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s

조종이 울린다 - 자본주의라는 난파선에 관하여

How Will Capitalism End?, 2016
  • 자본주의는 언제나 갈등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영원히 불안정하고 유동적이며, 역사적으로 우연히 나타나고 불확실하게 지지할 뿐만 아니라 제약하기도 하는 여러 사건과 제도들에 크게 좌우되는, 있을 법하지 않은 사회 형성체social formation였다. 자본주의 사회는 애덤 스미스와 계몽주의의 의미에서 '진보적인' 사회, 즉 자신의 '진보'를 생산적 자본의 지속적이고 무제한적인 생산과 축적에 연결하는 사회라고 간략하게 묘사할 수 있다. 이런 생산과 축적은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과 국가의 보이는 손에 의해 물질적 탐욕의 사적인 악덕이 공공의 이익으로 전환됨으로써 이루어진다. (10)
  • 실제로 현대 자본주의의 역사는 자본주의의 경제적·사회적 제도가 밑바닥에서부터 변형되는 대가를 치르고서야 살아남은 위기의 연속으로 서술할 수 있으며, 이 위기들은 예측할 수 없고 종종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자본주의를 파산에서 구해주었다. 이렇게 보면, 자본주의 질서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토록 자주 이 질서가 붕괴 직전으로 내몰리고 계속해서 변화해야 했다는 사실만큼 인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자본주의 질서는 종종 내부에서 동원할 수 없는 지지를 우연히 외부로부터 받으면서 겨우 살아남았을 뿐이다. 지금까지 자본주의는 임박한 죽음에 관한 온갖 예측을 뛰어넘어 생존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영원히 살아남지는 못할 것이다. (14)
  • 꾸준한 성장과 건전한 화폐, 약간의 사회적 형평성 덕분에 자본주의가 낳은 혜택의 일부가 자본 없는 이들에게도 확산되었는데, 이런 사실은 오랫동안 자본주의 정치경제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요조건으로 간주되었다. (...) 불평등의 증대가 생산성 향상을 방해하고 수요를 약화시켜서 성장을 둔화시키는 한 요인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늘고 있다. 거꾸로 저성장은 분배갈등을 격화시키면서 불평등을 강화한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양보하는 비용이 높아지는 한편, 부자들은 자유시장을 지배하는 '마태 원리Matthew principle'를 어느 때보다 더 엄격하게 준수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가진 사람에게는 더 주어서 넘치게 하고, 갖지 못한 사람에게서는 있는 것마저 빼앗을 것이다." 더욱이 부채 증가는 경제성장 저하를 막지 못하는 한편, 금융화는 임금 정체와 공공서비스 축소 때문에 점증하는 소득 불평등에 대해 임금소득자와 소비자들에게 보상을 주려던 애초의 목표와 달리 관련된 구조적 변화들을 통해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92)
  • 더보기...

조종이 울린다How Will Capitalism End?, 2016/볼프강 슈트렉Wolfgang Streeck/유강은 역/여문책 20181130 460쪽 30,000원

옮긴이의 말이 내용을 잘 요약해서 옮긴다.

"볼프강 슈트렉이 이 책에서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것처럼, 현대 자본주의는 그것의 존립을 뒤흔드는 심각한 위기가 벌어질 때마다 대항세력의 요구를 흡수하면서 반대파가 주장하는 개혁을 구명줄로 부여잡고 간신히 살아났다. 1930년대 대공황이 벌어졌을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구해주었다. 그리고 양차 대전을 겪은 뒤로는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민주적 자본주의로 변신해 영광의 30년을 구가했다. 그런데 이 황금기는 독약처럼 작용했다.

이제 40년 넘게 이어진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승승장구하는 과정에서 반대파를 죄다 죽여버렸다. 지은이는 특히 노동조합의 해체와 민주주의의 형해화에 주목한다. 현대 자본주의의 성장이 느려지고 부가 상층부로만 쏠리게 된 데는 이 두 가지 현상이 가장 크게 기여했다.

원래 자본주의는 강한 민주주의와 노동세력이 끊임없이 견제를 해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체계다. 빈익빈 부익부 경향을 억제하고 대중 소비자집단을 계속 유지해야 원활하게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 부가 재분배되어야 체계의 안정성과 재화와 서비스의 지속적인 소비가 가능하다. 자본주의를 교정해줄 대항세력이 몰락한 탓에 규제와 개혁이라는 자기교정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사라졌다." (446)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나며 자본주의는 역사상 가장 심각한 위기에 처했다. 팬데믹 시대를 지나며 더욱 악화됐다.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는 대항 세력을 파괴함으로써 자멸할 것이라고 한다. 다만, 볼프강 슈트렉이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지 않아 아쉽다. 자본주의의 더 나은 변종을 찾는 걸 중단하고 대신 자본주의의 대안에 관해 진지하게 생각하자고 조언한다. 다수인 노동자를 나타내는 노동주의가 아니라 소수 자본가를 대변하는 자본주의라 불리는지 주목하라고 경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