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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속패전론 - 전후 일본의 핵심

영속패전론 - 전후 일본의 핵심
  • "우리는 모욕 속에 살고 있다." 2012년 7월 16일 도쿄 '요요기 공원'에서 열린 '사요나라 원전, 10만 집회'에서 오에 겐자부로가 나카노 시게하루의 표현을 인용하여 외친 말이다. 이 말은 3.11 동일본 대지진 이래 우리가 놓여 있는 상황을 모자람 없이 적확하게 표현한다. 그렇다. 우리는 실제로 모욕 속에 살고 있고, 모욕의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21)
  •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는데 모욕 속에서 살아가게 하는 권력 구조와 사회 구조는 3.11 사고로 시작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구조는 일본 역사에서 끊임없이 존속, 유지, 강화돼 왔으며 그동안 철저히 은폐된 것들이 명백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요컨대, 전후 체제는 전전(戰前)이나 전중(戰中)을 그대로 빼닮은 '무책임의 체계'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부패의 산물이다. (28)
  • 전율을 일으키는 이런 정세 속에서 내게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확신이 하나 있다. 바로 '전후'라는 역사의 단락으로 오랜 기간 지속됐던 하나의 시대가 확실하게 끝났다는 믿음이다. 달리 말해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사고로 '전후'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는 것이다. 이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완전히 끝나고 '전쟁과 쇠퇴의 시대가 왔음을 뜻한다. 아울러 지금까지 '전후'를 총괄한 기본적인 신화(곧 '평화와 번영')를 근본부터 다시 해석해볼 때가 됐음을 의미한다. (37)
  • '전후'의 시작을 어떤 말로 인지하는지 생각해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전후'의 시작인 8월 15일은 어떤 날인가? 일반적으로 이날은 '종전 기념일'로 불린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전쟁이 저절로 '끝났'을 리 없다. 전쟁은 대일본제국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함으로써 일본의 패배로 끝났다. 그런데도 이날은 전쟁이 '끝난' 날로 인식되고 있다. 바로 여기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순연(純然)한 '패전'을 '종전'으로 바꿔 부르는 기만이 전후 일본 체제의 근본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52)
  • 패전을 부인하므로 미국에 끝없이 종속되며, 대미 종속이 깊이 이어지는 한 패전의 부인이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내가 말하는 '영속패전'이다. 영속패전 구조는 '전후' 근본 체제가 됐다. 전전의 가치관에 공감하고 이를 표방하는 정치 세력은 걸핏하면 '전후 민주주의'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막상 '전후 종식'을 실천하지는 않는, 언행불일치의 태도를 보였다. 그런데도 이들이 오랜 기간 권력을 독점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체제가 안정성 확보에 성공한 덕분이었다. (61)
  • (...) 포츠담 선언 수락을 부인하고, 도쿄재판을 부정하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마저 인정하지 않는 셈이 된다(다시 한 번 미국과 전쟁을 벌여야 한다). 그러나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은 '만용'을 부리지 않는다. 행동에 일관성이 없는 것이다. 그 대신 국내와 아시아에서는 패전을 부인함으로써 자신들의 신념을 충족시킨다. 또한, 자신들의 세력을 용인하고 지탱해주는 미국에는 비굴한 신하 노릇을 한다. 비루한 자위행위로 전락한 자신의 행동에 만족을 느껴왔던 것이다. 패전을 부인하므로 패배가 무기한 계속되는 것이 '영속패전'의 개념이 가리키는 상황이다. (62)
  • 영토 문제는 고문서를 뒤져야 할 만큼 오래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국, 국가의 영토를 결정하는 최종 심판 단계는 폭력이다. 즉 역사상 최근에 일어난 폭력(전쟁)의 결과가 영토 지배의 경계선을 규정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일본에서 '최근의 폭력'은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다. 일본인은 대부분 세 가지 영토 문제가 모두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 처리와 관계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68)
  • 미국에는 패전으로 이뤄진 종속 구조를 한없이 인정함으로써 이를 영속화하는 한편, 그에 대한 보상 행위로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패배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런 '패배의 부인'을 지속하기 위해 더욱더 미국의 졸개가 돼야 한다. 노예와 같은 복종이 패배의 부인을 지탱하고, 패배의 부인이 노예 행위의 보상이 된다. (88)
  • 애초부터 '전후'란 결국 패전 후 일본이 패전 사실을 무의식 속에 은폐하고 전전의 권력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겉보기에는 이웃 나라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는 모양새를 갖춰–바꿔 말해 돈으로 사서– '평화와 번영'을 누려온 시대였다. (123)
  • '전후'를 사실상 끝내는 시점에서 '전후'의 본질이 계속되기를 강렬히 원하고 실현하려는 인물과 세력이 여전히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전후'는 끝났지만, 더욱더 '전후'는 영속하려고 한다. 그러나 '전후의 종말'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이미 시작되고 있다. 이것은 멈출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전후'를 종료할 것인지, 아니면 외부의 힘으로 '강제 종료될 것인지 둘 중 하나다. (127)
  • 우파는 도쿄재판이 '승자의 심판'이기에 부당하고, 평화헌법은 억압이며, 천황제 존속은 맥아더가 쇼와 천황의 '무사(無私) 정신'에 감격했기에 당연하다는 논리를 펼친다. 이와 달리 좌파는 도쿄재판이 영국·미국을 상대로 벌인 전쟁의 '죄'를 추궁하는 기본적인 절차에 그쳐 철저하지 않았지만, 반면에 평화헌법은 세계사가 걸어가야 할 큰길을 앞서 닦았던 훌륭한 가치여서 마땅히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에 대한 천황의 책임 추궁을 포기한 것은 전후 민주화 개혁이 불완전했다는 증거라고 주장해왔다. (133)
  • 천황의 전쟁 책임을 둘러싼 좌우의 대립 구도가 헌법 제9조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뒤바뀐 형태로 나타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우파는 헌법 제9조를 전후 일본의 최대 질곡으로 간주하지만 호헌 좌파는 이를 대일 점령 정책 중 최고의 결과로 평가한다. 그러니까 헌법 문제에 한해서 친미 우파는 친애하는 아메리카로부터 얻은 것이지만 싫어하고, 반미 좌파는 희한하게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를 사랑해 마지않는다. (136)
  • 본문에서도 썼듯이 이 책은 지금까지 수없이 지적돼온, 안팎으로 전쟁 책임을 다하지 않은 전후 일본의 문제를 다시금 지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은 논의의 참신함보다 '진실의 목소리'를 한사람이라도 더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에 쫓기면서 집필에 몰두했다. (205)

영속패전론永続敗戦論 戦後日本の核心, 2013/시라이 사토시白井聰/정선태 외 옮김/이숲 20170731 216쪽 15,000원

"우리는 모욕 속에 살고 있다."로 시작하는 《永続敗戦論》은 '전후(戰後)'라는 역사적 기간이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으로 끝났다고 한다. 동일본 대지진과 쓰나미 사고로 '전후'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며 '평화와 번영'의 시대가 완전히 끝나고 '전쟁과 쇠퇴'의 시대가 왔음을 뜻한다. 일본이 왜 패전을 부인하는지 해석한다.

'전후'는 일본의 패배로 끝난 8월 15일을 '종전 기념일'로 부르며 시작했다. 일본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함으로써 일본의 '패배'로 끝났는데도 이날은 전쟁이 '끝난' 날로 인식하고 있다. '패전'을 '종전'으로 바꿔 부르는 기만이 전후 일본 체제의 근본을 이루고 있다. 패전을 인정하지 않으면 미국에 맞서는 셈이 된다. 전후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세력을 용인하고 지탱해 주는 미국에는 비굴한 신하 노릇을 한다. 그 대신 국내와 아시아에서는 패전을 부인한다.

미국에는 패전으로 이뤄진 종속 구조를 한없이 인정하며 영속화하는 한편, 그에 대한 보상 행위로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는 패배 사실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패전을 부인하므로 미국에 끝없이 종속되며, 대미 종속이 깊이 이어지는 한 패전의 부인이 가능하다. 패전을 부인하므로 패배가 무기한 계속되는 것이 '영속패전'이다. 이렇게 영속패전 구조는 '전후' 근본 체제가 됐다. 정치 세력은 걸핏하면 '전후 민주주의'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으면서도 막상 '전후 종식'을 실천하지는 않는다. 이런 체제가 안정성 확보에 성공하며 오랜 기간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그래서 영속패전을 무한 연장하려고 한다.

'전후'란 패전 후 일본이 패전 사실을 은폐하고 전전(戰前)의 권력 구조를 그대로 유지한 채 돈으로 사서 '평화와 번영'을 누려온 시대였다. '패배의 부인'을 지속하려고 더욱더 미국의 노예가 돼야 한다. 노예와 같은 복종이 패배의 부인을 지탱하고, 패배의 부인이 노예 행위의 보상이 된다. 동일본 대지진으로 실질적으로 전후는 끝났지만, 전후를 영속하려는 세력이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전후 체제는 전전(戰前)이나 전중(戰中)을 빼닮은 '무책임의 체계'이다. 그래서 주체적으로 '전후'를 종료할 것인지, 아니면 외부의 힘으로 '강제 종료될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

영토 문제도 언급한다. 국가의 영토를 결정하는 최종 심판 단계는 폭력(전쟁)이고, 최근에 일어난 폭력의 결과가 영토 지배의 경계선을 규정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영토 문제는 고문서를 뒤져야 할 만큼 오래된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일본에게 일어난 '최근의 폭력'은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므로 일본은 세 가지 영토 문제는 전후 처리와 관계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세 가지 영토 문제는 서로 이중 잣대로 얽혀있고, 이중 잣대를 풀려면 패전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책이 나온 지 십여 년이 지났지만, 일본은 변하는 게 없거나 더디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 영속패전론 속으로 뛰어 들어가려는 패거리가 늘어난다. 보수가 매국 우파로 변질됐다. 심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