서 성장했습니다. 세미나는 4000여 개로 늘었고, 방문객은 4만 명으로 급증했습니다. '정치인의 연설과 정책 토론도 내용과 재미가 적절하게 섞이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예술이 될 수(56)' 있다는 걸 알메달렌 주간은 보여줍니다. '정치는 약점을 파헤쳐 상대를 파멸시키는 행위가 아니라 나의 철학과 그 철학을 실현하기 위한 전략을 밝히고 국민의 지지를 받아 통치하는 행위(57)'입니다. 낮에는 경쟁했던 정치인들이 밤에는 여야 전·현직 장관들이 댄스팀을 만들어 댄스 배틀을 합니다. '알메달렌에서 정치는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것, 편안한 것, 신나는 것, 배려하는 것(57)'임을 보여줍니다. "눈이 나쁜데도 경제적인 이유로 안경을 쓰지 못하는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48)" 총리에게 마이크를 들이대며 어린이 기자가 던진 질문입니다. '어린이 기자

나로 웅크리고 있는, 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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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거실 넘기지 못한 달력이 있다. 손때 묻은 시간이 엉켜 있다. (30) 사방 방향을 제시해준다 견고하게 친절하다 그래도 우린 어디가 어딘지 모른다 (93) COVID-19 지루한 일상이 이어진다. 우리는 하얀 방패를 부적처럼 지니고 다닌다. (138) 달 애써 풍경을 만들었다 우리는 즐거워야만 했다 (161) 오해 떠날 사람은 창밖을 보지 않는다 난 떠났고 넌 보냈나 (187) 나로 웅크리고 있는, 너에게/김지연/아마존의나비 20210315 198쪽 17,000원 시화집 덕분에 너무 익숙해서 무심했던 일상 풍경이 따스해집니다. 아직 살만합니다.

매혹하는 식물의 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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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 가장 먼저 창조한 생물은 식물이었다. (6) 일반적으로 식물은 인간 없이도 잘 살 수 있지만, 인간은 식물이 없다면 곧 죽고 말 것이다. (17) 35억년을 1년이라고 치면 20만 년은 겨우 30분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광합성 생물이 1월 1일 0시에 탄생했다면, 현생인류는 12월 31일 밤 11시 30분에 막차를 타고 지구에 도착한 셈이다. (21) 식물이 꽃 이외의 장소에서 당밀을 분비하는 것은 강력한 보디가드를 고용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임을 명심하라. 식물은 그리 허술하지 않다. (44) 진화란 '생물이 환경에 서서히 연속적으로 적응해가며 생존에 가장 적합한 형질을 발달시키는 과정'을 의미한다. 모든 종들은 서식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하는 과정에서 점차적으로 특정한 형질과 능력을 획득하거나 상실한다. 물론 진화는 장구한 세월에 걸쳐 조금씩 일어나지만 최초의 모습과 최종적인 모습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53) 고착생활을 하는 식물은 동물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어 외부의 공격에 소극적으로 저항하는 방법을 개발해냈다. 그것은 모듈성이다. 식물의 몸은 여러 개의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서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건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필수불가결한 것도 없다. 이러한 모듈 구조는 동물이 흉내 낼 수 없는 커다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61) 식물은 반복되는 모듈로 구성되어 있다. 식물의 가지, 줄기, 잎, 뿌리는 모두 매우 간단한 모듈의 집합체로, 다른 모듈과 독립적으로 몸체에 부착되어 있다. 마치 레고 블럭처럼 말이다. (63) 만약 식물이 내일 당장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인간은 몇 주, 길어야 몇 달을 버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조만간 모든 고등생물이 자취를 감출 것이다. 이와 반대로 인간이 지구상에서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몇 년 후 식물들이 인간의 거주지를 접수할 것이며, 1세기 안에 모든 문명이 식물로 뒤덮이게 될 것이다. 어떤가, 이 정도면 식물과 인간 중 누가 더 중요한지 판가름

그냥,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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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도착해서야 내가 정말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식했다. 나에게 방향을 알려주던 화살표 같은 존재들이 이제 내 곁에 없다는 것도, 나는 화살표 없이 살아본 적이 없고 살아갈 능력도 없는 인간이라는 것도, 그때 절절하게 깨달았다. (12) 야학을 그만두었을 때 나는 그곳에서 가지고 나온 게 별로 없다고 생각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시선'이라는 아주 강력한 것이 나를 따라온 것이었다. (24) 2학년 6반 교실의 시계가 8시 45분에 멈춰 있었다. 누군가 8시 50분에 맞춰둔 것을, 뒤에 온 어떤 이가 조금 더 당겨놓은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직은 모두가 따뜻하게 살아 있었던 때. '가만히 있으라'는 죽음의 주술이 울려 퍼지기 전, 그리하여 무언가를 바꿀 일말의 가능성이 남아 있는 시간. 8시 45분 단원고 교실에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8시 50분 이후 우리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저 무능하고 이기적인 인간들이 304명의 목숨을 수장시킨 후에 가장 먼저 한 것이 바로 기록을 삭제하는 일이었다는 걸. (33) 나는 죄책감이란 것이 '먼저 달아난 사람'의 감정인 줄로만 여겼는데 그것이 '누군가를 구하려다 실패한 사람'의 것일수록 더욱 고통스럽고 지독할 수 있음을 알았다. 실은 죄에 대한 책임감이 아니라 누군가의 마지막을 목격한 것에 대한 책임감일 것이다. (51) 사람들은 강자가 사라져야 약자가 사라질 거라고 말한다. 나는 순서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심장이 아니다. 가장 아픈 곳이다. 이 사회가 이토록 형편없이 망가진 이유, 그것은 혹시 우리를 버려서가 아닌가. 장애인을 버리고, 가난한 사람을 버리고, 병든 노인을 버려서가 아닌가. 그들은 가장 먼저 위험을 감지한 사람들, 이 세상의 브레이크 같은 존재들이다. (79) 해마다 300명이 넘는 홈리스와 천 명이 넘는 무연고자들이 외롭게 죽어가는 이 거리에서, 집 없는 이들에게 주거비를 지원하는 데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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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녠(十年)은 태어나자마자 버려져 출생신고도 하지 않은 고아 출신으로 대낮보다는 달밤에 걷는 모습이 어울리는 사람이다. 살인마 집단 'JACK'의 조직원을 밥 먹고 물 마시는 일만큼 자연스럽게 죽이는 남자이기도 하다. 살인 집단 잭은 잭 더 리퍼의 전설을 광적으로 숭배하고 계승하는 살인마 조직으로 오른쪽 가슴에 알파벳 J를 새기고 있다. 납치한 피해자의 복부를 절개하고 다크웹에 영상을 올리는 집단이다. 중증 결벽증 환자인 스녠은 청소도구가 가지런히 정리된 가방을 메고 다닌다. 잭의 조직원을 죽인 후 더럽혀진 살인 공간을 깨끗하게 청소하기 위해서다. 스녠은 잭의 조직원이 마지막 한 방울의 피를 흘릴 때까지 기다리며 말한다. "주기적으로 청소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피해자에게 큰 실례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럴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겠군요." 특별히 착한 일을 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남에게 피해를 준 적도 없는 샤오쥔. 사축(社畜) 1 신세인 샤오쥔은 살인마에게 진부한 드라마 같은 납치를 당한다. 잭의 조직원을 해치우는 스녠과 처음 만나며 엮이게 된다. 스녠의 살인 방법은 야무지면서 잔혹하고 생생하다. 목표물이 즉사하지 않았다면 항상 유용한 청소지침을 알려준다. 그런 스녠의 오른쪽 가슴에도 알파벳 J가 새겨져 있다. 잭의 조직원을 죽이는 연쇄살인마가 되어 잃어버린 기억을 좇는 스녠의 살인은 정당할 수 있을까? 타이완 웹소설 플랫폼에 연재된 글이어서 진행 속도가 거침없이 빠르다. 다만 전개 과정이 상투적이고 놀랄만한 대반전이 없어 아쉽다. 묻지마식이나 혐오 살인이 일어났다는 뉴스를 접하게 되면 가해자 정보를 알아내 스녠에게 넘겨주고 싶다. 그럴 때 읽으면 대리만족을 할 수도 있다.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獻給殺人魔的居家清潔指南, 2018 /쿤룬 崑崙 /진실희 역/한즈미디어 20210108 372쪽 15,000원 '회사에서 기르는 동물'이라는 뜻으로 박봉과 긴 노동시간, 고용불안 등의

뉴노멀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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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대 안전'이라는 근대적 대립 도식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안전 속 인원'을 모색해야 한다. 한 사람의 반칙은 모두를 위협하기 때문에 그 한 삶이 반칙하지 않도록 미리 배려해야 한다. (6) 인류는 코로나19와 함께 포스트-근대를 대비해야 한다. 기후위기와 인공지능이 그 전조라면, 코로나19는 근대의 끝을 알려주는 징조의 막내이자 마침표다. 기후위기와 인공지능 그리고 코로나19라는 이 삼각편대는 근대를 산산조작 낸 진정한 다이너마이트다.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이 유의미하게 제시된 건 40년이 조금 넘었지만, 그때와는 많이 달라진 상황과 맥락에서 진정 포스트-근대, 탈근대가 논의되어야 한다. 이 작업은 근대와 적절하게 거리를 두면서 인류의 다음 단계를 준비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7) '코로나 혁명'이 일어났다. 인공지능과 기후위기에 이은 대격변의 마침표다. (17) 코로나19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민낯을 드러낸 것 중 하나는 각국 정부의 성격, 또는 그 정부를 구성한 인민의 성격이었다. (21) 실험은 안전의 정도를 높이는 데 기여한다. 실험이 안전 자체를 목표로 삼지는 않으나, 실험 없이는 안전이 확장되지 못한다. 이런 피드백 고리 안에서 실험이 곧 자유라는 점이 비로소 이해될 수 있다. 한 사회가 실험을 감내하는 정도가 그 사회의 자유도(自由度)다. (31) 불평등과 격차가 큰 사회일수록 분열과 갈등은 커지고 영토는 흔들린다. 우리는 서로 보호해야 하며, 공동의 안전망을 함께 구축해야 한다. 진정한 자유란 개인의 자유가 아니라 사회의 자유도다. (35) 사방에 화약이 뿌려져 있지만 불씨를 운반하는 건 자유의 문제라고 오도하는 것과도 같다. 자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영토의 문제다. 영토가 망가지면 개인의 자유도 없다. (59) 공동체 수준에서 이 위험을 지켜내는 수단은 민주적 거버넌스가 유일하다. 민주주의를 오래 지키는 것이 유일한 방책이라는 얘기

개소리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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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꾼은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얻는 데 유리한 발언을 할 뿐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는 개의치 않는다. (29) 한마디로 개소리는 주요 미디어 없이는 뜨기 어렵다. 매체는 개소리를 막으려고 애쓰면서도 이를 전파한다. 객관성을 중시하는 매체들은 진실에 얽매이지 않는 정치인과 캠페인을 다루거나 요즘 대중에게 친숙한 소통 방식을 택할 때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어떤 매체들은 그들이 선정한 정치적 의제나 그들이 처한 재정 상태 때문에 스스로도 미심쩍은 기사와 담론을 적극적으로 퍼뜨린다. (108) 트래픽이 높아진다는 것은 당연히 해당 사이트의 수익이 올라간다는 뜻이다. 제목은 나중에 바꾸더라도 일단 기사부터 올리면 트래픽이 올라가지만 시간을 들여 사실을 확인한 후 아무 기사도 올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112) 미디어에 대한 신뢰 하락이 곧 미국 사회가 얼마나 양극화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122) 기존 보도 관행은 트럼프의 개소리에 맞서고 그에게 책임을 묻기에 무기력할지 몰라도 회사의 순익에는 큰 도움이 된다. 이럴 때는 뭐든 순익에 가장 이로운 방법을 택하기 마련이므로 기존 틀이 그대로 유지된다. (131) 우리는 우리 수준에 맞는 미디어를 얻는다. 뉴스 미디어와 허위 사이트 둘 다 소비하는 대중이 있으니 그런 정보를 만든다. 정치인은 유권자가 반응한다고 판단하고 그렇게 행동한다. 소셜 네트워크는 우리가 서로 교류하게 해줄 뿐이다. 개소리가 기승을 부리고 믿을 만한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면 우리도 소비자이자 유료 독자이자 유권자로서 한몫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이제 우리도 전통적인 매체와 거의 대등하게 정보를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시대다. (156) 우리에게는 개소리 확산에 일조하는 나쁜 습관이 또 있다. 소셜 미디어에 있는 기사를 읽어보지도 않고, 심지어 링크된 기사를 열어보지도 않고 공유하는 버릇이다. (165) 확증 편향 하나만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인데, 이보다 훨씬 강력한 심리적 편향이 있다고 한다. 내가 굳게 믿는 신념

보통의 것이 좋아 - 나만의 보폭으로 걷기, 작고 소중한 행복을 놓치지 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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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책에서 나는 이 동네에 소속감을 느꼈다. 그 새로운 공간들이 모두 내 것이 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표정이 얼마나 자연스러운가를 느끼면서 나도 그들처럼 이 마을에 익숙해지고 싶었고, 그러기 시작했다는 기분이 들었다. (18) 나뭇잎의 그림자 사이로 빛나는 빛을 그릴 때마다 이 모습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을까 궁금했는데 검색해 보니 있었다. 우리나라 말로 '볕뉘'라고 한다. (43) 작게 태어나, 욕심 없이 사는 것 (69) 봄날의 산책은 남은 일 년을 살아갈 힘을 준다. (85) 아름다움은 멀리 있지 않다. 온 세상의 정보를 다 알게 되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인지 모르겠다. 때로는 너무 먼 곳의 소식은 불필요하다. 오히려 가까이 있는 것이 더 믿음직스러울 때가 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걸으면 반드시 진정이 된다. 이상하게도, SNS나 미디어 같은 걸 보면 머리가 꽉 막히는데, 그냥 길가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92) 처음이라서 잊을 수 없는 것들이 잔뜩 있었던 시절이 그립다. 모두가 나를 사랑해주었던 시간이어서, 세상 자체에 대한 첫사랑을 품은 시기여서 그만큼 그때의 모습들이 내 안에 오래 나아 있는 것은 아닌지. (115) 멀리서 봤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 깊게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 시간을 두고, 거리를 뒀기 때문에 이해되는 것들이 있다. 이런 시선으로 내 삶을 보기도 한다. 나는 되도록 멀리서 나를 보려고 한다. 내가 남을 볼 때 그들의 고통이 보이지 않듯이, 지금 나의 고통을 내가 볼 수 없도록 세상과 거리를 두는 것이 나에게는 삶의 한 요령이었다. (119) 산책이 내게 준 것은 며칠짜리 희망이었다. 이내 다시 힘들어지고,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 벌어질지라도. '지금은 괜찮아. 앞으로도 괜찮을 거야' 같은 믿음이나 희망을 가지고 돌아왔다. 힘듦이 쌓이면 다시 세상을 확인하러 떠났다.

코로나는 기회다 - 위기를 맞은 세상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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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불가능은 이미 일어났다 - 레베카 솔닛(Rebecca Solnit)  코로나가 보여준 각자도생을 신봉하는 보수주의자들의 민낯 재난은 갑자기 시작되고, 절대 완전히 끝나지 않는 법이다. (8) 희망은 앞으로 닥칠 불확실성 속에서도 명확한 시각을 제공한다. 함께할 가치가 있는 갈등이 있고, 그중 일부는 이길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희망의 가장 위험한 면 중 하나는 재난이 닥치기 전에는 모든 것이 괜찮았고, 과거로 돌아가야 한다고 믿는 실수에 빠지는 것이다. 판데믹 이전의 평범한 삶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절망과 배척의 시기였고, 환경과 기후의 재앙이자 불평등의 근원이었다. 비상사태가 끝난 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지금은 알 수 없다. 하지만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지 찾고, 결정할 수는 있다. (23) 2. 여행의 종말 - 크리스토퍼스 벨레이그(Christopher de Bellaigue)  관광이 죽자 환경이 되살아난 코로나 시대의 역설 코로나는 관광 산업이 없는 무서우면서도 경이로운 세계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관광객들이 자연을 가득 메우고 몰려다니지 않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목격하고 있다. 협곡만 한 대형 크루즈 선박들이 해안선을 침식하지 않으면서, 바다는 모처럼 한숨을 돌리고 있다. 꼼짝없이 집 안에 갇힌 등산객들은 더 이상 산등성이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특색 있고 섬세한 각 지역의 음식 문화는 더 이상 관광객들이 먹는 냉동 피자의 위협을 받지 않아도 된다. (28) 오염자 부담 원칙은 어떤 사업이 해로운 영향을 끼친다면, 해결 비용 역시 원인 제공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41) 《네이처 클라이밋 체인지》는 최근 연구에서 "관광 산업은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다른 잠재적인 산업보다 탄소 집약도가 심각하게 높다"고 밝혔다. 2009년부터 2013년까지 관광 산업이 전 세계에서 배출한 탄소는 지구 전체 온실 가스 배출량의 8퍼센트로 증가했으며, 그중 대부분은 항공 여행에서 발생했다.

커피와 달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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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난으로 구조조정을 종용받던 이종익 사장은 우연히 산책 끝에 달마암에 오른다. 암자에서 큰 바보라는 대우(大愚) 스님을 만났다. 목적지와 시간을 정해 놓지 않은 산책을 했다. 산책은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걷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낯선 곳이어야 한다는 첫 깨달음을 얻는다. 달마암을 찾아 스님에게 물으며 불교를 처음 배운다. '종교는 하나의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의 고민이 조용하고 아득한 시간을 거쳐 오며 서서히 정립된 무엇(65)'이다. '지금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존중하고 최선의 행동을 하는 것(93)'이 불교의 핵심이다. 작은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불교는 정신주의에도 물질주의에도 치우치지 않는 현실주의에 입각한 사상'이어서 '행동주의, 현실주의로 이해한다면 불교는 결코 난해한 사상도 또 불가한 사상(101)'도 아니라고 스님은 말한다. '고통스러운 현실을 행복한 현실로 바꾸는 것이 불교(111)'이다. 이런 불교의 목적을 이해하는 중요한 원칙인 중도(中道)란 '순간순간 올바르게 선택하고 실천하는 것(137)'이다. 스님이 풀을 뽑으며 물었다. 자네가 행동할 수 있는 시간, 선택할 수 있는 시간, 자네가 진정으로 살아가는 시간은 냉정히 말해 지금 한순간뿐이야. (...) 묻겠네. 삶이 지금 이 순간뿐이라면 자넨 무엇을 하겠나? 음... 스님과 함께 풀을 뽑아야죠. 그렇지!(159) 이 사장은 커피를 사 들고 달마암에 가는 횟수가 늘어나며 참선의 세계로 접어든다. 큰 바보 스님은 이 사장에게 작은 바보라는 뜻으로 소우(小愚)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스님은 입적하기 전에 좌선은 즐거운 여행이라는 것을 되새기는 편지와 마지막 선물을 남겼다. 입적 소식을 들은 이 사장 손바닥에는 '보일 듯 말 듯 스님의 낡은 두루마기에서 꺼내 온 선물이 놓여 있었다(280)'. 소설이 중반을 넘길 때쯤

도시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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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순진하게 '살기 좋은' 도시를 바라며 살지만, 권력과 자본은 아주 영리하게 '팔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 판다. (6) 시민들은 '살기 좋은 도시'를 원하는 반면, 기업은 '팔기 좋은 도시'를 원한다. 기업은 목숨 걸고 자기들이 원하는 도시를 향해 달려가는데, 먹고사는 일에 바빠 시민들이 자기 삶에만 몰두해 살아간다면 결국 도시는 누구의 뜻대로 변하게 될까? (32) 이제 마음만 먹으면 100층 건물도 어렵지 않게 지을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에 대한 생각도 크게 바뀌었다. 한때는 '전체'였고 인간을 품어주는 '삶터'였던 도시가 한순간에 '객체'이자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비유하자면 '엄마' 같던 도시가 도마 위의 '생선'처럼 달리 보이게 되었다고 할까? 이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되는 게 바로 도시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건물을 짓고 도시를 만드는 방식도 크게 달라졌다. (37) 생명체 도시의 핏줄 같은 거리거리에 쉼 없이, 막힘없이 피를 돌게 해줄 당신만의 묘약을 무엇인가? 거리가 핏줄이라면, 굵고 얇은 핏줄 안을 힘차게 돌아야 할 피는 바로 사람이다. 거리에 사람을 늘 오가게 하는 것, 그것이 답이다. (76) 서울을 상징하는 대표 이미지, 혹은 기억에 남는 인상은 무엇인가? 나는 산이라고 생각한다. (87) 재개발 지역 선정은 사업성이 기대되는 곳, 재개발사업을 통해 이익이 발생되는 곳이 우선순위다. 가장 열악한 곳이 아니라 가장 돈이 되는 곳에서 재개발이 시작된다. (105) 자본은 절대 강자이고, 아주 세고 지독한 놈이다. 자본이라고 하는 이 강자는 돈이 되는 일은 물불 가리지 않고 뭐든 한다. 자본이 우리가 사는 마을과 도시로 밀고 들어와 제 뜻대로 군림하지 못하도록 시민들이 눈 똑바로 뜨고 지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130) 진보적

달까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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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론제과 브랜드실 스낵팀 정다해, 경영지원실 구매팀 강은상과 회계팀 김지송은 B03이다. 비공채 출신 3인방이라는 뜻이다. 공채 출신이 아니어서 졸지에 '근본 없는 애'들이 됐다. '같은 회사에 다녀도, 비슷한 월급을 받아도, 결코 같은 세계를 살고 있지 않다는 사실'과 '그 사이에는 투명한 선과 보이지 않는 계단이 있(103)'다. 마치 '오리지널과 스타일의 차이(177)'처럼 말이다. B03은 '여러 가지 이유들로 집안에 빚이 있고, 아직 다 못 갚았으며, 집값이 싸고 인기 없는 동네에 살고, 주거 형태가 월세이고 5평, 6평, 9평 원룸에 살고 있다(105)'는 것을 첫날부터 직감으로 알았다. B03은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시간이 지날수록, 해가 지날수록. 한 살 더 먹을수록 늘 전보다는 조금 나았고 또 동시에 조금 별로였다. 마치 서투른 박음질 같았다. 전진과 뒷걸음질을 반복했지만 그나마 앞으로 나아갈 땐 한땀, 뒤로 돌아갈 땐 반땀이어서 그래도 제자리걸음만은 아닌 그런 느낌으로(98)' 회사에 다닌다. B03은 '여태까지 쌓은 건 지나가는 누군가의 콧김 같은 것에도 쉽게 부스러져내릴 수 있(95)'을 정도로 근본이 없다. 근본이 없다는 건 '평생을 저 작은 돌멩이처럼 아슬아슬한 감각으로 살아왔(330)'고 '추락의 시기를 기약 없이 유예하면서(331)' 살고있다는 뜻이다. '앞으로 전진하는 방향 키를 아무리 눌러도 발에 모래주머니 단 것처럼 무겁게 천천히 나가(57)'는 시지프스의 삶과 같다. B03은 '초콜릿무스케이크와 뉴욕치즈케이크가 둘 다 당겨서 고민되는 날에는 두개 다 시(265)'키고 싶고, '아침 햇살에 눈을 떴다라는 말'이 '자연스럽고 흔한 말이지만 그런 자연스러움(196)'을 가지고 싶고, 월급날을 일주일 앞두고도 유기농 목장의 우유랑 프리미

시인의 말 - 유진목

당신이 죽고 난 뒤로 얼마간 시간이 흘렀다 거기에는 당신의 물건들이 놓여 있다 어떤 것은 나대로 사용할 것이고 어떤 것은 그대로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은 끝내 찾지 못해서 방에 앉아 울었다 내가 죽고 난 뒤로 방은 완전히 비어 있다 이 책은 돌아와 마저 쓰인 것이다 연애의 책/유진목/삼인 20160515 108쪽 8,000원 엄마는 내가 제일 처음 떠나 온 주소입니다 1 전말은 알 수 없고 절망이 길어진다 가망이 없더라도 희망의 용법을 구한다 2 매일같이 당신을 중얼거립니다 나와 당신이 하나의 문장이었으면 나는 당신과 하나의 문장에서 살고 싶습니다 몇 개의 간단한 문장 부호로 수식하는 것 말고 우리에게는 인용도 참조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3 어디로 가야 당신을 볼 수 있습니까 모든 게 다 당신이야 나는 말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이 당신에게만 있는 것이 고맙습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세요 내가 그리로 가겠습니다 4 갓 지은 창문에 김이 서리도록 사랑하는 일을 5 그래도 삶은 사랑은 낡아진 속옷 모양 푹 푹 뜨거워지니 너무 오래 붙들었나요 6 어제는 사랑이 처음 배운 단어인 것처럼 고백이 하고 싶었어요 7 질문이 많은 자는 살인을 할 수 없으니 그게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8 불행한 사람에게 어떻게든 계속해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9 문학평론가 황현산 선생은 이 시집을 "한국 최고의 연애시집"이라고 평했다. 최고의 연예시집은 아닐지 모르지만 열 몇 권쯤 되는 사랑을 잘라내고 도려냈을 사연이 선명하다. "당신이 있고 쉼표가 있고 그 옆에 내가 있는 문장 나와 당신 말고는 누구도 쓴 적이 없는 문장을 더는 읽을 수 없는 곳에서 나는 깜빡이고 있습니다. 10 " 사랑은 그런 것이다. 사랑하지 않으면 절망에게 지는 것이다. 반송 타전의 전말 당신, 이라는 문장 첩첩산중 잠복 부재중 통화 어제 매장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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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신은 뜨거운 별에 탄산음료 회사가 운영하는 금성 탐사선에 탄 엄마와 반항적인 딸이 계획한 탈출은 성공할 것인가? 인간은 싸고, 무게도 150파운드밖에 나가지 않는 비선형 다목적 시스템이다. 그것도 비숙련 노동자가 대량생산할 수 있는. (32) 다른 사람이 답안을 알려준 정답과 자신이 선택한 오답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후자다. 사람은 오답을 선택하면서 그 자신이라는 한 인간을 쌓아가는 것이다. (62) 2. 외합절 휴가 외합절 휴가 기간에 일어난 돌발상황에 휘말려 고군분투하는 화성 토박이 여성 공무원의 마지막 결정은? 중심이란, 경계선이 명확한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게 어디가 됐든 자신이 닿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 수 있었다. (84) 평생 지구 구경은 못 하겠네. 이제 누가 봐도 반역자로 보이겠지. (158) 3. 얼마나 닮았는가 인간과 합일한 인공지능이 묻는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여자 말 안 듣는 사내놈들은 쌔고 쌨어. (246) 야만이 그 정신의 반이라면, 그 야만을 다스리는 데에 나머지 반을 쓴다. 인간이란. (265) 4. 두 번째 이모 아버지와 어머니로 나눠 싸우는 인공지능도 인간을 닮았다.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어머니들의 불가해성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순수한 거대 인공지능의 초연함은 오히려 안심이 됐다. 진짜로 두려운 건 어느 정도 이해가 되는 아버지들이었다. 그들은 이성과 광기가 최악의 방식으로 결합된 존재들이었다. (286) 이 거대한 신들의 놀이터에서 자유인이란 것이, 스스로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342) 네 작가가 태양계 행성을 배경으로 쓴 인류 미래사. 사인사색의 소설인데 여성이 세상을 구한다는 공통된 메시지가 읽혔다. 그렇다면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을까?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장강명, 배명훈, 김보영, 듀나/한겨레출판 20170815 356쪽 13,000원

시인의 말 - 송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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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버스를 기획했다는 죄목으로 부산구치소 0.7평 독방에 갇혔을 때 비로소 자유의 참맛을 알았다. 하루 세끼 변기통에서 식기를 세척하다보면 마음이 한없이 소박해지고 깨끗해졌다. 하루 사십분 창살 틈으로 들어왔다 가는 '다람쥐 꼬리'만 한 햇빛에 얼굴을 내밀어 해바라기하는 일이 놀라운 일이었다. (...) 악독하고 비참한 일들도 많은 세상이지만 그보다 더 존엄하고 아름다운 일들로 가득찬 게 이 생명의 별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어떤 경우에도 우리가 살아가며 배우지 말아야 할 말 중 하나는 '절망'일 것이다. 나는 한국인이 아니다/송경동/창비 20160222 176쪽 8,000원 가장 가파른 곳에 서본 사람들은 안다 관념보다 귀한 게 물질임을 노동이 사람을 얼마나 사람답게 하는 것인지를 1 신고만 받고 AS는 단 한 번도 안하는 저 국가에는 항의도 못해보면서 조금씩 조금씩 낡아간다 2 이기고 지는 것만이 무엇을 이루고 못 이루고만이 인생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는 삶의 시간들 3 더이상 이 모욕적인 세상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4 사랑은 한번도 늙은 채 오지 않고 단 하루가 남았더라도 우린 다시 진실해질 수 있다 5 이 위대한 국가가 오늘 기를 쓰고 밀어내는 것이 우리가 그토록 기다려왔던 내일임을 고마워하자 6 사회의 모든 곳에서 '안전'의 자리를 덜어내고 그곳에 '무한이윤'이라는 탐욕을 채워넣었다 7 제국주의가 포탄으로 이룬 세계화를 우린 사랑과 연민이라는 아주 오래된 재래식 무기로 이룰 것이다 8 내 삶의 저작권도 실상은 내게 있지 않다 9 일을 할수록 더 빈곤해지는 나이도 먹기 전에 쓸모없어지는 죽어서도 생계나 공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동물들 이야기 10 다시 돌멩이를 들지 않고 다시 스크럼을 짜지 않고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디 있나요 11 세월이 흘러도 양철북처럼 키가 자라지

지구에 대한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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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전 세계에서 3억 4000만 톤의 플라스틱 제품이 생산된다. (8) 플라스틱이 어디에나 사용되는 까닭은 그것이 대체한 천연 물질보다 품질이 좋아서가 아니라 가볍고 저렴하기 때문이다. (...) 강철이 건축의 지평을 넓힌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플라스틱은 이제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저렴한 일회용 문화를 가능하게 해줬다. (11) 유리, 철, 알루미늄은 거의 무한정 녹이고 개조해도 처음과 똑같은 품질의 신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반면 플라스틱은 재활용을 할 때마다 품질이 뚝뚝 떨어진다. 플라스틱병을 재활용해도 같은 품질의 플라스틱병을 만들 수가 없다. (31) 전 세계의 플라스틱 생산량은 1995년 1억 6000만 톤에서 2018년 현재는 3억 4000만 톤으로 치솟았다. (32) 열대 기후에서 자라는 기름야자나무의 열매를 이용해 만드는 이 오일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유용하게 사용되는 팜오일이다. 2050년이 되면 다시 네 배가 더 늘어 2억 4000만 톤에 달할 전망이다. 팜오일 생산에 이용되는 대지 면적은 경악할 만한 수준이다. 팜오일 재배 면적은 지구 전체 농경지의 1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150개국에서 30억 명의 사람들이 팜오일이 함유된 제품을 사용한다. 세계적으로 1인당 매년 8킬로그램의 팜오일이 소비되고 있다. (38)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의 팜오일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해 왔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연간 생산량은 1520만 톤에서 6260만 톤으로 네 배가 늘어났다. (39) 야자를 다른 오일로 대체하게 되면 오히려 삼림 파괴만 가속될 뿐이다. 단위 면적당 산출량에 있어서 야자를 따라올 만한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다. (61) 에어컨은 현재 세계 3위의 탄소 배출국 인도와 같은 수준인 연간 2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내뿜을 것이다. (...) 더워질수록 더 많은 에어컨을 만들고, 에어컨이 많아질수록 온도는 더 올라간다. (68) 이상적인 실내온도로 알려진 기준은 오랫동안 에어컨 기술자들이 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