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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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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흐르는 물이라면 민주주의는 물을 담는 그릇이다. '경제'는 주어진 조건에서 생산을 최대화할 때 성장한다. '민주주의'는 공정한 제도를 만듦으로써 국민과 자원이라는 주어진 조건을 최대한 끌어낸다. 민주주의가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에 따라 비슷한 인구와 자연조건을 가진 나라 사이에서도 경제적 성과가 크게 달라진다. 민주주의라는 그릇이 커야 국민과 자원이라는 잠재적 경제 역량을 실제 생산에 더 많이 이용할 수 있다. 민주주의 발전이 그릇의 크기를 키운다면, 민주주의 타락은 그릇에 금이 가게 만든다. 일본과 이탈리아 사례는 아무리 경제적 초강대국이라도 민주주의가 타락하면 끝을 알 수 없는 침체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8) 나는 민주주의와 개혁을 5년 내내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를 제대로 비판해야 10년, 20년 후에 뒤늦은 후회를 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문재인 정부는 오랜 기간 겹겹이 쌓인 민주주의 문제를 압축해 드러냈고, 그런 만큼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하는지도 명확하게 보여줬다. (9)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은 편법으로(불법은 아니다.) 민주주의 규범을 파괴하는 사례를 분석해 그 공통점을 운동 경기에 비유했다. 타락한 민주주의는 심판을 매수하고, 상대방 동의 없이 게임 규칙을 변경하며, 경기 외부자까지 이용하는 운동선수와 비슷하다. 한국의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정치가 바로 이러했다. 청와대와 여당은 사법 개혁이라는 명분으로 사법기관을 집권 세력에 유리하게 만들었고(심판매수), 야당 합의 없이 선거법을 개정했으며(일방적 규칙 변경), 감염병 대유행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총선 승리를 위해 정파적으로 활용했다(외부자 이용).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이런 현상이 '합법적' 독재의 시작이라고 이야기한다. (75) 한국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로 이행하지 못한 것은 이런 엘리트의 지대 동맹을 이완하고 해체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탓이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제도는 입법과 행정에 관한 것이다. 경

노동의 새벽 - 박노해 시집, 30주년 개정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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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의 암울한 생활 속에서도 희망과 웃음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며 활동하는 노동 형제들에게 조촐한 술 한 상으로 바칩니다. 1984년 타오르는 5월에 박노해 노동의 새벽/박노해/느린걸음 20141210 172쪽 12,000원 인간의 삶이란, 노동이란 슬픔과 분노와 투쟁이란 오래되고 또 언제나 새로운 것 묻히면 다시 일어서고 죽으면 다시 살아나는 것 스무 살 가슴에 아픔이 없다면 스무 살 가슴에 슬픔도 분노도 없다면 그 가슴은 가슴도 아니리 스무 살 아프면 가슴이 새로 스무 살이 되어 다시 새벽 노래를 부른다 1 우리 세 식구의 밥줄을 쥐고 있는 사장님은 나의 하늘이다 2 긴 노동 속에 물 건너간 수출품 속에 묻혀 지문도, 청춘도, 존재마저 사라져 버렸나 봐 3 민주야 저 달력의 빨간 숫자는 아빠의 휴일이 아니란다 배부르고 능력 있는 양반들의 휴일이지 곤히 잠든 민주야 4 나면서부터인가 노동자가 된 후부터인가 내 영혼은 불안하다 5 거치른 땀방울, 피눈물 속에 새근새근 숨 쉬며 자라는 우리들의 사랑 우리들의 분노 우리들의 희망과 단결을 위해 새벽 쓰린 가슴 위로 차거운 소주잔을 돌리며 돌리며 붓는다 노동자의 햇새벽이 솟아오를 때까지 6 돈과 무력과 권력을 전지전능한 하느님으로 믿는 봉건적이고 독재적인 저들과 온 세상 관계가 평등과 사랑으로 일치되어야 한다고 믿는 민주적으로 단결된 우리와의 이 팽팽한 대결 7 번영의 조국을 향락하는 누런 착취의 손들을 일안 하고 놀고먹는 하얀 손들을 묻는다 8 아마도 내가 자살한다면 새벽일거야 9 "1980년대를 이 땅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박노해는 역사이고 상징이며 신화이다. 고달픈 저임금 노동자로부터 몸을 일으켜 이 나라 최초의 빛나는 노동자 시인이 된 희귀한 존재, 사회 모순이 절정에 달했던 시대의 고통과 꿈과 투쟁을 기적처럼 한 몸에 구현했던 투사- 문학사적으로나

시인의 말 - 송경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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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은 괜찮으냐고 사람들이 묻는다. 나도 오래 살고 싶다. 왜냐하면 이 세계는 참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정권에서는 끌려가는 일보다 밥을 굶어야 하는 일이 늘었다. 그게 오히려 고됐다. 단식만 도합 71일을 했으니 29일만 더 채우면 마늘도 쑥도 먹지 않고 정진한 나도 단군신화에 나오는 곰처럼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람이 되고 싶은데 나이 들어갈수록 그게 좀체 쉽지 않다는 것을 배운다. ···난 곡류와 단백질만을 섭취하며 자라오지 않았다. 대다수 인류가 실현하는 끊임없는 사랑과 노동과 헌신, 그 선한 힘을 나눠 받으며 이만큼이나마 자라왔다. 이 길이 맞는 길인지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함부로 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건 그 때문이다. 그 모든 생명과 물질들에게 감사드린다. ···얼마 전 지구에서 가장 먼 별이 발견되었는데 129억 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에렌델'이라 한다. 빛의 속도로 가도 129억년이 걸린다는 머나먼 곳. 내가 나에게, 내가 당신에게 다가가는 데도 그만큼의 시간이 걸렸던 것이라고 믿어주면, 고맙겠다. 꿈꾸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송경동/창비 20220422 204쪽 11,000원 부디 우리가 치워야 할 쓰레기가 당신들이 아니길 바랍니다 1 찰칵, 찰칵 소리가 한 사람 한 사람 수갑 채우는 소리로 들리는 이번 생애는 더이상 찍힐 설움도 눈물도 남아 있지 않았다 2 그런 참혹한 애도의 시간에 어느 누군가는 달러 지수를 살피고 원유와 가스와 니켈과 밀 관련 주식을 쓸어 담지 3 인생에서 꼭 필요한 사랑의 원소들 이 추운 겨울날 저 따뜻한 햇볕처럼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지는 온정과 눈부심을 배달하는 무욕의 택배기사 4 서로 말라가는 몸을 보며 천천히 말들도 말라갔다 5 기본의 법을 뛰어넘어 새로운 법을 만들려고 싸울 때만이 비로소 노동자는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간명한 사실밖에 변호할 게 없었다 한다 6 그런데 누가 지금도

자전거를 타면 앞으로 간다 - 정지된 일상을 깨우고, 앞으로 나아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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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전거에 관한 추억 하나는 있습니다. 어느 날 "어디에나 있고 손을 뻗으면 누구나 쉽게 마주할 수 있는 물건"이었던 자전거가 반짝이며 지은이를 찾아왔습니다. 그렇게 자전거 출퇴근족이 됐고, 멀리 가거나 모르는 길도 자전거를 타고 쏘다녔습니다. 그러다 조금 빠른 자전거를 타고 싶은 아주 작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체력이 좋아졌는지 바퀴가 클수록 더 멀리 더 쉽게 달린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성능과 가격이 어마어마한 로드바이크를 장만했습니다. 2016년에 구매해서 지금까지 타고 있습니다. 세월을 생각하면 본전은 뽑은 것 같습니다. 반려견 슈 가 자전거 바퀴에 오줌을 쌓습니다. 실내 배변은 화장실에서만 하던 천사처럼 내성적인 슈가 값비싼 자전거에 일부러 실수한 것 같습니다. 자기 대신 자전거와 밖으로 나가는 걸 질투했나 봅니다. 언니와 집을 나서던 건 자기뿐인데 듣보잡 물체가 불쑥 끼어들어 자기 자리를 차지한 걸로 보였지 싶습니다. 자전거 앞에 슈를 앉혀 놓고 한마디 한 이후로 다시는 실례를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기회를 노리다 적재적소에 따끔하게 불만을 표시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제 슈는 자전거를 신경쓰지 않습니다. "슈는 무심한 눈으로 '또 자전거를 타니?'라는 표정을 짓곤 제자리로 돌아가 잠을 청(87)"합니다. "자전거를 타고 며칠 여행을 다녀오면 꽤 오랜 시간 저전거 바퀴의 냄새를 맡곤 하지만(88)" 그뿐입니다. "한층 의젓해져 세상사에 초연한 듯 보이는 슈는, 이제 자전거 따위엔 심드렁한 눈빛"을 보냅니다. 참지 못하는 언니랑 성격이 너무 다른 천사 강아지가 분명합니다. 라이딩하다 맞바람을 만나면 속력을 조금 낮추면 사소한 일들이 눈에 들어 옵니다. 사람 사이도 그렇습니다. "잠시 속도를 늦출 때 서로가 잘못하고 있는 일들, 맞지 않는 태도 혹은 필요 이상으로 신경쓰고 있는 일들을 조율할 수 있게" 됩니다. 팀 라이딩은

짱깨주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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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동아시아의 현실적 지형으로 볼 때 분단체제 해소는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체제 구축과 불가분 관계에 있다. 평화체제는 우리 민족의 힘만으로 만들기에는 너무 벅차고, 지금의 권력체계가 스스로 변화될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멀다. 다자주의 시대를 활용하여 지역적 평화체제를 구축하고 분단체제를 해체해야 한다. 중국은 불완전한 강대국이지만 미국이라는 기존 제국의 대항 권력이기도 하다. '중국이 문제'라는 자유주의 프레임이나 '중국도 문제'라는 이상주의 프레임에 벗어나 이 땅에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데 중국을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7) 한국 보수주의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거리로 나섰다는 것은 그들 사이에 체제에 대한 위기의식이 드러난 것을 뜻한다. 태극기와 성조기는 그들이 구축한 전후체제의 상징이었다. '촛불혁명'의 성공, 한일 간 정보교류 협정의 무력화, 사드 설치의 실패, 북·미 간 평화협상은 한국 보수주의의 세계관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사건들이었다. 중국의 부상은 그들의 체제를 가장 강력히 흔드는 진앙지였다. 박근혜정부 몰락 이후 전후체제의 유기적 위기를 실감한 한국의 보수주의는 대략 세 세력으로 나누어졌다. 하나는 안보적 보수주의 세력이다. (...) 다른 하나는 경제적 보수주의이다. (...) 마지막 세력은 극우집단이다. (62) 안보적 보수주의자들에게 중국의 동북공정은 반공주의와 친미주의의 위기를 단숨에 극복해 내고 한미동맹을 지킬 수 있는 호재였다. 한국의 안보적 보수주의자들은 동북공정을 역사전쟁으로 비화시켰고, 중국에 대한 전방위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결국 한국의 안보적 보수주의가 주도한 역사전쟁은 그들의 승리로 끝났다. 동북공정 사태 이후 중국은 미국보다도 더 위험한 '중화주의적 패권국가'로 낙인찍혔고, 추락하던 미국의 지위는 다시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는 우리의 영원한 우방으로 자리 잡았다. (69) 특정한 국가나 민족을 혐오하는 데는 혐오

247의 모든 것, 당신 몸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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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 니파바이러스의 슈퍼전파자이자 인류 최후의 숙주였던 247이 죽었다. 20XX년 4월 8일 오후 1시 20분에 죽었다고 WCDC(World Centers for Disease Control, 세계질병통제센터)가 공지했다. 247은 추방에 동의하고 스스로 우주에 격리되기로 했다. 인공위성에 태워 우주로 날린 247은 유언 없이 죽었다. 누군가 247의 모든 것을 추적하기 시작했다. 인간은 모든 걸 파묻어버리는 족속이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돌면 돼지를 파묻었다. 조류독감이 돌면 닭과 오리를 파묻었다. 20세기 후반 말레이시아 북부에 있는 순가이 니파라는 마을에서 기괴한 병이 돌기 시작했다. 공무원들은 돼지들을 구덩이에 몰아넣고 흙을 뿌렸다. 감염병 학자들은 마을 이름을 따서 니파바이러스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이러스가 지구 곳곳으로 퍼지자 숙주로 알려진 돼지를 묻었고 더는 돼지를 사육하지 않았다. 돼지고기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 열화상 카메라로 감염자를 색출하자 발열을 감추는 자들이 늘어났다. WCDC는 바이러스 보유자를 색출하기 위해 해열제를 금지 약물로 지정하려고 했다. 열이 나면 병원에 방문해서 바이러스가 없음을 확인받고 해열제를 처방받아 복용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WCDC 논리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복병이 나타났다. WCDC 조치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화염병을 던졌다. 해열제를 먹을 자유, 안면인식 열화상 카메라에 얼굴을 찍히지 않을 자유를 외쳤다. 그날도 시위대가 자유를 외치며 걷고 있을 때 군중의 리더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뒤를 이어 시위대가 이유도 없이 피를 흘리며 차곡차곡 쓰러져 쌓였다. 방호복을 입은 정부 요원들이 도착해서 리더의 목과 코를 면봉으로 긁어내 문질렀지만 키트에는 아무 반응도 나타나지 않았다. 변종 니파바이러스가 처음으로 출현한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WCDC는 몸집을 키우며 모든 정부 위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당신 몸에서 바이러스가 발견됐습니다"라고 통보받는 순간 격리

내 친구들은 왜 산으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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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멩이 때문에 친구를 잃었다. 지인들이 페이스북에 산 사진을 올리며 사라졌다. 그들은 자연을 선택했다. 일상의 번잡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생각은커녕 일상의 번잡함을 사랑하고, 인간과 도심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 세월이 흐를수록 비슷한 사람들이 주위에서 사라졌다. 그들은 자연 속에서 걷는 사람들이 됐다. 지은이는 청년기까지 축구선수였고, 걷는 것을 좋아한다. 산으로 간 지인들과 달리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걷는 것을 더 좋아한다. 하지만 의아한 것이 있다. 자연을 앞에 두고 있으면 우리가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 깨달을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면 평소에 얼마나 자신을 대단하게 생각했으면 자연을 앞에 두었을 때 비로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일까. 사람들은 유머 감각과 머리숱을 잃어버리는 시기에 등산을 시작한다. 자연에 홀린 듯 자연에 빠져드는 것을 보니, 그 근간에는 분명 내가 이해하지 못한 무언가가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한 번은 시도해봐야 하지 않을까. 귀찮음과 유머의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왜 그토록 자연에 집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산으로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오슬로 도심에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출발했다. 산장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 산에 올라갔다 와서 원시인이 된 모양이다. 더 강해진 것 같은 느낌은 물론이고, 자기 안에 있는 줄도 몰랐던 허세를 내보이고 있었다. 자연은 우리를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는 아무도 우리의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며 허세를 떨었다. 일주일 동안 시간을 보냈지만, 산은 위에서 보는 것보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것이 여전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등산가들은 산장에서 산장으로 움직이면서 잠자리에 드는 사람들로 보였다.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다시 산으로 갔다. 부활절 휴가 직전 인 3월 말이었다. 스키를 타고 산장에 묵으며 가능한 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이 목표였다. 장비 담당자와 걱정 담당자 그리고 지난번 산행에 동행한 기록 담당자와 함께였다. 시가릴로와 술병도 챙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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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대통령 당선은 '정치적 사고'였다. 표를 준 유권자들도 그가 이토록 무지하고 무능하고 포악한 사람인 줄은 몰랐다. 윤석열은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온 코끼리'와 같다. '의도'가 아니라 '본성'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다. 도자기가 깨지는 것은 그의 의도와 무관한 '부수적 피해'일 뿐이다. 그를 정치에 뛰어들게 한 동력은 사회적 위계(位階)의 가장 높은 곳을 바라보는 생물학적 본능이었다. 그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사회적 선과 미덕을 이루고 싶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 되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았다. 국민을 속이지 않았다. 검찰총장으로서 대통령 후보로서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런데도 그를 정확히 보려 하지 않았던 유권자가 적지 않았다. 화장과 조명으로 윤석열의 결함을 감춰준 언론에 속은 시민도 많았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었다. (7) 윤석열은 대한민국을 멍들게 했지만 뼈를 부러뜨리지는 못했다. 뼈를 부수려면 입법을 해야 하는데, 국회를 야당이 장악하고 있어서 할 수가 없었다. 앞으로도 야당이 동의하지 않는 입법은 할 수 없다. 법원은 비판적인 기자들의 입을 틀어막으려고 방통위, 방심위, 선방심위의 윤석열 추종자들이 내린 징계를 무효화하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한국은 독재화 과정에 들어섰지만 독재로 전락하지는 않았다. 권력 분산과 상호 견제 시스템 덕분이다. (25) 윤석열도 비속하다. 주체적으로 사유하지 않는다.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법이 없다. 자기 객관화도 자기 성찰도 하지 않는다. 그저 본능과 욕망이 명하는 대로 한다. 그래서 자신의 언어가 없다.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설명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이 위계 조직의 최고 권력자가 되면 남도 사유하지 못하게 한다. 조직원 모두를 자신처럼 비속하게 만든다. 그가 히틀러나 스탈린과 같은 악인이라면 더 지독한 악을 저질렀겠지만, 어리석어서 악을 저지를 뿐이라 거기까지 가지는 않는다. (30) '불완전한 선'

그런 세대는 없다 - 불평등 시대의 세대와 정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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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20대의 가장 주목할 점은 다 똑같은 취준생·알바생도 아니고, 능력주의 공정 개념 세대도 아니다. 이 세대의 핵심 문제는 직업, 교육, 소득, 재산 등 여러 면에서 세대 내 양극화가 지난 10여 년간 충격적으로 심화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누구는 알바노동자, 누구는 대기업 취준생, 누구는 정규직 고학력자들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30대를 특정짓는 건 '영끌'이 아니라 '영끌'을 포함한 계층화다. (28) 오늘날 모든 연령대에서 다수의 시민은 경제적 격차, 계층갈등, 이념갈등 문제의 해결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그에 비해 세대갈등은 청년층에서조차 한국사회 중심 문제로 인식되고 있진 않다. 뿐만 아니라 노년이든 청년이든 특정 세대만이 세대갈등 문제를 느끼고 있다고 볼 수 없고, 또한 노년이 청년들에게, 혹은 청년이 노인들에게 어떤 일반화된 세대적 적대감을 갖고 있다고 결론내릴 만한 증거도 찾을 수 없다. (45) 세대주의 담론은 노동자들을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이 소수 재벌이 지배하는 산업구조, 일자리 창출 없는 수출의존 축적 전략, 나쁜 일자리를 양산하는 원·하청 구조, 노동인권을 위협하는 변칙적 고용계약 형태들이라는 사실을 비껴간다. 이러한 산업·노동체제가 일하는 청년들뿐 아니라 그들의 어머니와 아버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의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을 가난하고 병들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세대론은 말하지 않는다. (49) 현대 인문학과 사회과학에서 '세대'라는 문제가 특별한 관심의 대상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였다. 이때 학자들이 민감하게 관찰했던 것이 바로 여러 세대의 공존에서 생기는 문제들과 역동성이었다. 학자들은 그것을 '비동시대적인 것들의 동시대적 공존', 또는 '동시대에 공존하는 것들의 비동시대적 성격'이라고 개념화했다. (63) 누가 현시대의 문제를 극복하고 미래를 만들어갈 것인가? 나이 든 세대는 과

아버지의 해방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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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슬프고 무겁게 시작하지만 소설은 엄청 재미있습니다. 대학 시간강사인 딸 '고아리'가 빨치산이었던 아버지 '고상욱'의 장례식에서 문상객들을 맞으면서 그동안 몰랐던 아버지의 삶을 알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뼛속까지 사회주의자였던 아버지와 천생 사회주의자였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활동했던 백아산의 아, 어머니가 활동했던 지리산의 리를 따서 개 이름 같은 이름을 딸에게 지어줘서 고아리가 됐습니다. 실제로 정지아 작가의 이름은 지리산의 '지'와 백아산의 '아'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전직 빨치산이었던 아버지 고상욱은 이십년 가까운 감옥살이를 마친 뒤 고향인 반내골에 터를 잡았습니다. 고향은 버스도 다니지 않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구례 읍내로 나가려면 두시간을 걸어서 나가야 할 정도로 깡촌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새농민》을 탐독하며 '문자농사'를 지었고 호미를 들고 밭으로 나간 이는 어머니였습니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네시에 담배를 맛나게 태우고 폭우가 내리든 폭설이 내리든 자전거를 타고 신문배급소로 향했습니다. 전단지를 신문 사이에 끼워 넣는 일을 거들고 공짜 신문을 한부 얻어 와 아랫목에 자리잡고 신문을 봤습니다. 그랬던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새벽 한시에 급작스럽게 삶을 끝냈습니다. 아버지를 산림조합 장례식장에 모셨습니다. 불알친구였던 박한우 선생이 검은 양복차림으로 아침 일곱시에 첫 조문을 왔습니다. 박한우의 형은 아버지의 빨치산 동료였지만 지리산에서 죽었습니다.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싸웠지만 정작 자신은 노동과 친하지 않았던" 아버지가 딸이 준 시바스 리갈 18년산을 소주 한짝과 맞바꿨던 아버지의 마지막 애인이라는 하동댁도 와서 딸이 모르는 아버지의 일상을 되새겼습니다.

나무 수업 - 따로 또 같이 살기를 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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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무들은 사회적 존재가 되었을까? 왜 자신의 영양분을 다른 동료들과, 나아가 적이 될 수도 있는 다른 개체들과 나누는 것일까? 이유는 인간 사회와 똑같다. 함께하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나무 한 그루는 숲이 아니기에 그 지역만의 일정한 기후를 조성할 수 없고 비와 바람에 대책 없이 휘둘려야 한다. 하지만 함께하면 많은 나무가 모여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고 더위와 추위를 막으며 상당량의 물을 저장할 수 있고 습기를 유지할 수 있다. 그런 환경이 유지되어야 나무들이 안전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다. 그런데 그러자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공동체를 유지해야 한다. 모든 개체가 자신만 생각한다면 고목이 될 때까지 수명을 유지할 수 있는 나무가 몇 그루 안 될 것이다. 계속해서 옆에 살던 이웃이 죽어 나갈 것이고 숲에는 구멍이 뻥뻥 뚫릴 것이며 그 구멍을 통해 폭풍이 숲으로 밀고 들어와 다시 나무들을 쓰러뜨릴 것이다. 또 여름의 더위가 숲 바닥까지 침투하여 숲을 말려 죽일 것이다. 그럼 모두가 고통을 당할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나무는 한 그루 한 그루 전부가 최대한 오래 살아남아 주어야 하는 소중한 공동체의 자산이다. (14) 나무들은 서로 협력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무턱대고 바람만 믿을 수는 없다. (...) 뿌리를 이용하는 쪽이 훨씬 더 확실하다. 뿌리는 모든 개체들끼리 서로 연결되어 있고, 또 날씨와 관계없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 나무의 뿌리는 아주 멀리까지 뻗어 있다. 수관(樹冠) 너비의 두 배까지 뻗어 나간다고 한다. 그러므로 지하에선 서로의 뿌리가 겹치게 되고, 그렇게 뒤엉켜 자라면서 상호 협력을 하는 것이다. (22) 아헨 공과대학의 바네사 부르셰(Vanessa Bursche)는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너도밤나무 숲에서 광합성과 관련하여 매우 특별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모든 나무가 동일한 성과를 올리도록 나무들이 서로서로 보폭을 맞추는 것이다. (29) 모든 나무는 통계적으로 볼 때 정확히 한 그루의 자손을 키운다.

'덕분에'라더니 '영웅'이라더니 - 의료현장의 민낯을 증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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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부는 의사 아이디를 쓰지 말라고 얘기하지만, 현장에서는 처방이 없으면 업무가 돌아갈 수가 없다. 간호 업무만 하는 것도 벅찬데 의사 업무까지 더해져서 해결이 안 되면 다음 근무 간호사에게 업무가 전가된다. 생리식염수 처방하는 일이 하찮아서 바쁜 의사들은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인식을 고치기 위해서는 의사를 더 많이 뽑아서 의사 업무 부담을 줄여 주고, 간호사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해야 한다. (26) 병동 교대근무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너무 많은 환자를 보는 것이다. 다행히 요즘 노동조합에서 근무조당 환자 숫자를 선진국 수준으로 간호사 1명이 환자 5명을 간호할 수 있도록 한다고 한다. 사실 병동에서 10명 이상의 환자를 보다가 주말에 환자 퇴원으로 한 자릿수로만 줄어도 숨통이 트인다. 정말이지 근무조당 환자 수를 1대 5로 낮추는 것은 반드시 되어야 한다. 이전에 미국 샌프란시스코 간호사노조를 방문해서 만난, 1대 5 근무를 하는 한인 간호사들의 행복한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근무 시간 중 가장 많이 하는 일이 환자와 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우린 환자에게 친절한 설명은커녕 환자와 눈도 마주칠 시간이 없는데. 하루빨리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41) 나는 병동에서 일하는 10년 차 간호사다. "오늘 점심 메뉴는 무엇일까?" 하며 기대하는 일반 직장인들과는 달리 "오늘은 과연 점심을 먹을 수 있을까?" 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한 달 20일 근무 중 5번 점심을 먹으면 성공한 달이다. 그나마 나의 점심시간을 줄여야 시간에 맞춰 간호를 제공할 수 있다. (49) 우리는 인간으로서 존엄성을 지키며 아플 수 있을 권리가 있고 가족에게 부담 주지 않을 권리가 있고 마음 편히 치료받을 권리가 있다. 간병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 가족들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나라에서 책임지고 풀어야 할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고 해결해야 한다.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품위 있게 아프려면 말이

혁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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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란 '사회 정의의 이름으로 대중을 동원하여―군사적 동원이든 민간인의 동원이든 둘 다든―정부를 강제로 무너뜨리고 새로운 정치제도를 만들어내는 것(17)'이다. 혁명은 '빈곤이나 불평등 같은 변화에 대한 불만이 쌓인다고 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혁명은 '사회 질서가 여러 분야에서 닳아빠질 때 나타나는 복잡한 과정(33)'이다. 혁명은 '통치자가 나약하고 고립되었을 때, 엘리트가 정부를 방어하기보다는 공격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이 함께 행동하여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다수의 연합된, 올바른 집단의 일원으로서 스스로를 자각할 때만(15)' 일어난다. 혁명이 일어나는 다섯 가지 조건이 있다. ①경제적 또는 재정적 압박 ②엘리트 사이에 소외와 대립이 커지는 것 ③불의에 대한 대중적 분노의 점진적 확산 ④설득력 있는 저항의 서사를 보여주는 이념의 공유 ⑤혁명적 변화에 우호적인 국제 환경이다. 혁명이 똑같은 방식으로 전개되지 않지만 '중앙의 몰락(central collapse)과 주변의 약진(peripheral advance)(51)'이라는 패턴으로 진행된다. 최근에는 타협 혁명이라는 새로운 패턴이 등장했다. '반대파를 이길 수 없음을 깨달은 정부 당국이 새로운 연합 정권에 반대파를 참여시키는 협상을 모색(54)'하는 것이다. 혁명은 '단순히 독재자를 타도하는 것이 아니라 전통적 체제를 파괴하고 이를 보편적 권리와 피통치자의 동의에 기반한 새로운 입헌 정부로 대체하는 것을 뜻하게 되었다. 미국과 프랑스에서 비롯한 이 혁명 모형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오늘날 혁명의 지배적 이상(理想)이 되었다(122)'. 혁명의 결과는 금세 드러나지 않는다. 때로 '혁명은 영웅주의뿐 아니라 공포(70)'라는 이름값으로 막대한 비용과 수천만 명이 희생된다. 혁명의 결과는 많고 다양하며 드러나는 시점도 제각각이지만, 혁명이 전개되어 '옛 체계가 무너지고

아주 오래된 유죄 - 그러나 포기하지 않은 여성을 위한 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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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의 싸움은 가끔 승리하지만, 많은 경우 여전히 패배한다. 법정 싸움은 포기하지 않은 여성들의 최후의 싸움이고, 승리의 기약도 없이 긴 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싸움이다. (11) 치마가 들춰지고, 마음대로 볼일도 못 보고, 남자아이들의 잘못으로 소문에 오르내려도 '행실 잘하라'며 오히려 혼나던 여자아이들이 자라나, 남자 사진을 촬영해 유포하거나 남자로부터 당한 일을 그대로 되갚자며 똑같이 하려고 하거나, 혹은 하고 있다. 이른바 '미러링'이다. 여자들이 미러링하는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들이 많은데, 내 눈에는 싫어하는 벌레가 온몸에 잔뜩 들러붙었는데 이를 떼어내지 못해 몸부림치는 고통으로 느껴진다. 내 눈에 미러링은 여성의 비명이다. (20) 성폭력 범죄는 피해자가 유발한 남성의 성적 충동으로 인하여 발생한다는 통념이 존재한다. 이는 종종 피해자의 행실 책임론으로 귀결되어 성범죄를 저지른 남성이 형을 감면받거나, 심지어 무죄를 받는 근거로 사용되었다. '야한 옷을 입어서' '평소 행실이 방정하지 못해서' '남성과 데이트를 즐기며 성관계를 허락한 것처럼 착각하게 해서' 등 여성이 남성의 성적 충동을 유발해 성범죄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33)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데는 여러 까닭이 있겠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성희롱 피해 사실을 공개하더라도 피해가 회복되기 어렵고, 오히려 2, 3차 가해는 당연한 부록이며, 결국에는 피해자 자신이 직장과 공동체에서 손가락질받고 쫓겨날 것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50) 아이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어른들의 책임은 어느새 성적 자기결정권, 즉 '자발'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해 아이들을 공격한다. 성인 남성의 성착취에 대해 법과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관대한가. 성인 남성의 성범죄 대상이 성인 여성인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고, 피해자가 아동이라고 해도 처벌의 관대함이 특별히 다르지 않다. (64) 능욕당한 여성들을

강민영, 식물 상점으로 전력 질주하길 바라지 않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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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것들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식물들은 사람이나 동물처럼 발이 달리지 않아서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지만 그 대신 어느 땅에 내리는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는 존재들"입니다. "나고 자라는 장소는 복불복일지언정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고, 재해를 만나더라도 말없이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식물은 여성과 닮았습니다. 유희는 "사람도 식물처럼 다듬으면 나을 수 있다고, 조금 손보면 더 옳은 방향을 향해 걸어갈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어느 날부턴가 그 믿음은 유희를 거쳐 간 남자들 때문에 깨졌고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며 살아남았습니다. 유희는 주황과 초록으로 색칠한 당근 모양의 물뿌리개를 들고 마당에 서서 자신이 밟고 있는 땅바닥을 한참 내려다봤다. 끊임없이 여자를 괴롭히던 남자들. 그들은 마치 보이지 않는 굵은 선이 머리 위로 이어져 있는 것처럼 공통점이 있었다. 그들이 자기 감정을 의도적으로 표출하는 대상은 정해져 있었다. 어쩌다 그들과 엮인 여자들에게서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면, 결국 시발점을 찾아 말끔하게 지워야 했다. 유희는 그동안 '식물, 상점'을 거쳐 간 여자들을 떠올렸다. 유희는 죽여주는 식물 상점을 운영합니다. 세상에 쓸데없는 것들을 잡아줍니다. 체육을 싫어했던 허진은 의사의 권유로 수영에 입문했습니다. 지금은 바다 수영이 마지막 목표일 정도로 동호회 사람들 사이에 타고났다는 말을 듣습니다. 바닷가가 고향인 김설은 수영은 젬병이지만 어릴 때부터 달리기가 좋았습니다. 단 한 번도 달리기가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둘은 우연히 같은 장소에서 맞닥뜨린 재난 상황에서 서로 도우며 생존했습니다. 허진과 김설은 "갑자기 재앙과 재난이 도래한다 할지라도 그 누구도 혼자가 아님을, 손과 등을 잡아 주고 일으켜 세워주는 누군가 있음을 실감하며 안심하고 한 발 가까스로 내딛"으며 생존을 위해 전력 질주했습니다. 초코라는 강아지와 함께.

일본산고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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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개인의 사고를 그토록 붙들어 맨 일본의 국가권력은 놀랍다. 그것도 장구하게 유지해왔다는 것이 더욱 놀랍고 유례없는 일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했기 때문에 기능과 세기가 우수하면서도 일본은 항상 남의 틀과 본을 훔쳐오거나 얻어 와서 갈고 닦고 할밖에 없었다. 본과 틀이 없는 나라, 그들의 정치이념은 창조의 활력이 위축된 민족을 만들었던 것이다. 오늘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날조된 역사교과서는 여전히 피해받은 국가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어 있고 고래심줄 같은 몰염치는 그것을 시정하지 않은 채 뻗치고 있는 것이다. (29) 통곡이 없는 민족, 울지 않는 민족, 왜 울지 않을까? 슬픔도 마치 실루엣같이 소리가 없다. 너무나 정적이다. 본시부터 그러했을까? 그들이라고 울지 않을 리 없다.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칼로 상징되는 그들의 역사 탓일 것이다. 사실 일본이 이웃에 끼친 피해의 규모가 크고 참혹함도 자심한 것이었지만 그들 스스로, 동족들 목줄기에 들이댄 칼의 세월이 훨씬 길다. 그리고 그 참혹함도 타민족에 대한 것에 못지않았다. (49) 일본에서 많이 쓰이는 말 중에 '스고이! 凄い '라는 것이 있다. 우리네의 굉장하다는 말과 같이 일종의 감탄사인데 크고 훌륭하다는 뜻의 굉장과 오싹하게 소름 끼친다는 뜻의 스고이, 일본도 日本刀 의 푸른 칼날의 번뜩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살덩어리. (56) 옛날 일본은 아시아에서 고도 孤島 였을 뿐만 아니라 문화에서도 고아 같은 존재였다. 기능적이며 공리적인 특성은 차라리 서쪽에 가깝다. 그리고 일본은 서쪽을 등에 업고 동쪽을 배신한 유일한 나라다. (77) 진리는 아름답고 선하다 합니다. 아름다운 것은 진리이며 선하다. 선한 것은 진리이며 아름답다고도 합니다. 그러나 일본 문학의 탐미주의, 예술지상주의는 갇혀버린 사회에서 도피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선함도 진실함도 결여되어 있고 오히려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농후합니다. (102) 나는 젊은 사람에게 더러 충고를 한다. "

H마트에서 울다, 한국 음식으로 시부저기 이어진 핏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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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은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H마트에만 가면 웁니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미셸은 어머니에게서 한국 음식 문화를 접했습니다. 어머니가 암 투병으로 돌아가신 후 사 먹던 김이 어디 거였냐고 물어볼 사람도 없는데, 여전히 한국인인지 의문이 듭니다. 미셸은 지난 5년 사이 이모와 엄마를 암으로 잃었습니다. 두 분에 대한 추억을 찾으려고 H마트에 갑니다. 청소년기에 미셸은 또래 사이에 섞이려고 애쓰며 지냈고, 소속을 증명하려고 느끼면서 성인이 됐습니다. 미국과 한국이라는 두 세계 중 어느 세계에도 온전히 속할 수 없었습니다. 반만 인정받고 반은 이방인 취급을 받았습니다. 엄마에게서 "너 같은 사람은 여태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는 소리도 들으며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엄마는 휴가 여행을 다녀오며 사 온 카우보이 부츠를 일주일 동안 신고 다니며 길들여 보내주기도 했습니다. 미셸이 처음 신을 때 발이 까이지 않고 편안하게 신을 수 있게 하려고 그랬습니다. "널 편안하게 해줄 수만 있다면 엄마는 어떤 고통도 감수할 거라고, 그게 바로 상대가 너를 진짜 사랑하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이니까요. 장례식이 끝나고 투병 생활 중 엄마가 드셨던 음식 중 잣죽을 만들었습니다. 요리법은 간단했지만 시간이 걸리는 요리였습니다. 화려하고 값비싼 요리가 아니라 담백한 잣죽이 진짜로 원하는 요리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한국 이모 집에서는 마침 생일이어서 이모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를 생각하는 의미에서 생일에 미역국을 먹는 전통이 있는데 새로운 의미가 생겼습니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마치 엄마의 자궁 속으로 돌아가 그 안에서 자유롭게 떠다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것은 핏줄(blood ties)이었습니다. 미셸이 처음 한 말은 엄마라는 한국말입니다. 그다음엔 맘(mom). 엄마를 두 가지 언어로 부르기 시작하며 엄마만큼 날 사랑해 준 사람은 없었다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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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은 동식물 연구가이자 과학자이지만 나 또한 한 사람의 인간이다. 내가 어떤 일을 꿈꾸고 원하든 간에, 결국 내가 하는 일이 곧 나 자신이다. 지난 25년 동안 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다. (...)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은... 숲으로 가는 것이다. (6) 우리의 목적지는 메인 주 서쪽에 있는 애덤스 힐이다. 한때는 농장지역이었으나 지금은 내가 거주할 작은 터를 제외하고 전부 숲으로 바뀌었다. (18) 메인 주 이쪽 부근의 삶은 나무와 숲을 빼고는 상상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은 나무를 땔감으로 쓰고 어떤 사람은 먹고살기 위해 나무를 잘라낸다. 많은 사람들이 종이, 터보건, 설상화, 사과 박스, 카누를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한다. 이 모든 것이 나무로부터 나온다. 나무는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의 생명줄인 것이다. 이것이 문제다. 용도가 다른 두 개의 나무가 있는 것이다. 나무는 목재 wood 가 되기도 하고 숲 woods 을 이루기도 한다. (41) 우리 인간은 곤충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우리 또한 의미도 모른 채 살아남기 위해서 무작정 하고 있는 일들이 많지 않을까? (93) 나는 과거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 매료되었고 과거나 미래에 얽매이지 않았기에 주변의 멋지고 아름다운 풍경 속에 잠길 수 있었다. 과거와 현재가 아주 가까우면서도 영원한 느낌으로 포개지는 것 같았고 나 자신이 사라지는 것처럼 느껴졌고 마치 큰까마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156) 진화는 무엇인가를 '덤'으로 만들지 않는다(가끔 우연히 그런 결과가 나오기도 하지만). 왜냐하면 모든 것을 만들어내는 데는 대가가 따르기 때문이다. (162) 다람쥐는 어디에다 구멍을 냈는지 기억하고 따뜻하고 해가 잘 드는 날을 기다렸다가 짠-하고 메이플 시럽을 마신다. 나는 다람쥐가 나무에서 나무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는데 녀석은 구멍을 뚫어놓은 나무-오직 그 나무에만-로 바로 올라갔다. 나중에 나도 다람쥐

사람, 장소, 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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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키워드는 사람, 장소, 그리고 환대이다. 이 세 개념은 맞물려서 서로를 지탱한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26) 사람이라는 것은 어떤 보이지 않는 공동체―도덕적 공동체―안에서 성원권을 갖는다는 뜻이다. 즉 사람임은 일종의 자격이며, 타인의 인정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인간과 다른 점이다. 이 두 단어는 종종 혼용되지만, 그 외연과 내포가 결코 같지 않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연적 사실의 문제이지, 사회적 인정의 문제가 아니다. 어떤 개체가 인간이라면, 그 개체는 우리와의 관계 바깥에서도 인간일 것이다. 즉 우리가 그것을 보기 전에도, 이름을 부르기 전에도 그 고유한 특성에 의해 이미 인간일 것이다. 반면에 어떤 개체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사회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어야 하며, 그에게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31) 태아, 노예, 군인, 그리고 사형수의 예는 사람의 개념에 내포된 인정의 차원을 드러낸다. 사람이라는 것은 사람으로 인정된다는 것, 다른 말로 하면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물리적으로 말해서 사회는 하나의 장소이기 때문에, 사람의 개념은 또한 장소의존적이다. 실종자의 예에서 보았듯이 특정한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우리는 사람의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해서―동어반복적으로 들리겠지만― 우리를 사람으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사회란 다름 아닌 이 공간을 가리키는 말이다. (57) 사회는 각자의 앞에 펼쳐져 있는 잠재적인 상호작용의 지평이다. (58) 신분이란 어떤 위계화된 구조 안에 있는 고정된 위치들이 아니라 무리짓고, 사회 공간을 점유하고, 경계를 만들며, 배제하거나 포함시키고, 자리를 주거나 뺏는 어떤 운동의 효과이다. 그러므로 신분의 개념은 인정투쟁이나 타자화의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142) 우리

헌책방 기담 수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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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찾는 사연을 수수료로 받고 절판된 책을 찾아주는 헌책방 주인이 있습니다. 사연을 들려주면 책을 찾아주지만, 헌책은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나타나곤 합니다. 젊은 시절에 연애편지를 쓰려고 샀던 책을 찾아 달라는 어떤 어르신의 사연이 계기가 됐습니다. 어르신은 사람을 찾는 건 의미가 없으니 연애편지를 쓸 때 도움을 받았던 책을 찾고 있었습니다. 찾고 있던 책은 인연처럼 반년이 지나 나타났습니다. 어르신은 책값보다 더 비싼 차비를 들여 책을 찾으러 왔습니다. '책은 작가가 쓴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책을 찾는 사람들은 거기에 자기만의 사연을 덧입혀 세상에 하나뿐인 새로운 작품(23)'을 만듭니다. '책은 다 같은 책이지만 꼭 만나야 하는 그때의 책'에는 '젊은 날의 추억, 사랑, 고민, 그리고 망설임과 선택을 고스란히 담고(32)' 있었습니다. 한동네에서 살며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녔고 결혼까지 한 부부는 어릴 때 읽었던 책을 찾고 싶답니다. 두 사람의 추억이 깃든 책을 찾아서 태어날 아이에게 읽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책은 아이가 태어나고도 한참 지난 뒤에야 전해줬습니다. 아이에게 책을 보여주자 아이는 내용은 물론 사연까지 다 아는 것처럼 책을 잡으려 했습니다. 하룻밤 만에 다 읽을 수 있는 소설을 마저 읽는 데 4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사연도 있습니다. '어떤 책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71)' 합니다. '해 질 녘 서해를 닮은 그림처럼(81)' 한없이 쓸쓸한 풍경에 이야기가 담긴 그림엽서를 건네던 이도 있었습니다. '가장 아끼는 것은 책이 아니라 하나뿐인 손녀(105)'일지도 모르는 어떤 노인도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아름다운 한 사람을 향한 애틋한 마음은 수만 권의 책으로 가득 한 서재와 바꿀 만큼 소중(106)'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