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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 최영미

시인의 말 - 최영미

일곱번째 시집을 세상에 내놓으며 여러 가지 생각이 춤을 춥니다. 시 속에서는 모든 게 허용되어 앞뒤가 맞지 않는 말들도 숨을 쉬고, 주소와 번지가 다른 감정들이 서로 어울리고, 나도 모르는 먼지들이 스며들어 노래가 되었지요.
시를 버릴까, 버려야지, 버리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지만 어이하여 지금까지 붙잡고 있는지. 그동안 저를 먹여 살려준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공항철도/최영미/이미출판사 20210512 108쪽 10,000원

제 임무를 다하고 잊혀진 3월은
아픔을 참으며
겨울과 싸우느라 다치고 터진 생살을 꿰매고
다음 전투를 위해 제 몸을 추스르며
또 1년을 기다린다1

눈을 감았다
떠 보니
한강이
거꾸로 흐른다2

적을 만드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3

아주 작은 것에도 만족하는 불평쟁이가 되었다4

두터운 겨울 코트를 벗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나이가 되었다5

완벽해 보이는 것들이 제일 위험해6

사랑과 분노가 있어야 큰일을 한다

이제 분노할 힘도 없다
분노할 열정이 있다면 연애를 하든가,
맛있는 거 찾아 먹겠다7

세상이 갖고 놀다 버린 햇빛 한줌
도망치듯 유리문을 빠져 나간다8

시와 생활을 감히 섞으려 했으니
혼 좀 나거라9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어

진실을 다 말하지는 않았지만......10


틀린 시간과 싸우는 것이 되풀이되는 역사는 진작 끝났어야 한다. 두꺼운 겨울 코트를 벗고 봄에 한없이 행복하다 못해 심심해서 이를 닦는 세상이 바삐 와야 한다. 세상은 시인이 뒤로 가는 열차에 다시 오르지 않게 하시라. 3월에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시를 쓰니 3월이게 하시라.


  1. 3월
  2. 공항철도
  3. 최영미
  4. 육십 세
  5. 사랑의 종말
  6. 센티멘탈 sentimental
  7. 낙서
  8. My Bed
  9. 죄와 벌
  10. 최후진술