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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시작한 미래

오늘 시작한 미래
  • 코로나19 재난은 플래시 포워드다. 우리에게 미래 세계를 잠깐 보여준 것이다. '잠깐'이라는 표현은 코로나 백신이 머지않아 개발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어쨌건 코로나19 재난은 '미래에 재난이 어떻게 일어나고, 재난이 일어났을 때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강요 받고,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게 될 것인지'를 보여준다. (9)
  • 너른 정원에 독초가 한 포기 자리 잡았다. 독초는 매일 두 배로 늘어난다. 정원의 주인은 게으름을 부리면서 정원의 절반이 독초로 채워지면 독초를 뽑기로 결정하였다. 이 주인에게 독초를 뽑을 수 있는 날은 며칠이나 남아 있을까? 단 하루다. 우리는 지구 멸망까지 단 하루가 남았을 때, 재난을 막는 행동을 하기로 겨우 합의하게 될지 모른다. (18)
  • 불평등이 줄어들면 생존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활동 수준 자체가 낮아진다. 예를 들어 불평등한 경제에서는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여도 가난한 사람이 굶을 수 있지만, 평등한 경제에서는 1인당 소득이 1만 달러만 되어도 굶지 않을 수 있다. (33)
  • 탄소세 도입에 따른 정치적 저항은 탄소세 수입을 탄소 기본소득으로 나누어주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다. 탄소세와 결합된 탄소 기본소득은 전 국민의 2/3를,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더 많은 순 수혜자로 만든다. 지구를 살리면서, 돈까지 받는 정책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42)
  • 토지 보유세와 토지 기본소득은 불로소득을 걷어내고,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며, 불평등을 줄여 한국 경제에 오랜 부담이었던 큰 숙제를 풀어줄 수 있다. (...) 부동산 불로소득은 혁신의 동기를 잠식한다. 초등학생의 장래 희망이 건물주인 나라에서 혁신을 기대하기 힘들다. 정부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혁신 정책은, 혁신 없이 앉아서 돈을 벌 수 있는 부동산 불로소득 같은 것들을 없애는 것이다. (55)
  • 코로나19 재난은 미리 준비하는 것과 늦게 준비하는 것의 차이가 결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기후재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탄소 배출을 1, 2년 먼저 중단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에는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가 생길 것이다. (61)
  • 공동부로부터 나오는 수익을 공동부의 소유자에게 배당하는 기본소득은 인공지능 대분기를 준비할 때 빠뜨릴 수 없는 중요한 제도이다. 토지와 공기와 인공지능이 우리 모두의 공동부라는 것에 빠르게 합의하면 할수록, 기술혁신은 더욱 촉진될 것이고, 기후재난과 인공지능 디스토피아를 막게 될 것이다. 대분기 과정에서 대격차를 극복하면 생존할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65)
  • 바이러스로 인해 시도해본 고등교육의 전면적인 온라인화는, 적어도 재정 문제에 있어서 대책이 될 수 있다. 캠퍼스라는 거대한 물리적 공간을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현장 강의를 위주로 구성된 캠퍼스는 온라인 강의를 위한 설비와 그동안 부족했던 연구를 위한 공간으로 다시 구성할 수 있다.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89)
  • 민주주의를 제도와 시민으로 구분할 수 있다면, 미국과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제도로서의 민주주의가 잘 갖추어진 선진국이라 여겨졌다. 전형적인 민주주의지만, 나는 고인물 민주주의(old democracy)라고 부른다. 미국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민주주의는 각 지역의 시민 혁명으로 시작해, 2차 대전 이후에 완성되었다. 사회계약으로 보자면 오랫동안 차근차근 쌓여온 안정감 있는 계약이다. 그런데 안정감 있었던 오래된 사회계약, 선진국 민주주의가 코로나 앞에서 무력했다. (142)
  • 신자유주의는 30~40년 동안 민주주의 제도가 잘 갖추어진 곳에서, 이런 방식으로 사회계약과 민주주의 제도를 포위하고 침식해 갔다. 40년의 성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그럴듯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공공선의 붕괴를 어떻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옛날 모양 그대로 굳어진 채로 더 이상 기능하지 않는, 고인물 민주주의로 남게 된 것이다. (144)
  • 선진국 민주주의라면 으레 그럴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일이 터지고 보니, '으레'가 아니라 '의례'였던 것이다. 서유럽 민주주의는 기술 관료를 중심으로 하는 '큰 정부'에 많은 것을 미루어놓고 있었다. 시민을 배제한 정책결정이 패턴화되었고, 그 공간만큼 민주주의는 형식화되었다. (147)
  • 우리의 역동적 민주주의가 더욱 강화되려면, 끊임없이 진화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경험은 신자유주와 불평등의 포위에서 탈출해, 민주, 평등, 공공선을 기본원칙으로 하는 새로운 공화국으로서의 사회계약을 굳건히 하는 길이어야 한다. (166)

오늘 시작한 미래/강남훈, 송주명, 안현효/다돌책방 20200629 168쪽 10,000원

코로나19와 함께 시작한 가까운 미래에 대처할 방향에 관한 글이다. 재난과 방역은 불평등을 심화한다. 기후재난과 인공지능으로 점쳐지는 불평등한 미래에 대한 대안으로 기본소득을 제시한다. 대학 교육에 대한 온라인 교육으로 교육비를 낮춤으로써 대학 교육을 근본적으로 바꿀 기회임을 역설한다. 코로나19로 인하여 고인물 민주주의와 역동적 민주주의가 방역의 성패를 갈랐음을 알려준다.

아무도 하지 않은 일을 한발 먼저 시작할 절호의 기회를 멍청한 선택으로 날렸다. 이 선택은 가까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모르겠지만 늦은 건 분명하다. 아쉽다.


덧. 오탈자
  1. 58쪽 6행 엘리시움(Elisim) → 엘리시움(Elysium)
  2. 136쪽 11행 벌어질 일들 대한 → 벌어질 일들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