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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시민

지금은 없는 시민
  •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자는 정책에 청년들이 '공정하지 않다'고 강력 반대하는 목소리나,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인 대학생의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턱이 없는 강의실로 바꾸기로 했다는 결정에 '역차별이다'라고 분노하는 목소리들에 이르면 아예 이런 질문을 전지고 싶어진다. 도대체 이들이 생각하는 '공정함'이란 어떤 의미인가? (25)
  • 가짜뉴스는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결과라고 진단할 수 있다. 이해집단 간의 치열한 갈등이 정치라는 과정 속에서 원활하게 해소되지 못하니 집단들은 정치적 해결이 아닌 파워게임으로 이해를 관철시키려 시도하게 된다는 것이다. 파워게임의 룰은 간단하다. 갈등하는 상대방과의 대화와 타협은 고려되지 않고, 상대방을 위선적인 대상으로 매도하거나 여론으로부터 고립시켜 영향력을 잃도록 만들면 된다. 그런 점에서 가짜뉴스가 주로 사회적 약자를 공격하거나 갈등 관계인 상대방이 여론의 비난에 부딪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구성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53)
  • 만 18세가 선거권을 갖게 되었으니 그에 맞춰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사후대책이 아니라, 의무교육 과정에 민주시민교육을 확대 편성함으로써 선거권을 더 하향시키겠다는 포부가 필요하다. (68)
  • 선거를 민주주의의 유일한 수단으로 여기지 말자는 것이다. (...) 선거 다음 날에도 우리는 여전히 민주주의 공화국의 시민이다. 유권자로서 우리는 단 한 표를 행사할 뿐이지만 시민으로서 우리는 더 많은 권리를 지닌다. 정치와 선거는 동의어가 아니다. (71)
  • 언론은 자기 진영의 독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으니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기사를 뿌리고, 독자들은 기꺼이 그 기사들을 팔아준다. 오보는 그렇게 반복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기 위해 독자로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 언론 탓만 하고 있기엔 오보가 가지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 (123)
  • 전국금속노동조합에 속한 청년 노동자 261명이 지난 6월 30일에 "정규직화가 옳다"는 제목의 성명을 냈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보안검색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에 찬성한다며 "직접고용을 누군가의 일자리를 빼앗는 짓으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는 성명서에서 이들은 다음과 같이 자신들을 소개했다. "우리는 뜨거운 용광로 앞에서, 콜센터에서, 조선소 크레인 위에서 일하는 청년노동자입니다. 누군가는 정규직이고, 누군가는 사내하청 비정규직이며, 누군가는 특수고용 노동자입니다." '다른' 청년들은 어디에나 있다. 단지 그들의 목소리를 찾아 듣고자 하는 기자들이 많지 않았을 뿐이다. (128)
  • 시민단체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 낫다고 믿는다. 시민단체와 진보언론에 진실하게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위선에 맞서 참된 정의로움을 이루기 위해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 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며 격려하는 것은 우리 시민들의 일이다. (138)
  • 산재를 추방해야 하는 것은 그렇게 죽은 사람들의 사연이 슬프고 안타까워서가 아니라, 어느 누구도 일을 하다가 죽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산재의 완전한 근절은 정치인과 기자들이 대구·부산·김해의 '이야깃거리 없는' 죽음들에 대해서조차 관심을 가질 때에야 가능해진다. 이들이 죽음이 동등하게 조명될 때라야 매년 2000여 명이 질병과 사고로 사망하는 산업재해 전체를 관통하는 본질을 비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안전보다 이윤'을 택하는 자본주의의 문제이며, 이 문제를 방치하거나 쉬쉬하는 정치의 문제다. (144)
  • 산업재해 사망사고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지금 문재인 정부는 산업재해에 대해 놀랍도록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는다. 하루가 멀다고 들려오는 노동자들의 부고 기사가 청와대로 들어가는 신문에는 잘 실리지 않거나 사소한 기사로 취급되기 때문일까. (153)
  •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들의 소식은 속보로 알려지지만, 산업재해로 사망한 사람들의 소식은 건조하고 짤막한 단신 정도로 기록된다. 한 줄 기사라도 나면 차라리 대행인 수준이다. 2019년 산재 사망자 2020명, 하루에 5~6명꼴이다.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는 일은 한국에서 너무나 '노멀'한 나머지 '새로운 사실'로서 뉴스가 되지 못한다. 혹은 누군가의 말처럼, 사람들은 산재가 자신에게 '전염'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62)
  • 어떤 나라의 임금수준이 낮다는 것은 대체로 노동자의 힘이 약하다는 뜻이고, 밀려드는 자본의 공세에 속수무책이기 쉽다. 그리고 자본은 '그래도 되는' 곳에선 필연 '그렇게' 한다. 자국에선 그리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동남아시아나 아프리카 등 제3세계에서 끔찍한 노동착취를 자행해왔다는 이야기는 비밀 축에도 못 낀다. (172)
  • 영화는 극장에서 멈출지라도, 극장을 나선 시민은 멈추지 않아도 된다. (208)
  • 긴즈버그 사후의 상황을 비추어 보면 흥미롭게도, 긴즈버그가 2015년 동성혼 합법화 판결 이후 한 강연에서 남긴 말은 시민과 사법의 관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그 '시대의 기후'를 만드는 것이 바로 시민의 역할일 테다. (225)
  • 한국에서도 비슷하지만, '내가 모르는 사람을 위해 싸우자'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크지 않다. 내 코가 석자인데 무슨 남을 챙기냐는 소리가 단박에 나온다. 설득력 있는 주장은 '당신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것이다. 대학생인 당신도 노동자가 될 것이기 때문에 노동 문제에 관심을 갖자는 것이고, 남성이라면 딸이나 여자 친구를 위해 여성 문제에 관심을 갖자는 것이고, 비장애인인 당신도 어느 순간에 장애를 입을 수 있으니 장애 문제에 관심을 갖자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들이 반드시 잘못된 것은 아니겠지만, 한 인간에게 기대되는 측은지심이나 한 사회에 기대되는 연대의식을 우회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233)

지금은 없는 시민/강남규/한겨레출판 20210503 248쪽 15,000원

이 책은 1990년생인 저자가 2019년 말부터 2021년 초까지 〈경향신문〉, 〈미디어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일터〉에 쓴 글을 묶은 책이다. 문재인 정부 임기의 한복판에서 나온 고민이다. "한국 사회의 '지옥도'를 이보다 명쾌하게 그려낸 글을 본 적이 없다."는 김누리 교수의 평에서 보듯이 촛불정부라고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희망과 실망이 동시에 실려있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실망으로 끝내서 아쉽고 원망스럽다.

"살고 싶은 세상이 있고 그것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믿으니 이들은 지치지 않는다. 그렇다. 냉정한 분석과 강렬한 소망이 있는 곳에 냉소는 싹틀 틈이 없다. 그리고 냉소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취를 이룬다." 의인에게만 의존하지 말고, 끝내 냉소하지 않고, 마침내 변화를 만들 사람들에게 보내는 트러블슈팅(troubleshooting)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