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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허구다 - 21세기에 능력주의는 어떻게 오작동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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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merit 은 개인이 갖고 있는 특징이지만, 능력주의 meritocracy 는 사회가 갖고 있는 특징이다. 능력주의란,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비례해 보상을 해주는 사회 시스템을 뜻한다. 능력주의라는 말은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 Michael Young 이 자신의 풍자 소설 『 능력주의의 출현 The Rise of the Meritocracy 』(1958년)에서 처음 만들어낸 신조어로, 그는 이 책에서 철저하게 지능 지수와 시험 결과, 개인의 능력만을 토대로 운용되는 사회가 실현되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했다. (12)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온갖 특권을 성공적으로 물려줄수록 자녀들의 삶의 결과는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상속에 의해 결정된다. (23) 상속주의와 능력주의는 분배의 〈제로섬 게임〉이다. 둘 중 하나가 많아지면 나머지 하나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금의 상황은 개인의 능력이 소득과 부의 분배에 상속만큼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즉, 상속주의가 능력주의를 앞서고 있다. (38)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Pierre Bourdieu 는 학교는 사회적, 문화적 재생산의 기구, 즉 〈사회적 계층을 재생산하는 매개체〉라고 강조했다. (56) 교육 기회의 평등은 능력주의 시스템에서 중요한 부분이지만 교육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진 저근 거의 없다. 가족의 사회경제저 지위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특혜들은 교육적인 성취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학교는 사회에 존재하는 기존의 불평등을 오히려 더 반영하고 심화시킨다. (80) 사회적 자본 social capital 이란 근본적으로 당신이 누구를 알고 있는가, 즉 당신이 알고 있는 누군가의 가치를 뜻한다. (85) 또 하나의 비능력적 요인인 문화적 자본 cultural capital 이란 사람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집단의 구성원으로 온전히 인정받기 위해 알아야만 하는 모든 것, 즉 그 집단의 규범과 가치관, 신념, 스타일, 매너, 학위, 여가 활동, 라이프스타일 등에 대한 지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위기 그리고 새로운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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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누구라도 '위기'라는 말을 입에 올리면 영양가 없는 수다꾼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위기라는 단어가 워낙 엄밀하지 못하게 자주 회자되다 보니 이제는 말 자체가 진부해진 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확히 진단컨대 지금 우리는 위기에 처해 있다. 만약 우리가 처한 위기의 특징을 정확히 밝히고 위기의 독특한 역학 dynamics 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이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것을 바탕으로 현재의 교착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다시 말해 정치적 재편성 political realignment 을 통해 사회 변혁으로 나아가는 길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13) 헤게모니란 지배계급이 자신의 세계관을 사회 전체의 상식으로 상정함으로써 자신의 지배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게끔 만드는 과정을 가리키는 그람시의 개념이다. 조직 차원에서 헤게모니의 대응물은 헤게모니 블록 bloc 이다. 헤게모니 블록이란 지배계급이 모은 이질적인 사회 세력들의 연합이며, 지배계급은 이 연합을 통해 자신의 리더십을 확고히 한다. 만약 피지배계급이 이 질서에 도전하고자 한다면 그들은 더 설득력 있는 새로운 상식, 즉 대항 헤게모니 counterhegemony 를 구축해야 하며, 더 강력하고 새로운 정치적 동맹, 즉 대항 헤게모니 블록을 구성해내야 한다. (16) 적어도 20세기 중반 이래 미국과 유럽에서 자본주의의 헤게모니는 옮음 right 과 정의 justice 의 서로 다른 두 측면을 결합함으로써 형성되었다. 한 측면은 분배 distribution 에 초점을 맞췄고, 다른 측면은 인정 recognition 에 초점을 맞췄다. 분배 측면은 사회가 나눌 수 있는 여러 재화, 특히 소득을 어떻게 할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을 표명한다. 즉 분배 측면은 사회의 경제구조를 다루며, 간접적인 방식이긴 해도 계급 분열의 쟁점을 다룬다. 반면 인정 측면은 사회가 존중과 존경을, 구성원이 되는 것과 소속감의 도덕적 표지를

호의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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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여행가인 김남희 작가는 '모험심이라고는 병아리 눈물만큼도 없고, 잠귀가 밝아 잠자리를 가리는데다가, 안 먹는 음식이 많고, 낯선 사람과 어울리는 일을 부담스러워하는 성격(240)'이랍니다. 그런데도 여덟 살 때 혼자 기차를 타고 포항에서 대구로 떠난 것이 첫 여행이었답니다. 서른넷에 회사를 그만두고 배낭을 꾸린 후 20여 년이 되도록 유목민으로 살았습니다. 책은 코로나19가 창궐해서 여행하지 않는 여행작가가 됐을 때 얘기입니다. 싱글, 여성, 여행작가. 근사한 조합이지만 '자유로움은 경제적 불안함과 동의어'입니다. '외로움과 불안함을 반반씩 섞어 자유 위에 덧바른 삶(28)'입니다. 바이러스가 세상을 멈췄지만 '다리에 힘이 남아 있는 한 매일 산책을 하며, 꾸준히 달리기를 하며' '조금씩 속도가 느려지겠지만 멈추지 않(51)'았습니다. 방과후 산책단, 방과후 글쓰기단, 에어앤비를 하며 버티다 보니 타인의 호의가 쌓였습니다. 통장이 텅장으로 변했지만 전염병에 맞서는 연대의 백신 같은 택배 상자가 배송되는 호의가 이어졌습니다. '바이러스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공포에 작은 마음을 모아 맞서는 사람들'의 '우아한 연대(203)'였습니다. 덕분에 전생에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굶기를 밥먹듯이 하고 자(65)'라서 냉장고를 포기하지 않았고, '도예가 밑에서 뼈빠지게 일만 하다 제 그릇 하나 구워보기도 전에 세상을 떠(79)'난 것 같아 사 모은 그릇으로 밥상을 차렸습니다. ''금수저'로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은수저로 밥을 먹는 사람(40)'도 됐습니다. 서른을 넘긴 후 나는 늘 혼자 살아왔는데, 정말로 혼자였던 날은 한 번도 없었다. 언제나 매 순간을 타인의 친절에 기대어 살아왔다. 지친 무릎이 꺾이려고 할 때마다 일으켜세워주던 손들이 있었다. (8) 코로나 이후 집에 갇혔던 시간 동안 나는

에이징 솔로 -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어떻게 나이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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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1인 가구, 홀로 나이 들어가는 '에이징 솔로 Aging Solo'가 대폭 늘어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혼자 사는 게 과도기적 상태가 아니라 삶의 기본값인 사람들이 나이 듦이라는 과제를 함께 직면하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노인 1인 가구는 노년기에 접어든 뒤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가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혼자인 상태로 중년에서 노년으로 생애 전환을 겪게 될 대규모 집단이 등장했다. (11) 세상이 비혼인 중년을 취약하고 비정상적이며 비참해질 것이라고 바라보는 이유는 나이 들어서도 혼자 사는 사람들은 이 생애 과제들을 제대로 치러내지 못하리라 예단하기 때문은 아닐까.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건 결혼한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사람이 성숙해지고 온전한 삶을 살아내는 과정은 애초에 결혼 여부와 상관 없는 일이다. (12) 혼자 사는 사람을 정의하는 기준은 다양한데, 이 책에서 말하는 에이징 솔로는 결혼의 경험이 있건 없건 스스로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상태로 살기를 선택해 현재 그렇게 살고 있는 중년을 뜻한다. 대다수가 1인 가구지만, 친구 등 동거인이 있는 경우에도 배우자와 자녀가 없는 비혼의 중년은 에이징 솔로에 포함했다. (13) 내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건, 1인 가구의 수가 결코 적지 않음에도 '혼삶'을 지속적인 삶의 방식으로 채택한 에이징 솔로 여성이 왜 아직도 앞에서 인용한 연구 참여자의 설명처럼 '폭력' '무게감'이 실린 눈초리를 받 는가 하는 점이다. 전통적 가족의 모습에서 이탈했다고 해서 왜 '남편도, 자식도 없는' 결핍의 인생이라고 바라보는 걸까? 왜 외롭고 힘들 거라고만 짐작하는 걸까? (39) 비혼을 정치적 견해 표현으로 여기는 사람이든, 자신에게 알맞은 삶의 방법을 고르다 보니 어쩌다 비혼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이든, 그 선택의 바탕에는 제도를 통해 다른 사람의 삶에 묶여 있지 않을 때 자신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공통된 가치관이 있다. 도시에서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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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살 무렵 폴은 혼자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로 가서 봉투에 사탕을 그득하게 담고 은박지로 잘 싼 체리 씨 여섯 개를 내밀었다. 위그든 씨는 돈이 조금 남는다며 거스름돈으로 1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꺼내 주었다. 폴은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며 열대어 가게를 운영하던 어느 날. 대여섯 살 된 남매가 물고기를 사러 왔다. 아이들은 몇 가지 물고기를 고르고 5센트짜리 동전 두 개와 10센트짜리 동전 하나를 내밀었다. 폴은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서 맡았던 사탕 향기가 향수(鄕愁)가 되어 콧잔등을 스쳤다. 폴은 1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거스름돈으로 주었다.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에서 나는 박하사탕 향기와 위그든 씨의 너털웃음 소리가 들렸다.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인 벤슨 선생님을 짝사랑하게 된 폴은 선생님 생일에 야생 식물로 만든 화환을 만들어 드렸다. 선생님은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파티를 했다. 다음 주 월요일에 벤슨 선생님은 결근했다. 머루랑 달래 등 야생 열매와 독이 있는 예쁜 담쟁이 잎으로 만든 화환 때문에 선생님이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폴은 10일 동안 정학 처분을 받았다. 벤슨 선생님의 병실을 찾았을 때, 선생님은 붕대로 겨우 눈만 보일 정도로 얼굴을 감고 있었다. 선생님은 폴을 원망하거나 탓하기는커녕 특별한 선물을 해준 폴에게 말했다. 아들을 낳으면 꼭 너처럼 키우겠다고. 동네에 전화기가 있는 집이 드물었던 일곱 살 때 집에 참나무로 만든 커다란 전화기기 있었다. 신기한 상자에는 '안내를 부탁합니다'라는 똑똑한 요정이 살았다. 혼자서 알아낼 수 없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요정에게 전화를 걸면 다 해결해주었다. 어느 날 카나리아가 죽었을 때 전화하자 요정은 "그 새가 노래 부를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별생각 없이 전화기를 들고 무의식적으로 "안내를 부탁합니다."라고 하자 요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름이 샐리라는 걸 알았고, 저녁 식사에 초대받아 즐거운 데이트를

꼬리 - 시베리아 숲의 호랑이, 꼬리와 나눈 생명과 우정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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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 수호랑이는 앞발 볼의 너비가 보통 10.5~13센티미터이다. 시베리아호랑이 최대의 발자국인 으뜸 수호랑이를 왕대(王大)라 부른다. 이마에는 임금 王 자, 등줄기로 넘어가는 뒷덜미에는 큰 大 자가 뚜렷한 가장 크고 강한 수호랑이다. 왕대들은 2,000제곱킬로미터(지리산 국립공원의 면적은 약 473제곱킬로미터) 이상의 광대한 영역을 돌아다닌다. 꼬리는 앞발 볼의 너비가 13.1센티미터로 엄청난 크기인 왕대다. 소금절벽에서 꼬리로 물모기를 쫓으며 사냥을 하려고 잔뜩 웅크린 모습을 처음 보면서 '꼬리'라고 불렀다. 꼬리는 왕대였지만 눈빛과 몸짓에서 세월이 묻어나는 전성기를 지난 늙은 왕대다. 꼬리는 사냥에 자신감이 부족해서 잡을 수 있을 때 많이 잡아놓으려는 생각, 탐욕으로 가축을 습격하기도 했다. 꼬리는 사람보다 굶주림이 무서워 개를 잡았지만 굶주린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개 다섯 마리를 먹어도 멧돼지 한 마리만도 못하다. 늙는다는 것도 불완전했고 늙어서 스스로 생활해야 하는 것도 불완전했다. 꼬리에게 끌리는 것은 완전한 것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불완전한 것에 대한 연민이었다. 꼬리는 산전수전 다 겪은 노련한 수호랑이다. 꼬리는 야생에 있고 나는 문명에 있기 때문에 꼬리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최선의 방식은 모르는 척하면서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다. 만나고 헤어지길 반복하다 끝내 마을 건초창고에서 갇힌 꼬리를 만났다. 폭설과 혹한에 먹이감이 부족해 마을로 내려왔다 건초창고에 갇히게 된 것이다. 결코 만나지 말아야 할 곳에서 오래전 헤어진 옛 연인을 우연히 만나 늙고 시든 얼굴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식인호랑이라는 누명을 벗기려고 돈을 건네주고 마취를 하여 마을을 벗어나 풀어줬다. 꼬리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고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꼬리가 사라진 지 14개월 후, 양지바른 바위굴 입구에서 엎드려 죽은 호랑이 주검을 발견했다. 꼬리였다. 27년의 추적과 20,000시간의 잠복으로 시베리아 호랑이를 1500시간 넘게 영상

성공한 나라 불안한 시민 - 대전환 시대, 한국 복지국가의 새판 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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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개천에서는 용이 나지 않는다. 우리 사회의 구조화되어가고 있는 격차는 개천에서 태어난 용의 씨를 말리고 있는 수준이다. (43) 불평등과 불공정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대안과 희망이 부재한 현재적 조건은 결국 이들을 높은 수준의 울분으로 몰아넣는다. 앞서 제시한 불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청년 세대는 기성세대에 대해 아주 높은 수준의 울분을 보이고 있다. 남성에 비해 여성의 울분이 높은 수준을 보이는 것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47) 현재 대한민국이 처한 위기의 전형적인 양상인 '격차, 장벽, 불안'은 더욱 증폭될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증폭될 것인가? (...) 현재의 도-농간, 수도권-비수도권 간의 격차 역시 경제사회적 격차가 투영되는 한편 인구의 절벽 현상과 맞물려 더욱더 증폭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현재의 격차사회는 '초격차사회'로 변화될 것이다. (...) 우리 사회의 소득과 자산, 교육의 불평등이 낳은 장벽은 미래에 이 불평등한 구조가 초격차사회를 낳는 구조로 더욱 공고화될 경우 이제 장벽을 넘어 '단절'의 사회가 될 것이다. (...)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각종 자연적, 사회적 재난 앞에서 단순히 불안함을 넘어 '공포'의 단계를 접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66) 자본주의경제와 주택 체제 간의 연관성을 중요시하는 입장들은 주택이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 자본의 하나이기 때문에 복지국가를 통해 탈상품화하는 데 큰 한계가 있다고 봤다. 20세기에 대부분의 발전된 자본주의사회에서 주택은 '상품화→탈상품화→재상품화'의 방향으로 변해왔고, 여기서 탈상품화 단계는 제2차세계대전으로 파괴된 사회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국가의 힘과 공공 부문이 팽창했던 예외적인 시대였다는 것이다. (87) 1987년 민주화 이후 권위주의 세력과 보수야당이 합의한 소선구제와 다수득표제의 공고화는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는 새로운 정당이 제도권 정치에 진입할 수 있는 장벽을 높이는

좌파의 길 -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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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우리에게는 우리 시대에 부합하는 자본주의 및 자본주의 위기의 개념들이 별로 없다. 나는 이런 개념의 하나로 '식인 자본주의'를 주창한다. (30) 착취와 수탈 모두 축적에 기여하지만 그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착취는 자유 계약에 따른 교환으로 위장한 채 가치를 자본에 이전시킨다. 즉, 노동자는 노동력 사용 대가로 임금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하고, 자본은 '잉여노동시간'을 전유하는 한편 '필요노동시간'만큼만 급여를 지불한다. 반면에 수탈의 경우에는 자본가가 타인의 자산을 (대가를 거의 혹은 전혀 지불하지 않은 채) 폭력적으로 징발하는 쪽을 선호하기에 이러한 온갖 세심함 따위는 필요하지 않다. 즉 강제 노동, 토지, 광물, 에너지를 기업 활동에 몰아줌으로써 기업의 생산비를 낮추고 이윤을 늘린다. 이렇듯 수탈과 착취는 서로를 배제하기는커녕 손잡고 함께 간다. (51) 자본주의가 경제적 시스템도 아니고 윤리적 삶의 사물화된 형태도 아니라면, 그럼 도대체 무엇이라는 말인가? 자본주의를 '제도화된 사회 질서an institutionalized societal order'로 바라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이해라는 게 나의 답이다. 이를테면 봉건제 같은 하나의 사회 질서로 바라보자는 것이다. (58) '수탈'이 자본주의에 구조를 부여하는 요소라는 정의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보자. 앞장에서 본 대로, 수탈은 다른 수단을 통한 축적이다. 즉, 착취와는 다른 방식을 통한 축적이다. 자본이 임금을 대가로 '노동력'을 구매하는 계약 관계 대신 수탈은 인간 역량과 자연 자원을 징발하여 자본 확장 회로에 징용함으로써 작동한다. 징발은 신세계 노예제에서 그랬듯이 뻔뻔스럽고 폭력적일 수도 있고, 우리 시대의 약탈적 대출과 담보물 압류에서 그렇듯이 상거래라는 베일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또 수탈당하는 주체는 자본주의 주변부의 농촌이나 토착민 공동체일 수도 있고, 자본주의 중심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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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면에 관련된 상품을 파는 도시가 있습니다. 잠옷 차림의 외부인들이 몰려들며 대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이 도시의 랜드마크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입니다. 꿈을 파는 백화점입니다. 잠들어야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먼 옛날, 시간의 신에게 세 제자가 있었습니다. 첫째 제자는 미래, 두 번째 제자에게는 과거를 주었습니다. 꿈을 꾸는 능력을 받은 세 번째 제자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세웠고 후손들에게 대물림됐습니다. 꿈은 '숨 가쁘게 이어지는 직선 같은 삶에, 신들이 공들여 그려 넣은 쉼표(32)'입니다. '현실을 침범하지 않는 수준의 적당한 다스림(33)'이 시간의 신이 세 번째 제자에게 바란 것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후불제입니다. 손님은 꿈을 꾼 후 설렘, 성취감, 자신감, 신기함, 호기심, 질투심, 열등감 등등 귀중한 감정으로 꿈값을 지불합니다. 숙면 캔디와 심신 안정용 쿠키는 무료로 줍니다. 대단한 미래는 없을지 몰라도 즐거운 현재와 오늘 밤의 꿈들이 있습니다. 꿈의 가치는 손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손님 스스로 깨닫는 꿈이 좋은 꿈입니다. 꿈 제작자 정기총회는 크리스마스 한 시즌만 일하는 산타클로스의 오두막에서 열립니다. 산타는 '크리스마스까지 어린애들 취향을 알아내서 꿈을 만들어 놓으려(175)'고 일 년 내내 바쁩니다. 올해 정기총회는 '꿈을 예약해놓고 예약 당일에 제시간에 잠들지 않아서 끝내 나타나지 않는 손님(160)'들이 늘어나서 노쇼 대책이 안건입니다. '자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을 하느라 잠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재미나는 것보다 더 즐거운 꿈을 만들(186)'자며 싱겁게 끝났습니다. '좋아하는 걸 깨닫는 순간부터 사랑이 시작되는 거(87)'랍니다. 짝사랑을 시작하는 손님, 어서 오세요. 영감(靈感)은 '답이 나올 때까지 고민하는지, 하지 않는지, 결국 그 차이(231)'입니다. 영감이 필요하신 손님, 어서 오세요.

그 많던 나비는 어디로 갔을까 - 제왕나비의 대이동을 따라 달린 264일의 자전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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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는 제왕나비를 따라 멕시코에서 캐나다까지 자전거로 왕복하겠다는 생각은 제왕나비를 찾아가고 싶다는 단순한 소망에서 시작되었다. 2013년 친구와 처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멕시코를 여행하면서 우리는 제왕나비가 겨울을 나는 지역을 찾아가 볼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 4월에 접어들어 제왕나비가 북쪽으로 이동을 시작했을 때여서 가지 않았다. 이후 몇 년 동안 나는 다시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을 떨치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제왕나비를 찾아가겠다는 생각은 점점 커져 대이동을 자전거로 함께하고 싶다는 꿈으로 바뀌었다. 2016년, 드디어 몽상을 멈추고 여행 시기를 2017년 봄으로 정했다. 이제 생각은 계획이 되었고 세부 계획을 세울 1년이라는 시간이 주어졌다. (13) 드디어 출발할 때가 되었다. 2017년 1월 캔자스주 캔자스시티 외곽의 집을 떠나 용감하게 버스에 오른 후 52시간을 달리고, 다시 자전거로 이틀을 더 달려 멕시코 미초아칸주 엘로사리오(El Rosario)의 제왕나비 보호구역 주차장에 도착했다. (14) 이동 거리가 얼마나 될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멕시코의 제왕나비 월동 지역에서 캐나다까지 갔다 돌아오려면 약 1만 6,000킬로미터를 자전거로 달려야 할 것이다. 3월에 출발하면 제왕나비와 마찬가지로 여름에 캐나다에 도착하고 11월에 다시 멕시코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한 달에 1,900킬로미터는 족히 달려야 한다. (22) 장거리 여행에서 의심은 근육의 피로만큼이나 해롭다. 그러나 다리 근육을 단련하면 더 멀리 갈 수 있듯 마음도 단련이 필요하다. 내가 생각한 방법은 큰 그림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앞으로 얼마나 가야 하는지를 절대 생각하지 않고 대신 다음 1킬로미터, 다음 마을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다음 식사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당장 가야 하는 단거리만 해결하면 되고 작은 승리를 축하하다 보면 거리가 늘어난다. 이 전략을 알고 있는 건 장거리 여행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미 자전거로 볼리비아에서

미래의 지구 - 온난화 시대에 대응하는 획기적 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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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확신하는 단 한 가지는 어떤 형태가 됐든 간에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혁명의 정의(定義)와는 무관하게, 앞으로 수십 년간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의 모든 것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수준의 변화다. 오래된 세계는 죽었다. 앞으로 다가올 세계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31) 기후와 관련된 가장 커다란 거짓말은 개개인의 행동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에너지 소진과 지속적인 실패를 낳는 레시피나 다름없다. 개개인의 행동은, 오직 그 행동으로 인해 사회가 급격한 변화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때에만 유용하다. 지속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뿐이다. (32) 기후 비상상태와 관련해 가장 충격적인 진실 중 하나는, 산업혁명 초창기 이래 인간의 모든 탄소 배출 중 절반이 1992년 이후에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2019년 지구의 탄소 배출은 인류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우리가 저지른 일은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충분한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계속 지구온난화에 일조했다. 우리는 이 변화가 수 천 년 동안 계속될 것이며 그 변화에 가장 적게 기여한 사람들이 큰 피해를 입게 될 것을 알고 있다. 지구 역사상 가장 부자인 사람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기후변화는 언제나 선택의 문제였고, 우리의 지도자들은 수십 년간 거듭 잘못된 선택을 하며 우리를 실망시켰다. (52) 우리는 소유의 개념을 버리고 상대방과의, 그리고 우리가 집이라고 부르는 이 세계와의 의견을 일치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기후변화는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한 증상일 뿐이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인간의 행동이 이 세계를 함께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게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물리적 영향을 끼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진정으로 많은 것이 교차하고 서로 연결된 세상의 문턱에 서 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최초로 모든 사람을 위한 세계를 건설해야 한다. (65) 획기적 변화를 만

눈이 보이지 않는 친구와 예술을 보러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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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미술 작품을 '본다'니, 어떻게 하는 걸까? (13) 일반적으로 '색'은 시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얀색이니 갈색이니 파란색이니 하는 이름이 붙은 시점에 개념적이기도 해요. 각각의 색에는 특정한 이미지가 있어서 그걸 (시각적인 것이 아니라 그 특징적인 이미지로) 이해하고 있어요. (21) 애초에 나한테는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평범한 거고, '보이는' 상태는 모르니까. 보이지 않아서 뭐가 큰일인지 실은 잘 몰라. (54) 나한테는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가 평범한 거고 '보이는' 상태는 모르니까, '보이지 않으면 고생한다.'라는 말을 들어도 무슨 뜻인지 몰랐어. (55) 그 무렵 나는 크게 착각을 하고 있었다. 어쨌든 시라토리 씨는 눈이 보이지 않으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작품을 만질 수 있는 편이 좋을 거라든지 체험형 작품을 더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시라토리 씨 본인은 만질 수 있는지 여부를 티끌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평면이든, 영상 작품이든, 조각이든, 관심이 가면 "좋은데, 보고 싶어."라며 미소 지었다. (69) 시라토리 씨는 스무 살 무렵까지 빛은 보였다고 했다. 어릴 적에 시각을 잃었기 때문에 모양과 색 등 '시각의 기억'(시라토리 씨는 이렇게 부른다)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빛의 이미지만은 뇌리에 강렬히 새겨져 있다고. 그래서 소리와 빛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우리가 보는 것과 시라토리 씨가 그리는 이미지가 어느 정도 일치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76) 보이지 않기 때문에 느끼는 게 있지 않느냐고 자주 듣는데. 그야 보이지 않아서 느끼는 게 있긴 해요. 하지만 보이지 않으니까 느끼는 건, 보이니까 느끼는 것과 나란히 있는 동등한 관계라고 생각해요. 그 두 가지에 무슨 차이가 있냐고 묻고 싶다니까.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비로소 보이는 게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맹인을 미화하는 게

인종차별과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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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다'는 것은 생물학적이거나 문화적인 개념이 아니라 정치적 개념이다. 그렇지만 '흑인'이라는 단어는 나라마다 쓰임새가 다르다. (19) 인종차별은 오래된 인간 본성이라는 주장이 흔한데, 이는 인종차별을 없앨 수 없다고 넌지시 말하는 셈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인종차별로 인식하는 현상은 신세계의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아프리카인 노예노동을 체계적으로 사용한 일을 정당화하기 위해 17~18세기에 처음 개발된 것이다. 그리고 신세계 플랜테이션은 농장의 노예 사용은 자본주의가 세계 체제로 처음 등장하는 데서 중심 구실을 했다. (28) 흑인이 자기 피부색을 바꿀 수 없듯이, 인종차별을 당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바꿀 수 없으므로 차별을 피할 수 없다. 이 특징은 인종에 따른 차별과 종교에 따른 차별의 중요한 차이를 보여준다. 종교를 이유로 박해당하는 사람은 신앙을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36) 인종차별 탓에 노예제도가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 반대로 노예제도의 결과물로서 인종차별이 태어난 것이다. 신세계에서 부자유 노동을 한 사람들은 백인이거나 흑인이거나 황인이었고, 가톨릭이나 개신교나 기타 종교의 신자였다. (46) 인종차별은 노예제도와 제국이 낳은 창조물이다. 인종차별은 자본주의가 만인에게 보장하겠노라 약속한 권리를 식민지의 천대받는 사람들에게는 평등하게 보장하지 않은 일을 옹호하기 위해 개발됐다. (60) 마르크스는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주요 조건 세 가지를 알아차렸다고 볼 수 있다. 1) 노동자들 사이의 경제적 경쟁 2) 인종차별 이데올로기가 백인 노동자에게 미치는 호소력 3) 인종에 따른 노동자 분열을 조장하고 유지하려는 자본가계급의 노력 (68) 인종차별이 백인 노동자의 이익에 어긋난다는 사실, 그 이익을 물질적 이익으로 아주 협소하게 보더라도 그렇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인종차별이 자본주의의 유지에 일조하고 그럼으로써 백인 노동자와 흑인 노동자 둘 다에 대한 착취가 계속될

自序 - 이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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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초판본 전동차(電動車) ― 철갑 캡슐에 실려 호흡곤란으로 숨차하다가 고개를 들어 보면 내려야 할 역(驛)을 또 지나쳐 버렸다······ 낭패 죽음의 기나긴 식도(食道). 지나쳐 버린 역들을 멍멍하게 바라본다. 1989년 11월 이상희 잘 가라 내 청춘/이상희/민음사 20070420 88쪽 7,000원 세상에 나와 이로운 못 하나 박은 것 없다. 못 하나만 잘 박아도 집이 반듯하게 일어나고 하다못해 외투를 걸어두는 단정한 자리가 되는 것을, 나는 간통을 하다가 생을 다 보냈다. 시를 훔치려고 소설을 훔치려고 외람된 기호를 가장했다. 아, 나는 남의 것을, 모든 남의 몫뿐이었던 세상을 살다 간다. 가난한 눈물로 물 그림을 그리던 책상은 긍지처럼 오래 썩어 가게 해 달라. 단 하나, 내 것이었던 두통이여, 이리로 와서 심장이 터지는 소리를 막아 다오. 그리고 떳떳한 사랑을 하던 부럽던 사람들 곁을 떠나는 출발을 지켜봐 다오. 1 그가 앉은 섬에는 낙타가 바늘 속으로 들락날락하고 있었다. 2 나는 나의 시대를 미행할 뿐 눈물 폭죽을 터뜨리며 뛰어가는 광장의 가장자리를 따라 초조한 범인 검은 쇼윈도에 흘낏 제 꼬리를 감출 때 겅중겅중 위태한 징검돌 개울에서 자라는 혹을 밟으며 건너갈 때 갈채에 떠내려가는 회미한 손금 찢어진 얼굴들 있었지만 나는 가까이 또 멀리서 손아귀 단단히 말아진 신문 부시게 터지는 외신 카메라 플래시를 가리느라 가끔 펴 들고는 말 못할 말 없이. 3 연밥 하나 주시겠어요 탈색한 냉이도 반 다발 연밥은 수상하다니까요 이렇게 많은 구멍들을 보세요 절망을 놓쳐 버린 표정이군요 4 달면 뱉고 쓰면 삼킨다 가죽처럼 늘어나 버린 청춘의 무모한 혓바닥이여. 5 눈물은 결국 만리포 파도처럼 죽은 마음의 눈꺼풀을 밀어 올리며 깔깔한 사랑의 모랫벌을 다시 달리게 했다. 6 오늘은 하지(夏至) 죽음이 가장 긴 날. 7 다시 걸으리 믿음은 아직 도착하지 않아 지나가는 버스를 세어

시민의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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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박근혜 탄핵 사태 때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아동·청소년은 이듬해 대선에서 투표하지 못했다. OECD 회원국 중 유일하게 선거법 연령을 19세로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청소년은 '보호와 배려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천부인권의 주체로서 '현재의 시민'이다. 즉 '성장하는 시민 becoming citizen'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시민 being citizen'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시민이므로 당연히 시민으로 대우해야 한다(23)'. 우리나라 아동·청소년은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고 국민의 지위를 인정받지만 참정권은 소외되었다. 우리나라 19세 미만 아동·청소년은 정당에서 활동할 수 없다. 근로기준법 제64조에서는 최저 근로 연령을 '15세 이상자'로 규정하고, 민법상 혼인은 '18세 이상'이면 가능하다. 선거법 연령만 '19세'로 규정한다. 18세는 혼인과 동시에 성인의 권리와 의무를 갖지만 정치적 참여 영역에서만 권리를 제한받아 형평성에 어긋난다. '독일의 녹색당은 연령 제한이 아예 없다. '당의 기본 가치와 목표에 동의하는 모든 사람'이면 당원이 될 수 있다(78)'. 성인들은 그들의 의사 결정에서 오는 이익의 축소를 우려하기 때문에 '아동·청소년이 가능한 정치적 의사 결정의 영역에 늦게 진입하기를 바란다(54)'. '40세인 사람이 16세인 사람보다 그들을 대표하는 더 좋은 정당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연구는 없다(124)'. '19세 미만의 국민을 일일이 통제하려는 '유모 국가 nanny state'의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107)'. '세계는 21세에서 18세로, 이제 16세로 시민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125)'. '우리는 재산, 성별, 인종의 장벽을 하나씩 무너뜨리고 인권의 영역을 확

조선, 1894년 여름 - 오스트리아인 헤세-바르텍의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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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일주를 하던 나는 1894년 여름 일본을 떠나 미묘한 상황에 처해있던 조선으로 여행을 시도했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의 남부 지방은 정부에 대한 봉기가 극심했고, 동아시아의 두 강대국인 일본과 중국은 조선의 지배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대적인 전쟁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이 전쟁은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사건이다. 따라서 중국과 일본 그리고 조선의 정치적·문화적 관계를 이해하기에는 적기였다. (4) 누군가 나에게 부산과 그 주변에 살고 있는 조선인의 비참한 생활은 그들 스스로 초래한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원하기만 한다면 그들은 좀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고, 더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관리들이 도둑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고, 애써 돈을 모아봐야 이들에게 강탈당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생활비와 담뱃값 이상으로 돈을 벌 필요가 있겠는가? 실제로 푼돈이라도 남으면, 은밀한 곳에 숨기거나 땅에 묻는다. 부유한 상인들조차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 하지만 돈을 숨겼다가 발각되었는데도 바치기를 거부하면, 대부분 전 재산을 몰수당한다. 이들은 자기들끼리도 그렇지만 낯선 이방인에게도 매우 정직하다. 절도와 강도는 비교적 드물며, 살인은 더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5년간 전체 구역에서 살인은 두 건밖에 없었다. 살인자는 머리가 잘리는 처벌을 받았다. (24) 조선 땅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알기 위해 이 나라를 찾은 여행자에게 부산은 엄청난 실망을 안겨준다. 그 이유는 조선에서 두 번째로 큰 항구가 조선의 영토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조선과 아무런 연관도 찾아볼 수 없는 철저한 일본 도시이기 때문이다. (27) 나중에 나는 부산보다 북쪽에 있는 도시들에서도, 조선인이 얼마나 게으르고 느려 터진 민족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건장한 체구의 조선 남자들은 모두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 담배 주머니를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담배 피우고 빈둥거리는 것이 남자들의 유일한 소일거리처럼 보였던 반면, 여자들은

우선 집부터, 파리의 사회주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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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프랑스의 임대주택은 역사부터가 다르다. 한국의 임대주택 역사는 1988년에 '영구임대주택'이라는 최저소득층을 위한 주택을 짓기 시작해서 이제 30년을 넘어간다. 반면 프랑스의 사회주택은 19세기 중반부터 시작되었다. '프랑스의 첫 번째 사회주택은 기업가인 장 바티스트 고댕(Jean Baptiste Godin)이 1858년부터 1883년까지 건설한 노동자 주택이다. 그는 공장 노동자에서 기업가로 성공해 많은 자산을 모았는데, 노동자 시절에 마주했던 열악한 주거 환경을 기억하고 자신의 재산을 노동자들을 위한 주택을 짓는 데에 사용했다(84)'. 약 500여 채의 노동자 주택을 지었다. 고댕이 노동자주택을 건설하던 시기에 사회주택은 다른 기업가들과 도시로 퍼져나갔다. '프랑스 전국에서 기업가를 중심으로 지어지던 사회주택은 1894년에 최초로 사회주택에 대한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85)'. '프랑스의 노동자주택 및 사회주택은 법률 제정 이전에도 법을 통해 기업가나 지자체장의 개별적인 선의의 틀을 벗어나 사회의 지원을 받는 주택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 노동자들을 위해 소수의 의식 있는 자산가가 직접 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한 지 40~50여 년이 지나서야 드디어 국가가 사회주택에 관여(86)'하게 된다. 프랑스에서 사회주택이 발달한 이유는 단순히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의 개념만이 아니었다. 1906년에 도시 인구가 전체의 62퍼센트에 도달하며 전염병이 창궐하고 영아 사망률이 20퍼센트에 달했다. 미래의 노동력을 감소시키는 국가적인 위험 요인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과 맞물려 있었다. 1912년에는 오늘날과 유사한 방 하나의 최소 규모를 9제곱미터로 정했다. 1919년에는 주거 환경이 열약해지는 것을 방지하는 법률을 만들었다. '1884년부터 발전된 사회주택에 대한 제도는 1930년대에 들어서 오늘날과 같은 기준을 적용하게 되었다(92)'. '1

죽은 역학자들 - 코로나19의 기원과 맑스주의 역학자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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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은 질병에 대한 조사 결과를 무기로 삼는다. 소농에게 비판을 떠넘기는 것이 농축산업, 애그리비즈니스 Agribusiness 의 위기 관리 관행이 됐다. 하지만 질병은 시간, 장소, 방법 등의 모든 측면에서 시스템의 문제이지, 특정의 누군가를 욕해서 풀릴 문제가 아니다. (34) 애그리비즈니스는 우리가 자본주의적 관계라는 과거에 계속 묶여 있게 만들기 위해 기술유토피아적 미래를 쳐다보게 만든다. 질병이 진화하는 그 상품의 궤적을 빙빙 돌게 만든다. 이런 상황에서 역학자가 주로 하는 일은 서커스단 소년이 삽을 들고 코끼리 뒤를 쫓아다니는 식의 사후 관리다. 신자유주의 프로그램 아래에서 역학자나 공중보건 기관은 치명적인 감염병을 부르는 최악의 관행들을 합리화하면서 시스템이 실패한 뒤 뒤치다꺼리를 하고, 그 대가로 펀딩을 받는다. (36) 세계 곳곳에서 자본이 소농이 가진 땅과 숲으로 침투하고 있습니다. 그런 투자 때문에 숲이 사라지고 질병이 출현할 환경이 만들어집니다. 이 광대한 땅이 가진 기능적인 다양성과 복장성을 없애고 예전에는 묶여 있던 병원균들이 지역의 가축과 주민 사이로 들어오는 스필오버 spillover 가 일어나게 해 놓고는 토지 이용을 효율화했다고 주장하는 식입니다. 간단히 말해, 자본의 중심지인 런던이나 뉴욕이나 홍콩을 질병의 근원지로 봐야 합니다. (44) 애그리비즈니스는 수억 명을 죽일 수 있는 바이러스를 선택적으로 진화시키면서 수익을 추구하고 있는 거예요. (...) 이런 기업은 방역에 위험한 문제를 일으켜 놓고도 그 비용을 얼마든지 외부로 전가할 수 있습니다. 가축에서 시작해 소비자, 농장 노동자, 지역 환경, 정부와 사법 체계에 비용을 떠넘기는 거죠. 그 어마어마한 피해에 따른 비용을 모두 기업 화계에 반영한다면 지금 같은 농업 기업들은 존재할 수 없어요. 자기들이 저지른 해악을 돈으로 물어낼 수 있는 기업은 하나도 없어요. (46) 발병 지역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역학을 만들어 낸 세계의 경제적 요인들 사이의 관계를 무시한 것이

부디, 얼지 않게끔, 드디어 휴면하는 휴먼이 출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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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알레르기가 있다고 소문난 송희진과 무더운 사무실에서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최인경은 같이 베트남 출장길에 올랐습니다. 민소매 티에 적갈색 머리를 한 희진은 관종으로 불리며 더운 게 싫은 사람입니다. 인경은 여름이면 화장이 땀으로 무너질 걱정이 없어 부럽다는 말을 듣는 사람입니다. 체질마저 상극이어서 교류가 없었던 두 사람은 베트남 출장길에 전혀 상상하지 못하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인경의 몸이 상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변해버린 걸 희진이 처음 알아챘습니다. 둘은 베트남에서 땀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오히려 기운이 넘치는 인경이 변온동물로 변해버렸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열대 기온에서만 살아갈 수 있는 변온인간으로 변했지만 국가기관에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국가에 대한 불신 때문입니다. 대신 희진은 변온인간이 된 인경을 돌보기로 했습니다. '영영 변온동물로 변해버린 것이라면, 가장 큰 고비는 여름이 끝나고 서늘한 가을을 지나 혹한의 추위가 다가오면서부터 시작될 것이 분명하다. 대충 계산해보면 반년도 더 이후의 일이니 안심할 수도 있을 법하지만, 만일 지금 지내는 이 여름이 나에게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 남은 시간을 결코 허투루 보내서는 안 된다(49)'. 열대 기온에서 살아야 하는 변온인간으로 변한 인경은 자신을 돌보는 희진에게서 '그저 기분 좋은, 주머니 속에 넣어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그런 온기(126)'를 느낍니다. '특별하고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잠이 들어 오랜 시간 추위를 피한 후 날씨가 따뜻해지고 햇살이 충분해질 때쯤 일어나면 되는 것이었다. 집에서 변온동물을 키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부러 동면의 조건을 만들어주고 1년에 한 번쯤은 쉬게 해주어야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냥 무심하게 아무 일 없이, 그렇게 한겨울 한 철만 나면 된다고 했다. 그것을 당연한 일이라고 그들은 표현했다. 사람도 동물처럼 겨울을 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롱패딩

파국이 온다 - 낭떠러지 끝에 선 자본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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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여지 없이 인간 해방은 자본주의 발전의 단순한 귀결로 오는 게 아니다. 또한 그것은, 자본주의는 그대로 둔 채 (흔히 선거철마다 그렇게 기대되듯) 관리자만 교체한다고 될 일도 아니다. 또한 자본주의가 스스로 만든 생산력, 하지만 그것을 더 좋은 용도로 투입하는 걸 용납도 않는 그 자본이 지닌 생산력을 "해방"시킨다고 해서 될 일도 아니다. 나아가, 공산주의나 혁명 또는 인간 해방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하는 역사적 경향성 내지 필연성 따위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28) 상품 사회 속 우리 삶의 토대란 무엇인가? 노동이 자본으로 전화하고 또 자본이 노동으로 전화하는, 일종의 영구운동이다. 즉 자본은 인간의 살아 있는 노동을 고용하여 생산적으로 소비함으로써 더 큰 자본을 만들어가고, 인간은 자신의 살아 있는 노동력을 팔아 자본의 몸집을 불려주는 대신 임금을 받아 소비를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그런데 바로 우리 눈앞에서 나날이 벌어지는 일들은, 인간의 산 노동 living labor 을 기술로 대체하는 것 아닌가? 이렇게 인간의 살아 있는 노동이 자본의 생산과정으로부터 추방당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가치 생산의 토대가 붕괴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54) 흥미롭게도 오늘날 자본주의는 수백 년 전 초창기 때의 본질적 모습을 이제는 겉으로도 잘 드러낸다. 그 본질이란 마치 자기 자신을 삼키는 괴물의 모습,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기계의 모습,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사회생활의 근거 자체를 소멸시키는 사회의 모습이다. (59) 만일 자본주의를 자기 동력이 행하는 대로 내버려둔다면 결코 저절로 사회주의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오히려 폐허로만 남을 공산이 크다. 만일 자본주의라는 말이 어떤 의도를 가질 수 있다면 아마 그것은 인류의 마지막 단어가 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닐까 싶다. (61) 자본주의 시스템은 이미 오래전에 "질서의 편"이기를 그만두었다. 오히려 자본주의는 각종 "예술적" 저항을 얼마든지 자기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