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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국가를 선언하다 - 식물이 쓴 지구의 생명체를 위한 최초의 권리장전

La Nazione delle Piante, 2019
우리는 마치 우리가 주인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니라 단지 불쾌하고 성가신 세입자 중 하나일 뿐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약 30만 년 전 지구에 도착한 순간부터 (이것은 38억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생명체의 역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생존을 위해 자신들까지 위험에 빠뜨릴 만큼 지구 상태를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그 어려운 일에 성공한 것이다. (8)

제1조 지구는 생명체의 공동주택으로 모든 생물이 그 주권을 가진다.
  • 탄소 함량을 기준으로 측정한 지구에 존재하는 바이오매스 550기가톤(1기가톤은 10억 톤과 같다) 중 동물은 약 2기가톤을 형성하는데 그중 절지동물은 전체의 절반인 약 1기가톤을, 어류는 0.7기가톤을 차지한다. 나머지 0.3기가톤은 포유류, 조류, 연체동물 등이 차지한다. 균류는 단독으로도 바이오매스가 동물보다 6배나 많다(12기가톤). 인간은 0.06기가톤으로 지구 바이오매스의 약 0.01퍼센트를 차지하는 반면, 식물은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한다(450기가톤). 이로써 우리가 지구에 주권을 행사하는 것이 인구수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숫자로 따지면 지구의 주권은 식물의 것이어야 한다. (36)
  • 큰 두뇌가 이점이 아니라 오히려 진화론적 약점임이 드러나면서 조기에 멸종될 수 있는 이 오만한 개체의 멸종을 막으려고, 인간국가보다 수억 년 전에 태어난 매우 현명한 식물국가가 지구상 모든 생물에게 주권을 부여한 것이다. (43)

제2조 식물국가는 자연 공동체를 구성하는 유기체 간의 관계를 기반으로 한 사회로, 자연 공동체의 불가침권을 인정하고 보장한다.
  • 공동체는 지구상 생명체의 기반이다. 전체 행성은 단일 생명체로 봐야 한다. 이것이 가이아 이론이다. 단일 생명체의 균형 잡힌 메커니즘은(좀더 기술적인 용어로는 항상성을 말한다) 변화하는 환경의 진동을 지속적으로 약화시키는 데 필요한 힘과 대항력을 생성할 수 있다. 주변 환경의 온도가 끊임없이 변화하는데도 우리 체온을 일정하게 만드는 메커니즘과 유사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생명체는 이러한 공동체를 바탕으로 진화했으며 인간의 개입이 금지된 경우에만 계속 존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식물국가가 자연 공동체의 불가침성을 침해할 수 없는 권리로 인정하는 이유다. (66)

제3조 식물국가는 중앙통제센터와 그곳에 기능이 집중된 동물의 위계 조직을 인정하지 않으며, 광범위하고 분산된 식물 민주주의를 선호한다.
  • 식물과 동물은 3억 5,000만 년에서 7억 년 전 지구 진화 역사에서 결정적인 시점에 분리되었다. 초기 생명체들은 이 시기를 기점으로 두 갈래 길 중 하나를 선택하기도 했는데 하나는 식물의 탄생으로, 다른 하나는 동물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서로 다른 길에 올랐을 것이다. 식물은 비범한 광합성 능력 덕분에 에너지를 자율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자양분을 찾아 이동할 필요가 없었다. (71)
  • 식물국가는 동물의 구조에서 영감을 받은 위계 조직을 기반으로 한 조직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식물국가 헌법 제3조에서 동물 조직의 관료적 위계 질서가 초래한 피해 사례를 보는 것만으로도 식물 조직이 얼마나 지혜로운지 알게 된다. (80)
  • 식물국가는 반복되고 탈중앙화한 광범위한 조직 모델만 이용하면서 동물의 위계 조직 또는 중앙 집중식 조직의 전형적인 취약성, 관료제, 거리, 동맥경화증, 비효율성 문제에서 영원히 자유로워졌다. (92)

제4조 식물국가는 현세대 생물의 권리와 다음 세대 생물의 권리를 보편적으로 존중한다.
  • 내가 볼 때 식물을 피라미드의 최하위에 배치하는 것은 잘못이며, 그다지 관대해 보이지 않는다. 화학 에너지를 소비하는 유기체가 아닌, 화학 에너지를 생산하는 유기체를 상위에 표시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렇다. 자동차는 엔진이 가장 중요하다. 그렇지 않은가? 나머지는 필수 부품이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식물은 자동차의 필수 부품인 생명체의 엔진이며 나머지는 차체에 불과하다. (97)
  • 지구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대량 멸종 시기였을 때조차 이렇게 높은 멸종 비율을 보인 적도 없고, 특히 감지하기 힘든 압축된 시간 프레임에 놓인 적도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의 대규모 멸종은 비록 빠르게 진행되기는 했지만 항상 수백만 년에 걸쳐 나타났다. 그에 반해 인간의 활동은 한 줌밖에 되지 않는 시간 안에 다른 생물 중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전체 역사는 38억 년 생명체 역사에서는 눈깜짝할 사이에 불과한 30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 (103)

제5조 식물국가는 깨끗한 물, 토양 그리고 대기권을 보장한다.
  • 인간 활동, 특히 화석 연료 연소와 삼림 벌채로 산업혁명이 시작된 이래 대기 중 연평균 이산화 탄소 농도가 약 1만 년 동안 안정적으로 유지된 280ppm에서 2019년 현재 410ppm까지 높아졌다. 이는 확실히 지난 80만 년을 통틀어 이산화 탄소 농도가 가장 높은 수치일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지난 2,000만 년 중 최고치일 확률이 높다. (113)
  • 다시 한번 강조한다. 숲이 충분하지 않으면 이산화 탄소의 증가 추세를 꺾을 가능성이 현실적으로 없다. 삼림 벌채는 반인륜적 범죄로 취급하고 그에 따른 처벌을 해야 한다. 이것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삼림의 무형 자원과 그것을 유지해주는 생명체, 토양, 공기 그리고 물을 그대로 유지해야 할 의무는 우리 식물국가의 헌법뿐만 아니라 모든 국가의 헌법에 들어가야 한다. (120)

제6조 생명체의 미래 세대를 위해 대체 불가능한 자원 소비는 금지한다.
  • 전 인류가 이탈리아인처럼 자원을 소비한다면 지구 2.6개의 자원이 필요하지만, 지구의 주민들이 인디언과 같은 수준으로 자원을 소비한다면 이미 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인구의 거의 8배에 달하는 사람들 외에 또 다른 20억 명의 사람들에게 추가로 자원이 충분하게 돌아갈 것이다. 상황이 각기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썩 유쾌하지 않은 결말로 향하고 있다. (129)

제7조 식물국가에는 국경이 없다. 모든 생명체는 자유롭게 통과하고 이동하며 어떠한 제한 없이 그곳에서 살 수 있다.
  • 박해에 대응하여 이주할 권리를 갖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항상 그 권리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한 장소에 머무르는 것은 자신의 생존 가능성에 대해 타협하는 것을 의미한다. 동물도 이주하고 식물도 이주한다. 이주하는 것은 자연(계)의 생존 전략이다. 따라서 이주를 방해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을 제한하는 것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153)

제8조 식물국가는 공존과 성장의 도구로 생물의 자연 공동체 간 상호부조를 인정하고 지지한다.
  • 협력은 생명체가 번성하는 힘이며 식물국가는 이를 공동체 성장의 주요 도구로 인정한다. (173)

식물, 국가를 선언하다La Nazione delle Piante, 2019/스테파노 만쿠소Stefano Mancuso/임희연 역/더숲 20230325 188쪽 18,000원

식물은 지구 생물량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합니다. 평균적으로 식물이 동물보다 오래 생존합니다. 한 종의 평균수명은 500만 년으로 추정되는데 인간은 겨우 30만 년 정도 됩니다. 지구의 주권자는 식물임이 자명합니다.

인간은 특히 산업혁명 이후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난 80만 년을 통틀어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지구와 주권자 식물이 인간을 내쫓기 전에 이대로 살지 인디언처럼 살지 결정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