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Showing posts with the label 책갈피

신자유주의의 좌파적 기원

Image
1991년 소비에트 연합의 몰락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전 지구적으로 승리했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으로 보였고, 이는 국가사회주의의 해체 그리고 전 세계에 걸친 시장 및 민주적 개혁의 실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전 세계를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았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결코 헤게모니의 저거너트 1 가 아니며, 오히려 그것이 공격했던 바로 그 사회주의라는 대안적 체제에 붙어 기생하며 자라난 것임을 시사하고자 한다. (19) 나는 신자유주의를 시장, 국가, 기업, 인구 등을 조직하는 문제에 대한 정부 정책을 형성하는 아이디어들의 집합이라고 정의한다. (23) 훗날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시카고학파의 경제학자가 되는 로널드 코스가 1930년 LSE의 한 수업에 들어왔고, 그 수업에서 그는 신고전파 경제학 그리고 그것이 자유시장 경쟁을 옹호하는 논리를 처음으로 배우게 된다. 그 과목의 교수였던 아널드 플랜트는 모든 종류의 경제계획에 반대했으며 시장의 가격 결정 시스템이야말로 최적의 조정 메커니즘이라고 이해했다. 코스는 아주 먼 훗날 그 당시 자신이 '사회주의자'였음을 회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사회주의에 대한 나의 공감과 플랜트 교수의 접근법을 어떻게 화해시켰는지 궁금할 것이다. 짧게 대답하자면, 나는 그 둘을 화해시킬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는 미국에서 연구로 1년을 보내는 동안 기업 자체가 "작은 계획사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약 교수들이 가르친 대로 정말 가격만 있으면 경쟁적 시장경제가 기능할 수 있다고 한다면, 어째서 비시장적인 권위적 위계조직인 기업들이 존재하는 것인가? (71) 신고전파 경제학은 1870년대의 시작부터 순수한 경쟁적 시장이 최적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전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1890년대가 되면 신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순수한 자유시장과 중앙계획이 수학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 결과 시장과 사회주의국가는 둘 다 신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가

Image
정체성은 항상 '당사자'와 넓은 환경의 상호작용이 만들어내는 산물이요 구조이다. 형식적으로 하나의 정체성은 꽉 차거나 텅 빌 수 있고, 개방적이거나 패쇄적일 수도 있고, 안정되거나 불안할 수도 있다. 정체성의 내용은 한 집단이 공유하는 견해와 이데올로기, 전문 용어로 '특정 문화의 더 큰 서사'에서 나온 규범과 가치가 다소간 연관된 전체이다. 이 전체가 결정적으로 변화할 경우 이에 바탕을 둔 정체성 역시 변화할 것이다. (44) 삶을 힘들게 하는 온갖 구질구질한 규정들 탓에 우리는 윤리의 원래 의미를 놓치고 있다. 정확히 말해 규범과 가치는 자신의 신체 및 타인의 신체를 대하는 방식이다. 동시에 우리가 누구인지를 결정하기에 우리 정체성의 중요한 일부로 보아야 한다. (49) 진화가 곧 진보라는 가설의 주요 논리는 우리가 누리는 삶의 질이 우리 조상들과 비교할 때 개선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논리가 무엇보다도 기술 진보만을 고려한 것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 진화는 근본적으로 진보가 아니며, 적자(적자생존)는 성공과 동의어가 아니다. (71) 적자생존이라는 말은 흔히 다윈이 처음 쓴 말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다윈의 진화론을 상당히 좋은 말로 바꾸어 사회에 적용한 당대의 가장 영향력 있는 학자 허버트 스펜서의 말이다. 진보로 이해된 진화는 우연히 변화에서 나타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우연에만 목을 맬 이유는 없다. (...) 이로써 진화 사상에서 중요한 측면이 보강된다. 우리가 변화를 조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것도 주로 올바른 방향으로 말이다. 이것이 19세기 말에 등장한 이데올로기, 사회진화론의 의미와 목표다. (...) 다윈이 말한 적자는 "가장 환경에 잘 적응한" 자였다. 그런데 스펜서를 거치면서 "가장 성공한", "가장 강한" 자로 의미가 변했다. (73) 사회진화론의 최신 버전인 신자유주의는 자연 대신 '시장

독보적인 저널리즘

Image
뉴욕타임스는 보다 내실 있는 뉴스 콘텐츠를 제공해 전 세계 수백만 명의 독자들이 기꺼이 유료로 우리의 콘텐츠를 구독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더 안정적인 사업방식이라고 믿는다. 이런 방식이 뉴욕타임스가 오랫동안 추구해 온 저널리즘의 가치와 더 부합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성과가 뉴욕타임스를 더욱 돋보이는 언론사로 거듭나게 만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17) 실수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저널리즘에 대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오직 한 가지 길만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한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미래에 대한 구상을 게을리한다면 결국 뒤처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19) 독자가 외면하는 콘텐츠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①경쟁사와 차이가 미미한 기사 ②시급하지 않은 기획 기사와 칼럼 ③명쾌하지 못하고 난해하며 원론적인 글 ④사진·동영상·표로 대체해야 할 긴 글로 구성된 기사 (26) 가장 가독성이 떨어지는 기사는 '뻔한' 기사들이다. 최소한의 요건만 갖추고 시각적 효과는 없으며 경쟁사 기사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는 기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뻔한 기사들은 다른 언론사에서도 공짜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독자들이 굳이 이런 기사를 보기 위해 구독료를 낼 리는 없을 것이다. (26) 과거엔 뉴욕타임스가 일부 분야에서만 경쟁사보다 우위를 보여도 큰 상관이 없었지만, 이제 더 이상 이런 방식이 통하진 않을 것이다. 인터넷 중심의 저널리즘은 진부함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42) 뉴욕타임스의 목표는 경쟁사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콘텐츠를 제공해서 이에 매혹된 수백만 명의 독자들이 모여드는 '뉴스의 종착지'가 되는 것이다. (43) 다양성이란 다인종, 여성, 지방 인재, 젊은 인재, 외국인 등이 포함되는 개념이다. 다양성을 보유한 구성원들을 받아들여 편집국 전체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은 양적으로 풍부하고 질적으로 깊이 있는 기사를 만들기 위한 필수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44) 기사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

Image
김혼비 작가의 《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를 재미있게 읽고 팬이 됐습니다. 축구에 이어 술 이야기를 쓴 《 아무튼, 술 》을 읽고 다음 글을 기다렸습니다. 이 책은 일곱 명의 작가가 쓴 글이지만 김혼비 작가가 쓴 글을 집중해서 읽었습니다. 고양이 토토를 잠시 맡긴 친구가 토토를 잃어버리자 '슬픔과 원망과 분노를 누르고 친구가 가진 죄책감의 무게와, 그 무게를 유독 혹독히 짊어지고 살 게 분명한 친구의 성정을 헤아리'며 '경계선을 넘지 않고 그 바깥에 단단하게 서서 호흡을 고르며 다른 걸 볼 줄 아는(21)' 어른이 되자는 일화는 닮고 싶습니다. '지구상의 중요도에 있어서 김도 못 되고, 김 위에 바르는 기름도 못 되고. 그 기름을 바르는 솔도 못 되는 4차적인 존재이지만, 그래서 범국민적인 도구적 유용성 따위는 획득하지 못할 테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그 잉여로우면서도 깔끔한 효용이 무척 반가울 존재(55)'인 김솔통을 보며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다"라고 했습니다. 적어도 내게는 김솔통 그 이상의 작가입니다. '관심이란 달짝지근한 음료수 같아서 한 모금만 마시면 없던 갈증도 생긴다는 것을, 함께 마실 충분한 물이 없다면 건네지도 마시지도 않는 편이 좋을 수 있다(96)'는 말을 곱씹어 봅니다. 너랑 나랑 합치면 우주가 된다며 궁합을 해석하거나 캐리어가 두 개로 늘어나게 만든 반려인 T에게는 감탄을 금하지 못했습니다. 커피의 쓴맛을 보려다가 자전거의 단맛까지 알게 되어 '술이 삶을 장식해 주는 형용사라면 커피는 삶을 움직여 주는 동사'로서 '형용사는 소중하지만 동사는 필요(294)'하다고 했으니 조만간 《아무튼, 커피》라는 글로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김혼비는 우아하고 호쾌한 비유로 휘몰아치는 재미를 주는 작가입니다. 늘 다음을 기다립니다. 내가 너의 첫문장이었을 때/김혼비 외/웅진지식하우스 20200701 364쪽 15,000원

휴머니멀

Image
어린 코끼리를 작은 나무 우리에 가둔 뒤 꼬리와 귀, 다리를 꽁꽁 묶고 24시간 내내 때리거나 송곳으로 찌르며 고통을 가하는 학대나 고문에 가까운 훈련 과정을 '파잔'이라고 한다. '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13개 국가가 파잔으로 코끼리를 조련한다(27)'. 이렇게 조련된 코끼리는 쇼나 노역에 동원된다. 이런 코끼리는 '인간의 학대에 길들여져 오히려 동족을 두려워하게 된(36)'다. '아시아 코끼리와 인간의 관계를 학대라는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면, 아프리카 코끼리의 경우는 밀렵이다(45)'. 밀렵꾼은 총을 쏴 코끼리에게 부상을 입힌다. 그리고 척추부터 전기톱으로 끊는다. 코끼리의 신경을 마비시켜 항거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이들은 코끼리에게 덜 고통스러운 죽음을 선사하는 자비 따위는 베풀지 않는다. 코끼리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전기톱으로 코끼리의 머리를 통째로 잘라내 버린다. 이유는 간단하다. 상아를 조금이라도 길게 뿌리까지 꺼내기 위해서(57)'이다. 마찬가지로 코뿔소도 얼굴 윗부분까지 깊숙이 베어 간다. '식용이나 상업적인 목적이 아니라 레저와 전시를 목적으로 동물을 사냥하는 행위를 트로피 헌팅(trophy hunting)이라고 한다(89)'. '트로피 헌터들은 헌팅이 단순한 쾌락을 위한 게 아니라 야생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행동이라고 주장한다(123)'. 그들이 사냥하기 위해 낸 돈이 정부와 지역사회로 흘러 들어가 자연과 동물을 보호하는 데 사용된다는 논리다. '2013년 세계야생동물보호기금(IFAW)의 보고서에 따르면, 헌팅 관광으로 발생한 전체 수입 중 지역사회로 유입된 비율은 고작 3%에 불과하다(144)'고 밝혔다. 사자의 영역을 침범한 인간은 사자를 직접 죽이기 시작했다. 인간이 동물 서식지를 침범해 가축을 키우자 야생 동물이 다른 곳으로 밀려났다. 사냥감이 줄어든 사자는 쉽게 잡을 수 있는 소를 사냥하기 시작하자

케이채의 모험

Image
사진 한 장 없는 책이지만 오히려 사진작가 케이채의 모험이 눈 앞에 선하다. 모기가 없어 택한 아마존의 검은 강 지역에는 동물도 없었다. 하얀 강가는 검은 강가에 비해 동물이 많았지만, 모기만큼 많지는 않았다. 모기와 사투를 벌이며 나무늘보를 찾아다녔지만 소득이 없었다. 정작 나무늘보는 아마존을 떠나기 전날 숙소 창문 앞에서 볼 수 있었다. "난 여기 있는데 어딜 쏘다니다가 이제 온 거야?(20)" 창문 앞에 나타난 나무늘보가 말하는 것 같았다. '언론 혹은 정치인들이 위험한 곳이라고 색칠해놓은 곳에도 보통 사람들의 삶이 존재한다(26)'. 분쟁 지역인 파키스탄 페샤와에서 아이폰을 도둑맞았기 때문에 눈부신 장면을 만났다. '좋은 일은 물론 나쁜 일들까지 모두 다 하나도 빠짐없이 차곡차곡 쌓여(31)' 특별한 한 장을 찍었다. '국경은 인간을 나누려 하지만 우리가 마음을 나누는 것까지 막을 수 없을 것이다(39)'. '아프리카처럼 오해를 많이 받는 대륙(42)'은 없다. 세상을 여행하며 만난 잊지 못할 밤들은 '대부분 무엇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 어둠 속에 존재했기 때문(51)'에 아름답다. 모리타니에서 철광석을 싣고 열두 시간을 달리는 기차를 탔다. 내릴 때 철가루가 몸에서 날렸지만 완벽하고 완전한 자유를 느꼈다. 무장경찰 두 명의 경호(?)를 받으며 떠났지만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한 장도 찍지 못한 팀북투 여행이지만 함께 찍은 사진 한 장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펭귄을 만나러 떠난 남극, 솔렙 신전에 있던 두 마리 사자를 찾아 대영 박물관에서 안부와 함께 수단 소식을 전했던 일 그리고 북극곰을 만나러 떠난 알래스카는 그대로 따라하고 싶다. 100개국을 사진에 담고 싶어 지금까지 85개국을 여행한 겁이 많은 사진작가, 케이채. '사진가는 사진을 찍을 때보다 사진을 찍지 않아야 할 때를 아는 사람(52)'이라던가 '어떤 사람들은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Image
여자는 언제나 자기가 면도하는 최초의 시신을 기억하게 마련이다. (27) 오늘날, 시체를 억지로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은 선진국에서만 누리는 특권이다. (...) 선진국에서는 이렇게 망자와의 달갑잖은 만남을 막는 체계를 만들어놓았다. (89) 문화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충격적이고 우리의 개인적인 의미망에 도전하는 힘을 지닌 죽음 의례가 있다. (130) 나는 일종의 우주의 대출 프로그램에서 내 심장이며 발톱, 간과 뇌를 이루는 원자들을 부여받은 것으로 이해했다. 언젠가는 내가 이 원자들을 돌려줘야 할 때가 올 것이며, 내 미래의 시신을 화학적으로 보존함으로써 그 원자에 매달리려는 시도를 하고 싶지 않다. (236) 여러모로 여자들은 죽음의 자연스러운 벗이었다. 여자가 아기를 낳을 때마다 그 여자는 한 생을 창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한 죽음을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했다. (245) 문화는 인간의 커다란 질문인 사랑과 죽음에 대해 답해주기 위해 존재한다. (273) 우리는 언젠가는 죽을 거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시체들을 눈에 띄지 않게 숨기면, 죽음이라는 디스토피아에 한 발 더 들어가 헤매는 셈이다. 그런 선택을 한다는 것은 우리가 죽음 때문에 겁먹고 죽음에 무지한 채로 계속 살아갈 것이라는 뜻이다. (326) 나는 육체적으로 어떻게 죽을지를 선택할 수 없고, 오로지 정신적으로 어떻게 죽을지만 선택할 수 있다. (336)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Smoke Gets in Your Eyes, 2014 /케이틀린 도티 Caitlin Doughty /임희근 역/반비 20200122 360쪽 18,000원 20대에 장의사 일을 했던 저자가 서로 다른 장의 문화와 산업이 된 장의사 세계를 알려준다. 유쾌하지는 않지만 신랄하게 죽음을 안내한다. 살아 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다면 어떻게 죽을지 미리 생각하게 만든다.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적어도 '항공사 마일리지가 적립(153)'되는 죽음은 피하련다.

오늘만 사는 여자

Image
'술에 취하면 기억이든 고통이든 잘 사라지는데 이게 극한까지 가면 객사(24)'한다. 객사가 꿈인 직장인은 '잘못을 안 하는 것보다 잘못을 인정하기(56)'가 더 어려운 나이가 됐지만 아침마다 대출 이자를 벌려고 출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아름다우면 밤이 될 때까지 놓아주지 못하고 부여잡고 있겠느냐(68)'며 낮술을 마신다. 팬보다 편이 점점 적어지는 나이지만 '음주는 생활이요, 노래방은 취미(146)'이다. 통장은 일품진로처럼 투명하지만 걸스, 비 앰비셔스를 외친다. 더이상 죽어라 일하지 말고, 죽어라 술은 먹자는 말에 적극 동의한다. 스페인에 시에스타가 있고, 이탈리아에 한 달 유급휴가가 있으니 대한민국 직장인에게는 낮술을 주자는 제안은 솔깃하다. 한 달 벌어 한 달 사느라 내일을 생각할 겨를이 없어 오늘만 사는 술꾼은 '말 통하는 친구와 말 안 통하는 나라에서 허술한 민박집을 하며 종일 취해 있는 미래'를 꿈꾼다. 오늘도 달리는 술꾼들이여, 비 앰비셔스! 오늘만 사는 여자/성영주/허들링북스 20200615 208쪽 13,800원

제주 걷기 여행

Image
제주 올레가 어떠냐고 건축가 김진애 박사가 툭 던지며 제주 올래?라는 의미도 있다는 말에 길 이름이 정해졌다. '밀실에서 광장으로 확장되는 변곡점, 소우주인 자기 집에서 우주로 나아가는 최초의 통로가 올레다. 자기네 집 올레를 나서야만 이웃집으로, 마을로, 옆 마을로 나아갈 수 있다. 올레를 죽 이으면 제주뿐만 아니라 지구를 다 돌 수도 있다. 제주를 걷는 길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었다(41)'. '몇 시까지 어디에 반드시 당도해야 한다는 속박에서 벗어나야만 진정한 올레꾼, 진정한 간세다리(게으름뱅이)가 될 수 있다. 당신, 시계를 자주 들여다보게 되는가. 그렇다면 아직도 숙제하듯 여행한다는 증거다. 무릇 여행자라면 그 공간 그 시간에 머무를 줄 알아야 한다(100)'. 재기재기(빨리빨리) 걷지 말고 늘짝늘짝(느릿느릿) 걸으며 간세다리가 돼야 진정한 올레꾼이다. 제주 걷기 여행/서명숙/북하우스 20080901 440쪽 15,000원

민주에서 진보로

Image
정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다. 다시 말해 자원을 어떻게 분배해야 바람직한지, 그 우선순위에 따라 정책 방향을 조정하는 일이다. 선거는 그 일을 잘할 것 같은 정당과 후보를 선택하는 것이다. (22)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인간의 생명과 건강, 안전의 중요성에 대하여 새삼 주목하게 된다. '인간 안보'(human security)에 대한 자각이다. 인간 안보의 개념은 1994년 유엔개발계획(UNDP)의 〈인간개발보고서〉를 통해 국제 사회에 통용되기 시작했다. 유엔개발계획은 인간 안보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인간 안보란 지속적인 기아, 질병, 범죄, 억압 등으로부터의 안전이며, 가정이나 직장 등 사람들의 일상을 갑작스럽고 고통스럽게 파괴하는 위협으로부터의 보호이다." (26) 코로나19 팬데믹은 그동안 가려져 있던 부의 불평등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코로나19 다음 팬데믹은 불평등'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코로나19가 세상을 바꾸는데 단 3개월이 걸렸지만,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수많은 사람의 삶이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42) 피케티는 불평등이 자연적인 원인에서 비롯됐다거나 기술변화에 따라 축적된 것이 아니라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심화됐다고 지적한다. 모든 체제는 정치와 이데올로기를 동원해 불평등을 제도화·정당화시켰고 법과 세금, 사유재산, 교육 체계를 통해 불평등을 심화시켜 왔다. 그는 모든 불평등 사회란 불평등을 정당화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생산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정당화는 사유재산의 신성화로 귀결되며, 사유재산권을 신성불가침의 금기로 여기는 사회에서는 불평등이란 불가피한 것으로 간주된다. (44) 오늘날의 주요 인터넷 비즈니스 모델은 대량 감시를 기반으로 한다. 감시 자본주의는 대량 감시를 통해 획득한 빅데이터를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

Image
주인공 M은 마흔여덟 번째 면접을 본다. '지금은 과자를 싫어하는 사람도, 과자 회사가 사원 모집 공고를 낸 이상 거기에 지원하는 것이 의무가 된 세상(24)'이라 취향에 따라 입사 지원서를 낼 수는 없다. 책은 한 편의 소설이자 연극이다. 주인공 M에게 남은 건 '부모 세대가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이 애매한 과거라면 자식 세대가 증명할 수 있는 것은 더 애매한 미래(30)'뿐이다. '그림을 그릴 능력은 있어도 그림을 살 능력은 없(226)'는 M이 관객에게 묻는다. - 도대체 왜 나 혼자만 절규하는 거야?(252) 언제든지 '집을 지어 주면서 동시에 집을 빼앗(74)'을 수 있는 면접관이자 관객은 이렇게 대답한다. - 이게 면접이기 때문입니다.(45) 면접에 합격 한 M은 연수원에 입소했다. M은 우연히 발견한 평가 파일을 보면서 돌발행동을 보인다. 연수원 합숙이 3차 면접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급기야 평가 파일을 훔쳐보다 살인까지 하는데... M은 살인자일까 도둑일까? 3차 면접에서 돌발 행동을 보인 MAN에 관하여/박지리/사계절 20171215 264쪽 13,000원

원예가의 열두 달

Image
만일 원예가가 천지창조의 시초부터 자연도태에 의해 발달해 왔다면 틀림없이 무척추동물로 진화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 때문에 원예가에게 등이 있는 것일까? 아마도 이따금씩 구부렸던 몸을 일으키고 "등이 아프구나!"라며 한숨을 내쉬기 위해서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45) 원예가는 문명이 만들어낸 인종이지 결코 자연도태의 결과물은 아니다. 즉, 만일 원예가가 자연에서 진화했다면 그 겉모습이 지금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우선 무엇보다 쭈그리고 앉지 않아도 되도록 딱정벌레 같은 다리를 갖고 있을 것이며 어쩌면 날개도 달려 있을지 모른다. 정말 이렇게 생겼다면 보기에도 예쁘고 화단 위를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74) 만약 원예가의 소원을 닥치는 대로 들어 줄 수 있는 악마와 계약을 할 수만 있다면, 원예가는 틀림없이 그 악마에게 자신의 영혼이라도 팔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운수 사납게도, 악마는 원예가의 영혼을 터무니없는 헐값에 사려고 들 것이다. (149) 일류 원예가나 재배가는 거의 대부분 술이나 담배를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들은 품행이 방정한 사람들이다. 큰 범죄를 저질러 역사상 유명해진 사람도 없고, 전쟁이나 정치판에서의 공적으로 유명한 사람도 없다. 단지 유명해져야 한다면 신종 장미나 달리아나 사과만이 원예가의 이름을 남겨 줄 수 있다. 이 명성, 보통은 무명이거나 다른 이름에 가려지거나 둘 중의 하나이지만 원예가에게는 이 명성만으로도 삶의 의미가 충분해진다. (158) 자신의 발 아래를 내려다보며 정말 질 좋은 흙이라고 감탄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때문에 당신은 당신이 밟고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손바닥만한 크기의 정원이나마 하루 빨리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면 아무리 아름다운 구름이라도 당신이 밟고 있는 발 아래의 흙만큼 변화무쌍하게 아름답지는 못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167) 미래는 우리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여기 와 있다. 미래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

Image
산업혁명 이후 지금까지의 시간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가장 어리석고, 자기파멸적인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지난 2~3세기 동안 이른바 문명세계가 산업문명을 통해서 이룩했다고 하는 높은 수준은 실은 인간사회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끊임없이 찢고 할퀴는 난폭한 짓을 되풀이함으로써 얻어진 부산물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7) 광산이 근대적 산업노동의 원형이라면, 근대화된 노동이란 본질적으로 강제노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어떠한 정신적 고양도 심미적 쾌락도 따르지 않는 괴롭고 지겨운 노역일 뿐이다. (17) 실제로, 경제발전은 민중의 '빈곤'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빈곤의 근대화'를 초래한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 자본주의시스템은 원래 '빈곤'을 제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다. (24) 광우병 문제에 관련해서 생각해보아야 할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우선 이것이 실은 '미친 소'의 문제가 아니라 '미친 인간'의 문제라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이것은 탐욕 때문에 제정신을 잃고 자연의 순리를 간단히 무시해온 인간들의 문제이지, 아무 죄 없이 비좁은 우리에 갇혀 끝없이 학대받아온 소들의 문제일 수 없는 것이다. (36) 오늘날 1인분의 쇠고기 생산을 위해서 20인분의 곡물이 투입되고 있고, 1칼로리의 쇠고기를 생산하는 데 보통 35칼로리의 석유가 소모되고 있다. 그 결과는 전 세계적으로 10억의 비만 인구와 10억의 기아 인구의 공존이라는 비극적 현실이다. (39) 전진한 선생은 (...) 자본가가 돈을 출자했다면 노동자는 자기의 '노력'을 출자한 또 하나의 '자본가'라고 선언합니다. 노동자도 출자자라는 거죠. 출자자와 출자자는 기본적으로 대등한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거기서 생기는 이익을 고르게 나누는 것, 즉 균점(均霑)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정당한 권리다, 이런 논리죠. '노동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

Image
학벌은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영역의 배후에서 한국 사회를 작동시키는 핵심적인 개념이다. 따라서 학벌문제를 통해 우리 사회를 분석하는 것은 한국 사회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를 학벌사회Hakbul society라고 명명할 때, 사회학적 측면에서 그것은 변형된 신분제적 가치와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를 말한다. 정치학적 측면에서는 사회적 권력의 배분이 학벌이라는 네트워크에 의해 이루어지는 파당적 요소로 분배되는 붕당(朋黨)적 사회를 뜻한다. 경제학적 측면에서는 한 사회가 생산해내는 부와 권력을 소수 학벌집단이 지대추구rent-seeking 행위를 통해 독점적으로 차지하는 독과점사회를 말하며, 문화적 측면에서는 학벌이라는 집단적 편견이 개인의 인간관계 형성이나 결혼, 취업 등 일상의 모든 영역에 파고들어 문화적 심리적 갈등을 빚어내는 갈등사회를 의미한다. 학벌사회는 좀더 일반적인 개념인 학력사회credential society와 구별된다. 학력사회가 학력 즉 제도권 교육의 이수 연한 정도에 따라 증명서를 발급하고 이에 의해 사회적 차별이 이루어지는 사회라고 한다면, 학벌사회는 사회적 불평등을 넘어 문화적 봉건성과 맞닿아 있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즉 학벌이란 아직 개인 중심의 시민사회가 정착되지 못하고 집단 소속에 의해 개인의 사회적 위상이 정해지는 집단적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수 현상이다. (15) 이십여 년 전 얘기지만 지금은 더 공고화됐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하나의 권력이자 신분이며 사회적 관계를 뜻한다(9)'. 지식인은 학벌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말하지 않고, 오히려 이 학벌사회의 수혜자들이 됐다. 몇몇은 오히려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두둔하고 있다. 책은 대학평준화나 대학입학추첨제와 같은 혁명적인 방법을 언급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사적·공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결정과정의 배후에 학벌 카르텔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시 변화의 동력은

섀클턴의 위대한 항해

Image
1907년에서 1909년, '섀클턴은 남극점을 목표 지점으로 선언하고 첫번째 탐험대를 인솔(23)'하고 떠났지만, 최종 목적지를 156킬로미터를 남겨 놓고 식량 부족으로 철수했습니다. 그 후 피어리가 1909년에 북극점에 도달했고, 1911년 말부터 1912년 초까지 아문센과 스콧이 남극점에 도달하자 남극 대륙을 횡단하는 탐험만 남았습니다. 섀클턴은 탐험대를 남극으로 데려다 줄 배를 두 척 사서 한 척에 '인듀어런스(Endurance)'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마침내 '인듀어런스 호는 1914년 10월 26일 오전 10시 30분에 마지막 기항지인 남아메리카 최남단의 무인도 사우스조지아 섬을 향해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출항(35)'했습니다. '인듀어런스 호는 1914년 11월 5일 사우스조지아 섬의 그리트비켄 포경 기지에 도착(38)'했습니다. 웨들 해의 얼음 상태가 최악이었지만 12월 5일 사우스조지아 섬을 출발했습니다. 배 위에는 예순아홉 마리의 에스키모 개와 개에게 먹일 1톤의 고래고기가 걸려 있었고, 중앙 갑판에는 수 톤의 석탄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1915년 1월 18일. 느리게 남쪽으로 전진하던 인듀어런스 호는 얼음에 갇혀버립니다. 10개월 동안 부빙군에 갇혀 표류하던 배가 가라앉기 시작하자 10월 27일 대원들은 인듀어런스 호를 탈출했습니다. '위치는 남위 69도 5부. 서경 51도 30부(21)'였습니다. 11월 21일 오후 4시 50분. 인듀어런스 호가 순식간에 얼음 밑으로 사려져 갔습니다. 얼음 위에 캠프를 설치하고 물개와 펭귄을 잡아먹으며 생존했지만, 부빙은 안전하지 않았습니다. 안전한 부빙을 찾아 이동하는 생존이 계속됐습니다. 육지를 찾아 헤맨 끝에 1916년 4월 24일(?) 엘리펀트 섬에 도착했습니다. 섀클턴은 다섯 명의 대원과 함께 배를 타고 1400킬로미터 떨어진 사우스조지아 섬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들이 출발했던 곳으로 가서 구조를 요청할

나무 이야기

Image
가장 오래된 나무는 3억 8500만 년 전에 자라난 양치식물 와티에자(Wattieza)로 알려졌다. 공룡보다 1억 4000만 년이나 먼저 등장했다. 약 39만 1000종으로 추정되는 관다발 식물 가운데 4분의 1 정도만 나무로 볼 수 있다. 은행나무(Maidenhair Tree)는 고릿적 모습을 2억 년이나 변함없이 간직한 채 살아남은 유일한 나무다. 살아 있는 화석이다. 수령이 최소 1000년 이상이고, 최대 높이는 35미터이다.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발 중심지로부터 불과 1킬로미터 거리 내에 있던 최소 6그루의 은행나무가 되살아 나기도 했다. 무화과(Fig)는 지구에서 가장 오래전부터 재배한 과일이다. 무화과나무 꽃은 과실 속에서 피어 눈에 띄지 않는다. 흙이 거의 없는 돌무더기에서도 잘 생존한다. 창세기에 금단의 과일은 먹은 아담과 이브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다고 한다. 유칼립투스(Tasmanian blue gum) 오일은 가연성이어서 떨어진 껍질이나 낙엽은 산불을 키우는 불쏘시개다 된다. 숲이 다 타고 불이 꺼지면 경쟁 수목은 대부분 제거되어도 그슬린 껍질 맡에 잠들어 있던 유칼립투스 싹은 다시 돋아나곤 한다. 아보카도(Avocado)는 선사시대 거대 동물의 먹거리였다. 올리브나무(Olive)는 최소 2만 년 전부터 재배했고, 투탕카멘의 3300년 된 석관에서 올리브 잎 화관이 발견됐다. 개암나무(Hazel)는 베어도 베어도 자꾸만 되살아나는 악착같은 나무다. 호두나무(English walnut)는 BC2000년 경 바빌론의 공중 정원에서 자랐다는 기록이 있다. 성숙한 대추야자나무(Date Palm) 1그루는 1년에 70~140킬로그램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의 대추야자를 생산할 수 있다. AD 73년 유대인들이 남긴 음식물에서 발견한 대추야자를 땅에 심었더니 싹이 텄다. 뽕나무(White mulberry)를 먹고 자란 누에고치 하나로 300미터의 실을 뽑을 수 있다. 동방 박사가 아기 예수에게 바친

펭귄의 여름

Image
2017년 12월 12일. 푼타아레나스에서 오전 7시 칠레 공군기를 타고 남극으로 출발. 짝짓기를 마친 젠투펭귄은 작은 돌을 쌓아 둥지를 만듭니다. 사용된 돌의 개수는 '적게는 400개에서 많게는 600개(54)'가 넘습니다. 둥지가 완성되면 2개의 알을 낳아 암수가 번갈아가며 품어줍니다. 여름이와 겨울이는 펭귄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젠투펭귄인 아빠 세종과 엄마 남극이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여름이가 죽었습니다. 건강하게 자라던 여름이는 둥지 가장자리에 죽은 채 쓰러져 있었습니다. 죽은 원인은 알 수 없습니다. 여름이 사체는 도둑갈매기에게 먹히고, 다시 도둑갈매기 새끼를 부양할 것입니다. 혼자 남은 겨울이는 몸무게 1.9킬로그램으로 활동적으로 움직였습니다. '알에서 깨어난 새끼 2마리 가운데 젠투펭귄은 평균 1.14마리, 턱끈펭귄은 평균 1.33마리가 살(202)'았습니다. 바다로 떠난 지 45시간이 넘도록 아델리펭귄 A02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붙인 장비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며 '남겨진 암컷, 굶고 있을 새끼에게도 죄책감(123)'이 들었습니다. 며칠 후 번식지를 찾았지만 'A02가 있던 자리는 비어 있었고 걱정했던 것처럼 짝과 새끼도 사라지고 없었(148)'습니다. 펭귄의 이혼율은 꽤 높습니다. '절반 이상의 번씩상이 이혼을 하는 것(178)'으로 보입니다. 이혼의 원인은 '부부가 새끼를 잘 키워내지 못했을 때 그 이듬해 각자 다른 짝을 찾을 확률이 높아진다(178)'고 합니다. 또 다른 변수는 짝이 번식지에 늦는다면 '먼 거리를 이동하느라 몸에 축적한 지방도 많이 소모한 상태이기 때문에 서둘러 짝을 찾고 먹이를 섭취(179)'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싫어서 이혼한다기보다는 다시 만나기 힘들어서 이혼하는 경우(179)'입니다. 강한 바람이 불고 파도가 높아지면 펭귄들도 쉽게 바다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

궁극의 탐험

Image
헨리 워슬리 Henry Worsley 는 55세에 세계 최초로 '단독 무지원' 남극 횡단에 도전했습니다. 2015년 11월 13일 자신의 영웅이었던 어니스트 섀클턴이 한 세기 전 실패했던 남극 대륙 횡단의 꿈을 품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굶어죽는 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길목에 음식을 미리 숨겨두지도 않고, 모든 식량을 썰매에 싣고서 혼자 힘으로 끌고 가는 것(14)'이었습니다. 1,600킬로미터가 넘는 여정입니다. 남극은 사막으로 분류됩니다. 강수량이 아주 적기 때문입니다. '평균 고도가 2,300미터로 가장 건조하면서 가장 높은 대륙'이고, '시속 320킬로미터의 강한 돌풍이 몰아치는 가장 바람이 많이 부는 곳이면서 내륙 온도가 영하 75도까지 내려가는 가장 추운 곳(85)'입니다. 워슬리의 첫 번째 남극행은 섀클턴이 지휘했던 배의 이름을 딴 니므롯 탐험 100주년을 기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새클턴의 후손인 윌 가우, 니므롯 탐험대의 부사령관이었던 제임스 보이드 애덤스의 증손자인 핸리 애덤스 그리고 새클턴의 탐험 대원이었던 프랭크 워슬리의 후손인 헨리 워슬리는 '섀클턴이 찍었던 가장 먼 지점에 정확히 100년 뒤인 2009년 1월 9일 도착한 뒤 남극점까지 걸어가(77)' 미완의 가업을 완수하는 계획입니다. 1908년 섀클턴 대원들이 남극으로 출발하기 전에 겨울을 나기 위해 지었던 오두막 에서 하루를 묵은 다음 날 아침인 2008년 11월 14일 오전 10시에 출발했습니다. 화이트아웃을 뚫고 크레바스를 건너며 마침내 2009년 1월 9일 '남위 88도 23분, 동경 162도 지점(132)'에 도착했습니다. 100년 전 섀클턴 일행 과 똑같이 서서 사진 을 찍었습니다. 영하 31도였습니다. 지체할 시간도 없이 남극점으로 향했습니다. 1월 18일 오후 4시 32분. 66일의 여정 끝에 워슬리 일행은 막대기 를 잡았습니다. 막대기는 '남극, 즉 경도 위의

나무의 말

Image
레이첼 서스만은 10년간 7대륙의 오지, 험지와 극지에서 살아가는 생명체를 찾아 사진을 찍고 기록을 했습니다. 책에 실린 생물이 모두 2,000살 이상인 것은 기원전에 태어난 생물로 정했기 때문입니다. '빠르고 맹렬하게 자라는 생물이 오래 살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반대인 경우(51)'가 많습니다. 브리슬콘 나무들은 수목 한계선 위쪽에서 사는데 '나뭇가지 딱 하나만 빼고 나머지는 다 죽은 것처럼 보이기(57)'도 합니다. 브리슬콘은 극단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생존해온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조건 덕분에 생존(57)'했습니다. 5,000살이 넘었습니다. 인류는 1만 2,000년 전에 농경과 목축을 시작했습니다. 무성 번식을 하는 크레오소트 관목과 모하비 유카는 이 무렵부터 삶을 시작했습니다. 크레오소트 관목은 '하나의 큰 몸통을 생장시키는 게 아니라, 느리지만 꾸준하게 자신을 복제해 생명을 지속(61)'합니다. 연중 기온이 영하 30도에서 영상 50도까지 오르내리는 모하비 사막에서 '비가 없어도 2년까지 생존(63)'할 수 있습니다. 유카는 '새순을 만들어낼 정도의 에너지(67)'만 모으며 삽니다. 파슬리와 친척인 야레타는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3,000년을 넘게 살고 있습니다. '아타카마 사막에는 인간이 강우량을 측정하기 시작한 이래 비가 단 한 방울도 오지 않은 지역(131)'도 있습니다. 고도 4,500미터에서 '바위를 덮고 있는 이끼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은 끄트머리에 작은 잎들이 엉켜 있는 수천 개의 줄기로 이뤄진 관목(134)'입니다. 그리스 크레타 섬에는 3,000년 전에 태어난 올리브 나무가 있습니다. 4년마다 이 나무에서 가지를 꺾어서 올림픽 월계관을 만듭니다. '첫 올림픽의 성화가 올랐을 때 이미 200살(182)'이었습니다. 꿀버섯이라고 불리는 아르밀라리아 오스토이아에는 버섯균입니다. 꿀버섯은 숙주를 죽게

나를 위로하는 그림

Image
클로드 모네와 카미유가 사랑했다는 건 알았지만 집안의 반대로 생고생을 했는지 몰랐습니다. 백여 년 후 나온 영화 〈러브 스토리〉는 그들이 환생한 것 같습니다. '카미유가 죽은 뒤 인상파는 몰락했다'는 말이 과분해 보이지 않습니다. 모네에게 카미유는 '영감의 원천이었고 영원한 사람이었으며 빛, 그 자체(115)'였으니까요. 10분도 지속하지 않는 짧은 저녁 풍경을 재현하려는 존 싱어 사전트는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를 그리려고 '여름 내내,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그림을 그리며 열정을 쏟아부었지만 끝내 그림을 완성하지 못(100)'했답니다. 이듬해 다시 돌아와 2년에 걸쳐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붓으로 찰나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시인(98)'인 화가 사전트는 그렇게 '순간의 미학을 보여주는 걸작(100)'을 그렸습니다. 늦은 나이란 없다는 걸 보여준 화가들이 있습니다. '원시적 예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화가 앙리 루소는 22년간 세관원으로 근무하다가 49세에 화가로 전업'했고, '루미니즘의 선구자 제임스 아우구스투스 수이담은 건축가와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37세'에 전업화가로 데뷔를 했습니다. 미국의 샤갈이라고 불리는 해리 리버맨은 은퇴 뒤 '노인클럽에서 만난 한 젊은 봉사자의 권유로 생애 처음 그림을 그'렸습니다. 77세에 화가로서 제2의 삶을 시작해서 '101세의 나이에 21번째 전시회(237)'를 열었습니다. '미국의 민속화가 그랜드마 모지스는 67세부터 그림을 그려 80세에 뉴욕의 한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고', '101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1,600여 점에 이르는 그림을 남'겼습니다. '열정이 있는 한 늙지 않(238)'는 삶을 살았습니다. 덴마크 지폐 1,000크로네에 있는 초상은 안나와 마이클 앵커 부부입니다. 기혼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이 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