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Showing posts with the label 나무로그

나무 수업 - 따로 또 같이 살기를 배우다

Image
왜 나무들은 사회적 존재가 되었을까? 왜 자신의 영양분을 다른 동료들과, 나아가 적이 될 수도 있는 다른 개체들과 나누는 것일까? 이유는 인간 사회와 똑같다. 함께하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나무 한 그루는 숲이 아니기에 그 지역만의 일정한 기후를 조성할 수 없고 비와 바람에 대책 없이 휘둘려야 한다. 하지만 함께하면 많은 나무가 모여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고 더위와 추위를 막으며 상당량의 물을 저장할 수 있고 습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 환경이 유지되어야 나무들이 안전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다. 그런데 그러자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공동체를 유지해야 한다. 모든 개체가 자신만 생각한다면 고목이 될 때까지 수명을 유지할 수 있는 나무가 몇 그루 안 될 것이다. 계속해서 옆에 살던 이웃이 죽어 나갈 것이고 숲에는 구멍이 뻥뻥 뚫릴 것이며 그 구멍을 통해 폭풍이 숲으로 밀고 들어와 다시 나무들을 쓰러뜨릴 것이다. 또 여름의 더위가 숲 바닥까지 침투하여 숲을 말려 죽일 것이다. 그럼 모두가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나무는 한 그루 한 그루 전부가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 주어야 하는 소중한 공동체의 자산이다. (14) 나무들은 서로 협력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무턱대고 바람만 믿을 수는 없다. (...) 뿌리를 이용하는 쪽이 훨씬 더 확실하다. 뿌리는 모든 개체들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고, 또 날씨와 관계없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 나무의 뿌리는 아주 멀리까지 뻗어 있다. 수관(樹冠) 너비의 두 배까지 뻗어 나간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하에선 서로의 뿌리가 겹치게 되고, 그렇게 뒤엉켜 자라면서 상호 협력을 하는 것이다. (22) 아헨 공과대학의 바네사 부르셰(Vanessa Bursche)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너도밤나무 숲에서 광합성과 관련하여 매우 특별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모든 나무가 동일한 성과를 올리도록 나무들이 서로서로 보폭을 맞추는 것이다. (29) 모든 나무는 통계적으로 볼 때 정확히 한 그루의 자손을 키운다.

'덕분에'라더니 '영웅'이라더니 - 의료현장의 민낯을 증언하다

Image
간호부는 의사 아이디를 쓰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현장에서는 처방이 없으면 업무가 돌아갈 수가 없다. 간호 업무만 하는 것도 벅찬데 의사 업무까지 더해져서 해결이 안 되면 다음 근무 간호사에게 업무가 전가된다. 생리식염수 처방하는 일이 하찮아서 바쁜 의사들은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고치기 위해서는 의사를 더 많이 뽑아서 의사 업무 부담을 줄여 주고, 간호사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26) 병동 교대근무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너무 많은 환자를 보는 것이다. 다행히 요즘 노동조합에서 근무조당 환자 숫자를 선진국 수준으로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간호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사실 병동에서 10명 이상의 환자를 보다가 주말에 환자 퇴원으로 한 자릿수로만 줄어도 숨통이 트인다. 정말이지 근무조당 환자 수를 1대 5로 낮추는 것은 반드시 되어야 한다. 이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간호사노조를 방문해서 만난, 1대 5 근무를 하는 한인 간호사들의 행복한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근무 시간 중 가장 많이 하는 일이 환자와 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린 환자에게 친절한 설명은커녕 환자와 눈도 마주칠 시간이 없는데. 하루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41) 나는 병동에서 일하는 10년 차 간호사다. "오늘 점심 메뉴는 무엇일까?" 하며 기대하는 일반 직장인들과는 달리 "오늘은 과연 점심을 먹을 수 있을까?"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한 달 20일 근무 중 5번 점심을 먹으면 성공한 달이다. 그나마 나의 점심시간을 줄여야 시간에 맞춰 간호를 제공할 수 있다. (49)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아플 수 있을 권리가 있고 가족에게 부담 주지 않을 권리가 있고 마음 편히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간병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 가족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나라에서 책임지고 풀어야 할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해결해야 한다.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품위 있게 아프려면 말이

혁명

Image
혁명이란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대중을 동원하여―군사적 동원이든 민간인의 동원이든 둘 다든―정부를 강제로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치제도를 만들어내는 것(17)'이다. 혁명은 '빈곤이나 불평등 같은 변화에 대한 불만이 쌓인다고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혁명은 '사회 질서가 여러 분야에서 닳아빠질 때 나타나는 복잡한 과정(33)'이다. 혁명은 '통치자가 나약하고 고립되었을 때, 엘리트가 정부를 방어하기보다는 공격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함께 행동하여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다수의 연합된, 올바른 집단의 일원으로서 스스로를 자각할 때만(15)' 일어난다. 혁명이 일어나는 다섯 가지 조건이 있다. ①경제적 또는 재정적 압박 ②엘리트 사이에 소외와 대립이 커지는 것 ③불의에 대한 대중적 분노의 점진적 확산 ④설득력 있는 저항의 서사를 보여주는 이념의 공유 ⑤혁명적 변화에 우호적인 국제 환경이다. 혁명이 똑같은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지만 '중앙의 몰락(central collapse)과 주변의 약진(peripheral advance)(51)'이라는 패턴으로 진행된다. 최근에는 타협 혁명이라는 새로운 패턴이 등장했다. '반대파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달은 정부 당국이 새로운 연합 정권에 반대파를 참여시키는 협상을 모색(54)'하는 것이다. 혁명은 '단순히 독재자를 타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체제를 파괴하고 이를 보편적 권리와 피통치자의 동의에 기반한 새로운 입헌 정부로 대체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비롯한 이 혁명 모형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오늘날 혁명의 지배적 이상(理想)이 되었다(122)'. 혁명의 결과는 금세 드러나지 않는다. 때로 '혁명은 영웅주의뿐 아니라 공포(70)'라는 이름값으로 막대한 비용과 수천만 명이 희생된다. 혁명의 결과는 많고 다양하며 드러나는 시점도 제각각이지만, 혁명이 전개되어 '옛 체계가 무너지고

여인과 바다, 차별과 혐오의 파도를 넘다

Image
영화 〈여인과 바다 Young Woman and the Sea, 2024〉는 여성 최초로 영국 해협을 헤엄쳐 건넌 트루디 에덜리(Gertrude "Trudy" Ederle)의 실화를 그린 작품입니다. 1905년 10월 23일 뉴욕시 독일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트루디는 어렸을 때 홍역으로 청력이 손상되었습니다. 아홉 살까지는 전혀 수영할 줄 몰랐고, 15세 때 정식으로 수영을 배웠습니다. 1921∼25년까지 29개의 아마추어 미국 신기록과 세계신기록을 세웠습니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참가해 자유형 계주에서 금메달, 자유형 100m와 400m에서 동메달을 땄지만 아쉬운 결과였습니다. 1925년 6월에는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뉴욕만을 수영으로 건넜습니다. 7시간 11분으로 이전 남성 기록을 깼습니다. 트루디는 1925년 8월 18일에 처음으로 영국 해협 횡단을 시도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여성이 남성보다 신체적으로 열등해서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 다섯 명의 남자가 해협을 건넜지만 여성은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8시간 46분이 지난 뒤 코치가 수영을 중단시켜 실패했습니다. 영국 언론은 지원 보트의 누군가가 트루디를 만졌기 때문에 실격되었다고 했습니다. 코치였던 울프(Jabez Wolffe)가 고의로 방해했다는 소문도 났습니다. 겨우내 언니 마거릿과 함께 훈련했습니다. 최초의 비키니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수영복도 고안했습니다. 이듬해 버지스(Thomas W. Burgess) 코치와 함께 해협 횡단에 다시 도전했습니다. 1926년 8월 6일 아침 7시 5분, 투피스 수영복과 고글 을 착용한 트루디는 돌고래 기름을 온몸에 바르고 춥고 해파리가 가득한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두 차례 돌풍과 해파리를 만나는 위기를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근처 예인선의 기자들이 진행 상황을 방송했습니다. 프랑스에서 출발한 지 14시간 31분 후에 영국에 도착했습니다. 영국 도버의 사람들이 해안선으로 몰려들었

아주 오래된 유죄 -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여성을 위한 변론

Image
여성들의 싸움은 가끔 승리하지만, 많은 경우 여전히 패배한다. 법정 싸움은 포기하지 않은 여성들의 최후의 싸움이고, 승리의 기약도 없이 긴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싸움이다. (11) 치마가 들춰지고, 마음대로 볼일도 못 보고, 남자아이들의 잘못으로 소문에 오르내려도 '행실 잘하라'며 오히려 혼나던 여자아이들이 자라나, 남자 사진을 촬영해 유포하거나 남자로부터 당한 일을 그대로 되갚자며 똑같이 하려고 하거나, 혹은 하고 있다. 이른바 '미러링'이다. 여자들이 미러링하는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은데, 내 눈에는 싫어하는 벌레가 온몸에 잔뜩 들러붙었는데 이를 떼어내지 못해 몸부림치는 고통으로 느껴진다. 내 눈에 미러링은 여성의 비명이다. (20)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가 유발한 남성의 성적 충동으로 인하여 발생한다는 통념이 존재한다. 이는 종종 피해자의 행실 책임론으로 귀결되어 성범죄를 저지른 남성이 형을 감면받거나, 심지어 무죄를 받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야한 옷을 입어서' '평소 행실이 방정하지 못해서' '남성과 데이트를 즐기며 성관계를 허락한 것처럼 착각하게 해서' 등 여성이 남성의 성적 충동을 유발해 성범죄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33)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데는 여러 까닭이 있겠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성희롱 피해 사실을 공개하더라도 피해가 회복되기 어렵고, 오히려 2, 3차 가해는 당연한 부록이며, 결국에는 피해자 자신이 직장과 공동체에서 손가락질받고 쫓겨날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50)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은 어느새 성적 자기결정권, 즉 '자발'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아이들을 공격한다. 성인 남성의 성착취에 대해 법과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관대한가. 성인 남성의 성범죄 대상이 성인 여성인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고, 피해자가 아동이라고 해도 처벌의 관대함이 특별히 다르지 않다. (64) 능욕당한 여성들을

강민영, 식물 상점으로 전력 질주하길 바라지 않는 소설가

Image
쓸데없는 것들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식물들은 사람이나 동물처럼 발이 달리지 않아서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지만 그 대신 어느 땅에 내리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는 존재들"입니다. "나고 자라는 장소는 복불복일지언정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고, 재해를 만나더라도 말없이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식물은 여성과 닮았습니다. 유희는 "사람도 식물처럼 다듬으면 나을 수 있다고, 조금 손보면 더 옳은 방향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그 믿음은 유희를 거쳐 간 남자들 때문에 깨졌고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았습니다. 유희는 주황과 초록으로 색칠한 당근 모양의 물뿌리개를 들고 마당에 서서 자신이 밟고 있는 땅바닥을 한참 내려다봤다. 끊임없이 여자를 괴롭히던 남자들. 그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굵은 선이 머리 위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이 자기 감정을 의도적으로 표출하는 대상은 정해져 있었다. 어쩌다 그들과 엮인 여자들에게서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결국 시발점을 찾아 말끔하게 지워야 했다. 유희는 그동안 '식물, 상점'을 거쳐 간 여자들을 떠올렸다. 유희는 죽여주는 식물 상점을 운영합니다. 세상에 쓸데없는 것들을 잡아줍니다. 체육을 싫어했던 허진은 의사의 권유로 수영에 입문했습니다. 지금은 바다 수영이 마지막 목표일 정도로 동호회 사람들 사이에 타고났다는 말을 듣습니다. 바닷가가 고향인 김설은 수영은 젬병이지만 어릴 때부터 달리기가 좋았습니다. 단 한 번도 달리기가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둘은 우연히 같은 장소에서 맞닥뜨린 재난 상황에서 서로 도우며 생존했습니다. 허진과 김설은 "갑자기 재앙과 재난이 도래한다 할지라도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님을, 손과 등을 잡아 주고 일으켜 세워주는 누군가 있음을 실감하며 안심하고 한 발 가까스로 내딛"으며 생존을 위해 전력 질주했습니다. 초코라는 강아지와 함께.

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Image
생각해보면 개인의 사고를 그토록 붙들어 맨 일본의 국가권력은 놀랍다. 그것도 장구하게 유지해왔다는 것이 더욱 놀랍고 유례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기능과 세기가 우수하면서도 일본은 항상 남의 틀과 본을 훔쳐오거나 얻어 와서 갈고 닦고 할밖에 없었다. 본과 틀이 없는 나라, 그들의 정치이념은 창조의 활력이 위축된 민족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날조된 역사교과서는 여전히 피해받은 국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고 고래심줄 같은 몰염치는 그것을 시정하지 않은 채 뻗치고 있는 것이다. (29) 통곡이 없는 민족, 울지 않는 민족, 왜 울지 않을까? 슬픔도 마치 실루엣같이 소리가 없다. 너무나 정적이다. 본시부터 그러했을까? 그들이라고 울지 않을 리 없다.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칼로 상징되는 그들의 역사 탓일 것이다. 사실 일본이 이웃에 끼친 피해의 규모가 크고 참혹함도 자심한 것이었지만 그들 스스로, 동족들 목줄기에 들이댄 칼의 세월이 훨씬 길다. 그리고 그 참혹함도 타민족에 대한 것에 못지않았다. (49) 일본에서 많이 쓰이는 말 중에 '스고이! 凄い '라는 것이 있다. 우리네의 굉장하다는 말과 같이 일종의 감탄사인데 크고 훌륭하다는 뜻의 굉장과 오싹하게 소름 끼친다는 뜻의 스고이, 일본도 日本刀 의 푸른 칼날의 번뜩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덩어리. (56) 옛날 일본은 아시아에서 고도 孤島 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에서도 고아 같은 존재였다. 기능적이며 공리적인 특성은 차라리 서쪽에 가깝다. 그리고 일본은 서쪽을 등에 업고 동쪽을 배신한 유일한 나라다. (77) 진리는 아름답고 선하다 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진리이며 선하다. 선한 것은 진리이며 아름답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일본 문학의 탐미주의, 예술지상주의는 갇혀버린 사회에서 도피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선함도 진실함도 결여되어 있고 오히려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농후합니다. (102) 나는 젊은 사람에게 더러 충고를 한다. "

H마트에서 울다, 한국 음식으로 시부저기 이어진 핏줄

Image
미셸은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H마트에만 가면 웁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셸은 어머니에게서 한국 음식 문화를 접했습니다. 어머니가 암 투병으로 돌아가신 후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여전히 한국인인지 의문이 듭니다. 미셸은 지난 5년 사이 이모와 엄마를 암으로 잃었습니다. 두 분에 대한 추억을 찾으려고 H마트에 갑니다. 청소년기에 미셸은 또래 사이에 섞이려고 애쓰며 지냈고, 소속을 증명하려고 느끼면서 성인이 됐습니다. 미국과 한국이라는 두 세계 중 어느 세계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었습니다. 반만 인정받고 반은 이방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엄마에게서 "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는 소리도 들으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엄마는 휴가 여행을 다녀오며 사 온 카우보이 부츠를 일주일 동안 신고 다니며 길들여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미셸이 처음 신을 때 발이 까이지 않고 편안하게 신을 수 있게 하려고 그랬습니다. "널 편안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엄마는 어떤 고통도 감수할 거라고, 그게 바로 상대가 너를 진짜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장례식이 끝나고 투병 생활 중 엄마가 드셨던 음식 중 잣죽을 만들었습니다. 요리법은 간단했지만 시간이 걸리는 요리였습니다. 화려하고 값비싼 요리가 아니라 담백한 잣죽이 진짜로 원하는 요리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국 이모 집에서는 마침 생일이어서 이모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를 생각하는 의미에서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전통이 있는데 새로운 의미가 생겼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마치 엄마의 자궁 속으로 돌아가 그 안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것은 핏줄(blood ties)이었습니다. 미셸이 처음 한 말은 엄마라는 한국말입니다. 그다음엔 맘(mom). 엄마를 두 가지 언어로 부르기 시작하며 엄마만큼 날 사랑해 준 사람은 없었다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

Image
직업은 동식물 연구가이자 과학자이지만 나 또한 한 사람의 인간이다. 내가 어떤 일을 꿈꾸고 원하든 간에, 결국 내가 하는 일이 곧 나 자신이다. 지난 25년 동안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숲으로 가는 것이다. (6) 우리의 목적지는 메인 주 서쪽에 있는 애덤스 힐이다. 한때는 농장지역이었으나 지금은 내가 거주할 작은 터를 제외하고 전부 숲으로 바뀌었다. (18) 메인 주 이쪽 부근의 삶은 나무와 숲을 빼고는 상상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나무를 땔감으로 쓰고 어떤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 나무를 잘라낸다. 많은 사람들이 종이, 터보건, 설상화, 사과 박스, 카누를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한다. 이 모든 것이 나무로부터 나온다. 나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의 생명줄인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용도가 다른 두 개의 나무가 있는 것이다. 나무는 목재 wood 가 되기도 하고 숲 woods 을 이루기도 한다. (41) 우리 인간은 곤충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우리 또한 의미도 모른 채 살아남기 위해서 무작정 하고 있는 일들이 많지 않을까? (93) 나는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 매료되었고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주변의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잠길 수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아주 가까우면서도 영원한 느낌으로 포개지는 것 같았고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마치 큰까마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156) 진화는 무엇인가를 '덤'으로 만들지 않는다(가끔 우연히 그런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왜냐하면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데는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162) 다람쥐는 어디에다 구멍을 냈는지 기억하고 따뜻하고 해가 잘 드는 날을 기다렸다가 짠-하고 메이플 시럽을 마신다. 나는 다람쥐가 나무에서 나무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는데 녀석은 구멍을 뚫어놓은 나무-오직 그 나무에만-로 바로 올라갔다. 나중에 나도 다람쥐

매미

거룩하거나 거북하거나 이 별에서 이별하지는 말자 너무 차가운 한여름 함성 한마디로 남기는 질긴 문장

사람, 장소, 환대

Image
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이다. 이 세 개념은 맞물려서 서로를 지탱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26)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도덕적 공동체―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즉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인간과 다른 점이다. 이 두 단어는 종종 혼용되지만, 그 외연과 내포가 결코 같지 않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지, 사회적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개체가 인간이라면, 그 개체는 우리와의 관계 바깥에서도 인간일 것이다. 즉 우리가 그것을 보기 전에도,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고유한 특성에 의해 이미 인간일 것이다. 반면에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31) 태아, 노예, 군인, 그리고 사형수의 예는 사람의 개념에 내포된 인정의 차원을 드러낸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말해서 사회는 하나의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의 개념은 또한 장소의존적이다. 실종자의 예에서 보았듯이 특정한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사람의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동어반복적으로 들리겠지만― 우리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사회란 다름 아닌 이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57) 사회는 각자의 앞에 펼쳐져 있는 잠재적인 상호작용의 지평이다. (58) 신분이란 어떤 위계화된 구조 안에 있는 고정된 위치들이 아니라 무리짓고, 사회 공간을 점유하고, 경계를 만들며, 배제하거나 포함시키고, 자리를 주거나 뺏는 어떤 운동의 효과이다. 그러므로 신분의 개념은 인정투쟁이나 타자화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142) 우리

이제는 기본소득 시대

Image
ⓒ Why basic income now 인공지능 기술이 세계로 뻗어나가면서 시민과 노동자와 소비자가 동의어였던 시대가 끝났다. 일하지 않아도, 사회의 구성원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받으며 느긋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일자리를 원했다. 기본소득만으로는 갑작스러운 병원비를 대거나 침실과 서재가 있는 집을 구할 수 없어서 그랬을 것이다. 한 칸짜리 방에 누워 있다가 죽음을 맞이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일하는 쪽은 노는 쪽을 게으름뱅이 기생충이라며 경멸했고, 노는 쪽은 일하는 쪽을 재수 없는 얼간이로 보았다. 그런 와중에도 양측으로부터 사랑받는 부류가 있었다. 에세이스트, 아이돌, 싱어송라이터, 팟캐스트 진행자...... 내면을 기꺼이 드러냄으로써 타인의 정신을 어루만진다고 여겨지는 존재들, 그래서 반대로 열광적인 사랑을 퍼부을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 단요, 《개의 설계사》(아작, 2023), 26~27쪽 기본소득 사회를 빼어나게 상상하며 탁월하게 설명했다.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기본소득을 받으면 그럭저럭 살아간다. 그럼에도 일자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더 나은 생활을 위해서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은 노는 사람을 기생충이라고 업신여기고, 노는 사람은 일하는 사람을 재수 없는 얼간이라고 비난한다. 기본소득 사회라고 갈등이 없겠느냐만, 무조건 모두에게 지급하는 기본소득 시대가 앞당겨지길 바란다. 기본소득은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노동을 하지 않도록 해주고, 좀 더 의미 있는 노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생존 이상의 가치를 꿈꾸게 하기 때문이다.

헌책방 기담 수집가

Image
책을 찾는 사연을 수수료로 받고 절판된 책을 찾아주는 헌책방 주인이 있습니다. 사연을 들려주면 책을 찾아주지만, 헌책은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나타나곤 합니다. 젊은 시절에 연애편지를 쓰려고 샀던 책을 찾아 달라는 어떤 어르신의 사연이 계기가 됐습니다. 어르신은 사람을 찾는 건 의미가 없으니 연애편지를 쓸 때 도움을 받았던 책을 찾고 있었습니다. 찾고 있던 책은 인연처럼 반년이 지나 나타났습니다. 어르신은 책값보다 더 비싼 차비를 들여 책을 찾으러 왔습니다. '책은 작가가 쓴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책을 찾는 사람들은 거기에 자기만의 사연을 덧입혀 세상에 하나뿐인 새로운 작품(23)'을 만듭니다. '책은 다 같은 책이지만 꼭 만나야 하는 그때의 책'에는 '젊은 날의 추억, 사랑, 고민, 그리고 망설임과 선택을 고스란히 담고(32)' 있었습니다. 한동네에서 살며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녔고 결혼까지 한 부부는 어릴 때 읽었던 책을 찾고 싶답니다. 두 사람의 추억이 깃든 책을 찾아서 태어날 아이에게 읽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책은 아이가 태어나고도 한참 지난 뒤에야 전해줬습니다. 아이에게 책을 보여주자 아이는 내용은 물론 사연까지 다 아는 것처럼 책을 잡으려 했습니다. 하룻밤 만에 다 읽을 수 있는 소설을 마저 읽는 데 4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사연도 있습니다. '어떤 책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71)' 합니다. '해 질 녘 서해를 닮은 그림처럼(81)' 한없이 쓸쓸한 풍경에 이야기가 담긴 그림엽서를 건네던 이도 있었습니다. '가장 아끼는 것은 책이 아니라 하나뿐인 손녀(105)'일지도 모르는 어떤 노인도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아름다운 한 사람을 향한 애틋한 마음은 수만 권의 책으로 가득 한 서재와 바꿀 만큼 소중(106)'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완전사회, 인류의 완전한 미래는 여인공화국

Image
유엔은 '미래로의 수면 여행'을 계획한다. 지성인이며 완전한 신체를 가진 '완전인간'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우선구는 전 세계에서 딱 한 명인 완전인간으로 선발된다. 남태평양에 있는 비커츠섬에 미래로의 수면 여행을 위한 보금자리가 만들어졌다. 우선구는 비커츠섬에 마련된 기밀실의 수면 장치에 누웠다. 기밀실 벽의 원자시계가 완전인간의 수면 시간을 기록하려고 움직였다. 누가 몸을 흔들었다. 우선구는 기분 좋게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우선구가 침대에 올라갈 때를 0으로 시작한 비커츠섬 원자시계는 161이라는 숫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선구는 161년을 자다 깨어난 것이다. 2155년. 유엔이 계획한 미래로의 수면 여행은 성공했다. 우선구가 잠들어 있는 동안 세계는 급변했다. 비커츠섬 시간으로 9년 7월 20일, 제3차세계대전이 폭발했다. 핵무기로 교전을 한 세계대전으로 전 세계 인구의 90퍼센트 이상이 죽었고, 살아남은 지역도 방사진으로 불행한 종말을 기다리는 날들이었다. 23년 4월 14일, 원자탄 피해 복구 방식을 발견하였다. 핵폭발 지역이 속속 복구되었다. 32년. 핵무기의 대량 투입으로 시작한 제4차세계대전은 기상작전(氣象作戰)과 독기류, 독가스, 독세균 작전으로 2년 이상을 끌었다. 3차대전을 겪고 살아남은 6억 인구가 11억까지 불어났지만, 이제 9천만 명도 못 되게 살아남았다. 온 세상은 사막이 되었고 독약으로 넘쳤다. 무기를 만드는데 앞장섰던 과학자들은 대오각성하고 세계과학자연맹을 만들었다. 과학자들은 곳곳에 과학센터를 만들어 전 세계 인민들을 돕고 부흥 사업을 시작했다. 과학센터가 설립된 지 2년 만에 전 인류에게 충분한 의식주 문제를 해결했다.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자 파벌이 다시 싹트고 정치인이 등장했다. 과학자들은 모든 정치성을 외면하고 숙청을 단행하였다. 과거의 뼈아픈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심이었다. 과학센터가 전 세계 의식주의 생산과 관리를 쥐게 되자 스스로가 정치 세력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위대한 탐험의 숨은 영웅 톰 크린

Image
1912년 1월 4일. 여덟 명의 대원은 마지막으로 악수하고 작별 인사를 나눴다. 스콧이 어젯밤에 팀을 다시 꾸리기로 하고 테디 에반스, 래실리, 크린에게 베이스캠프로 돌아가라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크린은 지난 두 달 동안 노력했음에도 남극점을 밟을 기회를 놓친 것이다. 스콧, 윌슨, 보워스, 오츠, 태프 에반스가 살아서 이동하는 마지막 모습을 바라보았다. 크린, 래실리, 에반스는 베이스캠프까지 1206킬로미터를 되돌아가야 했다. 네 명이 해야 할 일을 셋이 하며 남극점을 정복하고 돌아올 대원들을 위해 식량과 연료의 4분의 1을 저장소마다 남겨두고 가야 했다. 더군다나 테디 에반스만 유일하게 방향을 찾는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에반스는 괴혈병 초기 증세를 보이고 있었다. 세 사람은 180킬로그램의 짐을 실은 썰매를 끌며 나아갔다. 기온은 섭씨 영하 29도까지 내려갔고, 바람이 '얼어붙은 바늘 끝으로 뺨을 찌르는 것처럼' 얼굴을 후려쳤다. 1월 17일. 스콧은 남극점에 도달했지만, 아문센의 탐험대가 한 달쯤 전에 먼저 왔다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셋은 크레바스가 숨어 있는 미로와 같은 벌판을 계속해서 나아갔다. 1월 21일 늦게 빙하 하부 저장소에 도착했다. 장장 1770킬로미터 동안 썰매를 끌어온 에반스가 괴혈병 증세를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며칠 뒤에는 래실리가 현기증을 느꼈고, 크린도 설사하기 시작했다. 에반스 곶까지는 640킬로미터가 남아 있었다. 1월 25일. 세 사람이 로스 빙붕의 평평한 얼음 벌판 위에서 썰매를 끌고 이동할 때, 아문센은 3000킬로미터, 99일의 남극 탐험을 마치고 프라하임 기지에 도착했다. 에반스의 상태가 빠르게 악화되었다. 셋이 끌던 썰매를 둘이 끌어야 했고, 에반스가 방향을 찾지 못할까 걱정이 컸다. 무거운 썰매를 끌던 두 사람은 2월 11일에 필요 없는 장비들을 모두 버려 무게를 줄였다. 헛포인트까지 160킬로미터 정도 남았을 때 에반스가 일어설 수 없게 되어 썰매에 묶어야 했다. 에반스

치악산둘레길 거북바우길을 걷다

Image
7월 13일 토요일에 치악산둘레길 8코스를 걸었습니다. 원주 시내버스 22번 석동종점에서 출발해서 용소막 성당에 이르는 거북바우길입니다. 이 비는 열녀 정선전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하여 면민이 건립한 것이다. 열녀 전씨는 함경도에서 이곳 신림면 구미통에 이주하여 단란하게 살다가 남편이 병들어 극진한 간호에도 불구하고 죽었다. 절개가 굳은 전씨는 남편이 죽은 방에서 한 발도 밖에 나오지 않으며 음식을 먹지않고 있다가 9일만에 남편을 따라 죽었다. 열녀 전씨를 기리기 위하여 1920년 5월에 이 비를 세웠다. 거북바우길 삼거리 초입에 있는 〈염신식의 처 정선전씨 열녀비〉입니다. 가당찮은 사연은 차치하고 열녀비에 남편을 따라 죽은 전씨의 이름조차 전해지지 않아 안타깝습니다.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막길을 30여 분 걸으면 구학산주차장이 나옵니다. 차량 이동을 제공하는 도우미가 있으면 여기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세요. 그늘 없는 경사진 도로여서 무지 덮고 거북바우길 코스에서 제일 힘든(?) 구간이었습니다. 구학산주차장을 지나 흙길과 그늘이 시작하는 곳에 놓인 벌통입니다. 여름에는 그늘지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 벌통을 놓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산속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자라는 천남성(天南星, arisaema)입니다. 맹독성 식물로서 장희빈에게 내린 사약이 천남성 뿌리로 만든 가루였다고 합니다. 뿌리뿐만 아니라 잎이나 줄기, 열매에도 독성이 있답니다. 열매가 익으면 빨갛게 변합니다. 거북바우길에서 산수국(山水菊, Tea Of Heaven, Mountain hydrangea)을 많이 봤습니다. 거북바우길이 유난히 습해서 그런지 바위에 사는 이끼 는 초록초록하고 싱싱하더군요. 산수국은 한국과 일본이 원산지라고 합니다. 산수국 가장자리에 핀 꽃은 헛꽃(무성화)입니다. 아주 작은 진짜 꽃송이가 벌이나 나비 눈에 잘 띄지 않아 헛꽃으로 유혹한다고 합니다. 드디어 거북바우길 중간지점에 있는 거북바우를 만났습니다. 거북이를 닮았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여행의 이유

Image
그런 의미에서 작가의 여행에 치밀한 계획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너무 순조로우면 나중에 쓸 게 없기 때문이다. (16) 계획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취하고 오는 그런 여행기가 있다면 아마 나는 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재미가 없을 것이다. (18) 인생과 여행은 그래서 신비롭다. 설령 우리가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하고, 예상치 못한 실패와 시련, 좌절을 겪는다 해도, 우리가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기 때문이다. (24) 어쨌든 내 첫 해외여행은 그렇게 키미테를 귀 뒤에 붙인 채로 시작되었다. (35)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하고, 대신 생각지도 않던 어떤 것을 얻고, 그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미묘하게 달라지고, 한참의 세월이 지나 오래전에 겪은 멀미의 기억과 파장을 떠올리고, 그러다 문득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조금 더 알게 되는 것. 생각해보면 나에게 여행은 언제나 그런 것이었다. (51)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해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다. (57) 모든 기억은 과거를 편집한다. (71) 유전자에 새겨진 이동의 본능. 여행은 어디로든 움직여야 생존을 도모할 수 있었던 인류가 현대에 남긴 진화의 흔적이고 문화일지도 모른다. 피곤하고 위험한데다 비용도 많이 들지만 여전히 인간은 여행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92) 내가 여행을 정말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미래에 대한 불안, 우리의 현재를 위협하는 이 어두운 두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109) 내 발로 다녀온 여행은 생생하고 강렬하지만 미처 정리되지 않은 인상으로만 남곤 한다. 일상에서 우리가 느끼는 모호한 감정이 소설 속 심리묘사를 통해 명확해지듯, 우리의 경험도 타자의 시각과 언어를 통해 좀 더 명료해진다. 세계는 엄연히 저기 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

가족을 구성할 권리 - 혈연과 결혼뿐인 사회에서 새로운 유대를 상상하는 법

Image
이 책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가족문제가 공적인 영역과 분리되는 가족 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인 불평등과 연결된 사회적인 의제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오늘날 활발한 가족변동 상황은 가족구성권이라는 개념을 통해 사회를 재구성하는 사유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아직 많은 이에게 낯선 개념일 가족구성권은 말 그대로 '가족관계를 구성할 권리'를 뜻한다. 이 권리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왜 중요할까? 우선, 가족구성권의 보다 상세한 정의를 보자. 가족구성권연구소는 가족구성권을 "다양한 가족의 차별 해소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가족 공동체를 구성하고, 차별 없는 지위를 보장받을 수 있는 권리"로 정의한다. 이는 즉, 가족과 가족 사이에 차별이 존재하며, 가족을 구성할 권리 또한 평등하게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다. (7) 가족을 정치화하는 가족구성권은 단순히 가족으로 인정되지 않는 관계들을 가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데서 그치는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하지만, 앞서 가족구성권의 정의에서 살펴보았듯 가족구성권은 근본적으로 가족을 둘러싼 여러 갈래의 복합적인 차별 해소에 대한 접근을 요청한다. 다시 말해, 사회가 상상해오고 권장해온 ‘가족’의 의미와 가족모델은 무엇인지, 그것이 한국사회에서 '시민'으로 가정되고 상상되는 이들의 모습과 어떻게 연동되어 있는지, 제도가 어떻게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구분하는지 등 여러 갈래의 질문들이 제기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한국사회에서 '시민'으로서의 삶과 자격이 부여되는 데 이성애규범적인 가족중심 시민모델이 핵심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8) 이성애규범적인 가족중심 시민모델이 작동하는 사회에서 퀴어, 장애인, 비혼여성, 싱글맘, 빈민 등 '이상적이지 않은 시민'들은 곧 '이상적인 가족'을 갖지 못한 이들로도 간주되며, 이들은 말 그대로 '뒤처진 존재'이자 보이지 않게 가려져야 하는

란다의 유까딴 견문록 - 마야문명에 대한 최초의 기록

Image
유까딴의 어원은 다양하지만 인디오들이 원래 어떻게 불렀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마야는 남부, 중부, 북부 지방으로 나눌 수 있는데 유까딴반도는 북부 지방에 해당한다. 유까딴은 멕시코의 동남쪽에 있는 반도로 총면적이 180,000제곱킬로미터에 이른다. 한반도 면적의 2/3 정도 되는 커다란 반도이다. 유까딴은 산이 없는 열대 평원 지역으로 거의 모든 곳에서 지평선이 끝없이 펼쳐진다. 이곳 사람들은 장수하는데, 140세에 이르는 노인도 있었다. 현재 사용하는 '마야'라는 용어는 최대한 넓게 보았을 때 유까딴반도의 상당한 지역을 일컫는 말이었음을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유럽 정복 시기 이전에는 하나의 대명사로 쓰인 적은 없다. 유까딴에는 무척 아름다운 건축물이 많이 있었지만, 금들이 가득하다는 사실무근의 소문이 퍼졌다. 이로 인하여 탐욕에 눈이 먼 에스빠냐 사람들이 유까딴으로 향하게 되었고 정복의 역사가 시작됐다. 마야 사람들의 주식은 옥수수였다. 옥수수로 다양한 음식과 음료를 만들었다. 외상 거래가 이루어졌고, 폭리를 취하지 않는 등 상거래 예의가 잘 지켜졌다. 수확한 농작물을 보관하는 훌륭한 곡물창고도 있었다. 유까딴 사람들은 매우 관대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은 무척 환대해서 낮에는 음료를 대접하고 밤에는 음식을 대접했다. 마야인들은 0의 개념을 알았고 20진법을 사용했다. 마야 사람들은 천체 관측에 있어서 당대 세계에서 가장 정밀한 과학적인 결과를 내고 있었다. 밤에 시간을 알기 위하여 금성과 염소자리, 쌍둥이자리를 활용했고, 발달된 천문학 지식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과학적인 달력 체계를 만들었다. 마야는 지금의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세, 온두라스, 엘살바도르 지역에 빼곡히 도시를 세우며 번성했다. 디에고 데 란다는 16세기 에스빠냐의 신부로 초기 식민지 시대에 멕시코로 건너가 마야 원주민들 인연을 맺었다. 란다는 원주민들과 지내며 교류했지만, 그들의 인신공양과 우상숭배에 강한 거부감을 가졌다. 원주민을 이교도로

멍때리기

Image
멍때리는 시간이야말로 삶을 채우는 시간이지. 1 백여 년 전 케인스는 일주일에 15시간만 일해도 경제적 문제에서 해방될 수 있다 2 고 했습니다. 생활 수준은 몇 배나 높아졌지만 케인스가 말한 세상은 오지 않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상상력이 생깁니다만, 자본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권리를 개무시합니다. 멍때리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삶은 여유로워집니다. 멍때리는 시간이야말로 삶을 채우는 시간입니다. 졸지에 묘씨맥주점 주인장이 된 16세 고선생은 인간보다 더 현명한 묘르신입니다. 김경, 《묘씨맥주점》(송송책방, 2020), 85쪽 케인스, 〈우리 손자 손녀들이 누릴 경제적 가능성(Economic Possibilities for Our Grandchildren)〉, 19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