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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
  •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은 1992년 도서출판 눈에서 펴낸 어느 40대 부부의 병상 일기이다. (11)
  •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또는 가족을) 걱정하며 살아가지만, 실은 사랑으로 사는 것이라고. (34)
  • 송년회에 가서 오랜만에 보는 이들과 즐겁게 수다도 떨고, 새해 소원도 빈답니다. 아빠를 잊을 수 있어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슬픔은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아요. 외면할 수도 없죠. 하지만 슬픔은 영원히 괴로워해야 할 낙인 같은 것은 아니에요. 당신 아이의 삶에는 기쁨도 정말 많을 거예요. 엄마가 없다고 즐거움을 누릴 자격이 업는 건 아니잖아요. (38)
  • (돌보는 사람은) 아픈 사람이 회복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기쁘겠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잃어버린 시간이 보상될 만큼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까? 아팠던 사람은 병을 살아낸 경험에 관해 말할 수 있지만, 돌보는 사람이 살아낸 것을 표현하기는 더 어렵다. 돌봄 경험을 표현할 수 있는 말들이 우리 사회에는 별로 없고, 그래서 돌봄은 인정되지 못한 채로 남겨진다. (47)
  • 궁극의 목표는 환자의 안녕이어야 하겠지만, 그것을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는 늘 고민스럽다. 사람들은 의사가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의사도 종종 혼란에 빠지곤 한다. (54)
  • 말기암은, 아니 모든 질병의 말기는 자율성의 박탈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스스로 움직이고, 대소변을 처리하고, 먹고 자고, 깨어 있는 것이 어렵게 되고 늘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이다. 이 기간이 길어질수록 환자의 인격과 존엄을 지키기 어려워진다. 사실, 이것이 죽음에 임박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한다. (69)
  • 인간이 태어나서 3개월, 즉 백일까지를 삶에 적응하는 시간이라고 한다면, 인간이 죽기 전 3개월은 죽음에 적응하는 시간이다. 암의 경우가 그렇고, 치매나 뇌졸중 같은 질환은 이 시간이 더 길어지기도 한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고, 죽지도 않은 시간이...... 내가, 이제까지 살아온 나라는 인간이 아닌 시간이. (70)
  • 아빠가 없어도, 아빠의 무덤에 다녀오는 길에도 이런 웃기는 표정을 지을 수 있다. 그만큼 일상은 힘이 세다. 슬픔을 묻어버리거나 딛고 올라서는 것이 아니라 그냥 품고 살게 한다. 그 일상의 힘이 우리를 구원한다. (92)
  • 호스피스는 과학의 산물인 마약성 진통제, 진정제, 항불안제, 스테로이드 등을 이용해서 죽음이 임박한 신체적·정신적 증상을 조절한다. 그래서 죽음은 의료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삶이 그랬던 것처럼. (132)
  • 죽어가는 환자와의 대화 원칙 중 가장 어렵고, 아직도 이해가 잘 안 되는 것은 '사실을 말하면서도 희망을 주는' 것이다. (138)
  •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챙길 여유가 없다. 비행기에서 사고가 났을 때 어른이 먼저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아이에게 씌우라는 안전 지침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누군가를 도우려면 먼저 자신이 온전해야 한다. (145)
  • 죽음이 앗아갈 것을 떠올리며 두려워하자고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아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끝까지 꽉 찬 삶을 살 수 있기를, 마지막까지 소중한 것을 놓지 않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런 글을 써본다. (226)
  • 나는 울고 싶지 않은 게 아니라 울자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죽음은 우리 가족만의 특별한 비극이 아니며, 당신의 비극 역시 당신만이 겪어야 하는 운명적인 고통은 아니니 부끄러워 말고 마음껏 울자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슬픔은 의외로 도처에 널려 있고 우리는 모두 슬픔을 견디며 살아간다. (228)
  • 부모는 주는 사람일 뿐 아니라 받는 사람임을 가르쳐준 소중한 아이들을 키우면서, 나도 엄마와 아빠에게 뭔가를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위안을 얻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반대로 의도치 않은 힘이 되거나 기쁨을 선사하기도 한다. (230)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김선영/라이킷 20190809 232쪽 13,000원

종양내과 의사가 된 딸이 암으로 떠난 아버지를 잃었지만 잊지 않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 중환자에게 건네는 어설픈 위로보다는 침묵이 더 낫다는 것, 죽은 이에 대한 일회성 애도보다 몇 배의 희생으로 돌본 이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친다.

정신이 멀쩡하고 음식을 넘기는 게 가능한 마지막 날에 내 최후의 만찬을 하고 싶다. 두부, 만두, 국수를 좋아하니까 마지막 음식은 두부를 넣은 만두전골에 사리로 국수를 주문하겠다. 날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지막 건배를 하고, 기억에서 날 지우라는 부탁을 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