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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기담 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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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찾는 사연을 수수료로 받고 절판된 책을 찾아주는 헌책방 주인이 있습니다. 사연을 들려주면 책을 찾아주지만, 헌책은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나타나곤 합니다. 젊은 시절에 연애편지를 쓰려고 샀던 책을 찾아 달라는 어떤 어르신의 사연이 계기가 됐습니다. 어르신은 사람을 찾는 건 의미가 없으니 연애편지를 쓸 때 도움을 받았던 책을 찾고 있었습니다. 찾고 있던 책은 인연처럼 반년이 지나 나타났습니다. 어르신은 책값보다 더 비싼 차비를 들여 책을 찾으러 왔습니다. '책은 작가가 쓴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책을 찾는 사람들은 거기에 자기만의 사연을 덧입혀 세상에 하나뿐인 새로운 작품(23)'을 만듭니다. '책은 다 같은 책이지만 꼭 만나야 하는 그때의 책'에는 '젊은 날의 추억, 사랑, 고민, 그리고 망설임과 선택을 고스란히 담고(32)' 있었습니다. 한동네에서 살며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녔고 결혼까지 한 부부는 어릴 때 읽었던 책을 찾고 싶답니다. 두 사람의 추억이 깃든 책을 찾아서 태어날 아이에게 읽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책은 아이가 태어나고도 한참 지난 뒤에야 전해줬습니다. 아이에게 책을 보여주자 아이는 내용은 물론 사연까지 다 아는 것처럼 책을 잡으려 했습니다. 하룻밤 만에 다 읽을 수 있는 소설을 마저 읽는 데 4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사연도 있습니다. '어떤 책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71)' 합니다. '해 질 녘 서해를 닮은 그림처럼(81)' 한없이 쓸쓸한 풍경에 이야기가 담긴 그림엽서를 건네던 이도 있었습니다. '가장 아끼는 것은 책이 아니라 하나뿐인 손녀(105)'일지도 모르는 어떤 노인도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아름다운 한 사람을 향한 애틋한 마음은 수만 권의 책으로 가득 한 서재와 바꿀 만큼 소중(106)'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완전사회, 인류의 완전한 미래는 여인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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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은 '미래로의 수면 여행'을 계획한다. 지성인이며 완전한 신체를 가진 '완전인간'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우선구는 전 세계에서 딱 한 명인 완전인간으로 선발된다. 남태평양에 있는 비커츠섬에 미래로의 수면 여행을 위한 보금자리가 만들어졌다. 우선구는 비커츠섬에 마련된 기밀실의 수면 장치에 누웠다. 기밀실 벽의 원자시계가 완전인간의 수면 시간을 기록하려고 움직였다. 누가 몸을 흔들었다. 우선구는 기분 좋게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우선구가 침대에 올라갈 때를 0으로 시작한 비커츠섬 원자시계는 161이라는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선구는 161년을 자다 깨어난 것이다. 2155년. 유엔이 계획한 미래로의 수면 여행은 성공했다. 우선구가 잠들어 있는 동안 세계는 급변했다. 비커츠섬 시간으로 9년 7월 20일, 제3차세계대전이 폭발했다. 핵무기로 교전을 한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이 죽었고, 살아남은 지역도 방사진으로 불행한 종말을 기다리는 날들이었다. 23년 4월 14일, 원자탄 피해 복구 방식을 발견하였다. 핵폭발 지역이 속속 복구되었다. 32년. 핵무기의 대량 투입으로 시작한 제4차세계대전은 기상작전(氣象作戰)과 독기류, 독가스, 독세균 작전으로 2년 이상을 끌었다. 3차대전을 겪고 살아남은 6억 인구가 11억까지 불어났지만, 이제 9천만 명도 못 되게 살아남았다. 온 세상은 사막이 되었고 독약으로 넘쳤다. 무기를 만드는데 앞장섰던 과학자들은 대오각성하고 세계과학자연맹을 만들었다. 과학자들은 곳곳에 과학센터를 만들어 전 세계 인민들을 돕고 부흥 사업을 시작했다. 과학센터가 설립된 지 2년 만에 전 인류에게 충분한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자 파벌이 다시 싹트고 정치인이 등장했다. 과학자들은 모든 정치성을 외면하고 숙청을 단행하였다. 과거의 뼈아픈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과학센터가 전 세계 의식주의 생산과 관리를 쥐게 되자 스스로가 정치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위대한 탐험의 숨은 영웅 톰 크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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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년 1월 4일. 여덟 명의 대원은 마지막으로 악수하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스콧이 어젯밤에 팀을 다시 꾸리기로 하고 테디 에반스, 래실리, 크린에게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크린은 지난 두 달 동안 노력했음에도 남극점을 밟을 기회를 놓친 것이다. 스콧, 윌슨, 보워스, 오츠, 태프 에반스가 살아서 이동하는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았다. 크린, 래실리, 에반스는 베이스캠프까지 1206킬로미터를 되돌아가야 했다. 네 명이 해야 할 일을 셋이 하며 남극점을 정복하고 돌아올 대원들을 위해 식량과 연료의 4분의 1을 저장소마다 남겨두고 가야 했다. 더군다나 테디 에반스만 유일하게 방향을 찾는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에반스는 괴혈병 초기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세 사람은 180킬로그램의 짐을 실은 썰매를 끌며 나아갔다. 기온은 섭씨 영하 29도까지 내려갔고, 바람이 '얼어붙은 바늘 끝으로 뺨을 찌르는 것처럼' 얼굴을 후려쳤다. 1월 17일. 스콧은 남극점에 도달했지만, 아문센의 탐험대가 한 달쯤 전에 먼저 왔다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셋은 크레바스가 숨어 있는 미로와 같은 벌판을 계속해서 나아갔다. 1월 21일 늦게 빙하 하부 저장소에 도착했다. 장장 1770킬로미터 동안 썰매를 끌어온 에반스가 괴혈병 증세를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뒤에는 래실리가 현기증을 느꼈고, 크린도 설사하기 시작했다. 에반스 곶까지는 640킬로미터가 남아 있었다. 1월 25일. 세 사람이 로스 빙붕의 평평한 얼음 벌판 위에서 썰매를 끌고 이동할 때, 아문센은 3000킬로미터, 99일의 남극 탐험을 마치고 프라하임 기지에 도착했다. 에반스의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었다. 셋이 끌던 썰매를 둘이 끌어야 했고, 에반스가 방향을 찾지 못할까 걱정이 컸다. 무거운 썰매를 끌던 두 사람은 2월 11일에 필요 없는 장비들을 모두 버려 무게를 줄였다. 헛포인트까지 160킬로미터 정도 남았을 때 에반스가 일어설 수 없게 되어 썰매에 묶어야 했다. 에반스

치악산둘레길 거북바우길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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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13일 토요일에 치악산둘레길 8코스를 걸었습니다. 원주 시내버스 22번 석동종점에서 출발해서 용소막 성당에 이르는 거북바우길입니다. 이 비는 열녀 정선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면민이 건립한 것이다. 열녀 전씨는 함경도에서 이곳 신림면 구미통에 이주하여 단란하게 살다가 남편이 병들어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죽었다. 절개가 굳은 전씨는 남편이 죽은 방에서 한 발도 밖에 나오지 않으며 음식을 먹지않고 있다가 9일만에 남편을 따라 죽었다. 열녀 전씨를 기리기 위하여 1920년 5월에 이 비를 세웠다. 거북바우길 삼거리 초입에 있는 〈염신식의 처 정선전씨 열녀비〉입니다. 가당찮은 사연은 차치하고 열녀비에 남편을 따라 죽은 전씨의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막길을 30여 분 걸으면 구학산주차장이 나옵니다. 차량 이동을 제공하는 도우미가 있으면 여기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세요. 그늘 없는 경사진 도로여서 무지 덮고 거북바우길 코스에서 제일 힘든(?) 구간이었습니다. 구학산주차장을 지나 흙길과 그늘이 시작하는 곳에 놓인 벌통입니다. 여름에는 그늘지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벌통을 놓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산속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자라는 천남성(天南星, arisaema)입니다. 맹독성 식물로서 장희빈에게 내린 사약이 천남성 뿌리로 만든 가루였다고 합니다. 뿌리뿐만 아니라 잎이나 줄기, 열매에도 독성이 있답니다. 열매가 익으면 빨갛게 변합니다. 거북바우길에서 산수국(山水菊, Tea Of Heaven, Mountain hydrangea)을 많이 봤습니다. 거북바우길이 유난히 습해서 그런지 바위에 사는 이끼 는 초록초록하고 싱싱하더군요. 산수국은 한국과 일본이 원산지라고 합니다. 산수국 가장자리에 핀 꽃은 헛꽃(무성화)입니다. 아주 작은 진짜 꽃송이가 벌이나 나비 눈에 잘 띄지 않아 헛꽃으로 유혹한다고 합니다. 드디어 거북바우길 중간지점에 있는 거북바우를 만났습니다. 거북이를 닮았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여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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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여행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게 없기 때문이다. (16)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18)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24) 어쨌든 내 첫 해외여행은 그렇게 키미테를 귀 뒤에 붙인 채로 시작되었다. (35)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51)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57) 모든 기억은 과거를 편집한다. (71) 유전자에 새겨진 이동의 본능. 여행은 어디로든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인류가 현대에 남긴 진화의 흔적이고 문화일지도 모른다. 피곤하고 위험한데다 비용도 많이 들지만 여전히 인간은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92)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109)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 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

가족을 구성할 권리 - 혈연과 결혼뿐인 사회에서 새로운 유대를 상상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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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가족문제가 공적인 영역과 분리되는 가족 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불평등과 연결된 사회적인 의제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늘날 활발한 가족변동 상황은 가족구성권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를 재구성하는 사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아직 많은 이에게 낯선 개념일 가족구성권은 말 그대로 '가족관계를 구성할 권리'를 뜻한다. 이 권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왜 중요할까? 우선, 가족구성권의 보다 상세한 정의를 보자. 가족구성권연구소는 가족구성권을 "다양한 가족의 차별 해소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가족 공동체를 구성하고, 차별 없는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로 정의한다. 이는 즉, 가족과 가족 사이에 차별이 존재하며, 가족을 구성할 권리 또한 평등하게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7) 가족을 정치화하는 가족구성권은 단순히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는 관계들을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데서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앞서 가족구성권의 정의에서 살펴보았듯 가족구성권은 근본적으로 가족을 둘러싼 여러 갈래의 복합적인 차별 해소에 대한 접근을 요청한다. 다시 말해, 사회가 상상해오고 권장해온 ‘가족’의 의미와 가족모델은 무엇인지, 그것이 한국사회에서 '시민'으로 가정되고 상상되는 이들의 모습과 어떻게 연동되어 있는지, 제도가 어떻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지 등 여러 갈래의 질문들이 제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한국사회에서 '시민'으로서의 삶과 자격이 부여되는 데 이성애규범적인 가족중심 시민모델이 핵심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8) 이성애규범적인 가족중심 시민모델이 작동하는 사회에서 퀴어, 장애인, 비혼여성, 싱글맘, 빈민 등 '이상적이지 않은 시민'들은 곧 '이상적인 가족'을 갖지 못한 이들로도 간주되며, 이들은 말 그대로 '뒤처진 존재'이자 보이지 않게 가려져야 하는

란다의 유까딴 견문록 - 마야문명에 대한 최초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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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까딴의 어원은 다양하지만 인디오들이 원래 어떻게 불렀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마야는 남부, 중부, 북부 지방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유까딴반도는 북부 지방에 해당한다. 유까딴은 멕시코의 동남쪽에 있는 반도로 총면적이 180,000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한반도 면적의 2/3 정도 되는 커다란 반도이다. 유까딴은 산이 없는 열대 평원 지역으로 거의 모든 곳에서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곳 사람들은 장수하는데, 140세에 이르는 노인도 있었다. 현재 사용하는 '마야'라는 용어는 최대한 넓게 보았을 때 유까딴반도의 상당한 지역을 일컫는 말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 정복 시기 이전에는 하나의 대명사로 쓰인 적은 없다. 유까딴에는 무척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이 있었지만, 금들이 가득하다는 사실무근의 소문이 퍼졌다. 이로 인하여 탐욕에 눈이 먼 에스빠냐 사람들이 유까딴으로 향하게 되었고 정복의 역사가 시작됐다. 마야 사람들의 주식은 옥수수였다. 옥수수로 다양한 음식과 음료를 만들었다. 외상 거래가 이루어졌고, 폭리를 취하지 않는 등 상거래 예의가 잘 지켜졌다. 수확한 농작물을 보관하는 훌륭한 곡물창고도 있었다. 유까딴 사람들은 매우 관대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무척 환대해서 낮에는 음료를 대접하고 밤에는 음식을 대접했다. 마야인들은 0의 개념을 알았고 20진법을 사용했다. 마야 사람들은 천체 관측에 있어서 당대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과학적인 결과를 내고 있었다. 밤에 시간을 알기 위하여 금성과 염소자리, 쌍둥이자리를 활용했고, 발달된 천문학 지식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인 달력 체계를 만들었다. 마야는 지금의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세,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지역에 빼곡히 도시를 세우며 번성했다. 디에고 데 란다는 16세기 에스빠냐의 신부로 초기 식민지 시대에 멕시코로 건너가 마야 원주민들 인연을 맺었다. 란다는 원주민들과 지내며 교류했지만, 그들의 인신공양과 우상숭배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원주민을 이교도로

멍때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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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때리는 시간이야말로 삶을 채우는 시간이지. 1 백여 년 전 케인스는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경제적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다 2 고 했습니다. 생활 수준은 몇 배나 높아졌지만 케인스가 말한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상상력이 생깁니다만, 자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개무시합니다. 멍때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삶은 여유로워집니다. 멍때리는 시간이야말로 삶을 채우는 시간입니다. 졸지에 묘씨맥주점 주인장이 된 16세 고선생은 인간보다 더 현명한 묘르신입니다. 김경, 《묘씨맥주점》(송송책방, 2020), 85쪽 케인스,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 1930

라마와의 랑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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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0년 무렵, 행성연합은 수성, 지구, 달, 화성, 가니메데, 타이탄, 트리톤으로 구성됐지만 행성보다 위성이 더 많아 시끄럽습니다. 일곱 멤버가 각각 거느리고 있는 위성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성연합의 본부와 회의장은 지구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달에 있습니다. 우주 파수대는 거대한 운석이 지구의 방호망을 뚫을 수 없도록 새로운 소행성들을 찾아내고 있었습니다. 문제의 소행성이 처음 발견되었을 때는 형식적으로 31/439로 이름 지어졌습니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큰 소행성으로 밝혀지자 힌두의 신전에서 빌려와 이름을 짓게 됐습니다. 31/429는 '라마'가 되었습니다. 탐사위성이 1만 킬로미터 밖에서 찍은 영상에는 회전하는 원통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50킬로미터 높이의 원기둥으로 지름이 20킬로미터에 이르는 보일러 통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인데버호는 수명이 다 된 행성 추적 신호기를 확인하여 회수하거나 다시 설치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라마와 랑데부를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인데버호가 겨우 따라잡았을 때 라마는 이미 금성의 궤도에 들어와 있었습니다. 인데버호 선장인 노턴과 선원들은 40일 뒤면 근일점에 다다라서 태양을 스쳐 지나게 될 라마의 표면에 착륙하여 탐사를 시작합니다. 소설은 해답을 구하는 것보다 질문을 던지는 소설입니다. 라마에 처음 들어가려고 문을 열 때부터 시작합니다. 노턴 선장은 무의식적으로 지구와 같은 방향으로 장치를 돌리지만 꿈쩍도 하지 않자 반대방향으로 돌려서 엽니다. 행성연합이나 라마 위원회는 의견이 둘로 나뉩니다. 라마는 '3의 여분을 갖는 미학'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3중의 3중 형태를 가진 구조물도 있습니다. 라마의 추진 동력은 뉴턴의 제3법칙을 무시하고 태양의 가장자리를 스치며 아련히 빛나는 우주의 한구석으로 날아갔습니다. 탐사한다며 내부를 휘젓고 다닌 노턴과 선원들은 물론 수소폭탄을 쏜 지구인들에게 해코지는커녕 일언반구도 없이

강뉴 - 에티오피아 전사들의 한국전쟁 참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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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유엔은 유엔군 참전을 결정했습니다. 에티오피아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유엔의 파병 요청을 받자 1950년 8월에 황실 근위대를 중심으로 보병 1개 대대로 파병부대를 창설했습니다. 훈련받은 파병부대 장병들이 1951년 4월 12일 황제로부터 '강뉴부대'라는 명칭과 부대기를 하사받았습니다. '강뉴(Kagnew)'는 에티오피아어로 '혼돈에서 질서를 확립하다'이며 또 하나는 '초전 박살'입니다. 4월 13일 강뉴부대는 지부티로 이동해 미군 수송선을 타고 한국으로 향했습니다. 1951년 5월 7일, 강뉴부대는 1만 4500킬로미터를 달려와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현지 적응훈련을 한 후 미군 제4군단 제7사단 32연대 4대대에 배속되었습니다. 에티오피아 전사들에게 닥친 시련은 한국의 혹독한 추위였습니다. 영하 30도를 넘나드는 추위와 찬바람은 적군보다 더 위협적이었습니다. 강뉴부대 제2진은 21일 동안의 항해 끝에 1952년 3월 29일 부산항에 도착해 제1진 강뉴부대와 교대를 했습니다. 그 후 에티오피아는 1953년 4월 5일부터 1954년 7월 10일까지 제3진, 1954년 7월 10일부터 1955년 7월 9일까지 제4진을 파병했습니다. 강뉴부대 제4진은 전쟁고아가 많은 고아원을 특별히 돌봤습니다. 6.25전쟁 당시 유엔이 요구하는 1개 대대 병력(약 1200명) 이상을 파견한 나라는 16개국입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필리핀, 태국, 영국, 벨기에, 프랑스, 그리스, 룩셈베르그, 네덜란드, 터키, 콜롬비아, 남아공화국 그리고 에티오피아입니다. 에티오피아는 황실근위대 6,037명을 한국전쟁에 파병했습니다. 강뉴부대(Kagnew Battalions)는 253번의 전투에서 253번 승리했고, 124명이 전사하고 536명이 부상했으나 포로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강뉴부대는 전우의 시신도 모두 수습해 돌아가 부산 유엔군 묘역에는 에티오피아군 병사의 무덤이

좌파의 생각은 어떻게 상식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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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정치는 광범위하게 탈이데올로기화했다'라는 생각이 공공연하게 퍼져 있다. 중도 쪽으로 떠밀려 간 정당은 더 이상 아무런 사상도 없고, 거대한 목표도 추구하지 않는 듯하다. 정당이 선거 유세 때 내세우는 구호는 세련됐지만 가벼워보인다. (...) 탈이데올로기화의 핵심은 예전에는 좌파가 어렵고 복잡한 이론을 다룬 논문에 엄청난 흥미를 가졌으며 벽돌 두께만한 책을 읽는 데 그치지 않고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지만, 이런 위대한 논쟁의 시대는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 이렇게 '느낌의 좌파'는 자신이 무엇에 반대하는지만 잘 알고, 무엇을 찬성하는지는 좀처럼 표현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된 까닭은 탈이데올로기화 때문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다. 지난날 좌파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했지만, 오늘날 좌파에게 이 모든 확신은 산산조각 났다. (8) 좀 더 좌경이면서 정치적으로 확실한 좌파, 중도에 있는 보통 사람들, 왼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아주 넓은 의미에서의 좌파'에 속한다. 좌파는 이렇게 다채롭고 이질적이다. (16) 오늘날 일부 경제학자를 포함한 거의 모든 학파가 마르크스를 인류 정신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물로 인정합니다. 동시에 그들은 마르크스가 끼친 공로가 오늘날에는 더 이상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다르게 봅니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역학의 근본적인 딜레마를 정확하게 파악했다는 사실을 간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마르크스주의는 신자유주의라는 독을 막을 수 있는 면역 체계와도 같습니다. 다음 같은 사례만 봐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부는 사적으로 생산된 뒤 거의 불법이나 다름없는 국가가 부과하는 세금에 의해 강탈당한다'라는 주장에 너무 쉽게 빠져듭니다. 그런데 마르크스를 공부한다면 사실은 정반대라는 점, 즉 '부는 공동으로 생산된 뒤 생산관계와 소유권을 근거로 사적으로 취득된다'라는 점을 이해한다면 더 이상 그런 생각에 빠

알렉스 캘리니코스 시사논평 - 양극화, 극우, 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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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당선은 엄청난 희망을 불러일으킨 특별한 사건이었다. 임기 시작부터 오바마는 그 희망을 저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경 우파 경향인 티파티 운동이 오바마에 맞서 들고일어났다. 지금 티파티와 유사한 언행을 하는 후보[트럼프]가 오바마의 후임자로 취임하려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난 데는 오바마의 책임도 명백히 있다. (33) 2016년에 벌어진 두 충격적 사건(브렉시트 국민투표와 트럼프 당선)과 마찬가지로 2020년 미국 대선은 1980년대에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가 구축한 신자유주의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 헤게모니에 균열이 가고 있음을 또다시 보여 준다. 그 헤게모니는 2007~2009년 전 세계 금융 위기와 그 후폭풍 동안 불만을 억제할 수 있을 만큼 강력했다. 그러나 그 대가로 당시 평범한 사람들이 일자리와 집을 잃고, 소득이 줄고, 공공서비스가 삭감되면서 거대한 분노가 쌓였다.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의 브렉시트 추진과 마찬가지로 트럼프와 공화당의 성공은 정치체제를 대자본의 이해관계에서 어긋나게 만들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이 "실패한 국가"가 될지 모른다고 말하는 크루그먼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이다. 물론 그 두려움은 과장일 수 있다.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든 미국 제국주의는 중국의 부상을 억누르려 할 것이고, 군사·금융에서 미국이 가진 힘을 전 세계에 뽐낼 것이다. (59) '죽음에 맞선 삶'이란 이윤에 맞선 삶인 것이다. 살아생전 자본주의가 죽음을 거래하는 체제임을 이토록 생생하게 목격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언제나 그랬다. 초기 자본주의는 노예무역과 아동노동에 의존하지 않았던가. 이제 이 체제는 이 세상에 남은 야생 생태계를 침범해서 코로나19 같은 전염병이 창궐할 조건을 만들고 그 대가를 노동계급이, 많은 경우 목숨으로 치르게 하고 있다. 이에 맞선 투쟁은 생사를 건 투쟁이자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다. (193) 자본주의는 아무도 통제하지 못하는 체제다. 자본가들은 생존하려면

어디에도 없는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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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남자가 사진을 내밀며 알아보겠냐고 물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새미 웬트입니다. 이건 새미의 두 번째 생일날 찍은 사진이에요. 3일 뒤 아이는 사라졌습니다." 뒤이어 말했다. "이 아이는 1990년 4월 3일에 사라졌습니다. 저는 당신이 새미 웬트를 납치했다고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이 새미 웬트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호주 멜버른에서 시간 강사로 일하는 킴벌리 리미에게 제임스 핀이라는 생판 만난 적도 없는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킴벌리가 28년 전에 납치돼 사라졌던 세미 웬트라고 했다. 그날 밤 킴벌리는 온몸이 그림자인 키 큰 남자가 나오는 꿈을 꾸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남자는 소멸 이론에 대해 말하며 서류 뭉치를 보여줬다. 소멸 이론이란 기억이 형성될 때 뇌에 남겨진 흔적은 필요할 때 다시 꺼내볼 수 있다고 한다. 어떤 기억을 오래 꺼내보지 않으면 그 기억은 뇌 속을 떠다닌다고 한다. 제임스는 결정적 증거라며 DNA 검사 결과를 내밀었다. 킴벌리와 제임스가 형제일 가능성이 98.4퍼센트였다. 그의 진짜 이름은 스튜어트 웬트라고 밝혔다. 킴벌리는 이건 나에게 일어난 일이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빠에게 말하자 불쾌한 깨달음이 밀려왔다. 아빠는 알고 있었다. 결국 킴벌리는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오른다. 조수석 시트에 엉덩이 자국이 또렷하게 남을 만큼 오랜 시간을 돌아다니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게 된다. 온전한 킴벌리 리미도, 온전한 세미 웬트도 아닌, 중간 어디쯤의 이도 저도 아닌 사람처럼 될 때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진다. 소설은 무명의 작가를 단박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며 스릴러 독자에게 '숨막히게 재미있는 소설'이라는 평을 받았다고 한다. 종교, 가족, 사랑, 성소수자, 유괴, 기억 등등이 과거와 현실을 넘나들며 조금씩 사실을 향해 간다. 실타래를 다 풀 때쯤에 마주친 진실은 너무나 뜻밖이다. 잃어버린 조각을 찾아도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어

어쩌다 유교걸 - 어느 페미니스트의 동양 고전 덕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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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왈 맹자 왈을 공부하는 학생이 있습니다. '보수적인 여자가 아니라 유교를 공부하는 여자, 노브라로 앞가슴이 훤히 트인 티셔츠를 입고 《논어》를 들고 다니는 여자, 또래 친구들이 스토킹 범죄로 스러져가는 걸 보고 분노하면서 음양을 공부하는 여자, 고리타분한 건 딱 질색이라면서 고전 텍스트를 읽는 여자,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예(禮)에 대해 말하는 여자(8)'입니다. 스스로 '유교걸'이라고 합니다. '유교 같은 것에 진절머리 내던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스트인 유교걸이 되기까지 20대 중 절반의 시간이 필요(22)'했습니다. 저자는 대학을 그만두고 인문학 공동체 문탁네트워크에서 유교를 공부합니다. 《열녀전》이 열녀문 얘기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열전(列傳)'과 같이 어떤 이야기가 줄지어 있다는 뜻의 '열(列)' 자를 쓰는 《열녀전》은 '옛 여성 이야기 모음집'이라는 걸 지금 알았습니다. 저자는 '《열녀전》을 읽으며 나의 페미니스트 자아와 유교 자아가 경계를 풀고 화해할 수도 있겠다는 느낌(43)'이 들었다고 합니다. 공부할수록 夫婦有別 長幼有序(부부 사이에는 구별이 있어야 하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어야 한다.)처럼 불편했던 문장들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여성혐오와 차별이 아니라 '유교의 '구별'과 '차례'는 서로가 서로의 가능성을 믿고 의지하면서, 각자 다른 역할을 수행해갈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67)'하며 유교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을 믿는 학파라는 믿음이 강해졌습니다. 어려서부터 계절을 즐길 줄 아는 인간이었다면 나는 아마 비구니가 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청소년 시절 내내 나는 대통령이나 변호사를 꿈꾸는 진취적인 여자였다. 사주상 나의 캐릭터는 갑목(甲木)이라던데, 이것이 나의 타고난 성정을 잘 표현해준다고 생각한다. 갑목은 큰 느티나무와 같아서 성장하는 힘이 강하고 위로 뻗어나

파타고니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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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본 쉬나드는 스피어 피싱, 매사냥, 플라이 피싱, 급류 카약, 텔레마크 스키나 백컨트리 스키, 빙벽 등산, 요세미티 거벽 등반, 서핑 같은 다양한 아웃도어 스포츠를 경험했습니다. 특히 암벽 등반은 뛰어난 업적을 남긴 전설적인 등반가입니다. 한국에서 군복무를 한 이본 쉬나드는 인수봉에 바윗길 2개를 개척하기도 했습니다. 이본 쉬나드는 자신이 만든 피톤이 등반하는 바위에 손상을 가한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한 뒤로는 제거가 가능한 등반 보호 장비를 제작해 판매했습니다. 그는 더 이상 추가할 것이 없어야 완벽한 디자인이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어야 완벽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순함이 완벽함에 이르는 길이라고 믿습니다. 이본 쉬나드는 선(禪) 철학을 공부하고 명상하면서 단순함을 배웠습니다. 스포츠에서 터득한 선을 비즈니스에도 적용했습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해 주주에게 돌려주는 것을 목표로 운영합니다. 파타고니아에서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릴 때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뒤 파타고니아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파타고니아가 하는 일이 원활하게 진행된다면 이윤은 저절로 따라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파타고니아는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기술을 활용하지 않습니다. 오염을 유발하는 과거의 비효율적인 제품과 생산 방법을 더 깨끗하고 더 단순하며 더 적절한 기술로 대체하기 위해 기술을 활용합니다. 파타고니아는 재생 불가능한 자원 사용에 대한 세금을 스스로 부과했습니다. 매출의 1퍼센트를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복원하는 일에 사용합니다. 한 단계 더 진전시켜 2002년에는 ' 지구를 위한 1퍼센트 One Percent for the Planet '라는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매출의 1퍼센트를 기부해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복원하는 환경단체를 지원합니다. 파타고니아는 고향별 지구를 파괴하지 않는 리스판서블 경제 를 지향합니다. 지구에 해를 입히지 않으며 다음 200년 동안 운영을 지속해나가는 비결을 찾고 있습니다. 이본 쉬나드가 19

나무가 나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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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이 달라도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고 싶습니다. 나무가 나무에게 간청하며 간곡히 한참 동안 기도했습니다. 나무는 나무를 닮고 싶습니다.

고양이들 - 루이스 웨인의 웃기고 슬프고 이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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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만 해도 영국에서 고양이는 호감을 주는 반려동물이 아니었습니다. 루이스 웨인 Louis Wain 이 그린 고양이 그림이 인기를 얻기 전까지는요. 루이스 웨인은 1860년 8월 5일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뒤로 줄줄이 다섯 명의 여동생이 태어났습니다. 1877년부터 1880년까지 웨스턴 런던 예술학교에서 공부했고, 졸업 후 모교에서 교사로 근무했습니다. 1880년 부친이 돌아가시자 루이스 웨인은 가장 노릇을 하게 됐습니다. 1881년 12월 10일 처음으로 루이스 웨인의 그림이 잡지에 수록됐습니다. 이듬해인 1982년 교사를 그만두고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의 스태프가 되어 전시회를 취재하며 기사를 쓰고 삽화를 그렸습니다. 1883년 누이동생들의 가정교사로 에밀리 리처드슨(Emily Marie Richardson, 1850~1887)이 왔습니다. 둘은 사랑에 빠지고, 1884년 1월 30일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루이스 웨인는 스물세 살, 에밀리는 열 살이 더 많았습니다. 독립해 신혼집을 차렸지만 행복은 길지 않았습니다. 에밀리가 유방암 진단을 받고 침대에 갇히다시피 하며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 루이스는 에밀리를 기쁘게 하려고 침대 곁에서 피터라는 새끼고양이를 스케치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평범한 삽화가였던 웨인은 피터를 대상으로 수많은 습작을 그렸습니다.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 뉴스》의 사주인 윌리엄 잉그램 경(Sir. William Ingram)에게 고양이 그림 몇 점을 보여주자 그는 두어 점을 잡지에 실었습니다. 1886년 12월에 윌리엄 잉그램 경에게서 크리스마스 특집호에 실을 삽화 의뢰를 받았습니다. 11일이 걸려 완성한 〈 새끼고양이들의 크리스마스 파티 A Kitten's Christmas Party 〉는 약 이백여 마리의 고양이가 등장했고, 곧바로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고양이 화가라는 명성이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사반세기 동안 일감이 떨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에밀리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아서, 함께 정글을 가로지른 떠돌이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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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아서 Arthur The King, 2024〉는 실화를 바탕으로 사이먼 셀란 존스(Simon Cellan Jones) 감독이 만들었습니다. 마이클(마크 월버그 扮)은 19년간 어드벤처 레이싱팀의 주장으로 활동한 베테랑이지만 번번이 우승컵을 놓쳤습니다. 우승을 위해 마지막으로 팀을 꾸려 다시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열리는 극한 경기에 참여합니다. 여기서 팀을 따르는 떠돌이 개를 만나 아서왕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습니다. 아서는 마스코트이자 5번째 멤버가 되어 팀원들을 따르고 지켜주며 어드벤처 레이싱을 완주합니다. 영화 〈아서〉는 2014년 에콰도르에서 열린 챔피언십 어드벤처 경주(2014 Adventure Racing World Championship)에 참가했던 스웨덴의 익스트림 운동선수 미카엘 린드노드( Mikael Lindnord )가 떠돌이 개 아서와의 실화를 바탕으로 2016년에 쓴 《아서, 정글을 가로질러 집을 찾은 개 Arthur: The Dog Who Crossed the Jungle to Find a Home 》를 원작으로 만들었습니다. 경주 4일차에 떠돌이 개가 린드노드에게 다가왔습니다. 등에 큰 상처가 있어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습니다. 린드노드는 미트볼을 몇 개 줬습니다. 그 후로 떠돌이 개는 계속 따라왔고 팀원들은 아서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아서와 동고동락하며 700km(430마일)를 동행했습니다. 린드노드 팀은 54개 팀 중 12위를 차지했습니다. 대회를 마친 후 린드노드는 아서를 스웨덴으로 데려와 정식으로 입양해 가족이 되었습니다. 미카엘의 아내 헬레나 린드노드는 "인연을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아서에게는 특별한 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린드노드는 아서를 입양하고 아서재단( Arthur Foundation )을 만들어 동물 복지를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아서는 6년간 린드노드 가족과 함께 지내다 2020년에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IT ALL STARTED WITH A MEATBALL... 아서

용수골에 가면 꽃양귀비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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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7회째인 용수골 꽃양귀비축제 (20240517~20240606)는 일만여 평 규모의 정원에 꽃양귀비, 금영화, 수레국화, 청보리 등 50여 종의 식물을 주민들이 직접 가꾸고 참여하는 주민자치형 지역축제입니다. 입장하며 초등생이 양귀비로 지은 삼행시를 찬찬히 읽으면 시나브로 미소가 번집니다. 깡통열차와 그네도 있습니다. 꽃말이 '망각, 휴식, 위안, 덧없는 사랑'인 꽃양귀비 Papaver Rhoeas 는 아편 양귀비 Papaver Somniferum 와 달리 관상용 개양귀비로 '우미인초(虞美人草)'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당나라 양귀비(楊貴妃)는 아편 양귀비꽃에 이름을 남겼고 항우(項羽)만 사랑했던 초나라 우미인(虞美人)은 꽃양귀비에 이름을 남겼답니다. 금영화 California Poppy 는 북아메리카가 원산지로 꽃말은 '감미로움, 나의 사랑을 받아주세요'입니다. 수레국화 Centaurea Cyanus 는 독일의 나라꽃으로 꽃말은 '행복'입니다. 귀농한 예비역 대령(김용길 풍차꽃 농장 대표)이 2005년에 300여 평의 작은 밭에 관상용으로 심은 꽃양귀비가 입소문으로 관람객이 몰리자 2007년부터 마을 주민들이 합심해 지역축제로 만들었습니다. 매년 약 3만여 명 이상이 방문하여 축제를 즐긴답니다. 제발 꽃밭에 들어가지 말라고 애걸복걸하며 방송하는 이는 김정윤 이장으로 용수골 꽃양귀비축제추진위원장입니다. 주차관리부터 청소까지 남녀노소 모든 주민들이 참여하고 입장료(3000원/인)는 마을공동기금으로 활용한답니다. 꽃밭에 들어가서 사진을 찍어도 꽃보다 예쁘지 않으니 길 따라가며 양귀비를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고개를 숙였던 백만송이 꽃양귀비는 이번 주말에 만개하여 꽃밭을 붉게 물들이며 장관을 이룰 겁니다. 해마다 이맘때 용수골에 가면 꽃양귀비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