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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시민 불복종

장애시민 불복종
  • 오랜 시간 장애를 극복의 대상으로 여기던 내가, 극복을 성공의 요건으로 여기던 내가, 성공을 이기심의 결과로 여기던 내가, 이기심을 생존의 요소로 여기던 내가, 생존을 경쟁의 합리적 근거로 여기던 내가, 장애운동을 계기로 오랫동안 나를 지배하던 신념을 회의적으로 돌이켜보게 되었고, 타인의 고통에 연대하는 삶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달을 수 있었다. 나를 이토록 다른 차원으로 이끈 순간의 말들을 잊고 싶지 않아 이 책을 쓰게 되었다. 나를 '아차' 하게끔 한 연결과 연대의 풍경을 꼼꼼히 새겨두었다. (6)
  •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는 '불화'가 정치의 본질이라고 보았다. 민주주의 사회의 규칙이라 여겨지는 '분배를 목표로 한 합의'는 정치(politics)가 아니라 치안(police)을 위한 활동이라는 것이 그의 주된 주장이다. 민주주의 정치는 그저 자원을 나눠 갖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간 존재를 부정당했던 '몫 없는 자들'이 몫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한다. 목소리 없는 이들, 몫 없는 이들이 몫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화는 민주주의의 위협 요소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번영을 견인하는 힘이다. (14)
  • "편의시설을 바꾸는 데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그가 대답했다. “장애인에게 계단은 계단이 아닙니다." 계단은 위층과 아래층을 연결하는 통로가 아니라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나누는 차별의 단면이었다. 그는 돈키호테 같은 대답을 이어갔다. 돈키호테가 풍치를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듯, 그는 계단을 보면 계단으로 향했고, 계단이라는 괴물을 무찌르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기를 꿈꿨다. 공공장소에 설치된 계단과 문턱에 대드는 활동에 그토록 진심을 다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계단은요, 마치 삶과 죽음의 경계선 같은 거예요, 그건." (27)
  • 그는 장애운동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함께 운동하는 사람들을 이렇게 소개했다. "여기에 모인 장애인은 우리 사회에서 침전물 같은 취급을 받는 존재예요." 전장연 운동은 차별받고 배제되는 중증장애인들이 나서 사회의 차별에 저항하는 활동이라고 했다. (43)
  • 인권운동에서 통용되는 언어의 맥락과 집회의 문화를 이해하게 될수록 직업으로서 활동가에 대해 편안함과 자신감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앞선 시간을 거쳐온 덕분에 이제 두렵게만 느껴졌던 민중이라는 단어가 더는 무섭지 않다. 민중은 그 자체로 소탈한 사람들을 지칭하는 표현임을 알기 때문이다. 무시무시하기는커녕 꾸미지 않은 사람들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민중. 국가에 종속된 사람을 뜻하는 '국민'이 아니라, 행정 구획에 종속된 사람을 뜻하는 '시민'이 아니라, 생물학적 분류를 나타내는 '인간'이 아니라, 집단의 힘을 포괄하기 힘든 '개인'이 아니라, 인간답게 살기 위해 거리에 모인 사람들을 가리키는 어휘로서 민중의 의미가 이제는 낯설지 않다. 공동체의 평등, 평화, 자유를 꿈꾸는 이들이 곧 집회 현장의 민중이다. (102)
  • 활동가들은 저마다 주어진 조건에서 노력하는 모든 행위를 곧 투쟁이라 일컬었다.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그리고 단단하게 일을 진행해나갈 때 투쟁한다고 인식하는 사람들의 매력이 느껴졌다. 편견을 내려놓고 보니 투쟁은 갈등과 싸움을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자신과 사회를 바꿔나갈 용기를 지닌자들의 능동적인 마음을 담아내는 표현이었다. 그 말에 더이상 거부감이 들지 않았고, 빠르게 익숙해졌다. 어쩌면 각자의 삶에서 지향해야 하는 것은 극복이 아니라 투쟁일지도 모르겠다고 스스로 묻게 되었다. (132)
  • 한국 사회에서 장애운동이 대표적인 당사자운동으로 인정되어온 역사의 한편에는 '직접 물어보시겠어요?'라고 반문하던 비장애인 조력자의 명료한 말들의 시간이 깃들여 있다. 장애인이 이끄는 투쟁의 역사에는 늘 비장애인의 지원이 궤를 함께했다. 당사자운동에 참여하는 비당사자들은 독특한 정체성과 고유한 인내의 힘을 갖고 있다. 장애운동에 함께하는 비장애인들은 스스로 운동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근본적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것을 한계로 삼지 않는다. 자기 옆에 휠체어를 탄 채 앉아 있는 장애인에게 마땅히 대답의 몫이 가야 한다고 여기며, 이들이 주체로 인정받기 위한 당사자운동이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방법임을 믿는다. 장애인 당사자가 아니어서 주목받지 못할지언정, 장애운동으로 사회가 누군가의 권리를 다시 주목한다면 그것은 자신이 아니라 오래간 소외당했던 나의 장애인 동료가 되어야 한다고 마땅히 생각하는 이들이 비장애인 활동가다. 그들은 당사자운동이 오직 당사자만의 운동으로 축소되지 않도록 곁을 함께 지킨다. (187)
  • 인정받지 못한 이들의 권리를 정의하는 법률 조항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다. 인정되지 않은 권리는 법제화되기 전까지 언제나 법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우리 사회 소수자들의 권리가 법적으로 인정되기까지 우리가 가야 하는 길은 멀고 험하다. 사회의 모순을 직시한 누군가의 용기를 통해 권리의 개념이 탄생하고, 적당한 이름이 붙고, 모습을 갖추고, 기존 질서와 갈등이 발생할 때 비로소 중재안으로서 법률이 세워진다. 권리가 법률에 앞선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자면,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법에 구속되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어야 할 수밖에 없다. 법체계에 순응하는 인간은 그 너머의 것을 상상할 수 없다. 그러한 합법은 지배자가 구성한 불평등한 조화의 모습일 뿐이다. (227)
  • 오늘날 사회에서 어떤 ‘불법‘은 매우 인위적인 의도를 갖고 설계된 기준이며, 제도적 변화를 억압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법치주의‘의 뜻을 마음대로 해석할 수 있는 일부가 손쉽게 정의하는 불법은 도덕이 아니라 권력에 그 기준을 둔다. 준법정신이 투철한 이들 모두 늘 불법을 나쁜 것으로 쉽게 판단하지만, 사실 불법적 행동을 평가하기 위해서는 합법이란 무엇인지, 또 누구를 위한 것인지를 함께 직시할 수 있어야 한다. (228)
  • 어느 장애인 활동가와 늦은 밤 술자리에서 나눈 대화를 잊지 못한다. 그는 당시 초보 활동가였던 나에게 대뜸 데모를 왜 하는 것 같냐고 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법을 바꾸기 위해서 데모하는게 아니겠느냐고 대답했다. 그는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원하는 답이 아니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달리 대답했다.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 하는 거냐고 말을 고쳤다. 그는 여전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가 생각하는 답이 무엇인지 좀처럼 종잡을 수 없었다. 고개만 젓지 말고 정답을 알려달라고 하자 그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데모를 통해 중증장애인이 세상을 만나게 된다고. 그래서 데모를 한다고. 한평생 장애를 이유로 집 밖에 나설 수 없었고, 학교에 갈 수 없었고, 직장을 구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데모가 세상과 소통하는 계기가 된다는 것이었다. 대다수 사람은 길거리에서 웬 고생이냐고 묻겠지만, 어떤 장애인들에게는 현장에 참여하는 것이 자신에게 허락된 유일한 외출의 이유였다. (234)
  • 생산 능력과 업무 속도를 기준으로 누군가를 평가하고 비난하는 것은 비장애중심적 사고의 결과일 뿐이었다. 장애운동은 도리어 현대사회가 장애인에게 강요하는 무리한 생산성과 효율성에 저항하여 개개인의 속도와 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노력과도 같았다. 타인의 일방적인 평가를 거부하는 것이 이 운동이 지향하는 방향이었기 때문에 활동 현장에서 함부로 상대를 평가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도 허락되지 않았다. (277)
  • 사실 평화는 오직 매 순간의 사투 속에 존재할 뿐이며,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껴지는 울컥하는 감정들이 우리가 지향하던 평화의 의미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그러니 돌이켜보면, 시끌벅적했던 모든 시간이야말로 진짜 평화의 순간이었다. (307)

장애시민 불복종/변재원/창비 20230804 308쪽 18,000원

"착한 장애인은 개인의 삶을 바꾸기 위해 분투하죠. 나쁜 장애인은 개인의 삶이 아니라 제도를 바꾸는 장애인이에요. 활동가라면 나쁜 장애인이 돼야죠." 한평생 이동권 투쟁을 한 나쁜 장애인 박경석 운동가에게 속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정책국장으로 일했던 기록입니다. 그렇게 나쁜 장애인이 됐습니다.

중증장애인이 이동권 투쟁을 하며 데모하는 것은 세상의 침전물이 되어 담장 밖을 나설 수 없었던 자신에게 허락된 유일한 외출입니다. 데모를 통해 세상을 만나게 됩니다.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 권리를 인정받기 위해 현존하는 법에 구속되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투쟁 없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며 길거리에서 '뚜우쟁'하는 이들에게 응원과 지지를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