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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는 억울합니다

우리 민족은 아기가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매달았고 소나무 속껍질을 벗겨다가 솔떡을 해먹으며 보릿고개를 넘겼다. 송홧가루로는 다식을 만들었고, 솔잎으로는 술을 빚었으며, 송진은 약으로 썼다. 솔갈비(마른 솔잎)는 불쏘시개로, 마른가지와 삭정이는 땔감으로, 둥치는 오래 지나도 휘거나 벌레가 생기지 않아 집을 지을 때 기둥과 서까래로 사용했다. 그리고 종내는 소나무 관속에 누워 솔밭에 묻혔고 무덤 속에서 은은한 솔바람을 즐겼다. - 박수용, 《시베리아의 위대한 영혼》(김영사, 2011), 48쪽

봄이면 꽃이 지천으로 피지만 실상 산에는 꽃이 드뭅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꽃은 눈에 잘 띄게 울긋불긋하게 핀 꽃을 말하지요. 매화, 진달래, 철쭉 등등 꽃은 군락을 이루면 장관입니다. 꽃으로 군락을 이룬 경우가 드물어 봄이면 진달래 축제나 철쭉제를 하지요.

산에 가면 소나무가 정말 많습니다. 송화가루는 다식을 만드는 소중한 재료였지만 요즘은 불청객 취급을 받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식목일에는 소나무를 많이 심고요. 소나무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우리와 함께 한 나무라서 그런가 봅니다. 소나무는 예전부터 자연발생적으로 우리나라를 우점(優占)한 수종이었다고 합니다.

근래 산불이 나면 크게 번지곤 합니다. 기후변화로 인한 겨울 가뭄과 함께 소나무가 재난의 주범으로 등장했습니다. 숲가꾸기 사업으로 소나무만 남기고, 산불이 난 곳에 또 소나무를 심으니 반복된다고 합니다. 한편, 산불을 억제하는 활엽수 위주로 숲가꾸기를 하자는 주장에 생태계 흐름에 역행한다는 반론과 함께 소나무를 심어 송이버섯도 생산해야 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산림청이 숲을 가꾸는 산에서는 대형 산불이 나고, 숲가꾸기를 하지 않는 국립공원에서는 산불이 상대적으로 작고 적다는 것입니다.

대형 산불이 지나간 산림지역을 복구하는 방법으로 자연회복이냐 인공조림이냐로 의견이 팽팽합니다. 절반은 기존 방식으로 하되 절반은 그냥 놔두고 숲이 자생적으로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보자는 절충안도 있습니다.

지난 동해안 산불 복구에 4170억원을 투입한다고 합니다. 이 중 대부분이 숲가꾸기 사업입니다. 주택 피해와 복구, 소실물 구입에 지원하는 예산은 5퍼센트 내외입니다. 송이 채취에 대한 대책은 자세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럴 바에는 예산 중 절반을 지역 주민에게 N년에 걸쳐 n빵을 하고, 숲이 회복하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대형 산불은 송이버섯과 숲가꾸기 이권이 불쏘시게 역할을 해서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요. 자연은 스스로 회복합니다. 소나무는 억울합니다. 소나무는 산불이 자주 나는 곳에 있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