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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방 기담 수집가

헌책방 기담 수집가
책을 찾는 사연을 수수료로 받고 절판된 책을 찾아주는 헌책방 주인이 있습니다. 사연을 들려주면 책을 찾아주지만, 헌책은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나타나곤 합니다.

젊은 시절에 연애편지를 쓰려고 샀던 책을 찾아 달라는 어떤 어르신의 사연이 계기가 됐습니다. 어르신은 사람을 찾는 건 의미가 없으니 연애편지를 쓸 때 도움을 받았던 책을 찾고 있었습니다. 찾고 있던 책은 인연처럼 반년이 지나 나타났습니다. 어르신은 책값보다 더 비싼 차비를 들여 책을 찾으러 왔습니다. '책은 작가가 쓴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그 책을 찾는 사람들은 거기에 자기만의 사연을 덧입혀 세상에 하나뿐인 새로운 작품(23)'을 만듭니다. '책은 다 같은 책이지만 꼭 만나야 하는 그때의 책'에는 '젊은 날의 추억, 사랑, 고민, 그리고 망설임과 선택을 고스란히 담고(32)' 있었습니다.

한동네에서 살며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같은 학교에 다녔고 결혼까지 한 부부는 어릴 때 읽었던 책을 찾고 싶답니다. 두 사람의 추억이 깃든 책을 찾아서 태어날 아이에게 읽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책은 아이가 태어나고도 한참 지난 뒤에야 전해줬습니다. 아이에게 책을 보여주자 아이는 내용은 물론 사연까지 다 아는 것처럼 책을 잡으려 했습니다.

하룻밤 만에 다 읽을 수 있는 소설을 마저 읽는 데 40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사연도 있습니다. '어떤 책은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71)' 합니다. '해 질 녘 서해를 닮은 그림처럼(81)' 한없이 쓸쓸한 풍경에 이야기가 담긴 그림엽서를 건네던 이도 있었습니다. '가장 아끼는 것은 책이 아니라 하나뿐인 손녀(105)'일지도 모르는 어떤 노인도 있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이르러, 아름다운 한 사람을 향한 애틋한 마음은 수만 권의 책으로 가득 한 서재와 바꿀 만큼 소중(106)'했었는지도 모릅니다.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절판된 책 한 권을 찾는 일(107)'은 쉽지 않습니다. 찾는 데 거의 2년이나 걸렸던 책은 찾는 사람의 간절한 마음을 알아보고 모습을 드러내 연결되었습니다. 책과 사람은 '마음으로 이어져 있기에 제아무리 억지로 몸을 움직인다고 해서 금방 만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오직 마음으로 간절히 바라는 사람에게 책은 살며시 다가(115)'옵니다.

생각의 감옥에서 벗어나 가장 행복했던 나이로 돌아가는 사연이 있는 한 '책은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을 알고 있기에 때론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여행(226)'을 합니다. '세상에 책이 남아 있는 동안, 그 책과 함께한 사람들의 인연도 사라지지(235)' 않습니다. '새책방을 사람이 책을 선택하는 곳이라고 한다면 헌책방은 반대로 책이 사람을 선택하는 일이 일어나는 재미있는 가게(10)'이기 때문입니다. 헌책방 주인은 여전히 사연을 수집하고 책 한 권을 찾아 나섭니다. 낡은 책 한 권이지만 삶의 가르침이 있기 때문입니다.

헌책방 주인도 찾기 힘든 책이 있을 때 찾아가는 고수들이 있습니다. 고장 난 시계를 수리해서 팔며 절판된 책을 수집하는 N씨와 가게 없이 바퀴 달린 여행 가방에 책을 넣고 옮겨 다니며 파는 괴짜 보부상이며 바벨의 도서관으로 부르는 H씨는 실존하는 인물인지 의문이 들지만 믿기로 했습니다. 개정판이 나왔지만 일부러 초판을 찾는 이도 있고, 무엇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고 했으니까요.

헌책방 기담 수집가/윤성근/프시케의숲 20211206 320쪽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